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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더 생각하는 역사 [2022/08] 순국과 건국을 동시에 생각하게 되는 여말선초의 지도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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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은 쿠데타인가 혁명의 승리인가


‘선비형 지도자’와 ‘강명한 지도자’


글 | 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우리 정치학계에서 리더십 연구는 여말선초의 지도자들에 관한 연구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 시기는 5백 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가 멸망하고 앞으로 5백 년 남짓하게 존속할 조선이 건국되는, 글자 그대로 역사의 전환기였다. 한쪽에서는 고려사회와 조선사회를 똑같은 중세사회로 보면서 조선의 건국은 쿠데타일 뿐 혁명적·발전적 성격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두 사회의 성격은 서로 달랐으며, 새 왕조의 개창은 분명히 혁명적·발전적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렇기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충절을 지킨 ‘선비형 지도자’를 흠모하면서도, 동시에 ‘강명한 지도자’를 그리워한다. 여말선초의 순국자들과 건국자들을 돌이켜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우리 정치학계에서 리더십 연구를 꺼리던 시기가 있었다. 권위주의 시대에 지도자의 리더십을 논하는 것이 마치 ‘강력한 지도자’를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러한 위험은 권위주의 시대를 벗어난 문민정부의 개막과 더불어 사라졌다. 더구나 1987년 후반에 외환위기가 발생하고 거기에 따라 ‘6·25전쟁 이후 제2의 국난’이 일어나자 정치학자들은 자연히 대통령의 리더십을 따지게 된 것이다. 이로써 ‘리더십 연구의 르네상스’가 열렸다. 


이 시기에 우리 정치학계에서 리더십 연구를 선도한 학자들 가운데 1차적으로 정윤재(鄭允在) 교수를 지적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운동가였으며, 해방공간에서는 좌우합작운동에 참여했고,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 제2대 국회의원으로 활동을 시작했으나 곧 일어난 6·25전쟁 때 납북된 민세 안재홍 선생의 사상과 실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일관되게 한국 정치지도자들에 관한 연구를 출판하면서 이 분야를 이끌어왔다.


조선 건국에 대한 정반대 해석

정몽주는 만고충신인가, 수구세력인가


우리 정치학계에서 리더십 연구는 여말선초(麗末鮮初)의 지도자들에 관한 연구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 시기는 5백 년 가까이 이어진 고려가 멸망하고 앞으로 5백 년 남짓하게 존속할 조선이 건국되는, 글자 그대로 역사의 전환기였다. 자연히 많은 지도자가 나타났다.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정신으로 고려에 대한 충절을 지켜 죽임을 당했거나 향리로 은둔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목은(牧隱) 이색(李穡),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삼은(三隱)’이었고, 대은(大隱) 변안렬(邉安烈)을 포함시킨다면 ‘사은(四隱)’이 된다. 대조적으로, 건국의 대업에 동참한 이들이 있었다.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을 필두로, 송당(松堂) 조준(趙浚), 양촌(陽村) 권근(權近), 호정(浩亭) 하륜(河崙) 등이 그들이었다. 

전자의 경우와 후자의 경우를 비교할 때, 정치학자들은 우선 고려를 멸망시키고 성립된 조선의 건국을 역사적 안목에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의 물음에 직면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물음에 관한 학계의 기존해석을 검토하기로 하자.


한쪽에서는 고려사회와 조선사회를 똑같은 중세사회로 보면서 조선의 건국은 쿠데타일 뿐 혁명적·발전적 성격을 갖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볼 때, 조선건국에 가담한 이들은 권력을 탐해 불의한 세력에 빌붙은 역적이 되며, 고려왕실에 충절을 바치다가 죽임을 당했거나 은둔한 이색 길재 정몽주 변안렬 등은 만고의 충신이 된다.


반면에 다른 쪽에서는 정반대로 해석한다. 두 사회의 성격은 서로 달랐으며, 새 왕조의 개창은 분명히 혁명적·발전적 성격을 지녔다고 주장한다. 자연히 전자와 후자에 관한 평가도 다르게 나타났다. 극단적인 경우, 만고충신의 대명사와 같은 정몽주는 구체제에서 누리던 기득권을 지키고자 한 수구세력으로 폄하한다. 이 폄하는 물론 부당하다. 정몽주는 글자 그대로 유학의 가르침에 따라 충절을 지킨 선비였다.


