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Inside

우리문화 사랑방 [2022/11] 전통혼례 그 속에 담긴 뜻과 의례

페이지 정보

본문

전통혼례, 원앙이 아닌 목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


음양의 이치 따르는 철새로 인식

한번 정한 배우자 절대 안 바꿔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전통혼례를 보면 신랑은 신부에게 두 번, 신부는 신랑에게 네 번 절을 한다. 이를 두고 가부장적 여성 비하 의식이 들어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럴까? 옛사람들은 음양오행 철학을 믿었다. 특히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 한다. 다만, 양의 수가 1로 시작되고, 음의 수가 2로 시작되어 각각 1과 2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수일뿐이기에 남성인 신랑은 절을 해도 한 번, 여성인 신부는 두 번을 하는 것이며, 큰일을 치를 때는 곱절로 하기에 신랑은 두 번, 신부는 네 번의 절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랑신부가 절하는 숫자는 음양오행에 따른 것일 뿐 여성을 낮추는 뜻은 없다. 


전통혼례가 밀려나고 그 자리에 서양결혼식이 자리를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시간에 쫓겨 사진 몇 장 찍고 벼락 치듯 뚝딱 해치우는 결혼식에 염증(?)을 느낀 젊은이들이 하나둘 늘다 보니 갑갑한 예식장을 벗어나 탁 트인 야외공원이나 레스토랑 정원 등에서 넉넉한 시간을 두고 혼인식을 올리는 신랑신부도 느는 추세다. 그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는 운현궁이나 남산골한옥마을 등에서 전통혼례를 치를 수 있으며 대구 같은 곳에서는 향교에서 전통혼례를 올릴 수 있게 하는 등 바야흐로 전통혼례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고 있는 느낌이다. 전통혼례인 경우에 그 절차를 모두 익히지 않아도 예식에는 지장이 없다. 그러나 유구한 역사를 통해 내려오던 전통혼례가 지닌 의미를 알아둔다면 더욱 뜻깊은 혼례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전통혼례 당일 

전안례ㆍ교배례ㆍ합근례


우리 전통의 혼례 절차는 혼례를 준비하는 단계, 혼례 당일의 예식, 혼례 예식 뒤의 마무리로 나눌 수 있다. 그 가운데서 당일 예식은 크게 전안례·교배례·합근례가 있다. 먼저 초행(醮行)이라고 하여 신랑이 여러 일행과 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간다. 이때 부정을 막기 위해 신부집에 들어설 때 짚불을 넘어가기도 한다.


이어 신랑이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지례가 있다. 기러기는 백년해로(百年偕老)를 기원하는 혼례의 성스러운 약속을 상징한다. 신부집에서는 기러기를 맞이하기 위해 전안상을 차리고, 신랑은 전안상에 기러기를 놓고 공손히 절을 올린다. 이어 신부의 어머니는 기러기를 치마에 조심스럽게 안고, 기러기를 신부방에 던지며, 이를 통해 아들을 낳을지 딸을 낳을지를 점치기도 하는데 기러기가 똑바로 놓이면 아들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전통혼례에서 기러기가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림1 은 프랑스 귀메박물관에 있는 “전안하는 모양”이라는 제목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 보이는 전안례(奠雁禮)는 한국 전통혼례 당일의 첫 절차로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가서 신부의 혼주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의례를 말한다. 그래서 그림에도 기러기가 상에 놓여 있다. 


기러기는 봄에 북녘으로 날아갔다가 가을에 다시 찾아오는 곧 음양의 이치를 따르는 철새라고 알려졌으며 배우자에 대한 책임을 다하는 새로 여기고 있다. 기러기는 한번 정한 배우자는 절대 바꾸지 않으며 배우자가 먼저 죽더라도 다른 배우자를 선택하지 않기에 혼례에 아주 좋은 상징성이 있는 날짐승이다. 


