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초대석

[2022/11] 일본 과거사 속죄 위해 내한한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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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과거사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위로 


피해자가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일본의 무한사죄와 무한책임 필요


글 | 편집부    

사진 | 나주시·전남대 제공


 지난 10월 6일, 1박 2일 일정으로 광주·전남을 방문한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는 “상처 입고 피해받으신 분들이 더는 사과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할 때까지 일본이 계속 사과해야 한다”며 머리를 깊이 숙였다. 그는 2015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본 후 광장 추모비 앞에서 속죄의 큰절을 올린 바 있다. 2018년에는 경남 합천에서 원폭 피해자들을 만나 무릎 꿇고 사죄했다. 이후에도 변함없이 한국을 찾아 진심 어린 사과와 위로를 건넸다. 일본 정치인 중 드물게 일본의 식민 지배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주장해온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이번 방한 행보를 따라가 보았다. 


잘못을 돌이켜 반성(反省)하기란 쉽지 않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謝過)하기는 무척 어렵다. 그가 공인(公人)이라면, 역사적 적대관계에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전직 일본 총리가 서대문형무소를 방문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올렸다. 2015년 8월 12일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인 선조들이 독립을 위해 애쓰다 고문 등 가혹한 처사로 목숨을 잃었다는 것에 깊이 사죄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여기 서 있습니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2009~2010)는 취재진을 향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일본 정치인 가운데 유일하게 일본의 조선 침략 행위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죄했다. 


그는 40여 분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돌아보는 동안 열한 차례나 고개를 숙였다. 방명록에는 ‘만세운동에 힘을 다한 모든 영혼에게 편안함이 있길 바라며 독립, 평화, 인권, 우애를 위해서’란 글을 남겼다. 이후 광장 추모비 앞에 신발을 벗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었고, 합장하며 고개를 숙인 뒤 독립투사들의 영혼을 기리는 큰절을 올렸다.

일본으로 떠난 후 작은 뉴스 하나가 전해졌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가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방문한 뒤 서대문구에 3만 엔을 전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자신의 방문을 위해 사용한 비용을 일부나마 보태겠다는 진심이었다. 


사죄를 위한 그의 발걸음은 그 후에도 이어졌다. 2018년 10월 2일, 하토야마 전 총리는 다시 한국을 찾았다. 부산대학교에서 명예 정치학박사 학위를 받고 의인 이수현의 묘를 참배했다. 다음날에는 경남 합천에 있는 한국인 원폭피해자복지회관을 방문해 고령의 피해자 손을 잡고 무릎을 꿇은 채 일일이 사죄하며 위로를 전했다. 위로(慰勞)의 사전적 의미처럼, 그가 건넨 사죄의 말과 무릎을 꿇은 행동이 피해자들의 괴로움과 슬픔을 조금은 달래주었으리라.


퇴임 후 일제 과거사 사죄하는 활동 펼쳐

위안부·강제징용 “일본 책임” 소신 밝혀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총리는 2009년 제93대 총리에 선출된 뒤 일본의 독도 영유권을 부정하며 관심을 끌었다. 민주당 소속으로 집권해 9개월간 내각을 이끌며 일본 정치인 중 보기 드물게 일본의 식민 지배 책임을 인정하고 일본의 사죄와 배상을 주장해온 지한파(知韓派) 인사로 꼽힌다. 증조할아버지가 중의원 의장, 할아버지가 총리, 아버지가 외무상을 지낸 정치 명문가 출신으로, 일본 정치사에서 1955년 이후 굳건하게 유지됐던 자민당 체제에 균열을 일으킨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명문 도쿄대학 공학부를 졸업하고 1976년 스탠퍼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해 도쿄공업대학교 조수, 1981년에 센슈대학 조교수로 취임했으나 1984년 정계에 입문하며 퇴직했다. 정치인 하토야마를 저평가하는 사람들도 “정계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이름있는 공학자가 되었을 것”이라고 평할 정도로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2010년 총리 퇴임 이후에는 한국, 중국 등을 오가며 일제의 과거사를 사죄하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아베 신조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것을 강도 높게 비판했으며, 일본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를 인정·보상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2018년 10월 30일 강제징용 대법원 판결에 일본 정부가 강력하게 항의했을 때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경험을 저희가 제공했다. 일본인들은 사죄하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소신을 밝혔다. 


“징용공은 과거 강제적인 노동을 했던 분들입니다. 일본이 억지로 끌고 와서 강제적 노동을 시키면서 월급을 제대로 안 준 경우도 많아요. 고통 속에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요. 징용공 문제가 과거 한일청구권협정 논의 과정에서 다뤄졌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과거에는 일본 정부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징용공 문제가 해결됐다고 주장하지 않았어요. 야나이 슌지(柳井俊二) 전 외무성 조약국장이 1991년 ‘국가 대 국가의 청구권은 소멸했을지 몰라도 개인 간 청구권은 종료되지 않았다’고 일본 내 위원회에서 확실하게 확인했으니까요. 일본 정부도 이 사실을 기본으로 삼아야 합니다.”

당시 하토야마 총리의 발언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자국의 이익에 편승하기보다 정의·평화·인권에 기반한 양심을 택한 용기에 박수를 보내는 한국인이 적잖았다. 그의 곧은 소리는 한·일 양국의 갈등 국면에서도 변함없이 이어졌다. 지난 2019년 7월 일본이 수출규제 조치에 이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서 한·일 관계가 경색되자 그는 ‘일본의 책임’을 강조했다. 


