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2] 천년의 불교문화 계승 한국의 산사(山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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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무형의 문화적 전통, 비움과 해탈의 도량
자연에 순응하며 개방형 구조 보존
천년의 깊은 역사 오롯이 담아내
글 | 편집부 사진 |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숱한 의무와 책임 속을 오가며 살다가, 문득 그 짐이 무거워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어진다. 머릿속에, 마음속에 불필요하게 채워진 무언가를 비우고 싶어진다. 비움을 위한 여행으로 산사만큼 좋은 곳이 있을까. 고즈넉한 산길을 걸으며 푸른 숲 공기를 심장에 새롭게 채우고, 수백 년 그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을 바라보노라면 말할 수 없는 감동이 전해온다. 일주문에 다다라 두 손 모아 합장하고 대웅전에 들러 삼배를 한다. 대자연과 더불어 천년 넘는 세월을 켜켜이 간직한 공간은 무언(無言)의 깨달음을 전한다. 백년도 안 되는 우리네 인생사 번뇌와 욕심 내려놓고 더 많이 사랑하며 살라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된 한국의 산사는 유·무형의 문화적 전통을 지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유물을 간직한 살아있는 박물관으로도 명성이 높다.
천년의 불교문화를 계승해온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 승원’은 201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사찰이 7~9세기 창건 이후 불교의 깊은 역사성을 지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통도사(경남 양산), 부석사(경북 영주), 봉정사(경북 안동),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 7곳의 사찰이 세계유산으로 인정받았다.
산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유형과 무형의 문화적 전통을 지속하고 있는 살아있는 불교 유산이다. 7개 사찰은 모두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종교 활동, 의례, 강학, 수행을 이어왔으며 다양한 토착신앙을 포용하고 있다. 산사의 승가공동체는 선수행의 전통을 신앙적으로 계승해 동안거와 하안거를 수행하고 울력(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일함)을 수행의 한 부분으로 여겨 오늘날까지도 차밭과 채소밭을 운영하고 있다.
산사를 구성하는 7개 사찰은 종합적인 불교 승원으로서의 특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사찰이다. 산기슭에 계류를 끼고 위치해 주변 자연을 경계로 삼는 개방형 구조를 나타내며, 최소 규모로 축대를 쌓아 자연 지세에 순응함으로써 건물 배치가 비대칭적·비정형적이다. 영문명으로 ‘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로 표기한다.
경남 양산 통도사
4만 점 넘는 유물 간직한 삼보사찰

양산 통도사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3대 사찰인 삼보사찰에 속하는 세계문화유산이다. 삼보는 불가에서 ‘불’ ‘법’ ‘승’을 뜻하며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가 ‘불’, 팔만대장경이 있는 합천 해인사가 ‘법’, 승려들의 수행 본산이며 승가대학이 있는 순천 송광사가 ‘승’에 해당한다.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가 있어 불보(佛寶)사찰이라고도 하며 ‘불지종가(佛之宗家) 국지대찰(國之大刹)’로 불린다. 불교의 종갓집이며 나라의 큰절이란 뜻이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절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會通)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도 있다고 전한다.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세운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는 대웅전이 국보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 보물 제334호인 은입사동제향로, 보물 제471호인 봉발탑 등 수십 점의 보물과 국보를 비롯해 4만 점이 넘는 유물을 간직하고 있는 살아있는 박물관이다. 경내에 있는 보물전시관에는 병풍·경책(經冊)·불구(佛具) 및 고려대장경(해인사 영인본) 등의 사보(寺寶)가 소장되어 있다.
경북 영주 부석사
불교 문화재 가장 많은 보물창고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화엄의 가르침을 펼친 곳이다. 배흘림기둥으로도 유명한 국보 제18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가장 오래되고 우수한 목조건축물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지붕을 떠받치는 공포(栱包)가 기둥 위에만 배치된 주심포, 아무 문양 없이 곧게 뻗은 창살, 추녀의 곡선 등 꾸밈없는 담백함이 기품을 더한다.
