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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역사기행 [2022/11] 동풍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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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피어나지도 못한 

열일곱 꽃봉오리의 이른 숨 


글 | 강소이(시인, 여행작가) 


흔히들 남의 유관순, 북의 동풍신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둘 다 10대 소녀였고, 일본의 총칼에 면전에서 부친이 죽는 것을 보며 실성할 정도로 분개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끝에 옥사한 공통점이 있다. 천안의 유관순 열사보다 두 살이 어린 15세 소녀가 외친 독립 만세. 하지만 고향이 북녁 땅이라, 의지할 곳 없는 낯선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 고문 끝에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그 아까운 죽음을 어떤 이들도 기려주지 않아 왔다. 


평소에 들어보지 못했던 동씨 성을 가진 소녀,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야기를 우연히 알게 되었다. 가을 바람이 스산하게 불어오는 어느날, 동풍신의 흔적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17세의 나이로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후, 그녀의 시신을 거두어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으리라. 그녀의 부친 동민수 씨는 1919년 4월 15일, 명천군 하가면 화대(花台) 장날 5,000여 명의 군중들 속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본의 발포로 즉사했기 때문이다. 모친이나 가족들이 함경북도에서 서울 서대문까지 내려와 옥바라지를 했다는 기록도 없다. 동풍신의 시신을 가족이 인수하여 수습했다는 기록도 없다. 아마도 시구문 밖으로 버려진 채 아무렇게나 망실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그 사실을 책에서 읽었으면서도, 경기도 의정부시 민락동 산17-1, 광천 동씨 문중 산에 가면 그녀에 대한 어떤 실마리라도 잡을 수 있으리라는 실오라기 같은 기대를 갖고 의정부를 찾아갔다. 구글 검색을 하여 찾아가 보아도, 동씨 문중 산으로 올라가는 산의 입구는 보이지 않는다. 1시간이 넘게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녀도 “모른다”는 답변들 뿐이다. 지구대에 가서 물으면, 답이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퍼뜩 떠오른다. 지구대에서 알려준 대로, 1시간 전에 헤매던 등산로로 접어들어, 약간 가파른 산길을 한참 올라가야 했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함북 명천 출신의 소녀


등산로에 가을빛이 반짝인다. 등산로 한옆, 계곡에 물소리가 제법 힘차다. 엊그제 내린 비로 계곡물이 제법 불어 있었다. 미지의 뭔가를 찾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벌써 지치기 시작한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가봐야 동풍신 흔적을 찾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찾아 나선 길. 그곳에 가을빛과 계곡 물소리가 가득 찬 물잔처럼 투명하다. 맑은 공기를 마시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한다. 사람들의 성씨는 매우 다양하다. 흔하지 않은 희귀성, 동씨. 


한국전쟁 때 남하한 동씨들이 이곳에 문중 산을 마련하여, 이승에서라도 함께 모여 살고 싶은 마음에 의정부 민락산에 누워들 있는가 보다. 꽤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 비석과 둘레석까지 두른 묘지가 부유한 가문의 잘 정돈된 종중산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서 발견한 네모진 검은 돌에 새겨진 글귀 ‘독립열사추모비’가 눈에 들어온다. 동씨 중에는 동풍신 외에도 독립운동에 투신한 이들이 여럿이었나 보다. 사진 몇장을 찍고 난 뒤, 동씨 종친회 회장의 번호가 붙은 현수막을 보고 그분께 전화를 드렸다. 동풍신에 대한 몇 마디라도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었다. 


며칠 후, 그분은 여성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자료집을 무겁게 들고 오셔서 내게 건네주었다. 동풍신의 형제나 모친도 남지 않았고, 건국훈장 국민장을 받았으나 가족이 없어 훈장을 국가보훈처에서 보관하고 있다는 말씀도 전해주셨다. 보자기에 곱게 싼 자료집 네 권을 집까지 들고 오면서 ‘무거운 숙제의 무게’로 팔이 아팠다. 독립문 전철역에서 집까지 걸으면서, 저만치에 보이는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한 함북 명천 출신의 동풍신 소녀를 생각했다. 그 책자를 건네받고 7개월이 지나서야 이 글을 쓴다.     

