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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12] K팝의 원류 한국의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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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과 정감 넘치는 ‘K팝’의 뿌리


망아경 빠져 인간 내면에 집중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 


글 | 편집부  사진 | 국립무형유산원 


살풀이춤, 승무, 태평무 등 대대로 전승돼 온 우리 전통춤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범 무용계 릴레이 춤판이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서울남산국악당에서 열렸다. ‘한국 무용의 정전(正典)! 천년의 전통무용 대서사시’를 주제로 한 이번 공연에 연인원 100명에 달하는 중견 전통 무용가들이 출연해 한국 무용의 아름다움을 빛냈다.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원형을 유지해온 춤은 신명과 정감 넘치는 K팝의 뿌리로 깊게 자리잡고 있다. 


춤은 ‘예술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예부터 오늘날까지 인간 생활과 함께 연출된 예술이다. 특히 우리 민족은 타고난 예술적 자질을 바탕으로 가무(歌舞)를 즐겼으며 국악이나 도자기, 건축 같은 분야가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던 데 비해 전통춤은 중국의 영향이 거의 없었다고 할 정도로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무아지경 속에서 즉흥적 표현


한국 춤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땅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땅은 곧 인간의 내면을 의미한다. 한국 춤은 인간 내면에 더 가까이 닿고자 발뒤꿈치로 서고 돈다. 반면 서양의 대표 춤인 발레는 하늘을 지향한다. 하늘에 있는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발끝으로 서고 점프 동작을 많이 한다. 


한국 춤에는 정중동(靜中動) 사상이 담겨 있다.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다는 의미다. 동양 사상에서는 ‘반대’라는 개념을 ‘다른 것’으로 보지 않는다. 예를 들어, 움직임과 정지가 반드시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음양처럼 조화한다고 보는 시각이다. 한국 춤에서는 정지한 듯 가만히 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은 결코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는 이미 움직임이 있다. 반면 발레는 항상 움직임이 많고 정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 춤에는 어깨춤을 들썩들썩 추면서 무릎을 굽혔다 펴는 동작이 많다. 어깨를 들먹거리는 것은 신명으로 들어가려는 동작이며, 신명을 내서 무아지경 속에서 추는 것을 최고로 여긴다. 이와 달리 발레는 상대적으로 직선적인 동작이 많아 출렁거리거나 너울거리는 동작이 별로 없다. 


한국 춤꾼들은 기예의 출중함을 보이기보다 망아경(忘我境) 혹은 신명에 빠져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데 관심이 더 많았다. 한국 춤에서 즉흥성이 매우 강조된 이유다. 자신의 내면에 빠져서 몸이 이끄는 대로 동작을 하다 보면 이전에 하지 않았던 즉흥적인 몸짓이 나오게 된다. 하지만 발레는 주어진 기예를 외적으로 얼마나 능숙하게 구사하느냐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즉흥성이란 있을 수 없다. 


또 다른 차이를 꼽는다면, 한국 춤은 세세한 동작에 연연하지 않고 매우 크게 추는 춤이다. 춤을 출 때 어깨에서 팔목까지만 신경 쓸 뿐, 손동작에 대해서는 스승도 어떻게 하라고 가르쳐 주지 않는다. 반면 발레는 손이나 발동작 하나하나까지 매우 정교하게 표현하는 것을 중요시한다.


정중동의 정수, 승무


승무(僧舞)는 승복을 입고 추는 독무(獨舞)로, 한국 춤 특유의 ‘정중동(靜中動)·동중정(動中靜)’의 정수가 잘 표현되어 전통춤 중 가장 예술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승무는 흔히 무복(舞服) 때문에 ‘중춤’이라고도 하지만 불교 의식에서 승려가 추는 춤과는 다르다.  

승무의 아름다움은 정면을 등지고 양팔을 서서히 무겁게 올릴 때 생기는 유연한 능선과 긴 장삼을 얼기설기하여 공간으로 뿌리치는 춤사위, 하늘을 향해 길게 솟구치는 장삼 자락 등이 특히 빼어나다. 그리고 비스듬히 내딛는 보법(步法)이며 미끄러지는 듯 내딛다가 날 듯하는 세련미는 거추장스러운 긴 장삼을 더할 수 없이 가볍게 만들어준다.

