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사랑방 [2022/07] 음력 6월의 명절 : 유두(물맞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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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과 갈등 깨끗이 풀고 하나 되는 아름다운 명절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 감고
술 돌려 마시면서 공동체 확인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금년도 어느덧 벌써 상반기의 최후명절인 유두가 되었다. 6월 15일을 유두라고 하야 연중명절의 하나로서 치니 이것은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는 조선의 독특한 것이다. 조선의 독특한 것이라고 해서 반드시 자랑할 것은 아니지마는 이 유두절의 기원과 행사에 대하야 잠깐 자세히 살펴보면 이것이 실로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는 동시에 또한 민중적 흥미를 갖고 있는 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유두절에 대하야”라는 제목의 동아일보 1936년 7월 2일치 기사 일부분이다. 그런가 하면 동아일보 1924년 7월 16일 기사에도 “금일은 유월유두일”이라는 기사도 보인다. 또 같은 동아일보 1960년 7월 8일에는 “오늘 유두절, 생과일 잔칫날” 기사도 있어 60년대까지도 유두를 명절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우리 겨레가 즐겼던 4대 명절은 설날, 단오, 한식, 한가위를 말한다. 그러나 이 밖에도 정월대보름, 초파일, 유두, 백중, 동지도 명절로 지냈다. 하지만 이제 사람들은 유두(流頭: 음력 6월 15일, 2022년 양력 7월 13일)와 백중(百中: 음력 7월 15일, 2022년 양력 8월 12일)이 무엇인지도, 어느 날인지도 잘 알지 못한다.

유두는 유두날이라고도 하는데,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의 준말이다. 이것은 신라 때부터 있었던 풍속이며, 가장 원기가 왕성한 곳인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 날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면 액을 쫓고 여름에 더위를 먹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졌다.
유두를 신라 때 이두로 ‘소두’(머리 빗다), ‘수두’라고도 썼다. 수두란 물마리(마리는 머리의 옛말)로 ‘물맞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요즘도 신라의 옛 땅인 경상도에서는 유두를 ‘물맞이’라고 부른다. 유두는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을 맞았다는 말에서 유래하였다고 본다.
유두에 관한 기록들
유두에 관한 기록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명절로 지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13세기 고려 희종(熙宗) 때의 학자인 김극기(金克己)의 《김거사집(金居士集)》에는 “동도(東都, 경주)의 풍속에 6월 15일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아 액(厄)을 떨어버리고 술 마시고 놀면서 유두잔치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 중기의 시인 이안눌(李安訥)은 유두에 관해 “삼한의 전해오던 민간 명절 유두날에[三韓俗節流頭日]”라 하여 유두일이 삼한부터 전해오는 우리나라 명절임을 말한 바 있다. 또 1824년 김이재(金履載)가 펴낸 《중경지(中京志)》 권2 풍속조에도 나오고, 조선 전기 문신 김종서·정인지 등이 펴낸 《고려사(高麗史)》 권20 명종(明宗) 15년 조에는 “6월 병인(丙寅)에 시어사(侍御史, 고려시대 어사대의 벼슬아치) 두 사람이 환관 최동수와 더불어 광진사(廣眞寺)에 모여 유두음식을 마련했다. 나라 풍속은 이달 15일에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서 머리를 감아 나쁜 일을 없애는데, 이 잔치를 유두연(流頭宴)이라 부른다”라고 기록돼 있다. 1년 열두 달의 풍속을 노래한 고려가요 <동동>에서도 “6월 보름에 벼랑에 버린 빗 같아라 / 꺾어 버려진 뒤로는 다시 주워 가질 사람이 없네”라는 구절이 있어, 고려시대에는 이미 수릿날과 함께 보편적인 명절로 자리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조선후기 문신 홍석모가 연중행사와 풍속들을 정리하고 설명한 풍속지 《동국세시기》에도 비슷한 기록이 있다. 조선시대의 학자 정동유(鄭東愈)는 그가 쓴 책 《주영편(晝永編)》에서 우리나라 명절 가운데 오직 유두만이 고유의 풍속이고, 그 밖의 것은 다 중국에서 유래한 날이라고 단정 지었을 정도다.
근대에 오면 최남선의 《조선상식(朝鮮常識)》 풍속 편에 여자들의 물맞이 장소로, 서울의 정릉 계곡, 광주의 무등산 물통폭포, 제주도의 한라산 성판봉폭포 따위를 꼽았다. 신문삽화가 이승만이 1977년 펴낸 《풍류세시기》에는 물맞이 명소로 위 장소 말고도 소나무숲과 물이 좋은 악박골, 사직단이 있는 활터 황학정 부근과 낙산 밑 따위가 좋은 곳이라고 했다. 이렇게 근대까지도 유두는 분명 명절이었다.
유두의 세시풍속과 시절음식

