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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0/10]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라 남산 ‘국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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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 체결된 통감관저에서 조선신궁까지  

남산 자락에 통한의 역사가 서려


글 | 편집부  사진 | 편집부·한국관광공사


  서울 남산, 깊고 푸른 숲길을 걷노라면 고요한 행복이 가슴속을 물들인다. 오솔길도 어여쁘고 길마다 인사하는 나무와 풀꽃도 그리 사랑스러울 수가 없다. 무겁고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을 때마다 즐겨 찾는 내 마음의 아지트다. 그런데 얼마 전 알게 됐다. 그 푸른 남산 자락에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의 통한이 서려 있음을…. 가을이 오는 문턱에서 ‘남산 국치길’을 찾아 떠났다. 



서울 도심 남쪽에 솟은 남산(南山)은 서울시민들의 오랜 휴식처다. 깊고 푸른 숲길을 걷는 일 이외에도 남산도서관에 들러 책을 읽고 N서울타워에 올라 서울 풍경을 내려다보고 국립극장에 들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안중근기념관, 백범광장 등 독립운동가들을 기리는 시설물도 있어 역사적 자긍심이 샘솟는다. 명동역, 남대문시장 쪽으로 내려오면 풍요로운 먹거리 세상이 우리를 반긴다. 오감을 만족시키는 멋진 여행 코스다. 


그런데 이토록 아름답고 푸른 산에 ‘국치길’이 있음을 우리는 잘 모른다. 2019년 8월 29일, 일제에 의해 강제합방조약이 공포된 국치일(國恥日)에 서울시는 남산 예장동 자락 약 1.7km의 국치길 조성을 완료했다.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며 암흑의 시대를 되돌아보는, 이른바 ‘다크투어리즘’이다.


국치길은 을사늑약이 체결된 통감관저 터에서 시작해 일제의 통치기구였던 한국통감부 터(왜성대 조선총독부 터)와 노기신사 터, 경성신사 터를 거쳐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조선신궁 터로 이어진다. 


국치길 보도블록 곳곳에는 역사를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ㄱ’자 모양의 로고를 설치했으며, 역사의 현장에는 ‘ㄱ’자 모양의 안내판을 세웠다.   


 


‘노란 나비’ 이정표를 따라 경술국치 현장으로


지하철 4호선 명동역 1번 출구로 나오면 바닥에 노란 나비가 있다. 나비 이정표를 따라 걸으면 서울유스호스텔 입구가 보인다. 지나가는 길에 대한적십자사 본사와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있다. 서울유스호스텔 입구를 지나 조금만 올라가면 ㄱ자 모양 녹색 안내판이 보인다. ‘국치 터/한국통감관저 터’라 씌어있다. 


이곳에 1906년 통감관저가 설치됐으며, 1910~1939년까지 조선총독관저로 쓰였다. 특히 1910년 8월 22일 이곳에서 3대 통감 데라우치 마사다케와 대한제국 총리대신 이완용이 강제합방조약을 체결했다. 바로 경술국치(庚戌國恥)의 현장이다. 지금은 ‘일본군 위안부 기억의 터’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는 ‘거꾸로 세운 동상’이라고 이름 붙인 표석이 있다. 을사늑약 체결에 앞장서 남작 작위까지 받은 하야시 곤스케의 동상에 쓰였던 잔해로 만들었는데, 거꾸로 세워 치욕스러움을 기렸다.  


다음 코스로 가려면, 다시 대한적십자사 쪽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한적십자사 길 건너편 공사장은 서울애니메이션센터 자리인데, 재건축 과정에서 통감부가 위치했던 흔적이 발굴됐다. 현재 문화재 발굴조사 중이다. 공사장 안에 통감부 터가 있지만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통감부는 1906년부터 1910년 국권 강탈 때까지 일제가 한국 황실의 안녕과 평화를 유지한다는 명분으로 서울에 설치한 통치기구로, 1910년 한일합방 이후 폐지되고 조선총독부가 설치됐다. 총독부는 1926년 경복궁 앞에 신청사가 신축되면서 옮겨졌고, 기존 건물은 은사기념과학관으로 쓰이다가 1950년 한국전쟁 때 불타버렸다. 


