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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업열전 [2020/07] 민족기업열전 - 동화약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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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最古)의 항일기업, 동화약품


창업주부터 후대 경영인까지 독립운동가 3명 배출 

애국애족 정신으로 제약보국의 한길 걷다


글  |  편집부     사진 제공  |  동화약품


동화약품은 대한민국에서 아주 특별한 두 가지를 상징한다. 첫 번째는 1897년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 제약기업이다. 동화약품이 탄생하면서 국내 제약 산업이 시작됐다. 두 번째는 창업주 민강 선생을 포함한 3명의 CEO가 독립운동가로 활약한 민족기업이다. 역대 CEO들은 활명수 판매수익을 독립운동자금으로 조달했고, 한국과 상해 임시정부 사이에서 비밀 연락망 역할도 했다. 목숨 건 독립운동으로 숱한 고초를 겪었지만, 동화약품은 나라사랑 정신을 버팀목 삼아 123년 역사를 자랑하는 최고(最古) 항일기업으로 우뚝 섰다. 



이름부터 남다르다. ‘동화’는 ‘화합하고 합심해야 민족이 살 수 있다’는 의미로 지었다. 동화약품을 상징하는 ‘부채표’도 뜻이 깊다. 종이와 대나무가 합쳐져 바람을 일으키듯,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에 바람 역할을 하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창업이념은 ‘제약보국(製藥保國)’이며, 100년이 넘도록 ‘국민 소화제’로 군림해온 ‘활명수’ 역시 ‘생명을 살리는 물’이다. 창립부터 시작된 모든 경영 활동이 ‘애국애족(愛國愛族)’으로 향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동화약품은 국내 최초의 등록상품인 ‘활명수’를 비롯해 최초의 등록상표 ‘부채표’, 국내 최초의 제조회사 및 제약회사까지 4개 부문에서 기네스북에 올라 있으며, 국내 최장수 상장 기업으로서 최고(最古) 기록만 5개를 가진 유서 깊은 기업이다. 무엇보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CEO들이 제약보국을 실천한 백년민족기업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활명수 판매수익으로 독립자금 조달

동화약방(동화약품의 전신)은 1897년 우리나라 첫 제약기업으로 설립됐다. 궁중선전관 출신 노산 민병호 선생(창업주 민강 선생의 부친)이 궁중 비방에 서양 양약 비법을 더해 개발한 ‘활명수’는 한국 최초의 신약이었다. 당시엔 급체, 토사곽란으로 목숨을 잃는 이들이 많았는데, 활명수(活命水)는 이름에 걸맞게 생명을 살리는 ‘기적의 명약’으로 불리며 만병통치약 대접을 받았다. 한국의 제약 산업을 태동시킨 원조인 셈이다. 

동화약방은 ‘제약(製藥)’을 넘어 ‘보국(保國)’에 매진했다. 창업주 민강 선생은 1909년경 비밀결사대인 ‘대동청년당’을 조직해 한성임시정부 수립과 국민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이로 인해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고 동화약품은 크게 위축되었다. 일제는 검사·실험이라는 명목 하에 약을 마음대로 빼앗아가며 탄압했다. 하지만 민강 선생은 풍전등화와 같은 조국을 위해 더 세게 부채질을 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고 같은 해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서울 순화동 동화약방 건물에 임시정부의 비밀 연락사무소였던 ‘연통부’를 설치했다. 민강 선생은 국내외 연락을 담당하고 정보를 수집했으며, 활명수를 판매한 금액으로 독립자금을 조달해 임정에 전달하는 행정책임자로 활약했다. 1936년 8월 9일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손기정 선수가 금메달을 따자, 동화약품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축하 광고를 일간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민강 선생은 소의학교(현 동성중·고교)와 조선약학교(현 서울대 약대)를 설립하는 등 민족교육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수차례 이어진 옥고로 1931년 48세에 순국했다. 대한민국 건국 후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국립현충원에 안장되었다.


조국독립과 이웃사랑에 헌신한 백년민족기업 

1937년 민씨 일가는 동화약방을 민족기업가이자 독립운동가인 보당(保堂) 윤창식 선생에게 넘겼다. 제3대 사장으로 취임한 윤창식 선생은 창업주의 뜻을 이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탰다. 그는 애국심과 높은 인품, 경영인이 지녀야 할 능력까지 갖춰 당대에 명망이 높았다. 1915년 서울의 지식 청년 130여 명과 함께 경제자립을 통한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조선산직장려계를 결성했으며, 그로 인해 1917년 일본 경찰에 발각되어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빈민 계층을 도왔던 보린회 사업에 깊이 참여해 1920년부터 1959년까지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며, 민족운동 단체인 신간회에도 많은 자금을 지원하는 등 나라의 독립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헌신을 아끼지 않았다. 

윤창식 사장은 1937년 사명을 ‘동화약품공업주식회사’로 개명하고 현대적 기업으로 발전시켰다. 1938년에는 만주국 안동시에 동화약품 지점을 개설해 해외진출의 발판을 마련했고, 덕분에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하지만 해방 후 한반도 북부와 만주국 시장을 잃고, 이어 6·25전쟁으로 순화동 공장이 완전 파괴돼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고난 속에서도 민족기업의 자부심은 지켜나갔다. 1945년 해방 후에는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했으며, 서울시의원과 숙명여자중고등학교 재단이사장 등 여러 직책을 맡아 교육에도 힘썼다.

1973년 윤창식 사장의 대를 이어 동화약품 7대 사장에 취임한 윤광열 명예회장 역시 독립운동가 출신이다. 윤광열 회장은 유년시절부터 선친의 독립운동 활동을 지켜보면서 애국·구국정신을 자연스럽게 배우고 실천하게 되었다. 보성전문학교 재학 중 1944년 일제에 의해 학도병으로 강제 징집되었지만, 1945년 일본이 연합군에 패망하자 탈영하여 상해에 있는 정부군을 찾아가 주호지대 광복군으로 편입돼 5중대 중대장직을 맡았다.

