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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사랑방 [2022/05] 입하의 전통차, 소만의 죽추(竹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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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전통차는 녹차가 아니라 그냥 ‘차(茶)’다


개구리 울고 참외꽃 피는 계절

봉숭아 물들여 첫사랑 기다릴까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5월이 되면 언론들은 차를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들이 모두 전통차를 “녹차”라고하면서 보성 차밭만 취재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녹차는 우리 고유의 전통차가 아니라는 점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여러 차 관련 문헌을 봐도 “차(茶)”라고만 나오지 “녹차”는 없다. 그 까닭은 우리 전통차가 녹차와는 다를 뿐더러 예전부터 그냥 차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전통 덖음차는 입하 때 딴 잎으로 덖었을 때 깊고, 구수하며, 담백한 맛을 낸다. 평상시 차생활은 엄격한 모습이 아니고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푸르른 신록이 아름다운 5월, 24절기 가운데 일곱째인 입하(立夏)는 5일이고 소만(小滿)은 21일이다. “입하(立夏)”는 서서히 여름으로 들어감을 알리는 절기인데 ‘보리가 익을 무렵의 서늘한 날씨’라는 뜻으로 ‘맥량(麥凉)’, ‘맥추(麥秋)’라고도 하며, ‘초여름’이란 뜻으로 ‘맹하(孟夏)’, ‘초하(初夏)’, ‘괴하(槐夏)’, ‘유하(維夏)’라고도 부른다. 이때가 되면 흐드러지던 봄꽃들은 지고 산과 들에는 초록빛이 짙어지며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또 밭에는 참외꽃이 피기 시작하며, 모판에는 볍씨의 싹이 터 모가 한창 자라고, 밭의 보리이삭들이 패기 시작하는 때다.

입하 때 세시풍속의 하나로 쌀가루와 쑥을 한데 버무려 시루에 쪄 먹는 떡, 이른바 ‘쑥버무리’를 시절음식으로 즐겨 먹는다. 쑥은 일본 히로시마 원폭이 떨어진 뒤 가장 먼저 자란 식물일 정도로 생명력이 강한데 예전 먹거리가 귀할 때는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곡식 대신으로 먹던 구황식품이었다. 향기로운 쑥내음이 그리워지는 계절이다. 

입하에 산과 들에 가보면 하얗고 탐스러운 ‘이팝나무’를 볼 수 있다. 이팝나무란 이름은 입하 무렵 꽃이 피기 때문에 ‘입하목(立夏木)’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또 이밥은 하얀 쌀밥을 뜻하는데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가 ‘정전제(井田制)’를 시행하여 일반 백성들도 쌀밥을 먹게 되었고, 그래서 백성들이 이 쌀밥을 ‘이성계가 준 밥’이란 뜻으로 ‘이밥’이라 불렀는데 이것이 변하여 이팝나무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실제 흐드러진 이팝꽃을 멀리서 보면 마치 쌀밥(이밥)을 고봉으로 담아 놓은 것 같은 모양으로도 보인다.

한편 이때는 한창 찻잎을 따는 시기다. 일본에서 발달한 녹차는 곡우(穀雨, 4월 20일) 전에 딴 우전차(雨前茶)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조선시대 차의 성인으로 불린 초의(艸衣)선사는 “우리의 차(茶)는 곡우 전후보다는 입하(立夏) 전후가 가장 좋다”고 하였다. 원래 쪄서 가공하는 우전차는 신선하고 향이 맑기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 덖음차는 입하 때 딴 잎으로 덖었을 때 깊고, 구수하며, 담백한 맛을 내는 차다.

이때가 되면 언론들은 차를 취재하느라 여념이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이 죄다 “녹차”라며 보성 차밭만 취재하고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녹차는 우리 고유의 전통차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여러 차 관련 문헌을 봐도 “차(茶)”라고만 나오지 “녹차(綠茶)”는 없다. 그 까닭은 우리 전통차가 녹차와는 다를 뿐더러 예전부터 그냥 차라고만 했기 때문이다.

2천 년 전통차와 
일본 역수입 녹차

전통차와 녹차는 우선 품종이 다르고 가공 방법이 다르며, 우려내면 빛깔이 다르다. 먼저 전통차는 삼국시대에 우리나라에 들어온 이래 야생으로 맥이 이어져 왔다. 그리고 가공방법은 솥에 열을 가하면서 비비듯 하는 덖음방식이다. 그렇게 해서 만든 차를 우려내면 빛깔은 다갈색을 띤다.

한편 일본 녹차는 우리 차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오랫동안 토착화 과정을 거치며 녹차가 되었다. 가공방법은 찐차(증제차)이고 차를 우리면 연두빛을 띤다. 그래서 녹차(綠茶)라 부르는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 우리나라에 역으로 들어온 녹차는 주로 보성지방에 심으면서 대량생산 체제로 재배하기 시작했다. 재배가 아닌 야생 찻잎을 가공하여 만드는 전통차가 우선 양이 적은 탓에 값이 조금 비싼 것이 흠이라면, 녹차는 대량생산이 가능해 비교적 싼 값에 즐길 수 있음은 장점이다.