“한·일 관계에 문제가 생긴 대부분 원인이 일본 측에 있다고 말할 수밖에 없어요. 한·일 간에는 역사 인식, 역사적 사실을 파악하는 방법에 차이가 있어요. 대부분 일본인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인들의 행적, 식민지 시절 한국의 실태를 충분히 알지 못해요. 오히려 한국을 위에서 내려다보듯 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전쟁으로 상처받은 쪽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한 거죠. 기본적으로 우치다 다쓰루 고베여대 명예교수가 주창한 ‘무한책임론’의 사고방식이 올바르다고 생각해요.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 식민 지배로 고통받은 사람들이 ‘더이상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해서 사죄의 마음을 지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국 찾아 ‘무한책임론’ 솔선수범

방문지마다 깊은 사죄로 고개 숙여 


2019년 봄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이 오랫동안 발목을 붙잡는 동안, 그의 머릿속에선 ‘무한책임론’이 늘 떠나질 않았다. 그리하여 올해 팬데믹이 조금 잦아들고 하늘길이 열리자마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지난 2월 23일 하토야마 총리는 전남 진도군 왜덕산에 올랐다. 왜덕산에는 1597년 명량해전 때 목숨을 잃은 일본 수군들의 무덤이 있다. 해안가로 밀려온 왜군 시체를 주민들이 ‘시체는 적이 아니다’며 수습해 일본 바다 쪽을 바라볼 수 있게 묻어줬다. 철천지원수를 품어준 행동이었으나 드러내지 않으려고 ‘와덕밭’이라 부르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오래전부터 왜의 수군 후손들까지 참여해 혼백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낸다. 올해는 한국 진도문화원과 일본 교토평화회 공동 주관으로 위령제가 열려 하토야마 전 총리 등 한·일 관계자 100여 명이 함께했다. 


“전남 진도 주민들은 명량해전 당시 전사한 왜군들의 위령제를 지내주고 있어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인들의 귀나 코를 가져와 조국에서 자랑했던 일본의 역사를 부끄러워해야 해요. 일본 사람들은 이 같은 사실을 잘 몰라요. 많은 일본인이 이를 안다면 한일 관계가 좀 더 좋아질 겁니다. 역사를 올바로 인식하고 상대방도 용서할 마음이 들 때까지 사죄해야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 수 있어요. 더이상 사죄하지 않아도 된다고 할 때까지 꾸준히 노력해야 합니다.”

그는 변함없이 일본의 역사적 과오(過誤)에 대한 깊은 사죄와 한일관계 개선에 한목소리를 냈다. 다음날 전북 정읍시 3·1운동 기념탑을 찾은 자리에서도 거듭 일본의 무한사죄와 무한책임의 뜻을 밝혔다. 더불어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에 대해 “독립운동의 출발점이며, 민족자결 운동의 발로”라고 평가했다.


한·일 관계 악화는 정치적인 문제

우애 기반한 동아시아 미래 중요


하토야마 총리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11월 3일)을 앞두고 다시 광주·전남을 찾았다. 지난 10월 6일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과 옛 나주역사, 박준채 선생의 생가인 남파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263호) 등을 둘러보면서 “식민지 시대 한국인들이 겪은 차별과 아픔을 다시 한번 알게 됐고 사죄하고 싶은 마음”이라고 말했다. 기념관 방명록에는 ‘독립을 위해 생명을 바친 학생들의 영혼이 평온하시길 바란다’고 썼다.


나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에서 독립운동가 이창신 선생의 아들 이명한 관장과 박준채 선생의 아들 박형근 이사를 만난 하토야마 총리는 죄송하다며 변함없이 머리를 숙였다. 이창신 선생은 1929년 11월 나주에서 만세 시위를 주도하다 퇴학을 당했고, 박준채 선생은 나주역에서 한국인 학생을 희롱하는 일본인 학생에게 주먹을 날려 광주학생독립운동을 촉발했었다.


이날 오후에는 전남대에서 열린 ‘개교 70주년 용봉포럼’에 참석해 ‘우애에 기반을 둔 동아시아의 미래’를 주제로 특별 강연을 열었다. 학생과 시민, 교직원 등 4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유튜브 생중계에도 300여 명이 실시간 접속하는 등 성황을 이뤘다. 


“한·일 관계의 악화는 전적으로 정치적인 문제입니다. 일제강점기와 전후 처리 과정에서 전쟁에서 패한 자(일본)는 그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주고 비참하게 만든 분들에게, 그들이 더는 사과하지 않아도 된다고 용서해 줄 때까지 용서를 비는 마음을 계속 가져야 해요.” 


강단에 선 하토야마 총리는 사죄의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강제징용과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도 평소 소신을 거듭 밝혔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가 개인의 청구권 자체를 국내법적인 의미로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답변했던 입장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며, 일본 정부는 국제인권법상 개인의 손해배상권은 국가 간 협정이나 조약에 의해 소멸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정부가 무한책임의 입장에서 사죄의 마음을 계속 가짐으로써 위안부 희생자 한 분 한 분의 명예가 회복되고 그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양국에서 지원받기를 희망합니다.”


북한의 핵 문제와 관련해서는 “한일 양국의 문제를 하루빨리 개선하고, 미국이 북한과 대화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이 핵 선제 불사용 선언을 하면 북·미 관계는 크게 전진할 것”이라고 피력하며, 평화를 위협하는 현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한·중·일 ‘동아시아 공동체’를 제안했다.


2015년부터 7년 동안 이어진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의 행보를 따라가면서 ‘사죄’와 ‘위로’의 참뜻을 헤아려 보았다. ‘지은 죄나 잘못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행위’를 사죄라 하고,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행위’를 위로라 한다. 사죄도 위로도 진심(眞心)이 없으면 한낱 껍데기일 뿐이다.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7년간의 진심이 참으로 감사하다. 하토야마 총리의 사죄와 위로가 나비의 날갯짓이 되어 평화·인권·우애의 시대를 열어가길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