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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0/11] 강우규 의사를 아시나요? 근현대사 백 년을 거슬러가는 ‘시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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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에 수천 개의 폭탄을 품고 살아온 생이여!     

서울역에서 독립투사들을 기억하다


글 | 편집부  사진 | 문화서울역284·서울로7017·편집부


  1919년 9월 2일, 경성역 앞에서 환갑을 훌쩍 넘긴 노인이 일본인 총독 일행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일본 경찰은 나이 지긋한 그를 범인이라 생각조차 못했다. 보름 뒤에야 붙잡힌 노인은 이듬해 사형에 처해졌다. 그로부터 백 년이 흘렀다. 서울역 앞에는 여전히 결연한 눈빛으로 세상을 응시하는 강우규 의사의 동상이 서 있다. 


멀리 보이는 풍경에 가슴이 아렸다. 강우규 의사 동상 아래 난간에 누군가 걸터앉아 있었고, 주변엔 노숙자들이 띄엄띄엄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담배를 피워대는 사람, 술을 마시는 사람, 찬송가를 부르는 무리도 눈에 띄었다. 동상의 존재를 인식하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천천히 동상 쪽으로 다가갔다. 몹시 혼잡하고 소란한 서울역 광장에, 독야청청 서 있는 선생을 바라보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왼손 주먹을 불끈 쥐고, 오른손에는 수류탄 모양의 폭발물을 들고 있는 모습이 너무 위풍당당하고 결연하여 더 아팠다. 


 


단두대 위에 서니 

斷頭臺上

오히려 봄바람이 이는구나 猶在春風

몸은 있으되 나라가 없으니 有身無國 

어찌 감상이 없겠는가 

豈無感想


1920년 11월 29일 강우규 의사가 서대문형무소 형장에서 순국 직전에 남긴 유언이 동상 단상에 새겨져 있었다. 조국독립을 위해 단 하나뿐인 목숨을 바쳤고, 마지막까지 품위를 잃지 않았던 아름다운 생(生) 앞에서 나는 한없이 부끄러워 눈물을 흘렸다. 


한국 근현대사 100년의 흔적을 찾아서


   강우규 의사 동상 뒤편에는 옛 서울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일제는 서울역을 거쳐 만주와 시베리아, 더 나아가 모스크바와 베를린까지 연결하려는 계획 하에 1922년 6월 공사를 시작해 1925년 9월 준공했다. 일제강점기에 경성역으로 바뀌었다가 1945년 광복 후 서울역이라는 이름을 찾았다. 1950년 6·25전쟁으로 파괴되었다가 1958년 1월 기존 역사 남측에 새마을호 대합실이 증축되었고, 2003년 신(新) 역사가 준공되면서 옛 서울역사는 철도역사의 기능을 상실했다.  


‘사적 제284호’로 지정된 옛 서울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관문이었던 당시 원형을 복원해 2011년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했다. 문화·예술의 창작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서 전시, 공연,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900년 남대문정차장을 시작으로 경성역, 서울역을 거쳐 지금의 문화역서울284가 있기까지의 시간을 따라 백여 년 역사를 만나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치열하고 파란만장했던 근현대사 백 년의 시간여행은 특별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12개의 석재 기둥과 돔으로 구성된 중앙홀은 문화역서울284의 중심공간이다. 중앙홀 외부와 내부의 대형 시계가 상징적이며, 특히 ‘파발마’라는 이름의 외부 시계는 1925년 경성역이 지어질 때 함께 설치되었다. 이 시계는 6·25전쟁 기간의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멈춘 적이 없다고 한다. 


중앙홀은 영화 ‘암살’, ‘밀정’ 등 근대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에서 의열단원들이 경성으로 잠입해 들어오는 경로로 등장했는데, 일제강점기 때 실제로도 비슷한 사건이 빈번히 있었던 역사적인 장소다. 얼마나 많은 독립투사들이 폭탄을 가슴에 품고 이곳을 오갔던 것일까. 자신의 목숨보다 사랑하는 조국을 위해 폭탄을 끌어안았던 그 숭고한 희생 앞에서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귀빈실은 대리석으로 만든 벽난로와 거울, 고급 장식벽지로 마감된 벽면과 스테인드글라스가 화려했다.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이 지방 출장 시 사용했으며,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도 일본으로 가면서 이곳을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이었던 ‘서울역 그릴’이 있었던 공간 역시 광활한 홀과 높은 천장, 샹들리에, 레드 카펫과 커튼 등이 시선을 압도했다. 1925년부터 1988년까지 대통령, 고위 관료, 유명 배우들이 주로 방문하는 고급문화의 공간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아름답지만 아름답지 않은 붉은색 공간을 거닐며, 강우규 선생과 의열단원들이 떠올라 분노와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도심 속 최고의 공중정원을 만나다   


  문화서울역284 다음 코스는 단연 서울로7017다. 문화서울역284가 실내용 타임머신 여행이라면, 서울로7017은 야외용 근현대사 여행 코스다. 문화서울역284를 나와 왼쪽으로 보이는 나선계단을 올라가면(몸이 불편한 분은 엘리베이터 사용) 과거와 현재가 묘하게 공존하는 고가도로에 다다른다. 


기존의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중정원으로 바꾼 이곳은 2017년 5월 20일 첫 개장했다. 차들이 다니던 낡은 도로가 동네와 동네를 잇는 소통의 공간이자 도심 속 힐링 명소로 재탄생했다. 일자로 뻗은 길을 따라 50과 228종, 2만 4000여 개의 꽃과 나무가 심어져 있어 야외 식물원을 방불케 한다. 


서울로7017은 ‘70년에 지어져 17년에 재탄생했다’는 의미와 ‘17개의 보행길’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엘리베이터와 에스컬레이터, 건물과 연결통로 등을 통해 퇴계로·남대문시장·회현동·숭례문·한양도성·세종대로·공항터미널·청파동·만리동·손기정공원·중림동·서소문공원 등 각종 명소로 연결된다. 중림동 골목길, 도심 속 궁궐길, 서울 언덕길, 후암동 골목길 등 다채로운 코스가 마련되어 있다.


공중정원 곳곳에 설치된 4대의 피아노도 명물이다. 서울로7017을 방문하는 누구나 연주할 수 있으며, 아름다운 음악선율로 즐거움과 감동을 나누는 공간으로 사용된다. 마침 피아노를 연주하는 어린이가 있어 오랫동안 흐뭇하게 아름다운 음악을 공유했다. 연주자는 마스크를 필히 착용해야 하며 피아노 연주 전후에 사용할 수 있도록 손소독제를 비치하고 있다.


밤에는 화려한 조명이 볼거리다. 공중정원을 비추는 111개 통합 폴에 달린 LED 조명 555개와 화분 551개를 둘러싼 원형 띠 조명이 푸른빛 은하수처럼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변에는 1970~80년대 산업화의 상징건물인 서울스퀘어,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인 문화역서울284, 국보 제1호인 남대문, 고딕 양식의 석조건물인 남대문교회의 야간경관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서울로7017에서 강우규 선생을 다시 바라보았다. 당장이라도 폭탄을 들고 뛰어나올 듯 기세가 당당하다. 매순간 치열하게 생을 불태웠던 영원한 청년은 다시 백 년이 흘러도 같은 자리에서 우리를 깨우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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