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2/06] 호국보훈의 달에 걷기 좋은 대전 현충원 보훈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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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의 역사 위에 오랜 정성으로 빚은 흙길
자연을 벗 삼아 길 따라 걸으면
순국선열의 흔적 온몸에 느껴져
글 | 편집부 사진 | 국립대전현충원
강화군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최초의 국가 고조선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 3·1운동과 산업화 시대의 흔적이 공존하고 있다. 특히 원도심은 강화의 역사, 산업, 종교를 한눈에 만날 수 있는 매력적인 도보여행 코스다. 1970년대 방직공장, 3·1독립만세기념비, 700년 수령의 은행나무, 독립운동의 현장인 강화중앙교회와 합일초등학교 독립운동길…. 1970년대 시공간은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랐다가 다시 치열한 3·1운동의 현장으로, 멀리 고려시대까지 넘나든다. 좁다란 골목에 이토록 장대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은 없으리라.

국립대전현충원은 330만㎡ 광활한 대지 위에 조성된 보훈의 성지다. 이곳엔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 13만여 위가 영면해 있다. 그리고 경내를 빙 돌아 아름다운 둘레길이 펼쳐져 있다. 총 10.04㎞에 이르는 ‘보훈둘레길’이다. 이 길은 ‘대전의 걷고 싶은 길 12선’에 꼽힐 만큼 명성이 높아 한 해에만 100만 명의 사람들이 찾는다. 현충원이라는 공간의 특성상 보훈의 정신적 의미까지 담고 있어 자연스럽게 국가와 애국, 역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조용히 길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흔적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울창한 숲길과 정겨운 흙길
살아있는 생태 학습장으로 인기
보훈둘레길은 7구간으로 구분해 빨강길, 주황길, 노랑길, 초록길, 파랑길, 쪽빛길, 보라길 등 무지개 색깔로 이름 붙였다. 덕분에 ‘무지개길’로도 불린다. 2007년 9월 현충원 입구 주차장 쪽 매점에서 시작하는 1구간을 만들기 시작해 2015년 11월 8.2㎞의 길이 완성되었고, 2016년부터 제7묘역이 새로 조성되면서 초록길, 쪽빛길, 보라길을 연장해 총 10.04㎞에 이르게 되었다.
둘레길은 울창한 숲길과 정겨운 흙길이다. 높낮이가 심하지 않아 어린이와 노약자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으며, 중간중간 쉼터도 마련돼 있다. 자연환경을 최대한 살려 자연 생태를 배우기에도 더없이 좋다.
오색딱따구리, 백로, 너구리, 사슴, 고라니 등의 동물들을 만날 수 있고 앵두, 대추, 살구, 자두, 매실 등 과실이 열리는 나무들도 즐비하다.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놓아 수목을 공부하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봄, 여름, 가을에는 둥굴레, 각시붓꽃, 은방울꽃, 하늘말라리, 까치수염, 인동, 비비추, 용담, 상사화, 구절초 등 각종 야생화가 즐비해 눈이 즐겁다.
무엇보다 길을 따라가면 곳곳에서 순국선열·애국지사들의 묘역을 만날 수 있다. 의열단 김지섭, 영화감독 나운규,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최초의 여성 비행사 권기옥, 제주의 해녀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이름을 만날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지난해 8월에는 봉오동전투를 이끈 대한독립군 총사령관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사후 78년 만에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묻혔다.

시원하게 쭉 뻗은 메타세쿼이아길
아름다운 새들 한가롭게 노닐어
현충원에 들어서 왼쪽 소나무 숲길로 접어들면 ‘빨강길’(1.4km)이 나타난다.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의 시작이다. 초입에 둘레길을 소개하는 간판이 있다. 이곳은 애초 대전현충원이 조성될 때 평지였다. 현충탑 등 공사를 하면서 나온 흙을 쌓아 묘역과 민간 주택지를 분리하는 인공산을 만들었는데, 이곳에 길을 내면서 둘레길이 조성되었다. 만남의 장소, 완만한 산책로, 구절초 군락, 호국철도기념관이 눈길을 끈다.