‘삼순이계단’은 조선신궁으로 오르던 길


  공사장 바로 옆에 노란색 건물이 보인다. 리라유치원과 리라초등학교다. 초등학교 담벼락을 따라가면 사회복지법인 ‘남산원’이 나오는데, 그 안에 노기신사 터가 있다. 노기신사는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을 지휘한 노기 마레스키를 봉안한 곳이다. 일제는 그를 영웅이자 군신(軍神)으로 모셨다. 신사에 석물을 봉납했다는 일본인들의 이름이 새겨진 석조와 석등 등이 남아있다.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안내판이 몹시 낡았다. 


리라초교 맞은편에는 숭의여자대학교가 있고, 교정 안에 경성신사 터가 있다. 경성신사는 침략전쟁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했던 일본 신토의 본산 이세 신궁에서 일부 신체(神體)를 가져와 만들었다. 일본이 조선의 국체를 빼앗고 남산에 대규모로 조선신궁을 건설하기 전까지 경성신사는 조선 거주 일본인들의 종교생활 거점 역할을 했다.


다시 소파로를 따라 15분쯤 올라가면 서울시교육청 교육연구정보원 옆으로 넓은 돌계단이 나타난다. 이 계단은 인기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남녀 주인공이 키스를 한 장소로, 일명 ‘삼순이계단’이라 불린다. 그러나 사실 이 계단은 일제 때 조선신궁으로 오르던 통한의 장소다.


옛 남산식물원 자리에 있던 조선신궁은 일제가 한국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서울의 남산에 세운, 가장 높은 사격(社格)을 지닌 신사다. 1918년 조성해 1925년 완공됐다. 조선총독부의 국가의례를 집전하고, 수많은 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한 피눈물의 현장이다. 역사책에서 등장하는 “조선인에게 일 년에 두 차례씩 신사참배를 강요”하던 곳이 바로 여기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3·1운동 100주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세워진 ‘서울 위안부 기림비’가 서있다. 한국·중국·필리핀 세 소녀를 김학순 할머니가 바라보고 있는 형상이다. 세 소녀는 과거의 기억과 아픔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의 응시를 통해 현재로 이어지고 있다. 그들 앞에 바로 조선신궁 터가 있다. 일제가 훼손한 한양도성을 복원하는 공사 가림막 앞에 조선신궁 터임을 알리는 국치길 안내판이 있다. 일제에 무참히 짓밟힌 통한의 역사 앞에서 가슴이 아려온다. 


10월 26일, 안중근 의사의 거사를 기억하며


  그럼에도 우리의 선조들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켜냈다. 치욕의 35년 역사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승리와 평화의 역사를 새겼다. 조선신궁을 바라보며 서 있는 안중근 의사의 늠름한 동상에서 불굴의 의지가 넘쳐난다. 동상 옆에는 안중근의사기념관이 위풍당당한 기개를 뽐내고 있다. 우리나라를 지켜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치욕의 현장에서 상처 난 마음이 비로소 평온해졌다. 


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울려 퍼진 세 발의 총성,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그 자리에 서른한 살의 청년 안중근이 있었다. 그는 거사를 치른 후 러시아 말로 목청껏 외쳤다.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이 말은 ‘대한민국 만세!’란 뜻이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의거 111주년이다.   


계단 아래 백범광장에서 김구 선생과 이시영 선생 동상에 인사를 드린 후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내려왔다. 무성하게 자란 수크령이 가을바람 따라 춤을 추고 있었다. 고불고불 길 너머엔 무엇이 있을까. 설레는 마음으로 돌고 돌아 나오니 한양도성과 그 너머에 서울 빌딩숲이 아련하게 보였다. 


남산공원을 내려오면 회현동이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인 거주지역이 조성된 동네로 아직도 일본식으로 지은 근대 가옥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남대문시장에 들러 갈치조림으로 허기를 채우고 다시 남산을 바라본다. 치욕의 역사를 간직한 그곳을 잊지 말고 영원히 기억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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