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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11] 세계 7대 강국 한국 우주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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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로켓 ‘누리호’ 이어 달 궤도선 ‘누리호’ 발사 성공


세계 최초 다연장 로켓 무기 ‘신기전’ 

앞선 기술력으로 우주 강국 우뚝  


글 | 편집부 사진 |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항공우주산업 


지난 6월 21일 한국 우주로켓 ‘누리호’가 전라남도 고흥 나로우주센터를 박차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이로써 한국은 자력으로 우주로켓을 쏠 수 있는 세계 7번째 국가가 됐다. 이어 지난 8월 5일에는 달 궤도선 ‘다누리’ 발사까지 성공하면서 한국 우주산업은 ‘우주 지각생’이란 오명을 벗고 우주 강국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고 있다. 


누리호는 도전의 연속이었다. 2010년 3월 ‘우리 땅에서 우리 발사체로 한국의 위성을 우주로 발사한다’는 목표로 첫발을 뗀 후 발사체뿐 아니라 발사 기반시설까지 국내 기술로 만들었다. 민관이 협력해 2조 가까운 돈을 투입, 1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피와 땀을 쏟아부었다.


지난해 10월 1차 발사 시도는 실패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2022년 6월 21일 두 번째 시도 만에 성공했다. 이로써 한국은 1톤 이상의 실용급 위성을 자력으로 발사할 수 있는 7번째 국가가 됐다. 우주 개발 30여 년 만에 이룬 놀라운 쾌거다. 현재 자력 발사 능력을 보유한 국가는 러시아, 미국, 프랑스, 중국, 일본, 인도, 이스라엘, 이란, 북한 등 9개국에 그친다. 특히 실용(무게 1,000㎏ 이상) 위성 발사가 가능한 국가는 이스라엘·이란·북한을 제외하면 6개국에 불과하다.


앞으로 누리호는 내년 2차 발사에서 위성의 궤도 안착에 재도전하고 2027년까지 4차례에 걸쳐 발사를 계속할 예정이다. 이후 누리호가 상용화하면 우리는 차세대 통신위성을 원하는 시기에 쏘아 올리는 것은 물론 다른 나라 위성도 우주로 보내줄 수 있게 된다. 명실공히 우주 개발 독립국으로 도약하게 되는 것이다.


어려운 여건 딛고 

우리 힘으로 성공해낸 로켓 발사


누리호 발사는 우리나라 기술진이 어려운 환경과 여건을 이겨내고 이룬 성과라 더욱 뜻깊다. 미사일 지침과 강대국의 견제에도 불구하고 1993년 작은 과학 로켓으로 시작한 뒤 2013년 러시아와 협력해 처음으로 ‘나로호’를 제작, 두 번의 실패와 네 번의 발사 연기 끝에 성공했다. 나로호 개발에서 익힌 기술을 기반으로 독자적 우주발사체 개발에 착수했고, 결국 누리호를 통해 우주 강국에 한 발짝 더 다가설 수 있게 됐다.


우주발사체는 수백 명의 과학자와 기술자가 참여하는 첨단과학의 진수로 꼽힌다. 발사체 기술은 국가 간 기술 이전이 엄격히 제한된 대표적 산업 분야라 진입 자체가 어렵다. 막대한 비용을 쏟아부어도 그 결과를 장담할 수 없어 가장 도전적인 국가 과제로 불린다. 누리호의 성공적 발사는 러시아 기술의 엔진으로 발사한 나로호와 달리, 엔진과 탱크·발사체 개발 모두를 우리 손으로 성취해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누리호 성공에 이어 지난 8월 5일 달 탐사선 다누리까지 성공적으로 발사되면서 한국 우주산업은 한 단계 더 도약했다. 다누리는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 기지에서 스페이스X 발사체 ‘팰컨9’ 로켓에 실려 우주로 날아올랐다. 이날 목표 궤도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다누리는 약 4개월 반의 항행 기간을 거쳐 오는 12월 16일쯤 달 궤도에 진입하고, 같은 달 31일 임무 궤도인 달 상공 100㎞에 안착할 예정이다.


2023년 1월부터는 달 상공 100km의 원 궤도를 돌며 1년간 달의 자기장·감마선 측정 등의 과학연구, 우주인터넷 기술검증 등 본격적인 임무를 수행한다. 정부는 다누리 연구를 토대로 2031년까지 달 착륙선을 자력으로 발사할 계획이다.


