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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가는 역사를 다시 생각한다 [2022/04] 정의롭고 진실한 역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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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역사교육에 있다


하나뿐인 목숨 바친 독립운동가들의 

‘지극한 용기’는 역사의 진정한 힘


글 | 최범산(작가, 순국선열교육원장) 


歷史는 과거사의 살아있는 기록이며 현재와 미래를 끊임없이 이어주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오늘과 내일을 분석하고 예측하려면 교육현장에서 역사가 얼마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가를 냉정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학문적 가치에 걸맞게 유치원에서 대학과정까지 제대로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오천 년 민족의 역사는 그 중요성에 비해 교육현장에서 핵심과목으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며, 역사교육은 초중고 교육과목으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더구나 우리 역사상 미증유의 치욕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로 전락했던 암울한 시대 -일제강점기의 역사는 한국사 교과서의 말미에 잠깐 언급되는 정도로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고, 학기말 과정이라서 대강 가르치고 넘어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교육계의 중론이기도 하다.  

역사교육은 우리의 삶을 지혜롭고 윤택하게 만드는 지식의 보고이다. 그러한 효용적 가치에 근거한 시대와 인물을 분류하여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인으로서의 자존과 긍지,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분야가 좀더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한다. 단순히 시대별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중요도에 따라 순서와 분량을 정하고, 시대적 흐름을 이끌어 갈 수 있는 내용들을 중점적으로 기술하여야 한다. 동시에 역사교육의 다양성을 추구하여 살아있는 생물처럼 발전적으로 진화해가야 한다. 화석처럼 굳어지고 퇴색한 역사적 사실들을 단순히 나열하는 암기식 역사교육은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역사의 힘은 세상을 바꾼다 

중국 요녕성 무순시의 전범재판소 유적지 입구에 일본인의 사죄비가 우뚝 서 있다. 1910년 8월 29일 이후 35년간 국토강점과 억압과 수탈을 자행했던 대한민국을 향해서는 사죄와 반성조차 하지 않는 일본이 중국에는 이토록 거대한 사죄비를 어떻게 세우게 된 것일까. 그것은 중국 역사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린이부터 대학생까지 역사교육의 절반을 항일투쟁사로 채우고, 현장학습을 중심으로 교육하고 있는 학교들, 전국 곳곳에 웅장하게 세워진 수많은 항일기념관과 항일지사들의 동상들, 그것을 바라보는 일본인들은 그야말로 제 발이 저리고 오금이 저려오는데 어찌 중국이 섬뜩하고 두렵지 않겠는가. 그래서 약삭빠른 일본인들은 중국인을 향해 ‘향항일순난열사사죄비’라고 쓴 거대한 사죄비를 세웠던 것이다.

역사는 과거의 사실을 오늘에 비추어봄으로써 장차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중국인들은 역사의 힘을 믿었고, 우리는 역사의 힘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 차이가 중국에는 사죄비를 세우게 했고, 한국에게는 오만한 태도와 망언을 퍼붓는 일본인들의 교활함을 낳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 우리가 추구하는 미래는 섬광처럼 떠오른 과거의 기억 속에 있다. 우리가 누리는 대한민국의 영광은 먼저 살다간 분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얻은 축복임을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은 아직도 역사의 힘을 올바로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역사교육의 중요성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광복 이후 지속되고 있는 국영수 중심의 교육과 대학입시 과목의 높은 배점이 그것을 방증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기억 속에는 역사의 숭고함이나 자긍심, 창조적 발견은 찾아보기 어렵다. 종두득두(種豆得豆:콩 심은 데 콩난다)라 하지 않는가. 가르치지 않았으니 기억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역사교육의 홀대가 이어지는 한, 우리나라의 청소년들이 자랑스런 미래를 만들어 갈 역사의 힘을 올바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3·1절 103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 개관과 동시에 삼일절 기념식이 열렸다. 독립운동사에 관심을 가진 시민 중에 한 사람으로서 그렇게 진한 감동이 밀려오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또 하나의 독립운동 관련 건물, 그저 도시에 흔하게 볼 수 있는 빌딩이 하나 세워진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기념관의 건립 의미와 개관의 구호는 거창하게도 삼일운동이나 임시정부의 역사를 빛내기 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그러한 활동은 이미 오랫동안 독립기념관이나 백범기념관 등에서 해온 일이었다. 건물 하나 더 짓고, 기념관 하나 더 늘린다고 해서 그동안 미진하고 소홀했던 독립운동에 대한 인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역사교육이다. 기념관 하나 더 생긴다고 역사교육의 문제점이 해소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역사 왜곡과 갈등으로 인한 분열, 대립이 심화되는 사회적 병폐를 치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역사교육의 강화, 역사교육의 올바른 정착이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과거를 통해 지구의 미래를 예측한다고 한다. 인문학의 요체인 역사교육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과거의 역사를 자양분으로 삼아 미래를 예측하고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타국의 역사나 이론들이 만든 기준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그들이 주장하는 참과 선의 기류에 편승하여 자신의 실리와 만족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들이 오늘의 우리 사회를 이기적, 분열적으로 만든 것은 아닐까. 이러한 사회인식을 뚫고 들어가 적극적으로 공존연대를 추구하는 세상을 만들어보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대한제국 말기 의병활동과 경술국치 후 독립운동가들이 당대의 선(善)으로 규정된 이론과 제도, 오랫동안 제도화된 인습에 편승하지 않고, 조선사회의 부정부패, 외세의 억압과 침탈의 시대적 흐름을 바꾸려고 온몸으로 저항했던 것이다. 그들이 피 흘려 싸웠던 노력과 헌신을 우리가 천만 분의 일이라도 기억한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지 않았을까.

