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2/09] 항일의 섬 완도군 소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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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섬에 서훈받은 독립유공자만 스물두 명
마을에도 바다에도 태극기 휘날리니
백 년 전 항일투쟁 정신 되살아나네
글 | 편집부 사진 | 완도군
선착장을 나서자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고 새긴 기념비가 반긴다. 소안항에서부터 마을 입구까지 1.3km 도로에 태극기가 행렬이 이어진다. 도로뿐 아니다. 섬 주민들은 1년 365일 집집이 태극기를 달고 있다. 바다 위에도 가로 18m, 세로 12m의 대형 태극기가 떠 있다. 이 작은 섬에서 독립운동가 89명을 배출했고, 이 가운데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만 22명에 달한다. 소안도가 ‘항일의 섬’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소안도에 가는 길은 단 하나, 완도 화흥포항에서 배를 타야 한다. 세 척의 배가 오가는데 이름이 ‘대한’, ‘독립’, ‘만세’다. 1시간 남짓 뱃길을 달리면 노화도 동천항에 잠시 기항했다가 소안도 소안항에 다다른다. 옛날에는 제주를 오가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과 같은 섬이었다. 제주권을 벗어난 바다가 워낙 거칠고 험했기 때문에 뱃사람들은 이곳 섬에 도착한 후에야 비로소 안심했다고 해서 ‘소안(所安)’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소안도는 남북의 두 섬이 길이 1.3km, 폭 500m의 사주(沙洲)로 연결돼 있다. 주민 수는 2,500여 명이고, 면적은 여의도의 3배 크기에 달한다.
가는 곳마다 태극기 물결 일렁이는
진정한 ‘태극기의 섬’
어찌 이리도 푸르고 아름다울까. 하늘도 바다도 파랗게 빛나고 있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의 절경을 두 눈에 담으니 절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대한’이라 이름 붙은 여객선은 푸른 파도를 헤치며 당당하게 항해를 이어갔다. 1시간쯤 지났을까. ‘대한’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렸다.
배에서 내리자 가을을 머금은 바닷바람과 정겨운 섬 내음이 오감을 흔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항일의 땅, 해방의 섬 소안도’라고 새긴 강렬한 기념비가 시선을 붙잡았다. 도로 옆으론 무수한 태극기가 바닷바람을 업고 힘차게 펄럭였다. 소안항에서부터 마을 입구까지 1.3km 구간이 태극기 행렬이 이어진다고 한다.
도로뿐 아니다. 섬 주민들은 1년 365일 집집이 태극기를 달고 있다. 대한민국국기법에 따르면 아무 때나 태극기를 게양할 수 없지만, 소안도는 1년 365일 국기를 게양하도록 조례를 개정했다. 조례를 개정하면서까지 태극기를 매일 게양하고자 했던 섬 주민들의 투철한 애국심과 자부심이 느껴져 가슴 뭉클했다.
소안도에는 바다 위에도 태극기가 떠 있다. 철새 도래지이자 고니의 월동 안식처로 알려진 담수호에 가면 이 놀라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그물에 2,400여 개의 친환경 부표를 매달고 가로 18m, 세로 12m의 대형 태극기 문양을 만들어 띄웠다. 하얀 바탕색은 1,630개의 부표를, 태극 문양은 빨강 318개, 파랑 318개, 건·곤·감·리 괘는 158개의 검정 부표를 하나하나 손으로 매달았다니 참으로 대단한 정성이다. 진정한 ‘태극기의 섬’이라 불릴 만하다.
독립운동가 89명 배출한 작은 섬
‘항일 독립운동 3대 성지’로 불려

전남 완도군에서 약 17km 떨어진 작은 섬 소안도(所安島)는 함경도 북청, 부산 동래와 함께 ‘항일 독립운동 3대 성지’로 불린다. 이 작은 섬에서 독립운동가 89명을 배출했고, 이 가운데 건국훈장을 받은 독립유공자만 22명에 달한다. 소안도가 ‘항일의 섬’으로 불리는 까닭이다.
