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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기업열전 [2020/09] 민족기업 열전 - 노블레스 오블리주 대표기업, GS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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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년 동안 독립운동 정신 이어온 명문가 

상생·나눔으로 나라사랑 실천한 ‘아름다운 이타주의자들’


글 | 편집부  사진 제공 | GS그룹


GS그룹의 창업주 효주(曉州) 허만정 선생은 경남 진주의 거부(巨富)였다. 단순한 만석꾼이 아니라, 조국독립을 위해 온힘으로 헌신한 진정한 민족자본가였다. 영남 대지주들을 모아 ‘백산상회’를 설립해 상해임시정부 독립자금을 조달했으며, 사재를 출연해 진주여고를 설립했다. 백산상회에서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다니 가히 놀랍다. 곤궁한 소작농들에게 쌀을 나눠주었고, 삼성과 LG의 창업자금을 도와 전후(戰後) 경제재건에 초석을 세웠다.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신념으로 더불어 삶을 실천해온 효주 선생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백 년 세월이 지나 지금까지도 GS가(家) 후손들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   



독립운동자금 조달하고 민족교육에 힘써 


1914년 부산에 ‘백산상회’라는 상점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곡물·면직물·해산물을 판매했지만, 평범한 상회는 아니었다. 자본금을 나눠 출자하는 주식회사 형태였는데, 주주들은 영남 지방의 대지주였다. 회사 설립에는 백산 안희제를 비롯해 허만정, 이유석, 추한식, 최준 등 32명이 참여했다. 백산상회는 표면상으로는 쌀과 옷감, 생선 등을 취급 판매하는 점포였지만, 실상은 상해임시정부의 독립운동자금 조달본부였다. 


백산상회는 영업을 명분으로 국내의 대구, 서울, 원산에 연락소를 두는 한편 만주의 안동(오늘날의 단동), 봉천(오늘날의 심양) 등지에 연락사무소를 설치해 만주·상해에서 활동하는 독립운동가들을 도왔다. 가게의 이익뿐 아니라 원금까지도 독립군에게 지원했기에 백산상회의 경영은 늘 적자였다. 그럼에도 1927년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문을 닫을 때까지 주어진 임무를 다했다. 백산상회에서 독립운동 전체 자금의 60%를 지원했다고 하니 가히 놀랍다. 


GS그룹의 창업주 허만정 선생은 십대의 나이에 백산상회에 참여하며 민족자본가의 길을 걸었다. 스물두 살 때엔 3·1만세운동을 서울에서 경험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먼저 교육이 바로 서야 한다는 신념을 갖게 된다. 그는 아버지를 찾아갔다. 


“이번에 상경했을 때 서울에서 3·1독립선언이 있었습니다. 곧이어 전국 방방곡곡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져 수많은 동포들이 다치거나 학살되었고 더러는 감옥에 끌려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일본이 동양평화를 가장하고 한국을 병합해 야욕을 채우려는 것은 용서할 수 없을뿐더러 우리 민족 자신도 자기의 권리를 보존하지 못하고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국토를 수호하지 못하며 자유를 상실함은 천추의 치욕이니 이 치욕을 씻지 못하고서는 지하에 가도 조상의 넋을 대할 면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나라의 독립을 회복하고 이 민족의 자유를 향유하기에 있는 힘을 다해야 하겠는데 먼저 이 나라에서 무지를 추방해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직 교육이라는 한 가지 방법밖에 없는데 우리 진주에는 아직 고등보통학교 하나도 없는 실정이어서 유감입니다. 제가 비록 미거하오나 학교 설립에 힘써보려고 합니다.”

아들의 진심어린 애국심에 아버지 역시 흔쾌히 승낙했다.   


“네 말이 옳다. 우리는 독립해야 하며 항상 이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므로 학교 설립이 필요하다. 우리 집안의 재력이 허락만 한다면 단독으로라도 설립하겠지만 그리 되지 못하는 것이 유감이다. 네 소유 토지 중 함안에 있는 700석지기를 제공하기로 하고 친구들과 상의해서 실현되도록 힘써 보아라.”


부친인 허준 선생은 벼슬을 버리고 낙향한 후 인근 농부들에게 땅 200평씩을 공짜로 나눠준 인물이며, 삼성·LG·효성의 창업주들이 모두 거쳐 간 진주시 지수면 지수보통학교 역시 허준 선생이 기증해 설립됐다. 가난한 이웃을 돕고, 지역사회를 위해 선행을 베푼 만석꾼 부자(父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자연스럽게 대를 이었다. 


아버지로부터 허락을 받은 허만정 선생은 1920년 진주일신고등보통학교 설립을 주도했지만 조선총독부의 방해로 실패하자 1925년 진주여고의 전신인 진주일신여자고등보통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선생의 묘비명에 따르면, 사업이 완성 단계에 이르자 일의 완수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소유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독립을 위한 그의 노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일본 도쿄를 방문해 도쿄 유학생회에 자금을 기탁했으며, 백정들의 신분해방 운동인 ‘형평사운동’에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 후 광복을 맞이하자 당시 사회 각계각층을 대표하는 ‘500명의 국민대회’ 준비위원회 발기인으로 참여, 해방된 조국에서 새 나라를 만드는 데 일조했다. 




‘신뢰와 의리’ 지켜낸 두 가문의 상생협력 


허 씨 가문은 크게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상생 협력을 통해 훗날 큰 성공의 밑거름이 된 사례가 많다. 허만정 창업주가 몸소 실천한 제휴·협력·동업의 행보는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변함없이 우리 사회에 모범이 되고 있다. 