아직도 일제시대 교육의 잔재, 식민사학이 주류로 군림하는 사회적 흐름 안에 안주하며 살아온 삶을 반성하지 않는다면, 이러한 흐름은 영원히 지속될 뿐 아니라 일본의 사죄와 반성조차 받지 못한 나라, 친일과 반일의 갈등으로 분열하고 대립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후손들에게 물려주는 어리석음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정신적으로 
패배하고 있다

중국 만주지역 독립운동유적지를 답사를 할 때마다 가슴이 아프고 안타까웠던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피와 땀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중국정부는 한국인의 역사가 서려 있는 유적들을 말살하기 위해 나선 지 오래다. 이른바 동북공정은 고구려, 발해 역사의 말살과 왜곡으로 끝나지 않았다. 우리 민족의 독립운동사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항일역사와 관련이 없는 것들은 지워버리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살려서 이용하고, 없는 역사는 만들어 왜곡하고, 그 밖의 역사는 모두 존립 자체를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하얼빈의 안중근 의사 기념관, 상해와 중경의 임시정부 건물, 화룡시의 청산리대첩기념비, 용정시의 윤동주 생가와 3·1운동 순국자의 묘역 등 손에 꼽을 정도의 유적들은 자신들의 항일투쟁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더불어 한국정부와의 불협화음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외교적 생색내기에 불과하다. 그보다 훨씬 많은 수천 곳의 유적지들은 소문도 없이 사라지거나 아예 흔적을 지워버리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한국정부의 무관심이 더 큰 요인이지만, 중국의 역사 지우기는 이제 동북공정의 수준을 넘어선지 오래다.

지금으로부터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필자가 중국 요녕성의 국경도시 단동시에서 광복절을 맞이하여 만주지역 독립운동유적 사진전시회를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그곳에 살고 있는 한국인, 조선족 동포들에게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역사를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런데 그곳에서 오랫동안 사업하고 있는 한국기업인, 한인회 간부를 역임한 사람들이 몰려와 독립운동사진전의 개최를 멈추라고 했다. 그들은 중국 공안당국에 전시회 개최 신고를 먼저 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지시하는 듯한 고압적 언행이 불쾌하고 어이가 없었다. 우리 민족이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유적지를 발로 뛰면서 촬영한 사람이 광복절을 기념하여 사진전을 개최하는데 왜 중국당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가. 도대체 납득이 되질 않았다. 나는 그들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그들의 고압적 행동에서 일제시대 검열과 탄압의 잔재를 보는 듯했고, 군사독재정권 시절의 감시와 검열에 길들여져 지나치게 눈치를 살피는 잔상을 보는 듯 거부감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한국인이 이곳의 법을 위반하거나 말썽이 일어나면 자신들에게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고 몇 번이나 찾아왔지만, 나는 전시회 개최를 강행하였다. 중국에서 사업하며 살다보면 사회적 제약이 많으리란 것은 이해하지만, 그렇다고 미리 알아서 기는 듯, 중국의 눈치를 지나치게 살피고 비굴해지는 그들의 행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혹시라도 중국 공안에게 피해를 당할까 두려웠는지 전시회에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의병과 독립군의 기개와 용기는
다 어디로 갔는가

광복절 기념으로 개최된 항일유적사진전시회는 중국 당국의 제지나 간섭도 없이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단동시에 거주하는 한국인들 뿐 아니라 단동시민, 북한사람들까지 찾아와 사진전시회를 관람했다. 나는 전시회를 관람하는 사람들에게 항일역사와 유적지들을 자세히 설명하는 작은 강연회도 열었다. 