부석사는 소백산맥과 태백산맥 사이에 자리한 풍광 좋은 사찰이다. 부석사에 도착하면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 범종루, 무량수전에 이르기까지 9단의 석축을 올라야 한다. 법주사는 우리나라 사찰 가운데 불교 문화재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국내 미륵신앙의 대표 도량으로 33m 높이의 미륵대불이 우뚝 서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탑 팔상전과 쌍사자 석등도 볼 수 있다. 3점의 국보와 13점의 보물 등 40여 점의 문화재를 품고 있어 ‘보물창고’, ‘야외 박물관’이라 불린다.
국보 제5호 쌍사자 석등은 사자를 조각한 석조물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 넓은 8각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댄 채 뒷발로는 아랫돌을 디디고,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다. 통일신라 성덕왕 19년(720)에 세워진 것으로 추측되며, 8각 기둥 대신 두 마리 사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음을 알 수 있다. 법주사 사천왕 석등(보물 제15호)과 함께 통일신라의 대표 석등이다.
전남 선암사·대흥사
원형 그대로 보존된 품격의 극치

순천 선암사는 사천왕상과 어간문 등이 없는 삼무(三無) 사찰로 호남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조계산의 품에 안겨 있다. 매표소에서 사찰에 이르는 1.5㎞ 숲길은 ‘전국 아름다운 숲 대상’을 받았다.
선암사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졌다가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잦은 화재와 일곱 차례의 중건에도 불구하고 본래의 배치를 바꾸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에 등장하는 해우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재래식 화장실이다. 보물 제1311호인 대웅전을 비롯해 각황전, 팔상전 등 오래된 전각과 돌담, 아기자기한 정원 등 빼어난 볼거리를 자랑한다.
대흥사는 해남군 두륜산 줄기에 자리하고 있다. 두륜산(대둔산)의 절경을 배경으로 불전들을 지형 조건에 따라 배치해 자유로움과 조화를 느낄 수 있다.
천불전은 대흥사 남원(南院)의 중심 불전이다. 큰 대문채처럼 평범한 단층 5칸 맞배집으로 중앙 문간을 거쳐 천불전 안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천불전, 왼쪽에 봉향각, 오른쪽에 옛 용화당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다. 대웅전보다 마당은 크지 않지만, 공간에 맞게 건물의 규모와 형식을 갖추고 있어 중심건물로서의 품위가 느껴진다.
경북 안동 봉정사
절제된 아름다움의 극치
봉정사(鳳停寺)는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의 원래 이름은 대망산으로, 능인대사가 대망산 바위굴에서 도를 닦는데 스님의 도력에 감복한 천상의 선녀가 하늘에서 등불을 내려 굴 안을 환하게 밝혀 주어 천등산이라 이름 짓고 그 굴을 천등굴이라 하였다. 그 뒤 수행에 정진한 능인스님이 도력으로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더니 이곳에 와서 머물렀다 하여 봉황새 ‘봉(鳳)’ 자에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 지었다. 창건 이후 6차례에 걸쳐 중수된 봉정사는 1999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천등산 기슭에 자리한 봉정사는 규모가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려한 멋을 부린 사찰도 아니다. 많지 않은 건물들은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는데 단조로움 대신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아담한 경내 곳곳은 저마다 독특한 색깔을 뽐내는 국보와 보물로 가득 차 있다.
‘천등산 봉정사’라고 쓰인 일주문을 지나 만세루인 덕휘루 앞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마당 왼쪽으로 화엄강당(보물 제448호)과 고금당(보물 제449호)이 있고 오른쪽에는 승방인 무량해회가 있다. 정면을 바라보며 서 있는 대웅전(국보 제311호)은 조선시대 초기 건물로 다포계 건물로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다. 대웅전 앞마당에는 여느 사찰에서 흔히 보이는 석탑이나 석등이 보이지 않는다. 대웅전의 왼쪽에는 국보 제15호인 극락전이 있다. 현존하는 우리나라 목조건축물 가운데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한때 부석사 무량수전이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여겨졌으나 극락전이 무량수전보다 13년 빠른 1363년에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영산회상벽화(보물 제1614호)는 석가모니 부처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영산회상도다.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620호)은 1199년 처음 조성된 것으로, 여러 개의 나무를 접합한 접목조기법(接木造技法)으로 이루어졌으며 눈은 수정을 감입했다. 이국적인 풍모, 어깨 위에 중첩된 고리 모양으로 늘어진 보발 등이 인상적이다. 이 밖에 영상회 괘불도(보물 제1642호), 아미타설법도(보물 제1643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충북 보은 법주사
보은의 지정문화재 절반 소유

속리산 자락에 있는 법주사는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천년고찰로 의신 조사가 창건을 하고 진표율사가 7년 동안 머물면서 중건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법주사라는 절 이름의 유래는 창건주 의신 조사가 서역으로부터 돌아올 때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비롯되었다.