 

눈앞에서 본 부친의 죽음

15세 소녀의 절절한 독립 만세


흔히들 남의 유관순, 북의 동풍신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둘 다 10대 소녀였고, 일본의 총칼에 면전에서 부친이 죽는 것을 보며 실성할 정도로 분개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끝에 옥사한 공통점이 있다. 천안의 유관순 열사보다 두 살이 어린 15세 소녀가 외친 독립 만세. 자신의 눈앞에서 부친이 총에 맞아 피 흘리며 즉사하는 것을 보면, 누구나 눈에 보이는 게 없을지도 모른다. 동풍신은 부친을 붙들고 통곡을 하다가 실성한 듯, 면사무소와 면장 집에 불을 질렀다. 독립 만세를 외쳤다. 경찰의 발포에 골목에서 망설이던 이들도 동풍신과 함께 시위에 참가했다. 결국 동풍신은 일본 헌병에 체포되어 함흥형무소를 거쳐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되었다. 


어린 동풍신에게 어떤 고문이 가해졌는지는 상상이 가고도 남을 일이다. 나이 어린 여성에게 가해졌을 모진 고문과 악형은 유관순 열사가 장 파열로 순국한 것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김마리아 열사의 유방과 성기를 뜨거운 인두로 지져대고, 멍석에 말아 머리를 구둣발로 때려대는 등의 고문과 다르지 않았을 것 같다. 결국 동풍신은 17세에 감옥에서 순국한다. 


고향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기려지지 않았던 공백의 시간들


순국하기 전, 경찰은 동풍신의 고향 함북 명천군 화대동 출신의 화류계 여성을 동풍신과 같은 감방에 투입시킨다. 동풍신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말을 하여, 동풍신을 회유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문과 절망에 빠진 동풍신은 결국 세상을 등지고 만다. 세상을 떠나기에는 너무 어리고 아까운 나이였으나, 고문을 이겨낼 만큼의 힘도 희망 한 가닥도 남지 않은 그녀의 죽음을 우리는 순국이라고 부른다. 


순국. 나라를 위해서 생명을 바친 죽음. 의지할 곳 없는 낯선 그녀는 일본 제국주의 고문 끝에 저세상으로 떠났는데, 그녀의 아까운 죽음을 어떤 이들도 기려주지 않아 왔다. 1983년에 남한 정부에서 대통령 표창으로 그녀의 영혼을 위로하다가,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으로 추서되었다. 북한에서는 그녀의 통탄할 애국심과 순절을 어떻게 기리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 함북 명천에 동상이라도 세워주었는지, 사당이나 기념관이라도 세워주었는지. 병상에 누워있다가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한 동민수(동풍신의 부친)도 애국장에 추서되었다. 


휴전선으로 남과 북이 나누어지기 전에는 조선 8도의 모든 동포들의 적(敵)은 일본이었다.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 독립 만세를 외쳤던 이들이 휴전선 이북 출신이라고 해도, 우리는 그들을 기려야 하지 않을까? 그들의 의도와는 무관하게, 휴전선은 남과 북으로 분단된 것 뿐이지 않은가? 북한 출신의 독립 열사들의 고향이 북한이라는 이유로 기려지지 않았던 공백의 시간들. 동풍신도 그렇게 역사에서 잊혀질 뻔하지 않았던가? 


북한에서 그녀에 대한 연구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유관순 열사만큼 이화학당 등에서 신식교육을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유관순 열사처럼 샤프 선교사 Alice J. Sharp(史愛理施)나 박인덕, 김란사와 같은 은사들이 있어서 그녀를 민족의식이 투철한 소녀로 교육했다는 연구도 없다. 유관순 열사처럼 고향 천안에 내려와 인근 지역의 유림들을 찾아다니며 병천 독립만세를 계획하고 주도적으로 인도했다는 기록도 없다. 

다만, 독립 만세를 부르다가 자신의 목전에서 순국한 부친의 원통한 죽음에 분노한 자식의 몸부림. 천륜의 활화산이다. 병상을 털고 일어나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순국한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던 여식의 분개. 우리는 영산홍 보다 더 진한 붉은 피-하늘이 내린 천륜을 동풍신에게서 본다. 낯선 서대문 감옥 차가운 감방에서 모진 고문을 받다가 죽어간 17세 소녀의 외로운 죽음 앞에 우리는 마음 아파할 뿐이다. 그녀가 함북 명천 출신이든 이남 어느 고장 출신이든… 스물도 되지 않은, 아직 피지도 못한 꽃봉오리의 이른 숨을 생각해 본다.  


필자 강소이 

서울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교육대학원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으며, 월간 <시문학>으로 시, <서울문학>에 수필로 등단했다. 한국시문학문회 이사, 한국현대시인협회 회원, 국제펜클럽 한국본부 국제협력위원으로 있다. 문단에 나와 시와 수필, 평론 등을 쓰며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던 필자는 최근 역사 유적지 여행을 정리한『독립운동가 숨을 만나다 1, 2, 3권』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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