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가 있는 독립운동가 [2022/04] 민족문화유산 지킴이, 문화 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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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문화유산 지형도 바꾼 일등공신
‘문화보국’ 일념으로 문화재 수집
목숨 걸고 민족의 얼 지켜내다
글 | 편집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서화 전적(典籍)과 골동품 등 귀중한 우리 문화유산이 일본인의 손에 들어가는 것을 막고, 빼앗긴 문화유산을 되찾기 위해 조선의 백만장자는 재산을 전부 탕진했다.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밀반출되는 것을 막고 일본인들이 가져간 석불, 석탑, 부도 등을 되찾아와 보존했다. 그가 지키고자 한 것은 문화유산에 담긴 민족의 얼이었으며, 조선의 자존심이었다. 광복의 기쁨도 잠시, 6·25전쟁이 발발해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다. 소중한 문화유산이 잿더미가 될 위기에서 군인과 경찰, 박물관 직원 등 수많은 이들이 목숨 걸고 유물과 문화재들을 지켜냈다. 이후에도 문화재 손실을 막아내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과 이건희 회장도 대를 이어 국보를 지켜내는 일에 헌신했다. 선열들이 남긴 위대한 유산을 수호한 문화 독립운동가들이 있어 ‘문화 대한민국’은 현재까지 찬란한 역사를 이어가고 있다.
“서화 전적과 골동은 조선의 자존심”
간송 전형필
고려청자의 백미로 꼽히는 국보 ‘청자상감운학문매병’은 간송이 30세 때인 1936년 일본인에게서 2만 원을 주고 사들였다. 당시 기와집 스무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그해 영국인 변호사 존 개스비가 소장하던 고려청자들을 사들이기 위해 공주의 전답을 모두 판 일화도 유명하다. 1938년 7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이 시작되자 간송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박물관인 ‘보화각(葆華閣)’을 설립한다. 바로 ‘간송미술관’의 전신이다. 보화각은 민족문화의 보존을 통해 민족적인 긍지를 되찾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우리 문화를 건설하기 위한 초석이었다. 보화각은 우리 문화재를 수집하고 보관하는 장소이기도 했지만, 문화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는 기관이기도 했다.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는 매우 방대하다. 서화, 도자기, 불상, 부도, 전적 등 문화의 전 영역을 망라하고 있다. 중요한 유물로는 국보 20호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135호 ‘혜원 전신첩’, 국보 68호 ‘고려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이 있으며, 현재 간송미술관에는 12점의 국보와 10점의 국가 보물, 4점의 서울시 유형문화재가 소장되어 있다. 문화재를 지킨 공로를 인정받아 1962년 문화포장, 1964년 문화훈장 국민장, 2014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전쟁 포화 속에서 목숨 걸고
문화재를 지켜낸 사람들

1950년 지리산 빨치산 소탕 명령이 떨어졌을 때, 당시 제18전투경찰 대대장이었던 차일혁 총경에게 “화엄사를 전소시키라”는 유엔사령부의 명령이 하달됐다.
항일운동가 출신 차일혁 총경은 상부의 명령을 따를 수 없었다. “절을 불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다시 짓는 데는 천년이 걸려도 부족하다”며 명령을 거부했다. 그는 묘안으로 각황전의 문짝 하나만 떼어내서 불태우는 것으로 화엄사를 지켜냈다. 덕분에 국보 제67호 각황전을 비롯해 4점의 국보와 8점의 보물, 다수의 지방문화재와 천연기념물이 있는 문화유산의 보고는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 2008년 보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6·25전쟁 사흘 만에 서울이 함락되었을 때 김재원 관장을 위시한 국립박물관 사람들 역시 문화재를 지킨 숨은 영웅들이다. 북한군이 들이닥쳤을 때 유물의 보존을 이유로 들어 일부러 포장을 늦추고 다시 해가며 시간을 끌었다. 자신들이 아니면 이 유물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는 책임감이며 절박함이 만들어낸 기지였다.
더 놀라운 것은 국립박물관 직원 중에는 서울 함락 직후에도 피란을 떠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쟁 발발 다음날 진열장 안의 유물들을 모두 수장고에 격납하고 창고 문에 못을 박고는 박물관을 지키기 위해 경복궁에 남았다.
어떻게 해서든 유물을 이동하지 않기 위해 북측 위원회의 책임자를 설득했다. 심지어 그들은 종묘의 경내에 땅굴을 파서 덕수궁에 보관 중인 유물을 묻으려고 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전세가 급격히 개선되자 북한군이 철수하면서 실제 유물이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은 밤낮없이 땅을 팠다고 전해진다.
대를 이은 아름다운 문화재 기증
삼성 이병철·이건희 부자

‘아미타삼존도’는 해외에서 최초로 정식 회수한 고려 국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과정은 파란만장했다. 1979년 일본 나라(奈良)시 박물관 야마토분카칸(大和文華館)에서 경매를 겸한 고려불화 전시회가 열렸는데, 주최 측에서 갑자기 “한국인은 경매에 참가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결국 호암은 미국의 삼성물산 지사까지 동원해 비밀리에 불화를 구입했다. 그때 사들인 작품 두 점이 ‘아미타삼존도’(국보 218호)와 ‘지장도’(보물 784호)다.
호암의 삼남이었던 이건희 회장(1942~2020) 역시 아버지 못지않은 문화재 수집가였다. 경영 수업을 받는 동안 몰래 골동품 수업을 병행했을 만큼 관심이 많았다. 이 회장은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다양한 국보를 수집했다. 가치 있는 문화재라면 값을 따지지 않고 구매했다. 이 회장 덕분에 삼성은 다양한 시대 문화재를 보유하게 됐다.

지난해 4월 28일 삼성가는 시가 평가액이 3조 원에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을 기증한다고 밝혀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건희 회장이 평생 모았다는 소장품 1만 123건(2만 3000여 점)이 국립중앙박물관(9797건·2만 1600여 점)과 국립현대미술관(1226건·1400여 점)에 기증됐다. 기증품 중에는 국보 14건, 보물 46건 등 총 60건의 국가지정문화재가 포함됐다.
진경산수화의 진수로 꼽히는 ‘정선 필 인왕제색도’와 뒤늦게 진가가 드러난 ‘청화백자죽문각병’(국보 258호), 현존하는 고려 유일의 ‘고려천수관음보살도’(보물 2015호), 단원 김홍도의 마지막 그림인 ‘추성부도’(보물 1393호) 등 그 면면이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