호국철도기념관을 지나면 오른쪽으로 메타세쿼이아길을 볼 수 있다. 시원하게 쭉 뻗은 자태에 가슴이 뻥 뚫린 듯하다. 짙은 녹음이 그늘을 만들어 땀을 식혀준다. 경사가 완만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으며, 마지막 지점인 ‘한얼지’ 저수지에서 백로와 흰뺨검둥오리 등이 한가하게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한얼지에서 출발하는 2구간은 ‘주황길’(1.3km)이다. 독립유공자 제1묘역과 국가사회공헌자 묘역 방향으로 걷다가 국가원수묘역 쪽 숲으로 접어들면 바로 대나무 숲길과 이어진다. 소담한 연못과 대나무 숲길을 걸으면 절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이 길은 ‘청백리길’로도 불리며, 독립지사들과 세계 유명 인사들의 명언들이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3구간인 ‘노랑길’(1.4km)은 순환 코스다. 오른쪽으로 돌든, 왼쪽으로 돌든 한 바퀴 돌아 원점으로 온다. 왼쪽으로 접어들면 길 양쪽으로 대나무가 빽빽하게 솟아있다. 대나무숲을 지나자마자 오른쪽으로 비석이 보이고 그 너머로 오래된 묘가 나온다.
둘레길을 돌아 반대쪽으로 가면 장병 제3묘역 쪽으로 ‘보훈과수랜드’가 있다. 앵두나무, 산수유, 매실나무, 감나무, 왕보리수나무, 살구나무, 자두나무, 뽕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어 사계절 꽃과 열매를 볼 수 있다. 현충문 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충혼지’라는 저수지가 내려다보인다. 백로와 왜가리, 흰뺨검둥오리, 원앙 등을 만날 수 있다.
전망대에서 현충원 내려다보며
애국의 길을 생각하다
제4구간 ‘초록길’(2.2km)은 개별 구간 중 가장 긴 코스다. 경사가 가파른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되는 까닭에 둘레길 중 가장 힘든 코스다. 대전현충원 내에서 위치상 가장 높은 곳에 있어 보훈전망대, 현충전망대, 호국전망대 등 전망대가 세 곳이나 있다. 전망대에 서면 대전현충원 일대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제5구간 ‘파랑길’(0.84km)은 채 1㎞가 안 되는 가장 짧은 구간이다. 이 구간의 백미는 ‘1004전망대’다. 맞은편으로 갑하산과 두리봉, 신성봉 능선이 시원하게 조망된다. 운이 좋으면 고라니도 만날 수 있다.
전나무 숲을 지나 피톤치드를 마시며 걷다 보면 어느새 사병 제3묘역이 내려다보이며 제6구간 ‘쪽빛길’(1.4km)이 시작된다. 쪽빛길을 걸어 소나무 숲을 지나 보훈정에서 잠시 쉬었다 가면 좋다. 봄에 걸으면 왕벚꽃이 흐드러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충혼당에서 후문 나가는 길목이 마지막 구간인 제7구간 ‘보라길’(1.5km)의 시작점이다. 보라길은 가을에 걸으면 더 좋다. 억새와 단풍이 멋진 가을 정취를 선사한다. 황톳길을 지나 오르막에 서면 현충지가 내려다보이고 맞은편에 현충탑이 우뚝하다. 이렇게 10여km에 이르는 보훈둘레길은 끝이 난다.
길은 끝났지만, 목숨 바쳐 나라를 지켜낸 선열들의 묘역이 뇌리에 남아 가슴을 뛰게 한다. 김지섭, 나운규, 곽낙원, 권기옥, 홍범도… 하늘나라에서 독립된 대한민국의 번영을 행복하게 지켜보고 계실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을 불러본다. 국가와 민족은 무엇이며, 애국의 길은 무엇인가. 청춘을 불태웠던 오래된 질문을 다시 꺼내 본다.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우리가 누리는 일상의 평화가 어디에서 왔는지, 그 뿌리를 찾아 지금 떠나보자. 국립대전현충원 둘레길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