전시회를 찾은 사람들은 이구동성으로 만주 일대에 이렇게 많은 항일독립유적지가 있는 줄을 모르고 살았다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간다고 고마움을 표하기도 했다. 또한 만주여행을 왔다가 늦게야 전시회 소식을 듣고 찾아온 관광객들이 전시회를 연장해달라고 하여 이틀간 더 전시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성과 덕분에 매년 광복절이 되면 단동시에서 전시회를 열게 되었고, 현재까지도 그곳 한인들을 중심으로 광복절 기념식뿐 아니라 순국선열의 날과 대한독립선언 기념식을 하면서 사진전시회를 열고 있다. 

일제의 가혹한 탄압과 감시에도 의병에 가담하고 자금을 모금했던 사람들, 회유와 압박에도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에 몸바쳤던 사람들의 기개와 용기는 어디로 갔는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강연이나 기고를 통해 독립운동가들의 지극한 용기를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역설해왔다. 독립운동가들이 가졌던 의기와 애국심, 하나뿐인 목숨까지 바쳤던 ‘지극한 용기’는 역사의 진정한 힘이다. 죽음을 앞에 둔 공포 속에서도 인간으로 낼 수 있는 용기, 극한의 상황에서 담대할 수 있는 용기의 극치를 발휘했던 선열 앞에 누구나 고개 숙여 숭모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의기는 하얼빈을 울리고 역사는 서울에서 통곡한다는 말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기(義氣)와는 다르게 요즘 서울에서 역사왜곡과 친일발언을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자들의 발언을 두고 한 것이다. 그들에 의해 역사가 왜곡되고 정의가 전도되는 오늘의 사회에 그 부당성을 뚫고 들어가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가르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한 상황은 무엇보다 독립운동 역사교육의 미흡과 결여가 불러온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들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맹목적으로 일본극우를 추종하거나 일본인의 호전성과 잔혹한 습성마저 찬양하는 자들이 광복 70여 년이 지난 우리사회에 아직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고 가슴이 아프다. 

너의 불행은 너의 능력 때문이야

세계의 경제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경제학의 출발은 윤리학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실제생활과 밀접한 경제정책들은 인간사회의 윤리적 관점에서 얼마나 정의롭고 공정하게 시행되는가에 따라 사람들의 공감과 찬동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능력주의 사회는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을 때 그 윤리성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경쟁보다 공존하고 연대하는 사회는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기에 인간적이고 윤리적인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 누구의 헌신과 희생이 없는 사회는 이기적으로 경직된 사회를 지나 죽은 사회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독립운동가들이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헌신했고, 귀중한 목숨까지 바친 분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헌신과 희생으로 독립된 나라에서 예우와 보답을 하지 않는다면 대다수의 국민들의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광복 후에 수립된 정부는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일제강점기 헌신과 희생을 치른 분들에 대한 예우와 보상이어야 했다. 그러나 독립운동가와 그 후손들을 위한 정책수립이나 예우가 거의 전무했다고 볼 수 있다. 그 후에 원호처가 생겨 예우를 시작했으나 그 헌신과 희생에 비해 너무나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조금 심하게 말한다면 그저 생색내기 수준이었고, 심지어는 마치 동냥이라도 주는 것처럼 오만하고 불손했던 것이 여러 증언으로 증명된 사실이었다.

독립운동 자금을 만들기 위해 전 재산을 팔아야 했다. 가족을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낯선 이국땅으로 떠나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고난과 시련을 참고 견뎌야 했다. 그러한 독립운동가들의 희망은 오직 하나였다. 조국의 독립, 그것을 위해 모든 고난을 인내하며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했던 독립전쟁 준비를 위해 자신들의 개인적인 삶은 모두 포기해야만 했다. 

독립운동가와 가족들은 만주인들의 혹독한 텃세, 원인도 알 수 없는 풍토병, 잔인무도한 마적들에게 고통받고 시달려야 했다. 어찌 그뿐이랴. 왜경의 억압과 횡포, 곳곳에서 번뜩이는 눈초리, 승냥이처럼 따라붙는 밀정들의 감시를 일상처럼 겪어야 했다. 