전안례가 끝나면 신랑과 신부가 부부의 예로 절을 하는 절차인 교배례(交拜禮)를 한다. 족두리에 연지곤지를 찍고 곱게 단장한 신부가 나오면, 드디어 마주 서게 된 둘 사이에는 교배상이 차려지는데 여기에는 촛대, 소나무, 대나무, 꽃, 닭, 쌀, 밤, 대추, 술잔 따위를 놓는다. 이러한 상차림은 가정의 화목을 빌고, 떡두꺼비 같은 아이들을 낳아 정승판서를 시키라는 소망을 나타내는 상징이다.


참고로 한국인들이 금슬 좋은 새로 알고 있는 원앙은 전통혼례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지조와 절개의 상징인 기러기에 원앙이 자리를 내어 준 것이다. 여기서 덤으로 한 가지 알아 둘 것은 우리가 흔히 쓰는 “잉꼬부부”에서 잉꼬는 앵무새를 뜻하는 일본말이므로 부부금슬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새다.

 

합근례, 합환주와 표주박 


교배지례의 다음 순서인 합근례에서는 신랑신부가 합환주를 마신다. 이 합환주를 따라 마시는 그릇이 바로 표주박이다. 표주박은 조롱박이나 둥근 박을 절반으로 쪼개어 만든 작은 바가지를 말한다. 표주박은 음력 8월 무렵 추수가 끝나고 첫서리가 내릴 즈음에 농가의 지붕 위에 놓인 둥근 박이나 길쭉하면서 중간이 잘록한 호리병박을 반으로 타서 삶은 다음에 껍질을 말려 만들었다. 


표주박은 이규보(李奎報)의 『동국이상국집』에 “쪼개면 표주박이 되어 차가운 음료 퍼내고”라고 하였듯이 흔히 물을 퍼내는 데 쓰였다. 이 표주박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신부가 술을 나눠 마시는 합근례(合巹禮) 그릇으로 쓰였다. 그래서 딸을 시집보낼 때가 되면 애박(작은 박)을 심는 풍속이 있었다. 


애박이 담장을 타고 올라가면 마을 총각들이 담 너머로 이 집 딸을 훔쳐보았기에 ‘애박 올리면 담 낮아진다’라는 재미있는 속담이 생기기도 하였다. 이 전통혼례에 쓸 표주박은 애박을 반으로 쪼개어 예쁜 쇠고리를 달아 만들었다. 신랑·신부가 함께 마신 뒤 그 두 표주박을 합쳐 신방의 천장에 매달아 신랑신부의 금슬을 빌었다. 


또한 조백바가지라 하여 표주박 한 쌍에 한쪽은 장수와 화목을 상징하는 목화를, 또 한쪽에는 부를 상징하는 찹쌀을 가득 담아 딸이 시집갈 때 가마에 넣어 보내는 풍속도 있었다.


여기서 합근례와 합환주에 관해 알아둘 것이 있다. 합환주 마실 때 쓰는 ‘합환주잔’은 아래쪽이 둥글게 되어 있어서 잔에 술을 담았을 때 아무 데나 놓을 수가 없다. 따라서 술이 쏟아지지 않게 하려고 작은 소반 위에 잔을 걸칠 수 있도록 두 개의 구멍을 뚫어놓은 상 곧 ‘합환주상’을 마련해 둔다는 사실이다.


신랑은 두 번, 

신부는 네 번 절하는 까닭


전통혼례를 보면 신랑은 신부에게 두 번, 신부는 신랑에게 네 번 절을 한다. 이를 두고 가부장적 여성 비하 의식이 들어 있다고 오해하는 사람이 있다. 정말 그럴까? 


