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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국선열 역사기행
[2023/01] 홍매화 여행길에서 만난 단재 신채호 선생 신채호 선생은 어째서 최남선의 기미독립선언서를 찢어버리기까지 했을까? 기미독립선언문이 민초들의 고통과 일본의 술수와 태도를 통찰하지 못한 탁상공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직시했기 때문이었을까?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에서 논설위원과 주필로서 그 당시 세태와 현실을 가장 심각하게 직시하고 있는 통찰력과 현실감각의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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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2] 시인의 폭탄 - 윤봉길 의사 윤우의 선생은 20세에 시집(詩集)을 세 권이나 낼 정도의 문학청년이었다. 그가 지은 한시(漢詩)가 300여 편에 달하고 그중 100여 편만이 전해진다고 하지만, 그는 문학청년을 넘어 시인이었다. 그리고, 시를 지을 때마다 자신의 별명인 봉길(奉吉)이라는 이름을 필명(筆名)처럼 사용했다. 해서 윤우의(尹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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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1] 동풍신 이야기 흔히들 남의 유관순, 북의 동풍신이라는 말을 하곤 한다. 둘 다 10대 소녀였고, 일본의 총칼에 면전에서 부친이 죽는 것을 보며 실성할 정도로 분개하여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서대문형무소에서 고문 끝에 옥사한 공통점이 있다. 천안의 유관순 열사보다 두 살이 어린 15세 소녀가 외친 독립 만세. 하지만 고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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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10] 조선 청년 이봉창의 분노 일왕 히로히토는 그들이 신격화해놓은 신이며 국가였다. 목숨을 걸고 일왕의 안전을 지키는 게 경시청의 당연한 책임이었다. 그런데, 바로 경시청 앞에서 식민지 지배에 있던 조선 청년이 폭탄을 던졌다는 것은 일본에 대한 도전 중에 도전이었다. 그들의 자존심을 할퀴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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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 아우내의 배꽃 - 천안 유관순 유적지에 다녀와서 시대가 평화로웠다면, 편안하게 신식교육을 받은 엘리트 여성으로 컸을 텐데…. 유관순을 죽게 한 것은 일본의 잔악성이지만, 주권을 상실한 나라의 힘없는 소녀는 방광파열(자궁파열)로 차디찬 감옥에서 숨졌다. 제국주의 칼날에 베어진 어린 배꽃의 아픔이 고스란히 기억되는 곳이 이곳 천안시 병천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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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 양평 물의 비밀 - 몽양기념관에서 만난 손기정 선수 사진 몽양은 아들의 친구가 달리기를 잘하는 것을 기특하게 여긴다. 평소 아버지처럼 따랐던 몽양에게 베를린 올림픽 출전에 대한 갈등을 의논한다.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나가는 것은 원통하지만, 나가서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전 세계에 보여주라”고 독려한다. 손기정은 이를 악물고 달렸고, 2시간 29분 19초라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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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 꺼지지 않는 불꽃 : 8호 감방 어윤희 지사 어윤희는 개성에서 독립선언서 80장을 나눠주다가 투옥되었고 유관순과 같은 감방에서 1년여를 함께 보냈다. 8호 감방에서 17세 소녀 유관순의 멘토가 되었다. 8호 감방 꽃불들에게 죽지 않을 정도로 5일에 한 번 콩밥 한 덩어리를 던져주었다. “아주머니 배고파요”라고 하면 자신의 콩밥까지 유관순에게 내어주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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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 한용운 선생의 심우장 두 번이나 결혼을 했던 스님, 두 여인에게서 각각 아들과 딸을 낳고, 방대한 불교 서적을 남기고, 시집과 소설 작품을 남기고, 서대문형무소에 두 번이나 투옥되었던 스님. 일제강점기라는 격랑(激浪) 속에서나 조계종 종단에서나 문밖에 세워진 사람이었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이 아려왔던 인제 만해마을 여행. 은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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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 진관사 칠성각 흙벽 속에서 칠성각 안으로 들어가 그 모습을 사진기에 담아 본다. 두 사람 정도가 누우면 꽉 찰 정도의 작은 방에서 백초월 스님이 태극기와 신문들을 감추고 계실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급박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수차례 체포되면서 일본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정신병자 행세를 한 백초월 스님. 정신병으로 석방되어 나오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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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 스코필드의 자전거 1916년에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 와서 세균학과 위생학을 가르치던 의학 교수. 우리나라 사람도 아닌데, 어떤 이유로 서울역에서 기차에 자전거를 싣고 화성까지 찾아왔을까? 그리고 불에 타서 폐허가 된 제암리와 수촌리 화수리 사진을 찍고, 불에 타서 죽은 사람들을 모두 모아 공동묘지에 묻어주었을까? 살아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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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 최초의 여성 유학생, 이화학당 김란사 선생 독특한 이름, 독특한 선택, 독특한 행동. 그러나 21세기 오늘날 그녀를 생각해도 그녀의 선택은 모두 옳았다. 가장 독특한 것은, 파이프 오르간을 정동교회에 기증한 일이다. 한국에 귀국하여 이화학당에 총교사(교감)을 지내며 전도와 봉사로 여성을 위한 교육에 헌신한 것은 물론이다. 김란사는 유관순 열사뿐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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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 단재 신채호를 생각하며 조계사 뒷마당쯤에 있었을 대한매일신보에서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수많은 논설을 쓰느라 밤늦게까지 초롱불을 끄지 못했을 신채호 선생이 수성공원 어딘가에서 아직도 붓을 들어 뭔가를 쓰고 계실 것 같다. 정신투쟁, 사상 투쟁이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주장하는 중국을 향해서, 서릿발 같은 분노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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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 항일 무장투쟁 벌인 독립운동가들의 지극한 용기 요즈음 이 나라에는 정의와 공정을 외치는 정치가들이 있다. 또한 불의와 불공정에 분노하는 시민들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옮음, 불의한 세상을 바꾸려는 지극한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모든 독립운동사는 현대사라고 주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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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 이육사 시인을 찾아서 윤동주 시인, 이상화 시인, 한용운 시인, 심훈 선생 등 그 시대 지식인들 중에 시대를 아파하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었겠는가? 모두 시대를 아파하며 시를 쓰고 소설을 썼다. 비유와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일제에 저항하고 해방을 열망하는 시를 썼다. 그러나 어떤 시인도 직접 총을 들고 싸우지는 않았다. 의열단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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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 소난지도 최구현 의병장 이야기 언젠가 최구현 의병장의 묘소에 참배를 갔을 때, 묘소 옆에서 보았던 컨테이너 박스. 최충묵 씨는 그곳에서 산소를 참배하러 오는 학생들이 올 경우에도 최구현 의병장에 대한 설명을 하곤 하셨다. 더 잘하기 위해서 컨테이너 박스를 구하여 산소 옆에 설치하였고 전기도 전화선도 끌어다 놓고 그곳에서 주무시고……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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