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있는 우리땅 [2022/02] 항일구국운동의 터전, 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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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근대 골목박물관
골목마다 스며든 ‘소리 없는 아우성’
백년 역사가 건네는 뜨거운 울림
글 | 편집부 사진 | 한국관광공사
대구는 특별하다. 도시를 흐르는 에너지가 뜨겁고 품격 넘친다. ‘선비’와 ‘보수’의 아이콘으로 불리며, 문화와 예술의 뿌리가 깊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쓴 저항시인 이상화가 태어난 곳이며, 화가 이중섭은 향촌동 골목의 다방에서 담배 은박지에 그림을 그렸다. 나라를 구하기 위해 문화 예술인들이 결성한 문총구국대(文總救國隊)가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 곳도 대구였다. 대구를 ‘예향(藝鄕)’으로 부르는 까닭이다. 무엇보다 ‘독립운동의 성지’로 유명하다. 2006년 만들어진 ‘근대골목’을 따라가면 역사가 들려주는 ‘소리 없는 아우성’에 가슴이 절로 뜨거워진다.
근대골목투어는 경상감영달성길, 근대문화골목, 패션한방길, 삼덕봉산문화길, 남산100년향수길 등 5개 코스로 운영된다. 그중 2코스인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근대사를 보여주는 역사문화 코스로, 100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청라언덕 동산선교사주택을 시작으로 3·1만세운동길~계산성당~이상화·서상돈 고택~약령시~진골목~화교소학교를 경유하는 1.64㎞ 코스다.
청라언덕에서
옛사랑을 떠올리며
근대문화골목은 대구 중구 동산동 현재 계명대학교 동산의료원이 있는 ‘청라언덕’에서 시작한다. 청라언덕은 학창시절 누구나 한 번쯤 불러 봤을 ‘동무생각’ 노랫말 배경으로도 유명하다. 근대음악의 선구자 박태준 선생의 학창시절 이야기를 담은 곡으로, 시인 이은상 선생이 박 선생의 연애사를 듣고 쓴 시에 다시 곡을 붙인 가곡이다. ‘봄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청라언덕 위에 백합 필 적에…’ 조용히 노랫말을 읊조리니 여고시절 음악실 풍경이 떠오르고 풋풋했던 첫사랑과 옛 추억이 소환된다.
‘청라’는 ‘푸른 담쟁이’를 말한다. 100여 년 전 이곳에 푸른 담쟁이가 가득해 청라언덕으로 불렀다. 대구 지역 의료 선교사들이 심은 담쟁이 언덕에는 당시 그들이 살았던 서양식 주택 3채가 남아있다. 선교사의 이름을 따 스윗즈 주택,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으로 지었다.
대구시 유명문화재 제24호로 지정된 스윗즈 주택은 1999년부터 선교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챔니스 주택은 드라마 ‘각시탈’에서 박기웅(기무라 슌지 역)의 자취 집, 드라마 ‘사랑비’에서 윤아(김윤희 역)가 입원했던 장소로 등장했다. 2002년 보수작업을 거쳐 의료박물관으로 탈바꿈했다. 붉은 벽돌과 초록 담쟁이가 색의 대비를 이루어 무척 아름답다.
바로 옆에 우뚝 서 있는 대구제일교회는 독립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3·1운동의 뜨거운 열기가 7일 만에 대구 지역에 전달되어 만세운동으로 전개되기까지 제일교회는 거사를 위한 실질적인 사무실 역할을 했고, 이후 종교와 종파를 넘어 지역의 정신적 지주로 자리매김했다.
90개 계단마다 만세함성 메아리쳐

기미 독립선언 민족대표 33인 중 대구 출신의 이갑성 선생은 1919년 2월 24일 제일교회 이만집 목사와 남산교회 김태련 조사, 계성학교·신명여학교 교사 등을 만나 대구에서도 독립만세운동을 일으켜달라고 권유했다. 이에 서문시장 장날인 3월 8일 오후 봉기를 하기로 의기투합하고 시위에 참여할 학생과 시민 모집에 나섰다.
일제 경찰의 특별경계령 속에서도 만세운동 준비는 계속 진행됐다. 남학생들은 장에 가는 것처럼 지게를 지고, 여학생들은 빨래하러 가듯 태극기를 숨긴 대야를 인 채 움직였다. 동산병원과 제일교회를 가로질러 90계단까지 이어지는 3·1운동길을 오르니 그날의 뜨거운 함성이 메아리치는 듯하다.
3·1만세운동길을 지나 조금 더 걸으면, 최초의 서양식 건물인 계산성당을 만날 수 있다. 1899년 로베르 신부에 의해 한옥으로 지어졌지만, 1901년 화재로 소실돼 이듬해 포와넬 신부가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지었다. 경상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인 이곳은 아름다운 설계와 역사로 인해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야간조명이 설치돼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다.
빼앗긴 들에 봄을 불러온 그들

이상화 고택 맞은편에는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한 민족운동가 서상돈 고택이 있다. 만석꾼의 집이라 하기엔 무척 소박하다. 평생 청빈하게 살아온 독립운동가의 삶이 엿보인다.
서상돈 선생은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해 큰 부자가 된 민족자산가다. 선생은 일본 빚을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고 여겨 1907년 1월 29일 애국계몽단체인 대구광문회 김광재 회장과 함께 국채보상운동을 결의했다. 선생은 “2,000만 동포가 담배를 석 달만 끊고 그 대금으로 국채를 보상하자”면서 거금 800원을 내겠다고 했고, 그 자리에 있던 회원들도 만장일치로 찬성했다. 이를 계기로 국채보상운동이 전국에 들불처럼 번져 나가는 계기가 되었다.
서상돈 고택 옆에는 대구 근대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가 자리하고 있다. 전시관에서는 대한제국 시기, 일제강점기, 해방 이후 우리나라 모습을 영상과 자료로 만날 수 있다.
골목문화해설사와 함께 맞춤형 투어 즐기세요~

15명 이상 단체 관광객은 사전에 희망 시간과 코스를 신청하면 된다.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영어, 일어, 중국어 해설사와 시각장애인을 위한 수어 해설사도 활동 중이다. 근대골목은 2015년 한국관광공사로부터 장애인, 어르신, 영유아 동반 가족 등 모든 관광객들이 제약 없이 즐길 수 있는 ‘무장애 열린 관광지’로 인증받았다.
체험 프로그램도 풍성하다. 근대문화체험관 계산예가와 약령시한의약박물관에서 한복체험과 느린우체통, 한방족욕체험, 가죽공예 체험을 즐길 수 있다. 근대골목 주요 관광지에 비치된 스탬프를 찍어 오면 중구 내 지정된 카페와 식당, 떡집 제품, 숙박 문화시설에서 할인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