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0/07] 경남 하동 문화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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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하소설 <토지>의 무대 경남 하동 문화여행
최참판댁에서 평사리 들판 내려다보니
거대한 역사의 강물이 흐르네
글 | 편집부 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경남 하동군 악양면은 문학의 고장이다. 드넓은 평사리 들판과 섬진강 물길이 한눈에 들어오는 상평마을 언덕에 오르면 26년간 대하소설 <토지>를 집필했던 박경리 선생의 숨결이 느껴진다. 언덕 위에는 2002년 소설 속 장소를 그대로 재현한 최참판댁이 14동 한옥으로 지어져 있다. <토지>의 서사는 이곳에서 시작하고 끝난다. 최참판댁에서 내려다본 평사리 들판은 거대한 역사의 강물이다. 일제의 식민지배와 민중의 검질긴 독립투쟁 그리고 해방까지 우리 근대사의 암울했던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있다.
박경리 선생이 찾던 바로 그곳!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땅을 중심으로 말하자면 소설 <토지>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끝나는 배경이자 소설 속 최참판댁이 재현된 동네다. 박경리 선생은 평사리를 본 후 ‘내가 찾던 곳이 바로 이곳’이라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박경리문학관장 최영욱 시인의 이야기를 빌자면, 첫 번째 이유는 만석꾼이 나옴직한 넓은 들이 있었기 때문이고, 그다음은 역사적 무게와 이야기가 넘치는 섬진강과 지리산을 끼고 있어서였단다. 평사리 들판은 실제 크기가 서울 여의도의 3배쯤 된다. 게다가 전봇대나 다른 장애물이 없어 그야말로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답다.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들판이, 가을에는 눈부신 황금들판이 끝없이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하동 평사리 들판은 tvN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도 등장했다. 어린 유진이 달리던 황금들판이 이곳인데, 한가운데 자리잡은 소나무 두 그루는 ‘부부송’이라 불린다. 마을 사람들은 <토지>의 주인공인 서회와 길상으로 여긴단다. 최참판댁에 올라 평사리를 내려다보니 서희, 길상이, 봉순이, 윤씨부인, 최치수, 별당아씨, 조준구, 윤보, 월선네, 이용 등 수많은 이름들이 떠오른다. 최참판댁의 비극적 내력, 최지수의 죽음, 호열자의 창궐과 윤씨부인의 죽음, 최씨 집안의 재산을 탐내는 조준구의 음모, 윤보의 의병활동 등 이곳 평사리에서 펼쳐졌던 파란만장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박경리 선생은 동학농민전쟁부터 시작해 해방까지, 긴박하고 처절했던 역사를 거대한 강물처럼 품어 안았다. 얼마나 대단한 서사인가. 한 장 한 장 떨리는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듯,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히 땅을 디디며 거닐어본다.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 속 주인공인 최치수와 최서희 일가를 중심으로 한 생활공간을 재현한 곳이다. TV 드라마 ‘토지’도 이곳에서 촬영했다. 조선시대 중기 전통 한옥을 잘 구현해 당시의 가옥 형태와 마을공동체 분위기를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행랑채, 안채, 사랑채, 별당 순으로 거닐다보면 소설 속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불쑥 나올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만큼 생생하게 잘 보존되어 있다. 좀 더 세세한 설명을 들으며 실감나게 문학기행을 하고 싶다면 ‘최참판댁 관람 한옥체험’을 추천한다.