녹차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전통차라고 하지 말아야

살아있는 차의 성인이라 불리는 순천 금둔사 지허스님은 말한다. “녹차는 일본에서 역수입된 차입니다. 분명 전통차는 따로 있습니다. 물론 녹차를 없애자는 것도, 나쁘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녹차를 전통차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지허스님은 여기에 덧붙인다. “녹차는 일본에서 개량한 야부기다종으로 뿌리가 얕고, 잎이 무성합니다. 그래서 대량생산하는 데 아주 좋을 것입니다. 어쩌면 값싼 차를 마시는 데 장점이 될 수도 있지요. 하지만 뿌리가 얕으니 비료를 줄 수밖에 없어서 좀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 토종 야생차는 뿌리가 곧고 땅 위의 키보다 3~4배가 깁니다. 그래서 암반층, 석회질층에 있는 담백한 수분, 무기질을 흡수하여 겨울에 더 푸르고, 꽃이 핍니다. 그래서 녹차에 견줘 우리의 전통차가 깊은 맛이 있는 것입니다.”

지허스님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나고 있는 차나무는 일본 수입의 야부기다종이 85% 정도, 변종이 10% 정도이며, 토종은 5% 내에 불과하다고 한다. 순천 선암사를 비롯, 벌교의 징광사, 낙안의 금둔사, 보성의 대원사 주변에 남아 있는 것 정도가 토종 야생차일 뿐이라는 것이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왜곡된 것이 한둘이 아닌데 녹차를 마치 우리의 전통차로 잘못 알고 있는 것도 그 하나다. 녹차라고 해서 거부할 까닭은 없다. 다만 녹차는 녹차고 전통차는 갈색을 띠는 것임을 분명히 하자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이후 보성지방을 중심으로 퍼진 녹차를 전통차처럼 생각한다면 중국에서 들어와 많은 사람이 즐겨 마시는 보이차를 우리 전통차라고 우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일본에서 들어온 ‘다도’와 
진정한 차 마시기

차생활에서 한 가지 더 짚어볼 것이 있다. 마치 엄격한 다도(茶道)를 알아야 차를 마실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다. 다도는 원래 일본의 풍속이며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는 예전 죽은 조상이나 부처님께 바치는 헌다례(獻茶禮)는 있었지만, 평상시의 차생활은 엄격한 모습이 아니고 그저 즐기는 것이었다. 차로 벗을 삼았던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이 차를 마실 때 무릎을 꿇고 마셨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엄격한 차 마시기가 전통차의 보급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입하 다음 절기는 
5월 21일의 ‘소만’

“사월이라 한여름이니 입하 소만 절기로다 / 비 온 끝에 볕이나니 날씨도 좋구나 / 떡갈잎 퍼질 때에 뻐꾹새 자주 울고 / 보리 이삭 패어 나니 꾀꼬리 소리 한다 / 농사도 한창이요 누에치기 바쁘구나 / 남녀노소 일이 바빠 집에 있을 틈이 없어 / 적막한 대사립을 녹음에 닫았도다” 

‘농가월령가’ 4월령에 나오는 대목으로 이즈음 정경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24절기 가운데 여덟째로 ‘소만(小滿)’은 이 무렵에 햇볕이 풍부하고 만물이 점차 자라 가득 차기[滿] 때문이라 붙은 이름이다. 또 이때는 이른 모내기를 하며, 여러 가지 밭작물을 심는다. 소만에는 씀바귀 잎을 뜯어 나물을 해 먹고 죽순을 따다 고추장이나 양념에 살짝 묻혀 먹는 것도 별미다.

푸른 천지 가운데 
누렇게 변한 대나무

이때 온 천지가 푸르름으로 뒤덮이는 대신 대나무 잎만큼은 노랗게 변해 ‘죽추(竹秋)’라 한다. ‘죽추(竹秋)’란 대나무가 새롭게 생기는 죽순에 영양분을 공급해 주느라 푸른빛을 잃고 누렇게 변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마치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어린 자식을 정성 들여 키우는 어미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대나무 빛깔이 누렇게 변한 죽추의 계절을 보면서 겉으로 보기엔 온 세상이 가득 차고 풍족한 것 같지만 들여다보면 굶주림의 보릿고개가 있음을 소만은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고, 따뜻함이 있으면 차가움도 있으며, 가득 차 있으면 빈 곳도 있음이다.
“여름은 차츰 녹음이 우거지고 철 맞춰 내린 비로 보리와 밀 등 밭곡식은 기름지게 자라나고 못자리도 날마다 푸르러지고 있으나 남의 쌀을 꿔다 먹고사는 우리 고향에 풍년이나 들어주어야 할 것 아닌가? 농촌에서는 명년 식량을 장만하고자 논갈이에 사람과 소가 더 한층 분주하고 더위도 이제부터 한고비로 치달을 것이다.” <동아일보> 1947년 5월 22일 기사에 보이는 이즈음 풍경이다. 

손톱에 봉숭아 물들이고 
첫사랑 기다리기

입하와 소만 무렵에 있었던 세시풍속으로는 봉숭아 물들이기가 있는데 『동국세시기』에 보면 “계집애들과 어린애들이 봉숭아를 따다가 백반에 섞어 짓찧어서 손톱에 물을 들인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봉숭아꽃이 피면 꽃과 잎을 섞어 찧은 다음 백반과 소금을 넣어 이것을 손톱에 얹고 호박잎, 피마자잎 또는 헝겊으로 감아 붉은 물을 들인다. 

이 풍속은 붉은색이 사악함을 물리친다는 데서 유래하였다. 첫눈이 내릴 때까지 손톱에 봉숭아물이 남아 있으면 첫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그밖에 풋보리를 몰래 베어 그슬려 밤이슬을 맞힌 다음 먹으면 병이 없어진다고 하는 속신도 있었다. 요즈음도 소만 무렵 손톱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첫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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