이후 신라 왕실의 비호를 받으며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동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찰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문종의 다섯 번째 아들이었던 도생 승통이 이 절의 주지를 지냈으며 많은 왕들이 절을 다녀갔다. 또한 공민왕은 양산 통도사에 사신을 보내 부처님의 사리 1과를 법주사에 봉안하도록 하였는데 그 사리탑이 지금 능인전 뒤쪽에 그대로 남아있다.
보은의 얼굴 구실을 하는 법주사는 보은의 지정문화재 절반을 소유하고 있으며 그중 3점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어 그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절 중 하나다.
대웅보전은 인조 2년(1624년)에 벽암이 중창한 것으로 총 120칸에 건평이 170평, 높이가 61척에 달하는 대규모의 건물이다.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어 있다. 다포식(多包式) 중 층건물로서 무량사 극락전, 화엄사 각황전 등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불전(佛殿)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 국보 제55호인 팔상전은 5층 목탑으로서 우리나라 목탑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이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때 의신이 세웠고, 776년에 병진(秉眞)이 중창했으며, 정유재란 때 소실된 것을 선조 38년(1605년)에 재건했다. 내부에는 8폭의 팔상탱화(八相幀畫) 앞쪽으로 나한상(羅漢像)을 3열로 배치하고, 중앙에는 본존불을 봉안했다.
이 밖에 이 절이 소유한 문화재로는 국보 제5호인 법주사쌍사자석등(法住寺雙獅子石燈), 국보 제64호인 법주사석연지(法住寺石蓮池), 보물 제15호인 법주사사천왕석등(法住寺四天王石燈), 보물 제216호인 법주사마애여래의상(法住寺磨崖如來倚像), 보물 제848호인 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 보물 제1259호인 법주사괘불탱이 있어 천년고찰의 위엄을 대변하고 있다.
충남 공주 마곡사
속세의 마음 씻어주는 ‘春마곡’
태화산의 동쪽 산허리에 자리 잡은 마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제6교구본사다. 마곡사는 ‘春마곡’이라는 별칭이 있는데 봄볕에 생기가 움트는 마곡사의 봄 전경이 매우 아름다워 생긴 별칭이다.
마곡사는 640년 백제 무왕 41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중수하고 범일대사가 재건했다. 조선시대에도 세조가 이 절에 들어 ‘영산전’이란 사액을 한 일이 있어 이 절의 위상을 알 수 있다.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만 하더라도 30여 칸에 이르는 대사찰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대웅보전, 대광보전, 영산전, 사천왕문, 해탈문 등의 전각들이 남아있다.
마곡사의 주차장을 지나면 희지천 옆을 걷게 되는데 청량한 물소리가 맑은 기운을 준다. 익살스러운 금강역사와 말끔한 동자상이 지키고 있는 해탈문과 천왕문을 지나 희지천을 가로지르는 극락교를 건너면 고즈넉한 절 마곡사 경내가 나온다. 속세의 마음을 씻어주는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다.
대광보전의 참나무 자리는 100일 기도를 드리며 참나무 자리를 짠 앉은뱅이가 일어서 걸어 나갔다는 전설이 전해져 이 절의 영험함을 알 수 있다. 대웅보전의 기둥을 얼싸안고 한 바퀴 돌면 6년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하니, 마곡사에 오면 꼭 대웅보전의 기둥을 얼싸안아 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