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기업열전 [2020/08] 민족기업열전 - 교보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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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기업’의 대명사, 교보생명
국민교육 진흥·민족자본 형성 위해 생명보험 한길
대를 이은 정도경영으로 선한 영향력 전파
글 | 편집부 사진 제공 | 교보생명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광화문 교보문고 입구에 걸린 이 글귀는 어느 지식인이 쓴 명문장이 아니라, 초등학교에도 다니지 못했지만 평생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던 교보생명 창업주가 역경과 고난 속에서 길어 올린 희망의 메시지다. 누구보다 책을 사랑했던 고(故) 신용호 명예회장은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태어나 지독한 가난 속에 살았지만, 젊은 시절 이육사 등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국가를 교육으로 재건하고자 교육보험 사업에 뛰어들었다.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을 창립이념으로 60년 넘는 세월 동안 생명보험 한길을 걸어왔으며, 대를 이어 정직과 성실을 원칙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해 온 교보생명은 분명 우리 사회의 큰 자부심이다. 일제강점기 암울한 시대, 6남 중 5남으로 태어난 신용호 명예회장은 집안이 어려워 초등학교도 다니지 못했다. 하지만 학구열은 대단했다. 중학교, 고등학교에 다니는 선배들에게 책을 빌려 독학했고, 짬날 때마다 서점에서 쪼그려 앉아 책을 읽었다. 책 속에 펼쳐진 세상은 암담한 현실을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꿈과 용기를 가르쳐주었다. 소년은 책을 디딤돌 담아 당당하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시대도 가난했지만, 독립운동가 집안은 더 참담했다. 그럼에도 꼿꼿하고 당당했다. 부친 신예범 선생은 일제강점기에 야학을 열어 젊은이들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웠고, 일본인 지주의 농민수탈에 항의하는 소작쟁의를 주동하다 두 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이후에는 요시찰 인물로 분류돼 일본 경찰에 쫓기다 생을 마감했다. 형 역시 아버지의 길을 따랐다. 신용국 선생은 일본 소작인 응징과 항일 만세운동을 주도한 혐의로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스무 살 때 3·1만세운동에 뛰어든 후 호남 지방의 항일운동을 이끌다 여러 차례 투옥되었고, 출옥 후에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객지로 떠돌았다. 이러한 공훈을 인정받아 독립유공자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신 명예회장도 독립운동가의 대를 이었다. 중국 베이징으로 건너가 ‘북일공사’를 설립, 곡물 유통업으로 큰 성공을 거두자 수익금으로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했다. 당시 이육사 등 많은 독립운동가들과 교류하면서 얻은 깨달음은 훗날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 형성’이라는 교보생명 창립이념으로 이어졌다. 세계 최초 교육보험으로 300만 명 학자금 지원 “앞으로 교육이 지금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올 것이다.” 교육과 보험을 연계한 교육보험을 생각해냈다. 세계 보험사상 최초였다. “아버지가 담배 한 갑을 줄이면 자녀를 대학까지 교육시킬 수 있다. 나는 비록 못 배웠지만 우리 아들딸에게는 더 좋은 세상을 위해 더 나은 교육을 시킬 필요가 있다.” 평생 가슴속에 사무쳤던 못 배운 한과 서러움을 자식들에겐 결코 물려주고 싶지 않았던 아버지의 간절함은 세상을 움직였다. 그가 내놓은 교육보험은 전후 한국사회의 뜨거운 교육열에 힘입어 급성장했고, 300만 명의 학생이 학자금을 받아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국제적으로도 크게 인정을 받아 세계보험총회에서 대상을 받았고, 신 명예회장은 미국 알라바바 대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이후 건강보험의 효시인 암보험을 처음으로 출시해 역시 대성공을 거두었다. 가난한 독립운동가의 아들로 태어나 무일푼, 맨주먹으로 시작해 천문학적인 돈을 모은 신 명예회장은 1980년 종로 1번가 1번지에 현대식 건물을 세웠다. 그리고 ‘교보생명’으로 상호를 바꾸었다. 교보라는 이름은 ‘교육보험’에서 두 글자를 따서 만들었다. 그는 교보빌딩을 세우면서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금싸라기 같은 지하 2700여 평의 공간에 서점을 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돈도 안 되는 서점을 한다니 주변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그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끼니조차 잇기 힘들 만큼 가난하고 어려웠던 시절에 ‘책 속에 길이 있다’고 항상 말씀하셨죠. 저는 그 가르침을 늘 마음에 새기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듭니다. 적자가 나더라도 꼭 이 서점을 운영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광화문 교보문고가 탄생했다. 단일면적으로 세계 최대 규모로, 서가 길이가 24.7km에 달하는 이곳은 연간 5,000만 명이 방문하는 대표적 문화명소로 사랑받고 있다. 