윤 회장은 1967년 ‘까스활명수’를 발매해 국내 액제소화제 시장에 새 바람을 일으켰으며, 1973년에는 ‘약을 구하지 못해 고통받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신념으로 국내 유일의 희귀약품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이처럼, 일업백년(一業百年)을 이어온 동화약품은 조선 후기에 창업해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과 분단, 급격한 산업화 등 격동의 현대사를 온몸으로 견디며 123년 민족기업의 역사를 써내려왔다. 민족과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동화약품은 “좋은 약이 아니면 만들지 마라. 동화는 동화식구 전체의 것이요, 또 이 겨레의 것이니 온 식구가 정성을 다해 다 같이 잘살 수 있는 기업으로 이끌라”는 윤창식 사장의 경영철학을 오늘날까지 계승하며 백년민족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신약개발·사업다각화로 새로운 100년 준비

현재 동화약품은 신약 개발과 사업 다각화를 통해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동화약품은 지난 4월 21일 코로나19 치료제 개발을 위해 신약후보물질 DW2008에 대한 임상 2상 시험을 신청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DW2008은 원래 천식치료제로 개발 중이던 약물로, 임상 1상에서 폐 기능 강화와 가래 배출 효과가 확인된 바 있다. 동화약품이 의뢰해 한국파스퇴르연구소가 수행한 코로나19 항바이러스 활성스크리닝에서 DW2008은 항바이러스 효과가 탁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동화약품 측은 “한국파스퇴르연구소의 연구 결과, DW2008은 코로나19 치료제로 연구 중인 대조약물 렘데시비르의 3.8배, 클로로퀸의 1.7배, 칼레트라의 4.7배 높은 항바이러스 활성을 보였다”고 말했다. 

아울러 2017년 ‘활명’이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론칭하며 사업 다각화에도 나서고 있다. 활명은 활명수 성분 가운데 5가지 생약성분을 활용해 제조했다. 올인원 제품인 스킨엘릭서, 크림, 세럼, 마스크팩 등 다양한 제품군이 나와 있다. 미국에서 먼저 출시해 가능성을 확인했으며, 지난해 글로벌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와 독점 계약을 맺은 뒤 국내에 선보이고 있다. 브랜드 홍보를 위해 경복궁 인근에 활명의 체험형 매장인 플래그십 스토어를 설치하기도 했다.    

지난해 3월 취임한 박기환 대표이사는 지속성장이 가능한 동화약품을 위해 신약개발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이마세 연구소장, 이대희 개발 전무 등 연구개발(R&D) 전문가들이 새롭게 합류했으며, ‘내실 있는 성장’을 위해 내부 시스템과 프로세스를 정비하고 있다. 다양한 영역의 신제품 개발, 신약 파이프라인 강화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 중이다. 


‘생명을 살리는 물’ 정신 이어가며 나눔 실천

한편, 동화약품은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합해 맑은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을 가진 기업의 상징 ‘부채표’ 정신을 계승해 가정과 사회, 세상에 건강한 바람을 불러일으키고자  ‘맑은 바람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특히 민중들의 ‘생명을 살리는 물’ 역할을 해온 활명수의 가치와 철학을 잇고자, 지난 2013년부터 전 세계 물 부족 국가에 깨끗한 물을 전달해온 ‘생명을 살리는 물’ 캠페인은 동화약품을 대표하는 사회공헌 활동이다.  

매년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 콘텐츠, 브랜드 등과 협업해 ‘활명수 기념판’을 제작하고 판매수익금은 물 부족 국가의 식수 정화, 우물 설치, 위생교육 사업 등을 지원하는 활동에 기부하고 있다. 그동안 카카오프렌즈 캐릭터, 힙합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 패션브랜드 게스 등과의 파격적인 컬래버레이션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지난해에는 에코패션 브랜드 플리츠마마(PLEATS MAMA)와의 협업으로 뜨거운 호응을 얻은 바 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123년 동안 국민들의 건강을 지켜온 활명수와 지속가능한 패션으로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플리츠마마의 만남은 ‘가치소비’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와 더욱 소통하고 공감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며 “앞으로도 동화약품은 활명수의 ‘생명을 살리는 물’ 정신을 이어 나가기 위한 나눔 실천을 지속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123년의 역사를 가진 최고(最古) 항일기업 동화약품이 150년 200년이 지나도 변함없이 국민화합과 제약보국의 한길을 걸어가길, ‘맑은 바람’이 지구촌 구석구석 생명을 살리고 건강한 세상을 만들어가길 바라본다.  


동화약품 옛 본사는 항일의거 유적지

동화약품은 2014년 5월 12일 지금의 서울특별시 중구 후암로 98(남대문로5가 631)로 옮기기 전까지 117년간 서울시 중구 순화동에 있었다. 동화약품의 창립지(서울시 중구 서소문로9길 14)는 독립운동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이곳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와의 연락을 담당했던 ‘서울 연통부’를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다.  

서울 연통부는 3·1 운동 직후에 체계화된 독립운동을 위해 수립된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국내와의 연락을 위해 만들어진 지하 비밀단체다. 서울 연통부의 당시 행정 책임자는 동화약품 창업주인 민강 선생이 맡았다. 민강 선생은 동화약방 내에 연통부를 설치하고 각종 정보와 군자금을 임시정부에 전달했다. 서울시는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해 이 터를 항일의거 유적지로 선정하고 ‘서울 연통부 기념비’를 건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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