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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항쟁사 [2021/02] 국난극복의 우리 역사 제대로 가르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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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백 년 역사 존속시킨 조선왕조의 저력 

위대한 행동은 위대한 정신에서 나온다


글 | 김학준(단국대학교 석좌교수)


  대한제국을 포함한 조선왕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감탄하게 되는 것은 동아시아 변방의 이 작은 나라가 여러 차례에 걸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상충하는 무대가 되었음에도 독립을 5백 년 넘게 지속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례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무엇이 조선왕조를 5백 년 넘게 존속시킬 수 있었을까? 조선사 전공자의 저술에 공통되는 대답은 ‘균형과 견제’ 위에서의 국정운영이다. 


조선왕조가 500년 넘게 존속되었던 이유


대한제국을 포함한 조선왕조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늘 감탄하게 되는 것은 동아시아 변방의 이 작은 나라가 여러 차례에 걸쳐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이 상충하는 무대가 되었음에도 독립을 5백 년 넘게 지속했다는 사실이다. 그러한 사례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중국의 경우에는 8백 년 존속했던 주(周)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전한과 후한의 역사를 합치는 경우 4백 년 존속했던 한(漢)의 역사가 제일 길었고, 3백 년 남짓했던 송(宋)의 역사가 그 뒤를 이었으며, 3백 년에 근접했던 청(淸)의 역사가 세 번째로 길었다.


  ‘로마의 평화’ 또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또는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라고 할 때의 로마제국의 역사도 4백 년 남짓했다. 1차대전 종전 이전의 유럽에서 위세를 떨쳤던 오스트리아·헝가리합병제국의 역사는 반세기에 지나지 않았으며, 당시 세계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보유했던 제정러시아의 역사도 3백 년 남짓했다. 흔히 ‘소비에트제국’이라고 불렸던 소련과 동유럽 공산국가의 세계는 길게 잡아야 74년이었고 짧게 잡으면 반세기가 되지 못했다. 오늘날 ‘제국’에 비견되는 미합중국의 역사는 이제 250년을 바라보고 있다.


그러면 무엇이 조선왕조를 5백 년 넘게 존속시킬 수 있었을까? 조선사 전공자의 저술에 공통되는 대답은 ‘균형과 견제’ 위에서의 국정운영이다. 군주부터 권력의 행사를 제한받는 ‘제한군주’였고, 국정운영은 의정부(議政府)와 육조(六曹)가 맡았으나 사헌부·사간원·홍문관 등 이른바 삼사(三司)의 견제를 받았다.


이 삼사에는 언관(言官)과 사관(史官)이 배치돼 군주를 상대로 간쟁(諫諍)하고 조정회의에서 갑론을박하는 가운데 중지를 모아서 나라가 나아갈 길을 찾았다. 여기서 당면한 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해법이 찾아진 것이다.


이러한 해석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어떤 국사학자들은 지나치게 방만할 정도의 언론활동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워졌고 조정이 중심을 잡지 못했으며 조선왕조 후기에 이르러서는 당쟁을 더욱 부추겨 왕조를 쇠락의 길로 이끌어갔다고 주장한다. 


이 반론에도 일리가 있다.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경구가 가르치듯, 매사 지나치면 꼭 탈이 나게 마련이다. 『택리지』의 저자 이중환이 말한 동당이벌(同黨異伐)의 폐해를 새삼 확인하게 된다. 정론을 떠나, 같은 패에 속하면 당을 형성해 같은 목소리를 내고 다른 패에 속하면 무조건 때리는 관행이 계속되니, 조정은 중심을 찾지 못하고 패거리 싸움에 휘말려 결국 국권을 빼앗기는 방향으로 흘러간 것이다. 


이 점을 충분히 인정하면서도, 필자는 앞의 해석에 기울어진다. 다시 말해, 참여자 모두가 투옥과 유배는 물론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활발한 언로(言路)가 조선왕조의 기맥이 약해지지 않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여기에 재야의 선비들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조정 안에 있거나 조정 밖에 있거나 사류(士類)에 속한 사람은 국가적 쟁점이 제기될 때, 자신의 의사를 과감하게 개진한 것이다. 그것은 자칫 잘못되는 경우, 여러 형태의 처벌을 감내해야 하는 모험이기도 했다.


지난 역사를 거울삼아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그들의 논리적 기반은 고전과 역사로, 그것을 관류하는 정신은 지난날의 역사를 거울로 삼아 잘못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가운데 충군애국(忠君愛國)한다는 가르침이었다. 임금에게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하라는 가르침에 충실했던 재조관리와 재야선비는 국난이 닥치면 그 극복을 위해 붓과 병기를 손에 쥐고 분연히 일어났던 것이다.


