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우리 것들 [2022/04] 동양 최고 의학서 동의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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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로 ‘공공의료’와 ‘예방의학’ 구현
백성 건강 위한 국가 편찬사업
수백 년 앞서 현대의학 방향성 제시
글 | 편집부
동양 최고 의학서로 손꼽히는 『동의보감』은 시대를 수백 년 앞서간 혁신의 산물이었다. 우선 시작부터 남달랐다.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질병에 시달리는 백성들을 위해, 백성들이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해 보급하고자 했다. 세계 최초로 ‘공공의료’ 개념을 도입한 것이다.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일부는 한글로 적었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편찬사업은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또한 『동의보감』은 ‘양생(養生)’의 원칙을 바탕으로 ‘예방의학’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인식한 세계 최초의 의학 서적이다. 『동의보감』의 예방의학 철학은 현대의학보다 4백 년이나 앞선 놀라운 발견이었다.
“요즘 중국의 방서를 보니 모두 자잘한 것을 가려 모은 것으로 참고하기에 부족함이 있다. 너는 마땅히 온갖 처방을 덜고 모아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라.”
그 무렵 명대의 신의학이 우후죽순 조선으로 들어와 전통의학과 뒤섞이는 바람에 이를 정비할 필요가 있었다. 또한 전란으로 기근과 역병이 발생해 제대로 된 의서가 시급히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새로운 의서의 편찬을 명하면서 선조는 그 책의 성격을 분명히 제시했다. 첫째, 사람의 질병이 조섭(調攝, 건강이 회복되도록 몸을 보살피고 병을 다스림)을 잘못해 생기므로 수양을 우선으로 하고 약물치료를 다음으로 할 것. 둘째, 처방이 너무 많고 번잡하므로 요점을 추리는 데 힘쓸 것. 셋째, 국산 약 이름을 적어 백성들이 쉽게 알 수 있도록 할 것 등이었다.
왕명을 받은 허준은 정작·양예수·김응탁·이명원·정예남 등 당대의 인재들과 함께 편찬 작업에 들어갔다. 그러나 이듬해 정유재란이 일어나면서 중단되었다가 1601년 무렵 재개되었다. 이때부터 허준은 단독으로 14년 동안 총 240여 종의 의서들을 참고해 광해군 5년(1613)에 『동의보감』을 완성했다.
『동의보감(東醫寶鑑)』은 ‘동양 의학의 이론과 실제’를 뜻하는 백과사전적 의서로, 의학적 지식과 치료법을 총망라한 대작이다. 병의 종류와 치료 방법을 다섯 가지(내경·외형·잡병·탕액·침구)로 구분해 총 25권의 책에 담고 있다. 한문으로 된 영인본 기준으로 3,200여 쪽, 160만여 자에 달한다. 우리말로 풀어 쓰면 더욱 분량이 늘어난다. 일례로 ‘내경편’이 한자로 4권인데 한국어 번역을 하자 200자 원고지 8,000쪽 분량이었다.
『동의보감』은 동양에서 가장 우수한 의학서의 하나로 평가되며, 책에 담긴 시대정신과 독창성, 세계사적 중요성 등의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다. 한국의 7번째 세계기록유산이며, 의학서적으로는 최초다.
세계 최초 ‘공공의료’ 도입
일반 백성 위해 한글 사용

선조는 오랜 전란으로 백성들이 질병의 고통 속에서 신음하자,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일반인들도 쉽게 치료법을 이해할 수 있는 의학 서적을 편찬해 전국에 보급하고자 했다. 국가가 나서서 『동의보감』을 편찬한 이유의 하나는 일반 백성의 건강과 안녕에 대한 책임감이었으며, 그 결과 『동의보감』에는 전문화된 의학 지식과 기술뿐만 아니라 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와 쉬운 말로 풀어쓴 간단한 치료법이 총망라되어 있다.
당시 한자는 상류층들만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교육을 받지 못한 평민들도 쉽게 읽고 사용할 수 있도록 탕약편(湯藥篇)에 수백 종의 향약명(鄕藥名)을 한글로 적었다. 19세기 이전에 왕실이나 귀족보다 평민의 건강을 위해 국가적으로 몰두한 이 같은 편찬사업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도 없었다.
‘예방의학’ 다룬 최초 의학 서적
현대의학보다 4백 년 앞서