옛사람들은 음양오행 철학을 믿었다. 특히 남자는 양, 여자는 음이라 한다. 그뿐만 아니라 해·뜨거움·밝음 따위는 ‘양’, 달·차가움·어두움은 ‘음’이라 했다. 그래서 더욱더 가부장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는 음양철학을 잘못 안 결과다. 세상에 달이 없는 해, 차가움이 없는 뜨거움, 어두움이 없는 밝음이 존재할 수 있을까? 더구나 여성이 없는 남성만의 세상은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생각했을 때 신랑은 신부가 있어야만 하고 신부는 신랑이 있어야만 하는 존재다. 다만, 양의 수가 1로 시작되고, 음의 수가 2로 시작되어 각각 1과 2는 남성과 여성을 상징하는 수일뿐이기에 남성인 신랑은 절을 해도 한 번, 여성인 신부는 두 번을 하는 것이며, 큰일을 치를 때는 곱절로 하기에 신랑은 두 번, 신부는 네 번의 절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신랑신부가 절하는 숫자는 음양오행에 따른 것일 뿐 여성을 낮추는 뜻은 없다.


오히려 우리 전통사회에서는 혼인하고 나면 남편과 아내 사이에 나이 차이는 의미가 없어지고 내외가 그 격이 같아지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외 사이에는 말부터 존대하게 하여 서로를 존중하도록 하였다. 내외가 서로를 높이면 내외의 격이 함께 올라가고 서로를 업신여기면 내외의 격이 함께 떨어진다고 여긴 때문이다. 오히려 전통혼례가 신랑신부를 동등하게 바라보도록 하는 것이다.


특별한 궁중혼례


전통혼례 가운데서 궁중혼례를 하는 이들도 있다. 이는 조선시대 임금과 왕세자의 혼례의식을 기록한 『가례도감의궤(嘉禮都監儀軌)』를 토대로 그 혼례 의식 가운데 친영례(親迎禮, 신랑이 신부의 집에 가서 신부를 데리고 신랑의 집으로 온 다음에 올리는 예식)와 동뢰연(同牢宴, 신랑·신부가 신방(新房)에 들기 전에 술잔을 나누고 음식을 먹던 의식)을 재현한 혼례다. 궁중혼례식을 통해 하루만이라도 임금과 왕비가 되어보는 것도 평생 기억될 만한 일이다.


결혼이라는 말에는 

장가간다는 뜻만 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나라는 신랑신부가 되는 통과의례를 일컫는 말을 “결혼”이라고 부르고 있다. 하지만 이는 신부 쪽에서 써서는 안 되는 말이다. “결혼(結婚)”에서 “결(結)”은 맺는다는 뜻이고, “혼(婚)”은 “아내의 친정 살붙이” 곧 장가드는 것을 말한다. 예전엔 혼인예식을 치른 다음 신부집에서 당분간 사는 “처가살이”를 한 흔적이다. 다시 말하면 “결혼”에서는 “장가가다”라는 뜻만 들어 있지 “시집가다”란 뜻은 없는 것이다.


대신 “혼인(婚姻)”은 “장가가다”란 뜻의 “혼”에 더하여 “사위의 집” 곧 “시집가다”란 뜻을 지닌 “인”이 더해져 완전한 뜻을 지닌다. 따라서 신부의 처지에서 시집가는 흔적이 사라진 “결혼”이란 말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참고로 우리 풍속에는 ‘토종 연인의 날’이 있다. 칠월칠석에는 시집가는 날 신랑신부가 함께 합환주를 마실 표주박 씨를 심고, ‘짝떡’이라 부르는 반달 모양의 흰 찰떡을 먹으며 마음 맞는 짝과 혼인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래서 우리는 칠석을 ‘토종 연인의 날’이라고 부르는데 2003년 칠월칠석에 처음으로 제1회 ‘토종 연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토종 연인의 날’로 24절기 ‘경칩’을 꼽는다. 경칩에 처녀·총각들은 밤이 되면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써 은행 씨앗을 선물로 주고받으며, 은밀히 은행을 나누어 먹고, 날이 어두워지면 동구 밖에 있는 수나무 암나무를 도는 사랑놀이로 정을 다지는 풍속이 있어서 이날도 ‘토종 연인의 날’로 꼽았다. 


누천년 이어온 전통혼례 의식이 사라지고 요즈음은 서양식 결혼식이 대세이긴 하지만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전통혼례를 다시 새롭게 보는 사람들도 생기고 있다. 전통혼례가 지니는 뜻과 그에 따르는 의식을 알아두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