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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1/05] 한민족의 흥(興)과 한(恨)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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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치 밴드부터 뮤지컬까지 세계인의 심장 뒤흔들다 


대한민국 소울 ‘K-흥’ 즐길 준비 됐나요?


글 | 편집부     사진 |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예사롭지 않다. 젊은 국악인들의 톡톡 튀는 판소리 퓨전이 ‘K-흥’을 일으키고 있다. 선두주자는 이날치 밴드다. 판소리 ‘수궁가’를 활용한 ‘범 내려온다’는 경쾌한 리듬과 흥 넘치는 소리로 단숨에 전 세계를 흔들었다. 이날치 밴드는 판소리와 대중음악 사이를 절묘하게 오가며 새로운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 ‘필 더 리듬 오브 코리아’는 온라인 누적 조회수 6억 뷰를 기록했다. 


국악의 세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소리꾼이자 배우, 가수, 창작자 등 무대 안팎에서 활약하고 있는 이자람, JTBC 음악예능 ‘팬텀싱어3’를 통해 국악 크로스오버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소리꾼 고영열 등 국악 신예들이 한민족의 흥을 한껏 돋우고 있다. 


뮤지컬계는 이미 오래 전부터 판소리 열풍을 이끌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전투 적벽대전을 판소리와 무용으로 화려하게 부활시킨 창작뮤지컬 <적벽>, 조선 최초 남사당패 여성 꼭두쇠인 바우덕이를 모티브로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거리 위 예술가 전기수의 이야기를 담은 소리극 <오시에 오시게>, 현대음악과 판소리의 아름다운 조화로 호평받아 2014년 아시안 시어터 스쿨 페스티벌 최우수작품상부터 2016년 예그린뮤지컬어워드 혁신상, 2020년 한국뮤지컬어워드 작품상까지 수상한 <아랑가> 등이 판소리를 활용해 반향을 일으킨 대표 작품이다.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 참여로

완성되는 즉흥극


판소리는 ‘여러 사람이 모인 장소’라는 뜻의 ‘판’과 ‘노래’를 뜻하는 ‘소리’가 합쳐진 말이다. 판소리는 17세기 한국의 서남지방에서, 굿판에서 무당이 읊조리는 노래를 새롭게 표현한 것에서 유래되었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조선 영조 30년(1754)에 유진한이 지은 춘향가의 내용으로 보아 적어도 숙종(재위 1674~1720) 이전에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하고, 조선 전기 문헌에 보이는 광대소학지희(廣大笑謔之戱)가 토대가 되었을 거라고도 한다. 


광대 집단과 관련이 있다는 측면에서 판소리는 소리꾼과 청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완성되는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이후 판소리는 서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전해지다가 19세기 말경에 문학적 내용으로 더욱 세련되어졌으며 도시의 지식인들 사이에 많은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과 한 명의 고수(북치는 사람)가 음악적 이야기를 엮어가며 연행하는 장르다. 장단에 맞추어 부르는 표현력이 풍부한 창(노래)과 일정한 양식을 가진 아니리(말), 풍부한 내용의 사설과 너름새(몸짓) 등으로 구연(口演)되는 이 대중적 전통은 지식층의 문화와 서민의 문화를 모두 아우르고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최대 8시간 동안 연행되는 동안 남성, 또는 여성 소리꾼은 한 명의 고수의 장단에 맞춰 즉흥적으로 공연을 펼친다.


판소리를 구성하는 배경, 등장인물, 상황 등은 조선시대(1392~1910)에 뿌리를 두고 있다. 판소리의 창자는 아주 다양하고 독특한 음색을 터득하고 복잡한 내용을 모두 암기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혹독한 수련을 거친다. 창자 특유의 해석 방식을 개발해 특정 이야기를 연행하게 되면서 특수한 연행으로 이름난 판소리 대가들이 많다.