유두의 대표적인 풍속은 ‘유두천신(流頭薦新)’이다. 이는 유두날 아침 유두면, 상화떡, 연병, 수단, 건단과 피, 조, 벼, 콩 따위의 여러 가지 곡식을 참외나 오이, 수박 등과 함께 사당에 올리고 제사를 지내는 것을 말한다. 효심이 강했던 옛날에는 새 과일이 나도 자기가 먼저 먹지 않고 조상에게 올린 다음에 먹었다.
농촌에서는 밀가루로 떡을 만들고 참외 등 과일과 생선 따위로 음식을 장만하여 논의 물꼬와 밭 가운데에 차려놓고 농사신에게 풍년을 비는 고사를 지낸다. 그리고 자기의 논밭마다 음식물을 묻은 다음 제사를 마친다.
유두날 선비들은 술과 고기를 장만하여 계곡이나 정자를 찾아가서 시를 읊으며 하루를 즐기는 ‘유두연(流頭宴)’을 했다. 유두의 대표 음식은 뭐니 뭐니 해도 ‘유두국수’다. 유두국수는 햇밀로 국수를 만들어 닭국물에 말아먹는데, 이렇게 하면 수명이 길어진다고 믿었다. 그리고 유두국수를 참밀 누룩으로 만들면 이를 ‘유두국’이라고도 하였고, 구슬 같은 모양으로 만들어 오색으로 물들인 뒤 세 개씩 포개어 색실에 꿰어 몸에 차거나 문에 매달면 액을 막는다는 속신도 있었다.
또 찹쌀과 밀가루로 흰떡처럼 빚어서 썬 다음, 녹말을 씌워 삶아내 꿀물에 넣어 먹는 ‘수단(水團)’도 있다. 밀가루 반죽을 얇게 밀어 호박이나 오이 채 썬 것을 넉넉히 넣고 찌거나 차가운 장국에 띄워 먹는 ‘편수’와 밀전병을 얇게 부쳐서 오이, 버섯, 고기 등을 가늘게 채를 썰어 볶아 넣거나, 깨를 꿀에 버무려 넣는 ‘밀쌈’도 해 먹는다. 밀가루를 누룩이나 막걸리 따위로 반죽하여 부풀려 꿀팥으로 만든 소를 넣고 빚어 시루에 찐 떡도 먹는데, 이는 ‘상화떡(霜花餠)’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미만두와 구절판이 유두 때의 초여름 음식들이다. ‘미만두’는 더운 계절에 먹는 만두로 해삼 모양으로 빚어 찌거나, 냉국에 띄워 먹는다. 궁궐에서는 ‘규아상’이라 불렀다. 구절판은 아홉 칸으로 나누어진 그릇에 각각의 밀쌈 음식이 담아 나오는 것을 말한다.
불편했던 이웃과 같이 웃는 날
유두에 비 내리면 연사흘 내려

우리 선조는 특정한 날에 반드시 비가 내릴 것으로 믿었다. 곧 음력 5월 10일은 반드시 비가 내리는데, 이는 ‘태종우’로 풍년이 든다고 생각했다. 제주도에서는 7월 1일, 이곳에 유배되어 가시울타리 속에서 죽은 광해군의 한이 맺혀 비가 내리는 것으로 믿었다. 칠석날에는 견우직녀의 비가 내린다고 하고, 삼복에 내리는 비를 ‘삼복우’, 음력 6월 29일 진주지방에 내리는 비를 ‘남강우’라고 한다. 그 밖에 “살창우(殺昌雨)”도 있었는데 광해군에 의해 강화도로 유배된 영창대군을 강화부사가 방에 가두고 불을 펄펄 때서 죽였는데 방바닥에서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로 필사의 몸부림을 치다 죽었기에 그 한으로 서럽게 죽은 영창대군의 눈물이 비가 되어 음력 2월 9일을 전후하여 내리는 비를 말한다.
이처럼 유두에도 비가 온다고 하는데, 비가 내리면 연사흘을 내린다. 유두날은 연중 집안에 갇혀 살아야 했던 부녀자에게 이날 하루만은 나들이가 허락되는 날로, 비가 내려 나들이를 못하면 나들이를 못한 여자들의 한이 커져서 사흘씩이나 비가 내린다고 생각했다. 유두날에 내리는 비를 유두물, 또는 유두수(流頭水)라고 한다. 지역에 따라서는 비가 와야 모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하여 유두물을 기다린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유두날 비가 오면 “유두물한다” 하며 비가 많이 오면 ‘유두 물난리났다’라고 하여 유두물은 이로운 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곳도 있다. 6월은 모내기를 끝내고 벼가 잘 자라기만을 기다리는 때여서, 날이 맑아야 한다고 생각해 이런 믿음들이 생긴 듯하다.
한편 유두에는 식구, 친지나 일을 같이할 사람과 동쪽으로 흐르는 맑은 물을 찾아가 머리를 씻고, 술을 돌려 마심으로써 공동체임을 확인하는 날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풍속을 정약용은 ‘계’의 뿌리로 보고 있다.
따라서 유두는 식구나 친지뿐만 아니라 불편했던 이웃과 갈등을 깨끗이 풀고 하나가 되는 아름다운 명절이다. 평소 미워하던 사람과 같이 머리를 감으면서 화해를 하는 것이다. 이제 현대인들이 유두를 명절로 지내지는 않더라도 이날의 의미를 새기며, 불편했던 이웃과 웃을 수 있는 하루를 만들어 보면 좋지 않을까?
참고로 완연한 여름철인 이달엔 24절기로 ‘소서(小暑)’와 ‘대서(大暑)’가 있으며, 잡절로 ‘초복 (初伏)’과 ‘중복(中伏)’이 있다.
‘소서’는 본격적으로 더위가 시작되는 때지만 농부들은 김매기와 피사리로 허리가 휘는 철이고, ‘대서’는 “더위로 염소뿔 녹는다”라고 할 만큼 더운 날이다. 또 초복, 중복은 엎드릴 ‘복(伏)’ 자를 쓰는데 이 복날을 우리 겨레는 ‘더위를 꺾는 날’로 보았다. 지금이야 아무리 덥다 해도 선풍기나 에어컨 바람으로 견딜 수 있지만, 옷을 훌렁훌렁 벗어젖힐 수 없었던 옛 선비들은 계곡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과 솔바람 소리를 들으며 독서삼매경에 빠지는 것으로 더위를 극복했음을 기억하자.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