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1/02] ■ 2월에 읽는 윤동주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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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시대를 넘어 삶과 존재에 대해 묻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글 | 편집부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몇 년 전, 영화 ‘동주’를 보고 시인 윤동주가 몹시 그리워 윤동주문학관에 갔었다. 야외 2층 테라스 카페에서 『별 하나에 시』라는 시집 한 권을 사서 씁쓸한 커피 한 잔과 달달한 쿠키를 먹으며 한 구절 한 구절 가슴에 담아냈던 추억은 시간이 흘러도 소중하다. 더없이 푸르렀던 인왕산자락의 햇살과 바람, 그리고 맑은 영혼을 가진 청년…. 쪽빛 표지의 시집 『별 하나에 시』는 ‘서시’로부터 시작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의 ‘서시’(1941.11.20)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술술 읊을 수 있는 윤동주의 ‘서시’는 삶이 버겁고 힘들 때마다 가슴속에서 꺼내 읽는 단골 시다. 특히 추운 겨울밤 쓸쓸한 발걸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날이면 더욱 그러하다. 1930~40년대는 많은 문학인들이 변절했던 시기다. 전쟁의 광기 속에서 일제는 식민지 조선의 사람들과 모든 자원을 전쟁 도구로 이용했고, 한민족을 완전히 일본인으로 만드는 ‘민족말살정책’을 실시했다. 우리말과 글의 사용은 물론 우리 역사의 연구와 교육도 금지했다. 학교에서는 모든 수업을 일본어로 진행했고, 국사 시간에는 일본사를 배웠다. 한마디로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족은 존재하지 않게 만들었다. 조선인이 일본 천황에 충성을 다짐하는 ‘황국신민의 서’를 외워야 했고, 곳곳에 세워진 일본 신사에 참배해야 했으며, 창씨개명까지 강요당했던 그때. 아무 힘도 없는 나약한 시인은 괴로움과 부끄러움에 사무쳤다. 일제의 강압에 고통 받는 조국의 현실을 아파하며 삶과 존재의미를 찾고자 고뇌했다. 그리고 시대와 역사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향해 조용히 뚜벅뚜벅 나아갔다.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는 1941년 서울의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한 후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학문에 대한 열정으로 택한 길이었다. 하지만 침략국 일본에서의 삶은 처참했고, 시인에겐 한없는 괴로움과 부끄러움으로 다가왔다. 그 시기에 나온 명시가 바로 ‘쉽게 씌어진 시’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1942.6.3) 중에서 ‘육첩방 남의 나라’에서 시가 쉽게 쓰여 부끄러운 시인은 등불을 밝혀 아침을 기다린다. 삶의 순간순간마다 가야 할 길에 대해 고뇌하고 성찰했던 시인은 조국독립을 향한 희망으로 시를 마무리한다. ‘아침’은 조국독립이자 그리운 사람들과 재회하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리고 시인은 부끄러운 자신을 향해 작은 손을 건네며 눈물과 위안 섞인 마음으로 마침내 ‘악수’한다. 영화 ‘동주’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이다. 시를 쓰고 나서 1년 후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게 체포를 당하고, 1945년 2월 16일 후쿠오카 차가운 감옥에서 짧은 생을 마감했다.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생전에 시집 하나 내지 못했던 무명의 시인은 세월이 흘러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 또한 그의 시는 세계 8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극한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노래했던 민족시인 윤동주는 그가 사랑하고 노래했던 별이 되어 영원히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있다.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의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중략)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게외다. - ‘별 헤는 밤’ 중에서 (194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