갑오년 동학혁명 이후 독립투쟁의 근거지가 된 소안도는 1909년 소안도 출신 의병들이 일제가 국권 침탈을 위해 설치한 소안도 남쪽의 작은 섬 당사도 등대를 습격해 시설을 파괴하고 일본 간수를 사살하는 의거를 감행하면서 항일투쟁을 본격화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항일 열기가 최고조에 달했다. 노동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활발하게 펼쳤으며, 비밀결사대를 조직해 일제에 항거하고 빼앗긴 토지반환 법정투쟁을 이어가는 등 끊임없이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일제의 부당한 토지조사 사업에 불복해 소유권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한 주민들은 13년간 왜인들과 법정투쟁을 벌인 끝에 승소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송내호, 정남국 등 독립투사와 주민 100여 명이 ‘연 투옥 햇수 110년’이라는 엄청난 고통을 감내해야 했으며, 소안도 주민들은 감옥에 들어간 이웃을 생각하며 한겨울에도 이불을 덮지 않았다고 한다. 8,000여 명의 주민 중 600여 명이 일제에 의해 이른바 ‘불령선인’으로 낙인찍혀 감시를 받는 등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도 절대 굴하지 않았던 기개가 참으로 놀랍다.
이러한 선열들의 항일정신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소안항 근처에 소안항일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을 세웠다. 기념관 내 한쪽에는 당사도 왜인 등대습격사건을 형상화한 등대 조형물이 당시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항일운동기념탑 옆에는 사립소안학교가 100여 년 전 민족의 아픈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소안도에는 1913년 송내호, 김경천 등이 세운 중화학원이 있었다. 사립소안학교 설립의 모태가 된 곳으로 일제강점기에도 일장기를 절대 게양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립소안학교는 일제를 상대로 벌인 토지반환 법정투쟁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오늘날 6억 원에 해당하는 돈을 갹출하여 세웠다. 당시 학교를 폐교하려 하자 800여 명이 서명해 막았다고 한다. 지금은 작은 도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해변 따라 늘어선 푸른 천연기념물
옛 모습 보존된 천혜의 자연

흔히 완도 하면 보길도와 청산도를 떠올리는데, 소안도는 옛 모습이 온전히 보전된 천혜의 자연이 매력적이다. 몽돌해수욕장은 소안도의 대표 명소다. 미라해수욕장, 부상해수욕장 그리고 진산해수욕장 모두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다른 지역과 다른 점은 아주 작은 크기의 조약돌이 해변에 깔려 있어 신발을 벗고 걸어도 아프지 않다. 이곳 주민들은 이 돌을 맥반석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미라해수욕장을 맥반석 해수욕장으로 부르는데 몸에 좋다고 알려진 검은색 맥반석이 지천에 있다.
바다뿐 아니라 해변을 따라 늘어선 상록수림도 중요한 천연기념물이다. 맹선리 상록수림과 미라리 상록수림은 우리나라 최대 난대식물과 희귀종이 자라는 바다 숲이다. 수령이 300년 전후로 추정되는 후박나무를 비롯한 245그루 상록수가 방풍림 역할을 하고 있다.
미라해돋이 쉼터에서 차로 5분 거리에는 천연기념물 339호 미라리 상록수림과 해수욕장이 있다. 아름드리 해송과 구실잣밤나무 등 수목 24종 776그루가 숲을 형성하고 있다. 상록수림은 방풍림 역할은 물론 마을과 가정의 평안, 바다에서의 무사고를 비는 장소였다. 맹선리에도 후박나무를 비롯한 21종 245그루의 상록수림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이곳은 국내 최대 난대식물과 희귀수종이 방풍림을 형성하고 있다.
소안도의 매력은 산에서도 아름답게 펼쳐진다.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지만 절대 빠져서는 안 될 코스가 가학산 등산로다. 정상까지 왕복 4시간 정도의 코스인데 산세가 험준하다. 소안도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학운정에 오르면, 멀리 강진 마량항이 보인다. 가학산 정상까지 오르면 사방이 절경이다. 학운정에서는 북쪽의 남해만 볼 수 있는 데 반해, 정상에선 360도 파노라마처럼 푸른 다도해의 드넓은 바다 절경이 눈앞에서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