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Inside

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3] 봄 절기의 중심 춘분(春分)

페이지 정보

본문

‘중용의 세계’ 엿볼 수 있는 봄 절기의 중심


꽃샘바람 김치독 깨뜨려도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네


글 | 김영조(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소장)


‘춘분(春分)’은 24절기의 넷째 절기다. 이날 해가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교차하는 점을 통과하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한다. 춘분에는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음을 뜻하지만 사실 여기서 우리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춘분 즈음에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의 기지개를 활짝 켜고 논밭을 갈고 씨 뿌릴 준비에 들어갔다.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한 해 내내 배가 고프다’라고 할 정도로 농사가 백성의 주된 일이고 보니 ‘춘분’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작을 알리는 절기였다.  

옛사람들이 전통적으로 써왔던 24절기 가운데 봄 절기는 입춘부터 시작하여 우수, 경칩, 춘분, 청명, 곡우가 있다. 또 여름 절기는 입하부터 소만, 망종, 하지, 소서, 대서까지다. 이어서 가을 절기는 입추로 시작하여 처서, 백로, 추분, 한로, 상강이며, 겨울 절기는 입동과 함께 소설, 대설, 동지, 소한을 지나 대한으로 끝나게 된다.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곧 농사가 사람 일의 근본이 되었던 농경사회에서는 농사를 지으려 씨를 뿌리고, 추수하기에 가장 좋은 날씨를 알아야 하므로 계절의 변화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한 해를 계절의 변화에 따라 절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예부터 사람들이 쓰던 달력에는 태음력(太陰曆), 태양력(太陽曆), 태음태양력(太陰太陽歷) 따위가 있는데 태음력은 달이 지구를 한 바퀴 도는 시간을 기준으로 만든 역법이다. 1년을 열두 달로 하고, 열두 달은 29일의 작은 달과 30일의 큰 달로 만들었다. 태양력은 지구가 태양의 둘레를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을 1년으로 정한 역법이다.

태음태양력은 태음력과 태양력을 절충하여 만든 역법인데, 우리가 음력이라 부르는 것이다. 태음력을 태양의 움직임에 맞추려고 회귀년에 따라 19년에 일곱 번의 윤달을 두고 다시 8년에 세 번의 윤달을 둔다. 하지만 이 음력은 달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해의 움직임에 따라 결정되는 계절의 변화와 잘 맞지 않았다. 이런 문제를 보완하려고 해의 움직임을 표시해주는 24절기를 만들어 같이 썼다.

하늘에서 해가 1년 동안 움직이는 길, 곧 지구의 공전운동으로 해의 위치가 하루에 1°씩 이동하여 생기는 길을 황도(黃道, the Ecliptic)라 부른다. 이 황도가 0도일 때는 해가 남쪽에서 북쪽으로 향해 적도를 통과하는 춘분점(春分點)에 있을 때인데 이때를 ‘춘분’, 15도 움직인 때를 ‘청명,’ 계속해서 15도 이동하면 ‘곡우’가 된다.

다만 이 24절기가 계절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은 분명한지만, 원래 중국 주(周)나라 때 화북지방의 기후에 맞춰진 것이어서 우리나라와는 잘 맞지 않는다. 더구나 옛날과 견주어 기후와 생태계가 많이 달라져서 어긋나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 조상들이 오랫동안 이에 맞춰 살아왔기에 그 뜻을 살펴보고 현대에 기억해야 할 점은 없는지 살펴보는 일도 뜻있는 일일 것이다.

봄 절기의 중심 춘분, 
중용을 가르쳐준다

봄 절기의 중심에 있는 춘분을 먼저 살펴보자. 해가 춘분점에 있을 때인 ‘춘분(春分)’은 24절기의 넷째 절기다. 이날 해가 황도(黃道)와 적도(赤道)가 교차하는 점을 통과하기에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가 진 뒤에도 얼마간은 빛이 남아 있어서 낮이 좀 더 길게 느껴진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곧 춘분에는 음양이 서로 반인 만큼 낮과 밤의 길이가 같음을 뜻하지만 사실 여기서 우리는 더함도 덜함도 없는 ‘중용의 세계’를 엿볼 수 있다. 그런 뜻에서는 추분(秋分)도 같은 의미가 있다.

예전 선비들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으로 꼽던 유교 철학의 개론책 『중용(中庸)』에 나오는 ‘중용’이란 말을 보면 ‘중(中)’이란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으며, 지나침도 미치지 못함도 없는 것(不偏不倚無過不及)을 일컫는 것이고, ‘용(庸)’이란 떳떳함을 뜻한다고 주희(朱熹, 1130~1200년, 주자학을 집대성한 중국 남송의 유학자)는 설명하였다.

이처럼 오늘날의 24절기는 단순히 자연에 농사를 접목한 살림살이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품고 있는 철학적 의미도 함께 생각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옛사람들은 춘분 즈음에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의 기지개를 활짝 켜고 논밭을 갈고 씨 뿌릴 준비에 들어갔다. 천둥지기 곧 천수답(天水畓)이 많았던 시절인지라 귀한 물을 받으려고 물꼬를 손질하는 등 ‘천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고 여겨 부지런히 움직였다. 옛말에 ‘춘분 즈음에 하루 논밭을 갈지 않으면 한 해 내내 배가 고프다’라고 할 정도로 농사가 백성의 주된 일이고 보니 ‘춘분’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시작을 알리는 절기였다. 또 농사의 시작인 논이나 밭을 첫 번째 가는 애벌갈이 곧 초경(初耕)을 엄숙하게 행하여야만 한 해 동안 걱정 없이 풍족하게 지낼 수 있다고 믿었다.

