편집위원 컬럼

[2023/01] 격조 높은 정치의 한 해 되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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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저질이 되면 만사가 저질

정치 격 높아져야 우리 국격도 높아져 


글 | 김중위(월간 순국 편집고문)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국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가 하는 모든 것, 그것이 곧 정치다. 경제 문화 사회 국방 어느 것 하나 정치 아닌 것이 없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는 소중하다. 나라가 저질인데 국민만 유아독존처럼 선진국 국민 행세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금년에는 격조 높은 정치가 행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정치의 격이 높아지면 국격(國格)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 대장 범치란 놈이 퇴끼 똥구멍을 볼라고… 졸졸 따라댕겨서 보인게, 퇴끼 뱃속에서 뭣이 촐랑 촐랑, ‘예끼! 퇴끼 뱃속에 간 들었다.’… ‘아니 네 이놈아 거 뭣보고 시방 간이 들었다고… 고함을 그렇게 질러 놓느냐’. 하! 이놈이 말은 했지만 속으로는 딱 질려서 아서라 용왕을 속인 짐에 일찍 세상으로 도망헐 수 밲에는 없다. 대왕님 전에 여짜오대 ‘용왕님 병세가 만만위중 하오니, 소퇴가 세상에를 나가서 계수나무에 걸오 논 간 한보를 가지고 들오도록 하오리다.’” 


국창이었던 임방울의 <수궁가(水宮歌)>중에 나오는 한 대목이다. 춘향가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창이 아니다. 용왕이 다스리는 바다 밑의 나라 수궁을 무대로 벌어지는 조선의 17~8세기 때 이야기다. 무능하고 부패한 관료와 어리석은 왕을 풍자하고 자칫 죽임을 당할 뻔한 힘없는 토끼의 극적인 탈출을 통해 지배계층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하는 해학의 노래다. 


옛 우리 조상들은 그림을 하나 그리거나 창(唱)을 하나 불러도 그냥 무심하게 그리거나 부르지 않았다. 잉어 그림 하나에도 그 뜻이 자못 장대하다. 과거(科擧)에 등과하여 나라의 큰 인물이 되라는 뜻의 그림이다. 로마의 베드로 성당 지붕 꼭대기에 놓여있는 닭은 그리스도 신자이면 누구나 항상 깨어 있으라는 뜻의 조각이다. 그러나 우리네 조상들이 그린 닭 그림은 언제나 조정에 나아가 큰 울림을 울리는 큰 대신으로 커달라는 염원이 깃들여 있다. 그만큼 정사(政事)에 참여하는 것을 본분으로 삼았다. 


관직에 보임되고도 이에 응하지 않은 채 초야에 묻혀 선비의 도만 닦고 있는 남명(南冥) 조식(曺植, 1501~1572)에게 퇴계(退溪)는 어떤 이유로든 백성이 되어 벼슬하지 않는 것도 도리가 아니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낸 적이 있다. 정사를 성사(聖事)쯤으로 여기지 않았나 싶다.


다산(茶山)은 또 참다운 시(詩)란 어떤 것인가를 이렇게 말했다.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아니며,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을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시가 아니며, 아름다움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뜻이 담겨 있지 않은 내용의 것이면 시라고 할 수 없다.”


음악이나 미술뿐만 아니라 문학도 전쟁문학이 있고 저항문학이나 참여문학이 있는 것을 보면 이 역시 정치를 떠나 존재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다. 과학이라고 하여 정치와 무관할 것 같은가? 아니다. 국가의 뒷받침 없는 과학은 어느 나라의 것이건 뒤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가 허여하지 않고서는 지구가 돈다는 말도 못하던 시대도 있었다.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입증한 사람은 포르투갈 사람 마젤란이지만 그를 마젤란이 되도록 한 나라는 스페인이었다. 방역 작업 하나도 제설 작업 하나도 정부의 노력 없이는 있을 수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국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얘기다.


정치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는 국가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의 문제와 별반 다르지 않다. 국가가 하는 모든 것, 그것이 곧 정치다. 경제 문화 사회 국방 어느 것 하나 정치 아닌 것이 없다. 외교는 내치의 연장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그만큼 정치는 소중한 것이다. 그런데도 정치하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정치를 천시(賤視)하거나 비하시키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이제는 국민들이 정치를 혐오할 수밖에 없는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정치에서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는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말이 저질이면 정치도 저질이 되는 것이다. 정치가 저질이 되면 만사가 저질이 될 수밖에 없다. 만사가 저질인데 나라가 어찌 저질이 안 될 수 있을 것인가! 나라가 저질인데 국민만 유아독존처럼 선진국 국민 행세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금년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격조 높은 정치가 행해지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본다. 정치의 격이 높아지면 국격(國格)도 높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 | 김중위 

경북 봉화 출생.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대구대학교에서 명예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상계> 편집장, 4선 국회의원, 초대 환경부장관 등을 역임했으며, 주요 저서로는 『정치와 반정치』, 『눈총도 총이다』, 『노래로 듣는 한국근대사』 등 다수가 있다. 한국문인협회 자문위원, 국제 PEN클럽 고문, 한국시조협회 고문 등과 함께 월간 <헌정> 편집인, 월간 <순국> 편집 고문, 한국문예학술저작권협회 회장 등을 맡으며 칼럼과 수필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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