조선건국의 혁명적 성격을 부인하는 대표적 학자들이 하버드대학교의 에드워드 와그너(Edward W. Wagner) 교수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학교의 존 B. 던컨(John B. Duncan) 교수다. 여말 지도세력과 그 후예가 선초 이후에도 여전히 지도세력으로 계속됐다고 논증한 그들은 지도층의 변화가 없었다는 사실은 부패했던 구체제의 계속성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수구당’에 반대하는 ‘개혁당’의 승리 

이성계의 위화도회군 정당성 부여


대조적으로 일제강점기의 국사학자 안확(安廓)은 ‘수구당’에 반대하는 ‘개혁당’의 ‘수령’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이 정당했다고 평가하면서, 조선건국을 ‘개혁당’의 승리로 보았다. 서울대학교의 한영우(韓永愚) 교수 역시 혁명적 성격을 인정한다. “조선왕조의 개창은 실질적으로는 이성계의 무력이 결정적 뒷받침이 되었지만, 권문세족의 비리 아래 고통을 받던 중소지주층과 농민층의 이익을 증진함으로써 민심을 수람할 수 있었던 것이 정권탈취의 정당성을 주장할 수 있는 명분으로 작용했다”라는 것이다. 스위스 출신의 조선사 연구자 마르티나 도이힐러(Martina Deuchler) 교수, 그리고 도쿄대학의 미야지마 히로시(宮嶋博史) 교수 역시 같은 해석을 제시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우리는 영남대학교 정치행정대학 학장인 김영수(金永壽) 교수의 『건국의 정치: 여말선초, 혁명과 문명전환』(이학사,2006)과 『고려의 가을: 여말선초의 인물과 사상』(포럼,2021)을 읽게 된다. 「고려말과 조선조 건국기의 정치적 위기와 극복과정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1997년 2월에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이후 일관되게 이 주제를 천착해 위에서 적시한 책들을 출판한 것이다. 그는 앞의 책으로 2006년에는 한국정치학회 학술상을, 2007년에는 월봉저작상을 받았다.


김 교수는 조선건국의 ‘혁명적·발전적 성격’을 인정한다. 국가경영을 합리주의에 바탕을 두었던 세계사의 흐름에 부합되게,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국가의 공식적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였으며, 과거제를 채택하면서도 공신·귀족의 자제를 등용하는 음서제를 더 많이 활용했던 고려왕조와는 대조적으로 음서제를 폐지하고 철저하게 과거제에 바탕을 두어 인재를 등용했으며 종국적으로 사림(士林)의 정치시대, 곧 지식인의 정치시대를 열었다는 것이다.


김영수 교수에 이어, 여주대학교 세종리더십연구소 소장인 박현모(朴賢謀) 교수는 『태종평전: 호랑이를 탄 군주』(흐름출판, 2022)를 출판했다. 「정조(正祖)의 성왕론(聖王論)과 경장정책(更張政策)에 관한 연구」로 서울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1999년 8월에 정치학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001년부터 14년에 걸쳐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정조와 세종 등 군주 그리고 정도전과 최명길(崔鳴吉) 등 재상의 리더십을 연구했으며, 『정조평전』, 『정조 사후 63년』, 『세종처럼』 등을 출판했다. 그는 이어 2010년부터 2021년까지 10여 년에 걸쳐 『태종실록』을 연구하고, 마침내 『태종평전』을 출판한 것이다.


그는 이 일련의 저서를 통해, 조선건국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특히 태종을 “‘가족같이 화합하고 잘 사는 나라,’ 곧 ‘소강(小康)의 나라’를 미래상으로 제시하고 뛰어난 인재 등용에 온갖 노력을 기울였으며, 사대교린 외교를 통해 조선의 국격을 높인 군주”라고 칭찬했다. 구체적으로, 태종을 ‘강명(剛明)한 군주,’ 마키아벨리의 표현으로, ‘온갖 도전과 유혹을 이겨낼 수 있는 굳센[剛] 의지와 함께 일의 이치를 꿰뚫는[明] 눈을 가진 군주’로 평가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박 교수는 “우리 역사에도 수많은 군주가 있었다. 이 중에서 마키아벨리가 이상형으로 그린 군주상에 걸맞은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코 이 사람을 말할 수 있겠다. 바로 조선의 제3대 국왕이자 세종대왕의 아버지 태종 이방원(李芳遠)이다”라고 썼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국내외적으로 많은 시련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그렇기에 ‘불사이군’의 정신으로 충절을 지킨 ‘선비형 지도자’를 흠모하면서도, 동시에 ‘강명한 지도자’를 그리워한다. 여말선초의 순국자들과 건국자들을 돌이켜보는 까닭이 거기에 있다.  


필자 김학준 

1943년 중국 심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켄트주립대와 피츠버그대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단국대학교 이사장, 인천대학교 총장, 동아일보사 사장·회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좌교수로 재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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