오늘날 GS그룹을 있게 한 1946년 구인회 창업주와의 동업 제안이 대표적이다. 이 제안으로 57여 년간 LG의 양축을 이룬 동업 경영 체제가 시작됐으며, 이는 한국 대표 기업을 일구는 단초가 됐다. 허 씨 가문의 투자금을 기반으로 구인회상회는 부산 흥아화학에서 생산하는 화장품인 아마쓰크림의 판매대리점 사업을 시작했고, 1947년에는 락희화학공업사 설립으로 이어져 화장품을 직접 생산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허만정 창업주의 셋째 아들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은 LG그룹의 모태인 LG화학 경영에도 관여하며 오늘날 GS가 있게 한 주역이 됐다. 락희화학공업 초기 시절 화장품을 팔기 위해 검정 고무신을 신고 전국 방방곡곡 거래처를 누비고 다녔으며, 1950년대 중반 국내에서 최초로 치약을 생산하자 손수레에 치약을 가득 싣고 시장 소매상들을 찾아다녔다.

그는 1953년 락희산업(현 LG상사), 1958년 금성사(현 LG전자) 설립 등에도 깊이 관여했다. 1957년 국내 최초로 라디오를 생산하고 1966년 흑백TV를 만들었을 때 판매 일선에서 뛰었고, 대기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기획조정실이 LG에 처음 생겼을 때 초대 기조실장을 맡아 활약했다.


단단한 동업자 정신을 보였던 두 가문은 2000년대 들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단행했다. 2004년 LG그룹에서 분리되어 GS그룹이 공식 출범한 것. 양가의 동업은 형제나 친구 간이라 해도 결국 갈라서게 된다는 편견을 뒤집은 사례였다.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끝까지 ‘신뢰와 의리’를 지켜낸 두 가문은 우리 사회에 아름다운 발자취를 남겼다. 

그로부터 15년 후, GS그룹은 또다시 모범적인 행보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GS그룹의 초석을 다진 허창수 초대회장이 임기를 2년 앞둔 지난해 12월, 막냇동생인 허태수 GS홈쇼핑 부회장에게 회장 자리를 물려준 것. 허창수 회장은 허만정 창립주의 3남인 고(故) 허준구 명예회장의 장남이고 허태수 회장은 5남이다.


한 재계 인사는 “2004년 동업 관계인 LG그룹과 잡음 없이 ‘아름다운 이별’을 한 허창수 회장이 이번에는 임기를 2년 가까이 남기고 용퇴하는 ‘아름다운 승계’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의로운 일에 부를 아끼지 않았던 허 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아 크고 작은 기부활동에 소리 없이 참여해온 허창수 명예회장은 2008년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가 선정한 ‘아시아를 대표하는 이타주의자 48인’으로 꼽히기도 했다. 


역사 알리고 이웃과 함께하며 독립운동 정신 계승


GS그룹은 창업주의 독립운동 정신을 이어받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펼치고 있다.  

GS칼텍스는 지난해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윤봉길·한용운·백범 김구·윤동주·안중근 등 독립운동가의 서체를 개발해 무료로 배포, 독립운동가의 숭고한 정신을 전 세계에 알리고 있다.  


GS리테일은 국가보훈처와 함께 전국 1만 3500여 오프라인 플랫폼을 통해 ‘국민이 지킨 역사, 국민이 이끌 나라’를 핵심 테마로 역사 알리기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편의점 GS25, GS수퍼마켓, 랄라블라, GS프레시, 각종 공식 SNS 채널 등 하루 700만 명이 이용하는 GS리테일의 모든 온·오프라인 고객 접점 채널을 총동원하고 있으며, 특히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편의점 GS25는 여성독립운동가 51인의 스티커를 제작해 현재 취급 중인 도시락 전 상품 20종에 부착해 화제를 모았다. 

GS그룹은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피해 지원을 위해서도 힘을 모았다. 


GS칼텍스는 지난 3월 코로나19 예방과 피해 복구를 위해 2억 원의 성금을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했다. 그룹 차원에서 성금 10억 원을 기탁한 것과는 별도 지원이다. GS리테일은 대한적십자사와 약정식을 체결하며 15년째 ‘사랑의 헌혈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임직원들이 헌혈 후 발급받는 헌혈증을 직접 기부해 백혈병 소아암 환아와 혈액이 긴급히 필요한 임직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동참한 임직원만 1만 명을 넘어섰다.


GS건설은 저소득층 가정 공부방 지원사업인 ‘꿈과 희망의 공부방’ 프로젝트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형편이 어려운 저소득층 가정의 어린이들에게 쾌적한 환경의 공부방을 만들어주는 사업이다. 2011년 5월 1호를 시작으로 지난해 말 290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GS홈쇼핑은 경제적 문제 등으로 교육·문화 혜택을 받지 못하는 아동을 대상으로 악기 수업을 진행해 사회적응, 표현력 증진 등과 같은 교육적 효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옛말에 ‘삼대 가는 만석꾼 없다’는 얘기가 있다. 대대손손 부자로 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GS 가문은 아낌없이 부를 나누고, 아름다운 이별과 아름다운 승계를 성공적으로 이끌며 백 년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이 ‘존경받는 만석꾼’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소리 없이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일에 앞장서온 ‘아름다운 이타주의자들’에게 진심어린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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