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공간을 거닐면서 각 공간의 의미와 소설 속 이야기를 전해 듣는 프로그램이다. 문학기행단처럼 사전 모집된 단체 관람객에 한해 최영욱 관장 혹은 전문 해설사와 동행이 가능하다. “어찌하여 빙벽(氷壁)에 걸린 자일처럼 내 삶은 이토록 팽팽해야만 하는가. 가중되는 망상(妄想)의 무게 때문에 내 등은 이토록 휘어들어야 하는가. 나는 주술(呪術)에 걸린 죄인인가. 내게서 삶과 문학은 밀착되어 떨어질 줄 모르는, 징그러운 쌍두아(雙頭兒)였더란 말인가.” 선생은 암수술을 하고 보름 만에 퇴원한 그날부터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 원고를 썼다. 목숨이 있는 이상 도망칠 수도, 사슬을 물어 끊을 수도 없었던 작가라는 이름의 숙명을 죽는 날까지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던 작가의 혈투가 세기의 명작을 탄생시켰으리라. 박경리문학관은 박경리 선생의 삶처럼 소박하고 정갈하다. 토지를 연재할 당시의 옛 신문과 잡지들을 볼 수 있고, 원고지에 쓴 자필 원고와 유물들이 있다. 세월이 켜켜이 묻어있는 흑백사진과 생전 방송 영상을 보니 더 많이 그립다. 전시관 내부는 10~20분 정도 여유롭게 둘러보면 좋을 듯하다. 지리산이 낳고 섬진강이 기른 땅 평사리에서 나와 좀 더 하동을 둘러보고 싶다면, 추천할 곳이 너무 많다. ‘지리산이 낳고 섬진강이 기른 땅’이라 불리는 하동이니 어딜 간들 아름답지 않겠는가. 섬진강은 하동의 물결이자 숨결이다. 하동은 안개가 많고 습한 기후로 화개·악양면을 중심으로 야생차 밭이 잘 조성돼 있다. 1066농가가 720㏊의 녹차 밭을 일구며 살아간다. 2018년에는 세계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되었다. 하동 녹차를 즐기려면, 국내 최초로 차 재배를 시작했다고 전해지는 쌍계사 차나무 시배지로 떠나보자. 통일신라시대 때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가져온 차나무 종자를 처음 심었다는 이곳은 지금도 드넓은 야생 차나무 밭이 12㎞ 길이로 이어져 장관을 이룬다. 섬진강과 화개천 인근에 자리한 다원으로 향하면 차의 제조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그중 매암제다원은 일제강점기의 관사를 개조한 체험형 차 박물관을 갖춘 곳이다. 제다 체험, 차 문화사 강좌 등 각종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색다른 재미를 느껴보자. 또 소정의 이용료만 내면 마음껏 차를 내려 마실 수 있는 매암다방도 운영한다. 섬진강 맑은 물이 빚어낸 모래 속 재첩도 하동의 대표 명물이다. ‘거랭이’라는 손틀 도구로 채취하는 전통 방식의 섬진강 재첩 잡이가 아직도 전해진다. 재첩국, 재첩회무침, 재첩 된장찌개, 재첩 수제비 중에 하나는 꼭 먹어보자. 화개장터 역시 빼놓을 수 없는 하동의 볼거리다. 김동리의 소설 ‘역마’의 배경이 된 곳으로도 유명한 화개장터는 영호남의 접경에 위치해 남해안의 수산물과 소금, 비옥한 호암평야의 곡물, 지리산의 산채와 목기류들의 집산지다. 한동안 쇠락을 걸었던 화개장터는 1997년부터 4년에 걸쳐 복원돼 2001년 9월 상설 관광형 시장으로 개장했다. 최근에는 ‘뉴트로’ 열풍에 힘입어 젊은 관광객들도 많이 찾는다. 지리산 산나물과 다양한 차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고, 시골 인심이 넉넉한 밥집도 많다. 경남 하동군 섬진강을 따라가는 박경리 토지길 1코스는 복잡한 마음을 비우고 천천히 사색하며 걷기 좋다. 약 11㎞에 이르는 길로 마을과 마을 사이를 걷는 시골길과 넓은 들판 사이를 걷는 평지로 이뤄져 있어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 길의 초입에 자리한 최참판댁은 소설 ‘토지’ 속 배경으로 영화 드라마 촬영 세트장으로 만들어져 천천히 둘러보기 좋다. 그 옆에 박경리문학관에선 작가의 담담한 삶을 느낄 수 있다. 길의 중간쯤에는 최참판댁의 실제 모델이었던 조씨고가가 자리한다. 싱그러운 숲, 취간림을 지나 동정호로 향하는 평사리 들판을 따라 걷다보면 절로 마음이 편안해진다. . 코스 : 최참판댁입구~최참판댁~조씨고가~취간림~평사리들판~부부송~동정호~악양루 . 거리 : 11km . 소요시간 : 3시간 . 난이도 : 보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