오로지 조국독립을 위해 달려간 길림성 유하현 삼원포 한인마을에 혹독한 가뭄이 찾아왔다. 중국인들에게 비싼 임대료를 내고 빌린 토지에 농사를 지었건만, 싹조차 틔우지 못한 채 죽어가는 농작물을 바라보는 독립운동가들의 가슴은 한없이 타들어 가기만 했다. 그래서 고향에 남겨두고 갔던 조상제수용 토지, 후손들에게 남긴 마지막으로 농토마저 팔아서 독립자금으로 썼고, 남은 돈으로 겨우 연명을 하며 다음해를 기약해야 했다. 

조선말 영의정의 후예이며 남양주 화도읍에서 그의 땅을 밟지 않고는 서울에 갈 수 없을 정도의 부자였던 이석영 선생 가족은 전 재산을 독립운동에 바친 뒤에 북경에서 굶주리며 살아야 했고, 99칸 부와 명성을 초개처럼 버렸던 이상룡 선생 가족은 서간도의 벽촌 소과전자에서 궁핍한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또한 일제의 혹독한 감옥에 영어의 몸이 되어 가족을 돌보지도 못한 채 끝내는 가족에게 돌아가지 못하고 형장에서 생을 마감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의 삶이 있다. 

그렇게 독립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이 험난하고 척박한 세상에 남겨졌을 때 그들은 과연 어떻게 삶을 영위할 수 있었을까. 국가는 너무나 멀리 있었고, 이웃 인심은 박절하게 외면했다. 독립된 나라에서 그들에 대한 예우는 달라진 것은 없었다. 그렇게 삶의 벼랑으로 몰린 독립운동가들의 후손들에게 “너의 불행은 너의 능력탓이야”라고 말하는 추악한 인간들, 친일파 후손의 집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집의 사진을 비교하면서 친일파는 열심히 노력하여 부유하게 살고 있다고 말하는 철면피하고 너절한 인간들이 오늘도 버젓이 대한민국 하늘 아래서 활보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이미 역사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폐해진 군상들일 뿐이다.

이제는 이 땅의 모든 국민들에게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광복 후 독립운동가와 후손들의 역경과 시련은 그들의 잘못이 결코 아니다. 국가가 그들에게 진 빚을 갚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보살피고 도와야 할 국가적 의무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순국선열의 피와 눈물로써 독립된 나라, 후손들의 고난과 시련의 삶 위에 선진국 대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선열들을 진심으로 추모하고 기리는 마음들을 모을 수 있을까. 후손 대대로 그 영광을 이어가며 살아갈 수 있는 나라를 과연 만들어 갈 수 있을까. 15만 순국선열과 가족, 1천만 후예들은 국가를 향해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역사교육에 있다

역사정의와 진실을 가르치는 역사교육은 당대를 넘어 영원히 지속해야 할 국가의 책임과 의무이다. 또한 국가정체성 확립을 위한 필수적인 교육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역사교육은 정의롭고 진실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분야보다 그 중요성과 시급성을 깊이 인식하여 국민들의 성원과 지지. 참여도를 높여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를 갈라놓고 있는 소득, 재산, 지위의 불평등이 능력이라는 말로 정당화가 되는 현실의 근저에는 국가정체성의 부재(不在), 정의와 공정의 전도(顚倒)라는 병폐가 도사리고 있다. 

진실과 거짓 뒤집기, 네편 내편 가르기, 내로남불의 행태, 지역과 세대 갈등의 심화, 막말과 선동의 행동 양태가 막강한 폭력성을 숨긴 채 포퓰리즘의 얼굴로 우리 사회를 갉아먹고 있다. 올바른 역사교육의 부재가 몰고 온 심각한 사회적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국가는 이러한 사회적 심각성을 냉정하게 꿰뚫어 보고, 병폐적 현상을 혁파할 수 있는 역사교육, 특히 독립운동사 교육의 강화를 위해, 그동안 식민사관 논란을 불러 일으키며 기득권에 안주해 왔던 역사연구 관련기관과 공공단체를 과감하게 개혁해야 한다. 

또한 역사교육의 정상화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립하고, 나아가 독립운동 후손과 관련단체들이 역사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대한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이 역사다운 역사교육을 통해서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 최범산 
1986년 월간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으며, 한국문인협회 및 한국소설가협회 회원 등 현재 순국선열교육원장으로 있다. 최 작가는 잊혀지고, 훼손되고, 버려진 북간도 지역 항일독립전쟁의 유적을 십여 년 동안 답사하며 독립투사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새겨진 유적들을 찾아 기록하고 카메라에 담았다. 역사가 바로 서고, 진실하고 올바른 사람들의 세상을 위해 그는 간도지역 항일유적의 생생한 기록과 현장사진을 묶은 항일독립전쟁 유적답사기 『압록강 아리랑』 『두만강 아리랑』 두 권의 책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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