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Inside

우리문화 사랑방 [2022/04] 봄 명절 삼짇날과 한식

페이지 정보

본문

강남 갔던 제비 돌아오는 날


손짓하는 봄에 맞장구치며 

화전과 두견주 즐겨볼까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이제 완연한 봄날이다. 이 봄날에 우리 겨레가 명절로 지낸 것은 삼짇날과 한식이다. 삼짇날은 음력으로 3월 3일이며 올해는 양력 4월 4일이다. 고려시대에는 삼짇날을 9대 ‘속절(俗節)’ 속에 넣어 명절로 기렸다. 이날을 일러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날, 삼질(삼짇날의 준말), 삼샛날, 여자의 날(女子­日), 삼중일(三重日), 삼진일(三辰日), 상사일(上巳日), 상제(上除), 원사일(元巳日), 중삼일(重三日), 답청절(踏靑節, 들에 나가 풀을 밟는 날), 계음일(禊飮日, 액막이로 모여 술을 마시는 날)과 같은 이름으로도 불렀다. 양의 수 3이 겹치는 삼짇날은 파릇파릇한 풀이 돋고 꽃들이 피어 봄기운이 완연하기에 이날은 봄에 걸맞은 모든 놀이와 풍속이 집중되어 있다.  

삼짇날은 9월 9일에 강남으로 갔던 제비가 옛집을 찾아와서 추녀 밑에 집을 짓고 새끼를 치며, 꽃밭에는 나비도 날아든다. 이날 마을 사람들이 산으로 놀러 가는데, 이를 ‘화류놀이’, ‘화전놀이’, ‘꽃놀이’ 또는 ‘꽃다림’이라고 하며, 대개 비슷한 연배끼리 무리를 지어 가서 화전을 비롯한 음식들을 먹고 하루를 즐긴다. 또 이날 절에 가서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기도 한다.
 
삼짇날의 세시풍속, 
각시놀음과 제비집 손보기 

해마다 3월이 되면 여자아이들은 각시 모양의 인형을 만들어 요·이불·베개·병풍을 차려놓고 인형놀이를 하는데 이것을 각시놀음이라 한다. 사내아이들은 나뭇가지에 물이 오를 때쯤 되면 버드나무나 미루나무 가지를 꺾어 비틀어서 뽑아 속뼈는 내버리고 껍질로 피리를 만들어 불고 다니면서 논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 보면, ‘청춘경로회(靑春敬老會)’라 하여 삼짇날 앞뒤로 경로회를 베풀어 노인을 모시고 음식을 대접하는 곳이 있었다. 그리고 이날은 온 나라 곳곳에서 한량들이 활터에 모여 편을 짜 활쏘기대회[弓術會]를 연다. 

또 이날 머리를 감으면 머리카락이 윤기가 흐르듯이 아름답다고 해서 여성들은 머리감기를 했고, 우물이나 강에 가서 용왕에게 가정의 평안을 비는 용왕먹이기, 제비를 맞이하기 위한 제비집손보기, 꿩알을 주우면 그해 풍년이 들거나 운수가 좋다고 믿는 꿩알줍기 같은 세시풍속도 있었다. 

그밖에 이날 흰나비를 보면 그해에 상복을 입게 된다고 하여 불길하게 생각하며, 호랑나비나 노랑나비를 보면 그해 운수가 좋다고 여긴다. 삼짇날에는 동면하던 뱀도 나오는데 이날 뱀을 보면 좋지 않다고 해서 꺼린다. 또 이날 장을 담그면 맛이 좋고, 호박을 심으면 잘 되고, 약물을 마시면 그해 무병하고, 평소에 하지 못하던 집안 수리를 해도 무탈하다고 여긴다.
 
삼짇날의 시절음식, 
화전과 두견주 

삼짇날 무렵이면 사람들은 화전과 화면, 수면 그리고 산떡, 고리떡, 쑥떡을 해 먹는다. 여기서 화전(花煎)은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둥글게 만들어 기름에 지진 떡이고, 화면(花麵)은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혀서 가늘게 썰어 오미자(五味子) 물에 넣고, 또 꿀을 타고 잣을 넣어 먹는 것이며, 수면(水麵)은 녹두로 국수를 만드는데 붉은 물을 들이고 꿀물을 탄 것이다. 

삼짇날은 명절이기에 여러 가지 떡을 해서 먹는다. 그 떡 가운데 방울 모양으로 흰떡을 빚는데 속에 팥을 넣고, 떡에다 다섯 가지 색깔을 물들여 다섯 개를 이어 구슬을 꿰어 만든 산떡[산병-饊餠, 꼽장떡], 찹쌀과 송기(소나무의 속껍질)와 쑥을 넣어서 빚는 고리떡[환병-環餠], 부드러운 쑥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쪄서 떡을 만들어 먹는 쑥떡들이 있다. 

쑥떡은 문헌에도 등장하는데 중국 송나라 때의 역사서 《송사(宋史)》에 “고려에는 상사일(上巳日, 음력 정월의 첫 번째 사일-뱀날)의 쑥떡을 가장 맛있는 음식으로 친다”라고 하였고, 조선 성종 때 명(明)의 사신으로 왔던 동월(董越)이 조선의 기후와 토지 이야기를 한시체로 서술한 책인 《조선부(朝鮮賦)》에 “3월 3일에는 쑥잎을 따서 찹쌀가루에 섞어 쪄서 떡을 만드는데, 이것을 쑥떡이라 하였으며, 중국에는 없는 것”이라 하였다. 

