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사랑방 [2022/08] 여름에서 가을로 입추·처서
페이지 정보
본문
슬슬 자연의 순리가 여름을 밀어내는 때
이열치열 하면서 ‘더위사냥’
조선왕조실록 햇볕에 말려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올해 8월 7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그런데 입추는 가을이 들어서는 때지만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다. 옛사람들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는 것이다.
가을을 품은 입추
귀뚜라미가 톱을 든 처서

올해 8월 7일은 24절기 가운데 열셋째 입추(立秋)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절후인데 이날부터 입동(立冬)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한다. 《고려사》 권84 「지(志)」38에 “입추에는 관리에게 하루 휴가를 준다”라는 내용이 보인다. 더운 여름 동안 고생한 것을 위로하려는 조처인 듯하다. 입추 무렵은 벼가 한창 익어가는 때여서 조선시대에는 이때 비가 닷새 이상 계속되면 비를 멎게 해달라는 기청제(祈晴祭)를 올렸다.
그런데 입추는 가을이 들어서는 때지만 이후 말복이 들어 있어 더위는 아직 그대로다. 옛사람들은 왜 입추를 말복 전에 오게 했을까? 주역에 보면 남자라고 해서 양기만을, 여자라고 해서 음기만 가지고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모든 것은 조금씩 중첩되게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인데 계절도 마찬가지다.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면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야 하고, 이 역할을 입추와 말복이 하는 것이다. 곧 초복, 중복, 말복을 모두 마친 뒤에 입추로 설정하지 않고 입추 뒤에 다시 마지막 더위를 뜻하는 말복을 설정한 것은 무더운 여름에서 선선한 가을로 넘어가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막기 위한 일종의 예방주사 같은 역할이 아닐까?
하지만, 입추라는 말은 지금의 불볕더위를 보면 너무나도 이른 것이 분명하다. 다만, 입추가 되면 이제 서서히 음기가 성해지고 있어 슬슬 가을을 품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선비들의 여름나기

사실 요즘이야 선풍기며 에어컨은 물론이고 얼음조끼 등 기능성 옷이 흔한 세상이니 열사병에 이르는 일은 많지 않다. 하지만 선풍기는커녕 부채 하나로 여름을 나야 했던 조선시대 선비들은 그렇다고 함부로 옷을 벗어젖힐 수도 없었던 그 시절,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이라는 풍습이다. 시원하게 씻은 뒤, 정자에 앉아 솔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벗 삼아 책을 읽는 것이 무더위를 날리는 것이 최선책이었다.
아니 그에 만족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적극적으로 더위를 극복할 방법을 찾은 선비도 있었다. 조선의 대학자 추사 김정희는 순조 16년(1816) 한여름 불볕더위 속을 뚫고 북한산에 올라 그곳에 있던 진흥왕순수비를 발견하고 탁본했다. 그 뒤 그는 침식을 잊은 채 비문을 판독한 다음 그 비가 진흥왕순수비임을 밝혀낸 것이다. 어쩌면 추사는 9세기 중국의 동산양개(洞山良价) 선사가 ‘너 자신이 더위가 되라’고 말한 것처럼 스스로 더위가 되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요즈음 ‘폭염주의보’와 ‘폭염경보’를 알리는 기상청의 재난문자를 자주 받는다. 여기서 하루 가장 높은 기온이 33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인 때가 이틀 이상 이어지면 ‘폭염경보’를 보낸다고 한다. 이때 기상청은 한자어로 된 폭염(暴炎), 폭서(暴暑)란 말을 쓰고 있지만, 더위를 뜻하는 토박이말로 무더위, 가마솥더위, 찜통더위, 된더위, 강더위, 불볕더위, 불더위 같은 말들이 있으니 이를 써보는 것은 어떨지?
장마철에 습도가 매우 높아, 견디기 어려운 더위가 무더위, 찜통더위, 가마솥더위다. 특히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이 상상되는 가마솥더위는 견딜 수 없을 정도다. ‘무더위’는 바로 ‘물과’ 더위가 어울린 말 ‘물더위’에서 ‘ㄹ’이 빠져 ‘무더위’가 된 것으로 후텁지근한 느낌이다. 그런가 하면 습도는 높지 않은데 그저 몹시 심한 더위는 ‘된더위’, 한창 심한 더위를 ‘한더위’라고 하며,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고 볕만 뜨겁게 내리쬐는 것을 ‘마른더위’, 강더위보다 정도가 더 심한 게 불더위, 불볕더위다.
뜨거운 음식 먹고
땀 흘리며 일해서 장기 보호