또한 자진모리와 당악(堂樂) 장단에 맞추어 시작하는 북의 연타는 주술적 힘을 발휘해 관객을 몰아지경으로 이끈다. 이 북소리가 멎으면 다시 긴 장삼이 허공에 뿌려지고 연풍대(筵風臺, 오금을 구부렸다 일어나 도는 대신 허리를 뒤로 젖히고 한 발을 내디디며 유연하게 도는 춤사위) 후 어깨춤에 사뿐한 걸음이 곁들여지고 합장하면서 춤은 끝난다. 

승무는 달고 어르고 맺고 푸는 리듬의 섬세한 표현과 초월의 경지를 아우르는 춤사위의 오묘함이 조화된 춤이다. 인간의 기쁨과 슬픔을 높은 차원에서 극복하고 승화시킨 춤이라 할 수 있다. 북을 향해 관객을 등진다거나 머리에 고깔을 써서 얼굴을 확연히 볼 수 없게 한 점 등은 관객에게 아첨하지 않으려는 예술 본연의 내적 멋을 자아낸다. 1969년 7월 4일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인간 감정의 승화, 살풀이춤


살풀이춤은 그해의 나쁜 운을 풀기 위해 벌였던 굿판에서 무당이 나쁜 기운을 풀기 위해 추는 즉흥적인 춤을 말한다. ‘도살풀이춤’ 또는 ‘허튼춤’이라고도 한다. 


춤꾼은 고운 쪽머리에 비녀를 꽂고 백색의 치마저고리를 입으며, 멋스러움과 감정을 한껏 나타내기 위해 하얀 수건을 들고 살풀이 곡에 맞추어 춤을 춘다. 지금의 살풀이춤은 경기지방과 호남지방에서 계승된 춤으로 알려져 있으며, 조선 중기 이후 나라가 안정되고 서민문화가 활발히 전개되면서부터 광대들의 춤으로 발전했다. 이후 일제강점기 때 굿이 금지되자, 무당 중 일부가 집단을 만들어 춤을 다듬으면서 점차 예술적 형태를 갖추게 되어 오늘날 한국을 대표하는 춤으로 정착했다.


살풀이춤은 살풀이 가락에 맞춰 슬픔을 환희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의 감정을 아름다운 춤사위로 표현해 예술적 가치가 큰 전통춤이다. 살풀이춤에 내재한 심성은 깊은 한(恨)이지만, 단순히 슬픔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환희와 신명의 세계로 승화시키는 인간 감정을 표현한다. 1990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나라 태평성대 기원, 태평무 


태평무는 왕실의 번영과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하기 위해 왕비 또는 왕이 직접 춤을 춘다는 내용을 담은 창작무용이다. 왕과 왕비가 우주에서 자연의 일부가 되어 농경민족의 설움과 아픔을 어르고 풀고 맺으면서 흥과 신명의 경지에 이르게 한다. 20세기 초에 경기무악장단과 춤사위를 바탕으로 한성준이 무대화한 춤이고 ‘왕꺼리’라고도 했다. 


태평무가 만들어진 배경에 대해서는 세 가지의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는 경기도당굿의 무당들이 추던 춤을 변화시켰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풍년이 들었을 때 축복하는 뜻에서 관가나 궁중에서 추던 궁중무용을 변화시켰다는 것이며, 세 번째는 조선시대 예인집단조직인 재인청에서 추었던 춤이라는 설이다. 


태평무는 남녀가 왕과 왕비의 복장을 하여 궁중 풍의 웅장하고 화려함을 보여준다. 이 춤은 장중하면서도 빠른 발놀림이 특징이다. 빠른 걸음으로 복잡한 장단을 경쾌하게 가로지르는 발디딤이 장단과 어울려 장단 사이사이에 발로 원을 그리며 돌리고 굴리는 기교적인 발짓은 이 춤만이 가진 멋이다. 우리나라 춤 중에서 가장 현란한 발짓을 자랑하며 세계에 견줄 만큼 예술성이 높다. 198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SK텔레콤과 문화재청의 문화재 캠페인 ‘태평하기를’에서 국가무형문화재 제92호 태평무 보유자인 양성옥 명인과 K팝 대표 안무가 리아킴이 전통춤 태평무와 K팝 댄스를 합동 공연하며 한국의 춤을 재해석해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