또 삼짇날 앞뒤로 여러 가지 술을 빚어 마시는데 충남 한산의 소면주(小麪酒), 충남 면천의 두견주(杜鵑酒), 대전 지방의 송순주(松荀酒), 경북 김천의 과하주(過夏酒)가 유명하고, 평양 지방의 감홍로(甘紅露)와 벽향주(碧香酒), 전라도와 황해도 지방의 이강주(梨薑酒), 정읍 지방의 죽력고(竹瀝膏), 호서지방의 노산춘(魯山春)도 있다. 

바야흐로 봄기운이 무르익어 들판에는 여기저기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그 한가운데에 있는 명절 삼짇날, 손짓하는 봄에 맞장구를 치며 제비를 맞이하고, 화전과 두견주로 하루를 즐겨보면 어떨까?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 

4절기의 다섯째 날은 청명(淸明)인데 2022년은 4월 5일이고, 하루 차이로 4대명절의 하나인 한식이다. 이렇게 청명과 한식이 같은 날이거나 하루 차이여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속담이 생겼다. 청명에는 성묘를 하는데 옛날에는 한 해에 네 번, 곧 봄에는 청명, 여름에는 중원(中元, 음력 7월 15일), 가을에는 한가위, 겨울에는 동지에 했다. 

《동국세시기》의 기록에 따르면 청명날 버드나무와 느릅나무를 비벼 새 불을 일으켜 임금에게 바쳤다. 임금은 이 불을 정승, 판서, 문무백관 3백60 고을 수령에게 나누어준다. 이를 사화(賜火)라 했다. 수령들은 한식(寒食)날에 다시 이 불을 백성에게 나누어주는데 묵은 불을 끄고 새 불을 기다리는 동안 밥을 지을 수 없어 찬밥을 먹는다고 해서 ‘한식(寒食)’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하여 온 백성이 한 불을 씀으로써 같은 운명체로서 국가 의식을 다졌다. 꺼지기 쉬운 불이어서 습기나 바람에 강한 불씨통(藏火筒)에 담아 팔도로 불을 보냈는데 그 불씨통은 뱀껍질이나 닭껍질로 만든 주머니로 보온력이 강한 은행이나 목화씨앗 태운 재에 묻어 운반했다. 

농사력으로는 청명 무렵에 논밭의 흙을 고르는 가래질을 시작하는데 이것은 특히 논농사의 준비 작업이다. 그래서 농사력의 기준이 되는 청명은 날씨와 관련된 믿음이 많다. 청명이나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그해 농사가 잘되고 좋지 않으면 농사가 잘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바닷가에서는 청명과 한식에 날씨가 좋으면 고기가 많이 잡힌다고 하여 날씨가 좋기를 기대하는데 파도가 세게 치면 물고기가 흔하다고 믿는 곳도 있다. 이에 견주어 경남 사천에서는 청명에 날씨가 좀 흐려야 그해 농사에 풍년이 들고, 너무 맑으면 농사가 시원치 않은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청명에는 ‘청명주(淸明酒)’를 담아 먹었는데 ‘춘주(春酒)’라고도 한다. 찹쌀 석 되를 갈아 죽을 쑤어 식힌 다음, 누룩 세 홉과 밀가루 한 홉을 넣어 술을 빚는다. 다음날 찹쌀 일곱 되를 깨끗이 씻고 쪄서 식힌 다음, 물을 섞어 잘 뭉개어서 독 속에 넣어 찬 곳에 둔다. 이레(7일) 뒤 위에 뜬 것을 버리고 맑아지면 좋은 술이 된다. 또 이때 장을 담그면 맛이 좋다고 하여 한 해 동안 먹을 장을 담그기도 하고, 서해에서는 곡우 무렵까지 작지만 연하고 맛이 있는 조기잡이로 성시(盛市)를 이루기도 하였다. 

“이쁜 손녀 세상 나온 날 / 할배는 뒤란에 오동나무 심었다 / 곱게 키워 / 시집보내던 날 / 아버지는 / 오동나무 장을 만들고 / 할매와 어머니는 / 서리서리 고운 꿈 실어 / 담아 보냈다.”

위는 이고야 시인의 <오동나무>라는 시다. 청명 때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 시집갈 때 농짝을 만들어줄 재목감으로 나무를 심었는데 이를 ‘내 나무’라고 부른다. 또 연정(戀情)을 품은 아가씨가 있으면 그 아가씨의 ‘내 나무’에 거름을 주면서 사랑을 표시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식목일도 따지고 보면 예부터 나무 심기 좋은 절기를 따르는 셈인 것이다. 우리 겨레가 나무를 심으면서 즐겁게 불렀을 나무타령도 있다.

“청명 한식 나무 심자. 무슨 나무 심을래. 십리 절반 오리나무, 열의 갑절 스무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방귀 뀌어 뽕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 깔고 앉아 구기자 나무, 거짓 없어 참나무, 그렇다고 치자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네 편 내 편 양편나무, 입 맞추어 쪽나무, 양반골에 상나무, 너하구 나하구 살구나무, 아무데나 아무 나무…….” 

제주도에서는 청명이나 한식은 지상에 있는 신들이 하늘로 올라가는 날이어서 손(날수를 따라 여기저기로 다니면서 사람을 방해한다는 귀신)이 없어서 특별히 택일(擇日)하지 않고도 산소를 돌보거나 이장(移葬)을 하거나 집 고치기를 비롯해 아무 일이나 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이처럼 예부터 청명과 한식날은 다양한 풍습이 이어져 왔으나 지금은 식목일만 두드러지고 있어서 참으로 아쉽다.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