국내 최대 상속세 1,830억 원 납부하며 솔선수범 일생을 민족교육에 헌신한 신 명예회장은 매순간 정직과 성실을 나침반 삼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살았다. 낡은 점퍼를 즐겨 입는 등 자신에겐 몹시 인색했으며 사생활이 깨끗하고 공사 구분이 엄격했다. 회사의 공금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고 늘 절약하며 살았다. 신 명예회장의 장남이자 현재 교보생명을 이끌고 있는 신창재 회장 역시 부친의 정도(正道)경영 철학을 바르게 이어오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은 부친이 작고한 2003년, 교보생명 지분 40%가량을 상속받으면서 국내 최대 규모의 상속세인 1830억 원을 납부해 화제가 되었다. 당시 최종현 전 SK 회장의 장남인 최태원 회장이 730억 원,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 유족이 300억 원 등의 상속세를 낸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금액이었다. 신 회장은 경기고,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울대병원 교수로 재임하던 중 암 투병을 하던 부친의 권유로 교보생명에 입사했고, 경영수업을 받은 뒤 2000년 회장에 취임했다. 보험업계 유일한 오너 경영자로 21년간 CEO 자리를 지키며 지속가능한 경영을 추구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금융회사 최초 ‘명예의 전당’에 헌정 교보생명은 고객중심, 정직과 성실, 도전과 창의라는 핵심가치를 바탕으로 생명보험의 본질에 충실한 원칙경영을 지속하고 있다. 외형 경쟁보다 내실 성장에 중점을 두고 장기적 관점에서 고객 중심 경영전략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다. 그 결과 2000년부터 2004년까지 5년 연속으로 고객만족경영대상을 수상하며 금융회사 최초로 ‘명예의 전당’에 헌정됐다. 또한 국내 생명보험사로는 처음으로 2009년 아시아 보험산업대상(Asia Insurance Industry Awards)에서 ‘올해의 아시아 최고 생명보험사(Life Insurance Company of the Year)’상을 수상한 데 이어 2012년에는 신창재 회장이 ‘올해의 최고 보험경영자(Personality of the Year)’에 선정되기도 했다. 교보생명은 고객만족뿐 아니라 건전성, 이익률 등 경영효율 향상에도 힘쓰고 있다. 보험사의 대표적인 재무건전성 지표인 지급여력비율(RBC)은 2019년 말 기준 338.9%로 전년 대비 27%포인트 이상 개선됐다. 자기자본이익률(ROE)도 2004년 이후 국내 대형 생보사 중 줄곧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안정적인 이익 창출과 재무건전성 향상에 힘입어 교보생명은 2015년 생보업계 최초로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로부터 ‘A1’ 신용등급을 획득했다. 2013년에는 세계 3대 신용평가사 피치(Fitch Ratings)로부터 국내 생보사로는 처음으로 ‘A+’ 신용등급을 받으며 재무건전성과 리스크관리 역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 국내 3대 신용평가사인 나이스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한국신용평가의 보험금 지급능력평가에서도 최고 등급인 ‘AAA’를 획득한 바 있다. 부자(父子)가 나란히 문화훈장 받아 교보생명은 생명보험업의 특성에 맞는 차별화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며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고 있다. 대표적 활동으로는 사단법인 사랑의달팽이와 손잡고 소외계층 청소년의 인공달팽이관 수술과 언어치료를 돕는 ‘와우 다솜이 소리빛 지원사업’을 들 수 있다. 교보생명은 다솜이 소리빛 지원사업을 통해 청각장애 청소년들이 청력을 회복하고 건강한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검사비와 수술비, 언어치료비 등을 지원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청소년 육성을 위한 디지털 기반 사회적 기업 발굴에도 힘쓰고 있다. 교보생명은 2018년부터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 재단법인 홍합밸리와 함께 ‘임팩트업’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임팩트업은 디지털 기반의 지속가능한 사회적 임팩트를 창출하는 기업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이다. 2018년에는 교육‧보건‧금융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스타트업을 발굴‧육성했으며, 2019년에는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보통신기술(ICT) 기반 교육서비스를 핵심사업으로 하는 스타트업을 선발해 성장 기회를 제공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있다. 이외에 36년째 한국 스포츠를 이끌어갈 체육 유망주를 키우고 있다. 특히 신 회장은 교보문고와 ‘광화문 글판’ 등으로 문학 대중화와 독서문화 저변 확대에 기여했으며, 지난 25년간 대산문화재단을 이끌며 한국문학 발전과 세계화에 힘써 왔다. 그러한 우직한 노력이 한강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가 맨부커상을 수상하는 쾌거로 이어지기도 했다. 신 회장은 이러한 공을 인정받아 2018년 정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부친인 신 명예회장이 1996년 금관문화훈장을 수훈한 지 22년 만의 쾌거다. 이보다 아름다운 부전자전(父傳子傳)이 있을까. 교육과 문화로 대한민국 발전에 큰 공을 세운 민족기업 교보생명이 앞으로 100년 기업을 향해 꽃길만 걷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