최다관객 <서편제>

뮤지컬 영화 <소리꾼> 


  판소리는 전라도, 충청도, 경기도에 이르는 넓은 지역에서 전승되었는데, 지역적 창법의 특징에 따라 ‘창제(소리제)’를 달리하고 있다. 전라도 동북지역의 판소리는 ‘동편제(東便制)’, 전라도 서남지역의 판소리는 ‘서편제(西便制)’, 경기도와 충청도의 판소리는 ‘중고제(中古制)’라고 부른다. 동편제는 비교적 우조(羽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무겁게 한다. 소리의 꼬리를 짧게 끊고 굵고 웅장한 시김새(선율을 이루는 골격음의 앞이나 뒤에서 그 음을 꾸며주는 임무를 띤 장식음)가 특징이다. 비교적 기교와 수식이 많지 않은 창법으로 사설이 빈틈없이 진행되며 템포가 빠르기 때문에 발림이 적다.


반면 서편제는 계면조(界面調)를 많이 쓰고 발성을 가볍게 하며, 소리의 꼬리를 길게 늘이고 정교한 시김새로 짜여 있다. 기교와 수식이 많아 템포가 느리고 대신 발림이 풍부하다. 이런 이유로 서편제에서는 연행적 성격이 더 발달했다. 중고제는 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닌 것이라고 할 수 있지만 동편제 소리에 더 가깝다. 소박한 시김새로 짜여 있어 성량이 풍부한 창자가 부르기에 좋은 판소리다.


판소리 영화의 대표작이라면 단연 1993년 개봉해 최다관객 기록을 세운 <서편제>다. 당시 ‘단성사’에서 개봉했는데 서울 관객 103만 명을 동원, 한국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서울 관객 100만을 넘겼다. 이후 <쉬리>가 나올 때까지 6년 동안 한국 영화 역대 흥행 1위 자리를 고수했다니 놀랍다. 제4회 춘사영화상(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기술상, 여우주연상, 신인남우상), 14회 청룡영화상(최우수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신인여우상, 촬영상, 한국영화 최다관객상)까지 휩쓸었다. 


지난해에는 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이 신작 <소리꾼>을 발표해 관심을 끌었다. 소리꾼들의 희로애락을 조선팔도의 풍광명미(風光明媚)와 아름다운 가락으로 빚어낸 <소리꾼>은 판소리를 활용해 가장 한국적인 뮤지컬 영화 장르를 구현했다는 점에서 새롭다.


독창성·우수성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


  판소리가 발생할 당시에는 한 마당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아서 ‘판소리 열두 마당’이라 하여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배비장타령, 변강쇠타령, 장끼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그 수가 많았다. 그러나 현실성 없는 이야기 소재와 소리가 점차 길어지면서 충, 효, 의리, 정절 등 조선시대의 가치관을 담은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만이 보다 예술적인 음악으로 가다듬어져 ‘판소리 다섯마당’으로 정착되었다.


판소리는 우리나라 시대적 정서를 나타내는 전통예술로 삶의 희로애락을 해학적으로 음악과 어울려서 표현하며 청중도 참여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판소리 다섯마당이 모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판소리는 서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피지배층의 삶의 현실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새로운 사회와 시대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기도 했다. 또한 모든 계층이 두루 즐기는 예술로서 판소리를 통해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서로의 생각을 조절했다는 점에서 사회적 조절과 통합의 기능을 담당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판소리는 다양한 전통 예술로부터 필요한 것을 수용하고 그것을 종합하는 개방성을 지닌 것으로, 한국어의 표현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 민족적인 표현방식을 보여주었다. 이로써 인류 보편의 문제에 접근하는 예술로 승화되었고, 민족문화의 전통 계승과 발전에 기여했다.


한국이 급속하게 현대화되면서 판소리는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그래서 1964년 국가가 판소리를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로 지정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조치로 아낌없는 제도적 지원이 장려되었고, 그 결과 판소리의 전통은 활기를 되찾게 되었다. 


판소리는 전통적 무대예술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장르지만, 원래 판소리가 지니고 있었던 즉흥성은 많이 잃었다. 판소리 작품의 기록이 증가하면서 판소리가 가진 특징인 즉흥성은 억제되는 경향이 생긴 탓이다.


판소리는 우리 역사와 희로애락을 함께해온 우리 문화의 정수로 그 독창성과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2003년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되었고,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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