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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1/03] 4월에 꼭 봐야 할 공연 l 음악극으로 만나는 전태일의 삶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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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은 세상으로  

가고 있을까 


글 | 편집부  사진 | 우란문화재단


  음악극 <태일>이 지난 2월 23일부터 첫 장기 공연으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5월 2일까지 계속된다. 2017년 첫 공연을 시작한 이래 열악한 환경에서도 입소문을 타며 매 공연 매진을 기록했던 작품이라, 장기 공연이 더욱 뜻깊다. 짧은 공연 기간으로 인해 그동안 ‘태일’을 만나지 못했던 관객도 작품을 향한 갈증을 해소하게 됐다. 


<태일>은 노동운동가 전태일의 이야기다. 그렇다고 영웅의 서사는 아니다. 장우성 작가는 “시대가 전태일에게 자꾸 무거운 짐을 지우는 기분”을 덜어내기 위해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비장한 인물이 아닌, 소소한 일상을 무대에 담아냈다. 


전태일의 일기에는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 약한 편이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이다”라고 쓴 내용이 있다. 그는 마음에 드는 동급생에게 잘 보이기 위해 애쓰는 소년이었고, 유머러스한 청년이었으며, 타인의 삶에 가슴 아파하는 동료였다. 신념 역시 그러했다. 전태일의 행동은 세상을 바꾸겠다는 거대한 구호가 아닌, 인간이기에 인간으로 대우받고 싶다는 소망에 가까웠다. 쉴 새 없이 일하면서도 당연한 권리를 인정받지 못했던 동료들의 아픈 삶이 그를 움직이게 했다.


소소한 일상이 전하는 더 큰 울림 


  작품에 등장하는 대사와 가사는 모두 전태일의 발언과 그에 대한 증언에서 나왔다. 그래서 울림이 더 크다. 배우들이 배역명이 아닌 ‘태일 목소리’와 ‘태일 외 목소리’로 소개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2인극으로 구성된 <태일>에서 배우들은 태일과 친구, 동료, 가족, 사랑에 이르기까지 여러 인간을 연기한다. 


배우들은 종종 내레이터가 되어 관객에게 묻는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할까요, 라고. 공연이 끝난 후에도 가슴을 울리는 질문들이다.


음악을 맡은 이선영 작곡가는 담백하고 쉬운 멜로디, 진솔한 가사에 집중했다. 건반과 기타로만 연주되는 10곡의 음악에는 꾸밈이 없고, 전태일의 말과 생각을 담은 가사는 강한 구호보다 큰 감동을 전한다. 


청년 전태일의 일생을 담담하고도 묵직하게 그려낼 태일 목소리에는 진선규, 박정원, 강기둥, 이봉준이 함께한다. 대학로에서 활약하다 영화 <범죄도시>, <극한직업>, 드라마 <킹덤>으로 유명 배우가 된 진선규는 첫 출연이다. 다만 지난해 같은 소재의 애니메이션 <태일이>에서 태일 아버지 역으로 더빙에 참여했었다. 박정원과 강기둥은 다시 태일 목소리로 참여한다. 뮤지컬 ‘베어 더 뮤지컬’, ‘광주’의 신예 이봉준이 새롭게 합류한다. 태일의 아군이었다가 그를 속상하게 하는 악역으로도 변신하는 등 태일 외 목소리에는 정운선, 한보라, 김국희, 백은혜가 캐스팅됐다.


50년간 이어온 메시지를 

다시 기억하며


음악극 <태일>은 공연계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세 명의 창작자(장우성 작가, 이선영 작곡가, 박소영 연출가)의 독립적인 프로젝트에서 시작되었다. ‘목소리 프로젝트’로 명명된 작업은 실존 인물의 다양한 자료를 중심으로, 영웅이라는 대상화가 아닌 있는 그대로의 평범한 삶을 전달하자는 취지다. 


<태일>이 처음 관객을 만난 건 2017년이다. 서울문화재단의 최초예술지원사업에 선정돼 트라이아웃 공연을 선보였고, 2018년 우란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본 공연을 올렸다. 당시 가변형 무대를 적극 활용해 공연이 진행되는 공간을 태일이 머물렀던 집, 학교, 공장으로 꾸민 것이 특징이었다. 2019년에는 전태일기념관에서 공연을 올리기도 했다.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공연된 듯하지만, 그간 <태일>이 걸어온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금전적 이익보다는 전태일의 뜻을 전하는 데 중점을 둔 작품이기에 제작사가 아닌 창작진과 배우를 중심으로 공연이 올랐고, 주로 100석을 밑도는 소극장에서 공연됐다. 매 시즌 공연 기간도 2주가 채 되지 않았다. 일손이 부족할 때는 창작진과 동료 배우들이 직접 나서 공연장 운영을 돕기도 했다. 이와 같은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작품은 관객의 입소문을 타고 매 공연 매진을 기록했다.


2년 만에 돌아온 <태일>을 총지휘한 박소영 연출가는 “조금이라도 많은 분들이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이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사실 태일이라는 인물 자체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더라. 한 분이라도 더 많은 분들이 태일에 대해 알게 되고, 그의 따뜻한 마음을 알게 된다면 좋을 것 같다. 그거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전태일의 메시지는 50년간 이어져 왔다. 지난해가 50주기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바람대로 나아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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