조선왕조의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의병이 바로 그 사실을 말한다. 우선 14대 선조 때 일어난 왜란을 보자. 조선팔도 곳곳에서 관리들과 선비들은 의병을 일으켜 침략군에 대항했다. 어떤 학자에 따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침략을 결정했을 때 조선에서 의병이 그렇게 전국적 규모로 일어나리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16대 인조 때 일어난 호란의 경우, 우선 주전론의 김상헌과 주화론의 최명길 사이의 격론을 떠올리게 된다. 명(明)이 중국의 정통인 화(華)일 뿐만 아니라 왜란 때 파병으로 조선을 도왔던 일을 존중해 의리를 지켜야 하며, 동시에 외방의 이(夷)인 만주족이 세운 청에 굴복할 수 없다는 화이론(華夷論)의 시각에서 청을 상대로 전쟁을 사양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청이 비록 오랑캐라고 하나 이미 강성한 힘으로 곧 쇠망길에 들어선 명도 정복시킬 것인데 이러한 냉혹한 현실을 무시하고 전쟁을 지속하고자 한다면 조선은 명맥을 유지하기가 불가능함으로 항복의 굴욕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 맞섰던 것이고, 결국 인조의 항복으로써 왕조를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최명길이 현실론에 안주해 대의명분을 잊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청과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그는 임금을 변호하다가 청에 잡혀가 투옥되기도 했다.


이 논쟁의 연장선 위에서 삼학사의 순국을 상기하게 된다. 척화를 주장했던 홍익한·윤집·오달제 등 세 학사는 당시 청의 수도 선양에 끌려가 혹독한 국문에 임해서도 대의명분을 존중하는 조선의 선비로 오랑캐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다고 버티다가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감내한 채 목숨을 잃었던 것이다. 청은 곧 산해관을 넘어 대륙을 점령하면서 명을 멸망시키는데, 이때 청의 최고위 관리들은 조선 선비들의 의리론과 대의명분론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고전과 역사 연구에 바탕을 둔 조선 사대부의 이러한 언론은 조선왕조 말기에도 바뀌지 않았다. 예컨대, 일본과의 개국을 앞둔 시점에서 한쪽에서는 일본과의 개국을 반대하는 위정척사론이 제기됐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본과의 개국을 지지하는 문명개화론이 제기됐다. 개국 이후 일제의 조선침략이 한 단계 한 단계 진전될 때마다 위정척사론을 지지하는 애국자들은 의병운동을 지역적으로 때로는 전국적으로 전개했고, 마침내 조선이 1910년 경술년에 망국의 국치를 당하자 위정척사론자들은 물론이고 일부 문명개화론자들도 국내외에서 항일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걸출했던 지도자가 대한제국기에는 안중근 의사였고 일제강점기에는 윤봉길 의사였음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고전과 역사교육의 강화가 더욱 절실하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대한민국의 장래에 대한 우려가 성장하고 있다. 우선 국제상황을 보면, 미국과 이란 사이에 그리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격화되는 대결이 전쟁으로 확대되고 그 소용돌이 속에서 대한민국이 본의 아니게 비록 부분적이라고 해도 희생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그러한 상황이 벌어지는 경우,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미국과의 동맹의 바탕 위에서 결정하는 것이 현명한데, 한미동맹이 적지 않게 이완되고 심지어 손상된 현실을 직시할 때 걱정스럽기만 하다. 일본과의 경색된 관계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은 기본적으로 해양국가이며 해양국가들과 우호협력을 쌓아야 한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활로인데 현실은 반대로 가는 것 같아 우려하게 된다.


이어 북한과의 관계를 보면, 무엇보다 북한이 이미 ‘핵보유국가’로 자리를 잡은 채 미국을 상대로 ‘공갈외교’를 벌이는 현실을 경계하게 된다. 거기에 더해, 김정은 체제가 대한민국을 상대로 보여온 행태는 불안스럽기만 하다. 마치 대한민국을 자신에게 잡힌 ‘핵 인질’처럼 하대하면서, 오만방자하게 구는 언행은 모욕적이다. 이것에 못지않게 심각히 보아야 할 것은 김정은 체제의 본질적 ‘악(惡)의 성향’이다. 지난날 스탈린 체제 아래서 행해진 인권유린보다 더 극심한 인권유린은 김정은 체제의 본질을 극명히 증명한다. 이러한 김정은 체제를 상대로 ‘한반도 종전선언’ 또는 ‘남북국가연합 수립’을 지향하는 노력이 외교적 노력이 얼마나 유효할 것인지 깊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외부상황에 이어 내부상황을 살펴보면, 우선 경제·사회에서의 여러 문제는 물론이고 정치에서의 대립 그리고 심각한 수준의 국민적 분열과 갈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와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는 현상, 더구나 대한민국을 사실상 해체로 이끌게 될 정책을 추구하는 세력의 활동 역시 매우 우려스럽다. 


  이러한 국가적 위기에 대한 해법은 단기적·중기적·장기적 차원에서 여러 갈래로 찾을 수 있다. 그것들 가운데 장기적 해법의 하나로 필자는 비록 진부하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겠지만 고전과 역사 교육의 강화를 제의하고자 한다. 애국이라는, 심지어 순국이라는 위대한 행동은 위대한 정신에서 나오기 마련이다. 그 위대한 정신을 배양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고전과 역사에 대한 끊임없는 가르침이다.


이제 대한민국의 역사는 73년째로 접어들었다. 어떻게 세운 대한민국인가? 애국선열의 희생과 투쟁 위에서 자유와 민주주의 및 국제평화를 지향하는 대한민국은 세워졌다. 그리고 수많은 국민의 헌신 속에서 대한민국은 성장했고 마침내 세계에 우뚝 선 자랑스러운 국가로 자리를 잡았다. 이러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끊이지 않도록 현재를 사는 국민 그리고 미래를 이끌어나갈 일꾼들을 격려하고 인도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국난극복의 우리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는 일이 절실하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국민과 국가는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으며 끊임없이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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