양생의 철학은 감정과 욕구를 다스리는 데 덧붙여 생활을 자연의 변화에 맞춤으로써 정신과 몸의 에너지 소모를 최소한으로 줄여 개인이 건강을 유지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 철학에서는 인간의 질병이 단지 신체적 원인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라, 신체적 요인과 사회적·정신적 요인이 복잡하게 작용한 결과라고 본다.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동의보감』은 건강과 질병의 문제를 다음 3가지 관점에서 탐구하고 있다.
첫째, 건강과 질병을 단순한 인과관계의 문제로 보는 기계론적 접근이 아닌 전체론적 관점
둘째, 인간의 건강과 질병이 사회와 밀접하게 연관된다는 사회의학적 관점
셋째, 생물학적 의학이 아직도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예방의학적 관점
세계보건기구(WHO)에 의한 건강의 정의가 ‘신체적 측면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으로도 좋은 상태라야 진정으로 건강한 것’임을 17세기에 이미 깨달은 『동의보감』의 의학적 선견지명은 세계 의학사적으로 중요하다.
2천 년간 축적된 자료 재구성해
동아시아 전통의학 새 시대 열어
『동의보감』은 16세기까지 축적된 방대한 의학적 지식과 경험을 한데 모았다. 『역대의방』(역사상 의서 목록)의 일부에 언급된 86권의 의서를 포함한 120권의 의서와 왕실 서고에 있던 500권의 한글 문서와 한의서를 인용·참고했으며, 매우 독창적인 방식으로 통합했다. 이런 이유로 『동의보감』은 그 후 동아시아 전통의학의 모범이 되었다.

『동의보감』을 집필한 구암 허준을 다룬 드라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지금까지 총 네 번 방영되었는데, 1976년 ‘집념’, 1991년 ‘동의보감’, 1999년 ‘허준’, 2013년 드라마 ‘허준’의 리메이크작 ‘구암 허준’이다.
특히 1999년 11월 22일부터 2000년 6월 27일까지 방송된 MBC 64부작 드라마 ‘허준’은 전광렬·이순재·황수정 등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과 각본의 뛰어난 완성도로 대한민국 역대 사극 최고의 시청률을 달성해 국민 드라마의 반열에 올랐다. 최고 시청률은 64.8%이며, 이 기록은 2022년 현재까지도 사극 부동의 1위, 드라마 전체 4위의 기록이다.
수많은 명대사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그중 스승인 유의태의 가르침이자 허준이 심의(心醫)가 될 결심을 하게 된 메시지가 유명하다.
“세상에서 의원을 높이 알아주건 안 알아주건 간에, 의원의 소임은 생명을 다루는 것이니, 그 어느 생업보다도 고귀한 일이다. 허나, 아무리 귀하다 한들, 마지막 한 가지를 깨우치지 못하면 진정한 의원이라 할 수 없으니, 그것이 바로 사랑이다. 병들어 앓는 이를 불쌍히 여기고 동정하는 긍휼의 마음, 진심으로 병자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가짐이 있을 때 비로소 심의(心醫)가 되는 것이야. 세상이 진심으로 바라고 기다리는 것은 오직 하나, 바로 심의일 뿐이다.”
소설과 드라마를 통해 허준(許浚, 1539~1615)은 신묘한 의술로 박애를 실천한 ‘의성(醫聖)’이 되고, 신분을 극복하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신화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 역사의 기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란 매우 어려워 일생을 추적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