이렇게 불볕더위로 몸살을 앓을 때 옛사람들은 차라리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사냥"을 했다. 이열치열에는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과 일을 함으로써 다스리는 이열치열이 있다. 먼저 음식으로 하는 이열치열은 뜨거운 삼계탕, 보신탕, 추어탕, 용봉탕(용 대신 잉어나 자라를 쓰고 봉황 대신 닭을 써서 만든 탕) 따위로 몸을 데워주어 여름 타는 증세를 예방해 주었다. 일로 하는 이열치열은 양반도 팔을 걷어붙이고 이때 논농사에서 꼭 필요한 김매기를 돕곤 했다.
여름이 되면 사람 몸은 밖의 높은 기온 때문에 체온이 올라가는 것을 막으려고 피부 근처에 다른 계절보다 20~30% 많은 양의 피가 모이고 대신 위장을 비롯하여 여러 장기는 피가 모자라 몸 안 온도가 내려가는데, 이렇게 되면 식욕이 떨어지면서 만성피로 등 여름 타는 증세가 나타나기 쉽다고 한다. 따라서 조상들은 이때 오히려 뜨거운 음식을 먹거나 땀을 흘리며 일을 해서 장기를 보호해 주는 슬기로움을 발휘했다.
우리 겨레는 물론 이렇게 뜨거운 이열치열 음식만 먹은 것은 아니다. 조선 말기에 펴낸 글쓴이를 모르는 요리서인 《시의전서(是議全書)》에는 장국원미죽과 소주원미죽이 나온다. 장국원미죽은 먼저 맷돌로 쌀알이 반씩 갈라질 정도로 간 다음 체에 쳐둔다. 이렇게 만든 싸라기에 곱게 다진 쇠고기와 표고버섯, 석이버섯, 느타리버섯, 파 등을 넣고 죽을 쑨다. 또 소주원미죽은 싸라기로 죽을 쑨 다음 약소주와 꿀, 생강즙을 넣고 다시 끓인다. 약소주는 소주에 용안육(龍眼肉, 영양가가 많고 단맛이 나는 과일인데, 식용약재로 씀)·구운 대추·인삼 등을 넣고 50여 일 우려낸 술이다.
이 원미죽은 1938년 6월 17일 치 동아일보에 “여름철 별미인 조선음식 몇 가지”라는 기사에도 등장했다. 원미죽은 시원하게 얼음을 띄워 먹는데 소화가 잘되고 식욕을 돋우며, 보양 효과가 있는 여름철 별미 음식의 하나다.
쇠를 녹일 불볕더위에 땀이 마르지 않으니
가슴 헤치고 맨머리로 소나무 난간에 앉았노라
옥경의 신선 벗이 나를 지성스레 생각해 주어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보내주었구려
- 이응희 ‘부채선물에 화답’
가운데 이는 조선 중기의 문신 옥담 이응희(李應禧, 1579~1651)가 쓴 《옥담유고(玉潭遺稿)》 가운데 ‘부채선물에 화답’ 시다. 선물로 받은 작은 부채를 “맑은 바람 한 줄기를 나누어 주었다”라고 흐뭇해하는 선비의 마음이 잘 담겨 있다.
처서,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는 가을

입추 뒤 16일이 지난 8월 23일은 24절기 가운데 열넷째 처서(處暑)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뜻으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은 이름이다. 흔히 처서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이치를 잘 보여주는 때다. 또 이즈음은 농사철 가운데 비교적 한가한 때여서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있다. 옛사람들은 처서 때를 3후(候)로 나누어 초후(初候)에는 매가 새를 잡아 늘어놓고, 중후(中候)에는 천지가 쓸쓸해지기 시작하며, 말후(末候)에는 논벼가 익는다고 하였다.
처서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볕은 여전히 따가워야 하고 날씨는 맑아야만 벼 이삭이 패고, 잘 익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 무렵의 벼가 얼마나 잘 익어 가는지 보여주는 속담이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하며,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하는 말이 있는데 이는 처서 때 날씨가 중요함을 시사하는 말이다.
처서 때는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과 햇볕에 말리는 ‘포쇄(曝曬)’를 하는 풍습이 있었다. 특히 조선시대는 ‘포쇄별감(曝曬別監)’이란 직책을 두어 사고(史庫)에서 《조선왕조실록》을 점검하여 축축한 책은 바람을 쐬거나 햇볕에 말리던 일을 하도록 했다. 이 무렵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데 “처서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는 재미난 말이 있다.
“처서에 창을 든 모기와 톱을 든 귀뚜라미가 오다가다 길에서 만났다. 모기의 입이 귀밑까지 찢어진 것을 보고 깜짝 놀란 귀뚜라미가 그 사연을 묻는다. ‘미친놈, 미친년 날 잡는답시고 제가 제 허벅지 제 볼때기 치는 걸 보고 너무 우스워서 입이 이렇게 찢어졌다네’라고 대답한다. 그런 다음 모기는 귀뚜라미에게 자네는 뭐에 쓰려고 톱을 가져가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귀뚜라미는 ‘긴긴 가을밤 독수공방에서 임 기다리는 처자와 낭군의 애(창자) 끊으려 가져가네’라고 말한다.”
이는 남도지방에서 처서와 관련해서 전해 오는 이야기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를 단장(斷腸), 곧 애끊는 톱 소리로 듣는다는 참 재미있는 표현이다. 절기상 모기가 없어지고, 이때쯤 처량하게 우는 귀뚜라미 소리를 듣는 시기의 정서를 잘 드러낸다. 슬슬 자연의 순리가 여름을 밀어내는 때, 곧 가을은 입추와 처서가 품은 계절이다.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