오래된 한국의 우주산업 역사


해외에서는 한국의 우주 개발이 30년 만에 세계 7위를 넘보는 수준까지 올랐다고 놀라워한다. 실제로 한국만큼 빠르게 우주 개발을 진행해온 나라는 거의 없다. 첫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가 발사된 시기가 1992년 8월이었다. 영국 서레이대학이 제작한 무게 48.6㎏짜리 소형 위성 우리별 1호는 프랑스령 기아나 우주센터에서 아리안 4호 로켓의 귀퉁이에 실려 성공적으로 궤도에 안착, 대한민국 1호 인공위성이라는 타이틀을 남겼다. 타국의 발사체에 타국이 제작한 인공위성으로 시작했던 한국의 우주 개발이 30년이 지난 2022년 발사체뿐 아니라 발사 기반시설까지 자체 기술로 만들었으니 급성장했다는 평가가 따를 만하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우주 개발 역사는 결코 단기간이 아니다. 선조들은 이미 1377년경 로켓을 무기로 제작해 나라를 지켰다.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 태종실록』에 따르면, 최무선은 고려 우왕 3년(1377년) 10월 화통도감(火筒都監)을 설치해 화약과 각종 화포를 만들어냈다. 화약을 원료로 삼는 로켓 무기는 여말선초 해안 지역을 노략질하는 왜구 격퇴에 크게 이바지했다. 『조선왕조실록』에 35번이나 등장하는 ‘신기전(神機箭)’은 세계 최초의 다연장 로켓 무기로 인정받는다. 


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던 1958년부터 한국은 로켓 제작과 시험 발사에 나섰다. 1954년 설립된 국방부 과학연구소는 1958년 10월 인천 고잔동에서 김정렬 국방장관 등 군 수뇌부가 참석한 가운데 자체 개발한 로켓 7발을 쐈다. 길이 170㎝, 무게 48㎏, 사거리 8㎞인 초보적인 로켓이었지만, 의욕만큼은 넘쳤다. 


구소련이 1957년 10월 초 발사한 스푸트니크 1호와 미국이 1958년 1월 말 쏘아 올린 익스플로러 1호에 자극받은 국방부 과학연구소는 이듬해인 1959년 7월 이승만 대통령과 모든 국무위원, 미군 장성까지 참관한 가운데 고잔동에서 공개 시험 발사를 했다. 그러나 의욕적으로 연구하던 국방부 과학연구소가 예산상의 이유로 1961년 문을 닫으면서 정부 차원의 로켓 연구는 맥이 끊겼다. 


1972년부터 로켓 개발의 불이 다시 지펴졌다.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국방과학연구소(ADD)는 국산 지대지 유도탄 개발에 온 힘을 쏟았다. 1978년 9월 충남 안흥시험장에서 2단 백곰 지대지 미사일 공개 시험 발사에 성공, 주변국을 놀라게 했다. 성능을 반신반의하던 미국마저 경악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제 나이키 허큘리스 지대공 미사일을 역설계해서 탄생한 백곰 미사일 첫 발사 44년이 지난 오늘날 한국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 능력은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이후 노태우,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등 정부가 바뀌는 동안 우주 개발에 대한 지원과 노력이 더해졌다. 북방외교를 표방하며 러시아에 대규모 경제협력 차관을 제공한 노태우 대통령은 차관 상환용으로 러시아 선진 기술이 국내에 유입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국의 우주발사체는 물론 장거리 탄도미사일은 미국의 공식적인 기술 지원과 미국산 로켓과 군 장비를 모방 설계하고 생산하면서 터득한 국내 기술, 러시아 기술이 혼합돼 있다. 동서 진영을 가리지 않고 해외에서 기술을 이전받거나 어깨너머로 배워왔다는 점, 정치 진영을 떠나 역대 대통령들이 지대한 관심을 표명해온 결과물이 바로 누리호다. 


‘우주 4강국’ 향한 힘찬 비상


우주 관련 시장은 급격하게 팽창하고 있다. 미국 스페이스X를 필두로 버진갤럭틱·블루오리진 등 우주 탐사기업이 견인하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글로벌 우주산업 규모가 2018년 3,500억 달러(약 500조 원)에서 연평균 5.3% 커져 2040년 1조 1,000억 달러(약 1,570조 원)에 이른다고 전망했다. 마켓츠앤마켓츠도 우주 관련 사업 중 위성 이미지 데이터 시장에 주목했다. 해당 시장 규모는 2021년 59억 달러(약 8조 원)에서 2026년 167억 달러(약 24조 원)까지 확대될 것으로 내다봤다.


세계 강대국들은 지금 군사적·경제적 목적으로 강화된 로켓 기술 확보와 우주산업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다. 무수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우주산업은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국방과 안보에서도 대단히 중요하다. 영토가 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우주 영토 확보가 더욱 절실하다. 나로호와 다누리의 성공을 발판 삼아 한국의 우주산업이 ‘우주 4강국’을 향해 힘차게 비상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