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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역사를 다시 생각한다 [2022/10] 살아있는 세계유산 안동 하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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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랑했던 ‘가장 한국적인 곳’


만송정에서 울린 소년들의 만세 함성

낙동강 휘돌아 오늘도 조용히 흐르네


글 | 편집부  사진 | 한국관광공사·안동 하회마을보존회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지난 9월 8일(현지시각) 영면에 들어갔다. 세계인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온 여왕은 즉위 70년 만에 임무를 내려놓게 됐다. 세계 곳곳의 추모 물결은 안동 하회마을에도 이어지고 있다. 안동시는 충효당 앞 여왕의 방문을 기념해 직접 심은 구상나무 인근에 추모단을 마련했다. 하회마을은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김대중 전 대통령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았을 때 ‘가장 한국적이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고 싶다’는 뜻에 따라 방문지로 결정돼 인연이 깊은 곳이다.  


가을의 발걸음이 바쁘다. 투명한 가을 햇살과 바람이 초록빛 세상을 노랗게 빨갛게 물들일 준비에 여념이 없다. 나무에선 과실이 익고 들판에선 곡식이 익어간다. 몸은 더없이 분주하건만, 마음은 풍요롭고 여유가 넘친다. 행복한 계절, 가을이다. 이쯤 되면 방랑벽이 도지고 몸이 근질거린다. 


지난 9월 9일 오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서거 소식을 듣고, 제일 먼저 안동 하회마을이 생각났다. 하회마을에서 73세 생일상을 받고 온화한 미소를 짓던 여왕의 얼굴과 넉넉한 인심을 나누던 마을 주민들의 정겨운 웃음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그렇게 가을 속으로 성큼 발길을 옮겼다. 매표소를 지나 하회마을로 들어서니 노랗게 익어가는 들녘이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동공이 커지고 마음의 빗장이 스르르 열린다. 논에는 알록달록 허수아비가 반겼다. 익살스러운 생김새에 배시시 웃음이 난다. 고개를 돌려보니 나지막한 산들과 동글동글 초가집 지붕이 낯선 듯 정겹다. 아,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더할 나위 없이 편안하고 기분 좋은 풍경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된 역사마을


안동 하회마을은 너무 유명하다. 설명이 필요 없는 마을이다. 국제적으로도 명성이 높다. 1999년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2005년 미국 부시 대통령이 방문해 해외 매스컴에 올랐다. 역사·문화적 가치도 매우 높다. 2010년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는 “한국인의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이며,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써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살아있는 민속박물관답게 우리나라의 전통 생활문화와 고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국보, 보물 등 중요 문화재도 손꼽기 힘들 만큼 많다. 서애 류성룡의 임진년 7년 전쟁의 기록인 『징비록』과 하회탈은 하회마을을 대표하는 국보다. 하회탈은 각시, 중, 양반, 선비, 초랭이, 이매, 부네, 백정, 할미 9개의 탈만 전해지며, 이 중 3개의 탈은 분실되었다. 이외에 보물이 4점, 중요민속자료가 10점, 사적 1곳 등이 있으며 1984년에는 마을 전체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이 되었다. 


중요무형문화재인 ‘하회별신굿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는 현재까지도 전승되고 있다. 하회탈춤으로 잘 알려진 별신굿탈놀이는 국내 탈춤 중 가장 오래되었고, 1928년 일제강점기 때 강제로 중지되었다가 이후 다시 복원되었다. 선유줄불놀이는 450년 전부터 하회마을 부용대와 만송정에서 진행한 양반들의 놀이다. 공중에 길게 걸어 놓은 줄에 숯가루를 넣은 봉지를 주렁주렁 매단 뒤 점화하면 불꽃이 튀면서 떨어진다. 숯불 가루 불꽃들이 비처럼 쏟아져 장관을 연출한다. 


골목마다 장구한 역사 펼쳐져


마을 입구의 지도를 따라 유서 깊은 집들을 찾아 나선다. 굽이굽이 돌아가는 골목길에 마음이 설렌다. 오래된 나무 문과 분홍빛 코스모스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처럼 어여쁘다. 담 너머로 고개를 내민 감나무가 탐스럽다. 울퉁불퉁 돌담이며 돌계단, 토담이 자꾸만 시선을 붙들어 걸음은 느릴 수밖에 없다. 정갈하게 보존된 집들에서 종종 마을 사람들의 모습도 보인다. 행여 일상에 방해가 될까 조용히 눈인사만 건네고 돌아선다.