춘분엔 현명씨((玄冥氏)에게 
사한제 올려

예전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는 조정에서 빙실(氷室)의 얼음을 내기 전 춘분에 작은 제사로 북방의 신인 현명씨(玄冥氏, 겨울·북방의 신)에게 사한제(司寒祭)를 올렸다. 『고려사(高麗史)』 길례(吉禮) 소사(小祀) 사한조(司寒條)에 “고려 의종 때 정한 의식으로 사한단(司寒壇)에서 초겨울과 입춘에 얼음을 저장하거나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 제사한다. 신위는 북쪽에 남향으로 설치하고 왕골로 자리를 마련하며 축문판에 ‘고려 임금이 삼가 아무 벼슬아치 아무개를 보내어 공경히 제사합니다’라고 쓴다. 희생 제물로는 돼지 한 마리를 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조선시대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예고(禮考)10 사한조(司寒條)에 “사한단은 동쪽 교외 빙실 북쪽에 있는데, 제도는 영성단(靈星壇, 농사를 관장하는 별에게 제사 지내는 단)과 같고 현명씨에게 제사한다. 『오례의(五禮儀)』에는 계동(음력 12월)에 얼음을 저장하고 춘분에 얼음을 꺼낼 때 제사를 지낸다”라고 하였다. 또한 『고려사』 형법 공식 관리급가조(官吏給暇條)에 따르면, 고려시대에는 벼슬아치들에게 이날 하루 휴가를 주었다고 한다.

이날 날씨를 보아 그해 농사의 풍흉(豊凶)과 물난리나 가뭄을 점치기도 하였다.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 권15 증보사시찬요(增補四時纂要)에 따르면, 춘분에 비가 오면 병자가 드물다고 하고, 이날은 어두워 해가 보이지 않는 것이 좋으며, 해가 뜰 때 정동(正東) 쪽에 푸른 구름 기운이 있으면 보리에 적당하여 보리 풍년이 들고, 만약 청명하고 구름이 없으면 만물이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열병이 많다고 했다.

또 이날 구름 기운을 보아, 파란색이면 충해(蟲害), 붉은색이면 가뭄, 검정색이면 수해, 노랑색이면 풍년이 된다고 점쳤다. 이날 동풍이 불면 보리값이 내리고 보리 풍년이 들며, 서풍이 불면 보리가 귀(貴)하며, 남풍이 불면 오월 전에는 물이 많고 오월 뒤에는 가물며, 북풍이 불면 쌀이 귀하다고 하였다.

음력 2월 중 춘분 무렵에는 바람이 많이 분다. “2월 바람에 김치독 깨진다”, “꽃샘에 설늙은이 얼어 죽는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2월 바람은 동짓달 바람처럼 매섭고 차다. 이는 바람의 신 곧 풍신(風神)이 샘이 나서 꽃을 피우지 못하게 바람을 불게 하기 때문이라 하며, 그래서 ‘꽃샘’이라고 한다. 한편, 이때에는 고기잡이를 나가지 않고 먼 길 가는 배도 타지 않는다. 

불교에서는 춘분 앞뒤 7일 동안을 ‘봄의 피안’ 또는 ‘피안(彼岸)의 시기’라 하여 극락왕생의 때로 보기도 했다.

춘분부터 하루 두 끼만 
먹던 것을 세 끼 먹어

춘분에 특이한 것은 겨우내 두 끼만 먹던 밥을 세 끼를 먹기 시작하는 때라는 점이다. 지금이야 끼니 걱정을 덜고 살지만, 먹거리가 모자라던 예전엔 아침과 저녁 두 번의 식사가 고작이었다. 그 흔적으로 “점심(點心)”이란 말이 있는데 아침에서 저녁에 이르기까지의 중간에 먹는 간단한 다과류를 말한다. 곧 허기가 져 정신이 흐트러졌을 때 마음(心)에 점(點)을 찍듯이 그야말로 가볍게 먹는 것이다.

우리 겨레가 점심을 먹게 된 것은 고려시대 때부터라 하지만, 왕실이나 부자들을 빼면 백성은 하루 두 끼가 고작이었다. 보통은 음력 9월부터 이듬해 정월까지는 아침저녁 두 끼만 먹고, 2월부터 음력 8월까지는 점심까지 세 끼를 먹었다. 이는 겨울철 낮 길이가 짧은 탓도 있지만 일하지 않는 겨울엔 두 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고, 세 끼를 먹는 것을 죄스럽게 생각한 까닭도 있다. 하지만, 춘분이 지나면 농번기가 닥쳐오기 때문에 일꾼들의 배를 주리게 할 수 없어서 세 끼를 먹게 되는 것이다.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온다

“새순은 돋아나는데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는데
당신이 그립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살고 싶어라.”

위는 원재훈 시인의 시 <춘분> 일부다. 이 시 구절처럼 봄이 열리는 춘분은 새싹이 돋아나고 아장아장 봄볕이 걸어오는 느낌을 준다. 그 봄볕 속에 살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그리운 당신이 거기 있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속삭인다. 춘분! 추위가 사라지듯, 코로나19도 사라져 완연한 봄의 향내를 맡고 싶은 계절이다.  .

필자 김영조 
2000년 푸른솔겨레문화연구소, 2011년 한국문화사랑협회를 설립하여 한국문화를 널리 알리고 있다. 또한, 2015년 한국문화를 특화한 국내 유일의 한국문화 전문지 인터넷신문 <우리문화신문>을 창간하여 발행인을 맡아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맛깔스런 우리 문화 속풀이 31가지》, 《하루하루가 잔치로세(2011년 문화관광부 우수도서)》, 《나눔을 실천한 한국의 명문종가》, 《아름다운 우리문화 산책》 등이 있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