하회마을은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하회(河回)’라 불렸다. 마을의 동쪽에 태백산에서 뻗어 나온 해발 271m의 화산(花山)이 있고, 이 화산의 줄기가 낮은 구릉지를 형성하면서 마을의 서쪽 끝까지 뻗어있다. 


수령이 6백여 년 된 느티나무가 마을의 중심이다. 이 느티나무는 풍산류씨 류종혜 공이 이 마을에 터를 잡을 때 심었다고 전해진다. 삼신당 신목(神木)으로도 불린다. 하회리 삼신당 느티나무는 하회마을 중심에 서서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이다. 마을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아기를 점지할 뿐만 아니라 탄생과 성장의 모든 과정을 관장하는 삼신할머니 신목에게 마을의 안녕을 기원해왔다. 나무 주변에 설치된 울타리에는 관광객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적은 ‘소원지’가 빼곡하게 꽂혀 있다. 삼신당은 하회별신굿탈놀이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하다. 


하회마을의 집들은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좌향이 일정하지 않다. 한국의 다른 마을의 집들이 정남향 또는 동남향인 것과는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또한 큰 기와집을 중심으로 주변의 초가들이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도 독특하다. 


하회마을의 고택 중 ‘양진당’이라는 입암고택은 풍산류씨 겸암파의 대종택으로 보물이다. 사랑채는 고려시대의 건축양식, 안채는 조선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져 고려와 조선이 공존하는 고택이다. 또 하나의 보물인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의 종택이다. 충효당의 바깥마당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의 방문을 기념해 심은 구상나무가 있다. 


이외에 풍산류씨 귀촌파의 종가집인 귀촌고택, 마을 북쪽의 99칸 집으로 불린 북촌댁, 또 하나의 99칸 집인 조선 정종 21년에 지은 남촌댁, 병산서원, 화천서원, 강 건너 류성룡의 옥연정사, 퇴계 이황의 글씨가 편액으로 남아있는 겸암정사 등 볼거리가 차고 넘친다.


목숨으로 저항한 장엄한 역사


안동 하회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낙동강가에는 흰 모래밭과 함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즐비하게 서 있다. ‘만송정’이라 불리는 이 솔밭은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다. 3월이 되면 하회별신굿탈놀이 상설 공연이 펼쳐지는 장소이기도 하다. 


1919년 3월 27일 이곳에서는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는 마을 소년들의 함성이 있었다. 풍산류씨 가문의 22세 청년 류점등을 따라나선 소년 23명은 모두 16세 이하였다. 16세 이하면 법의 저촉을 받지 않을 거라는 계산이었다. 전례를 찾기 힘든 소년들의 만세 시위는 곧장 마을 밖에 알려져 류점등은 체포되었고, 소년들은 부모가 와서 서약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신병 처리가 마무리됐다.


하회마을 사람들은 나라의 위기 때마다 분연히 일어섰다. 1895년 을미의병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항일투쟁을 이어갔다. 그 가운데 류도발은 1910년 나라가 무너지자 단식 순국했고, 아들 류신영도 1919년 3월 그 뒤를 따랐다. 아버지와 아들이 연이어 목숨으로 저항한 장엄한 역사를 남겼다. 1920년대 들어 류창우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했으며, 류병하와 류시태는 의열단 의거로 고초를 겪었다. 그 뒤에도 마을 사람들의 투쟁은 계속되었다. 류택하는 서울에서 학생운동을 펼쳤고, 류시승은 안동농림학교 학생항일운동을 이끌었다. 나라 밖에서는 류소우와 그의 아들 류시보, 조카 류시훈이 한국광복군으로 활약했다.


강가에서 쪽배를 타고 부용대를 향해 간다. 가을바람 맞으며 강을 건너는 운치가 쏠쏠하다. 태백산맥의 맨 끝부분인 부용대 정상에 오르니 하회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6백 년 장구한 역사의 파노라마가 휘몰아쳐 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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