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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2/04] 4월에 꼭 봐야 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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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다큐멘터리 영화 ‘보드랍게’


위안부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질문

모두에게 전하는 공감과 위로


글 | 편집부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위안부 독립영화 ‘보드랍게’가 개봉됐다. 박문칠 감독과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이 공동으로 만든 ‘보드랍게’는 여든두 살 김순악 할머니의 전쟁 같은 일생을 말과 그림, 아름다운 꽃으로 피워낸 영화다.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브 영상, 여성 활동가들의 낭독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김순악의 아픔을 이 땅의 여성, 폭력 피해자까지 확대해 위로와 공감을 전하고 있다. 


“김순악, 김순옥, 왈패, 사다꼬, 위안부, 기생….”


영화는 고(故) 김순악 할머니가 여든두 해 동안 불렸던 이름들이 차례로 나오면서 시작한다. 하나, 둘, 셋… 열여덟 개의 이름. 대체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렇게 많은 이름으로 불렸던 걸까. 


영화를 따라가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먼저 주인공의 본명은 ‘김순악’이다. 원래 ‘김순옥’이라 지으려 했는데, 빈농 집안 출신에겐 걸맞지 않은 이름이라며 면서기가 임의로 ‘촌스럽게’ 이름을 바꿔버렸다. 참으로 기막힌 시대다.


그다음은 일본식 이름들이 줄줄이 열거된다. ‘사다코’, ‘데루코’, ‘요시코’, ‘마츠자케’. 모두 ‘위안부’ 시절에 불리던 이름들이다. 자신도 모르게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가 전쟁 같은 삶 속에 내던져진 어린 꽃망울. 


시간이 흘러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고 소녀는 살아남았다. 하지만 귀향을 포기했다. 차비가 모자랐고 돌아가도 앞길이 막막했다. 그래서 ‘기생’이 되었다. 나이 들어서는 주한미군 기지촌에서 미군들을 대상으로 술장사를 하면서 ‘마마상’이라 불렸고, 두 명의 아들이 생겨 먹고 살려고 남의 집 식모살이도 했다. 그렇게 고군분투하는 동안 ‘할매’가 되어갔다. 


아주 늦게야 고향 근처로 돌아왔지만, 그를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다. 외롭고 힘든 나날을 술을 벗 삼아 보냈다. 


“아이고 이런 거 내 속에만. 이런 이야기할 데가 없었는데. 나도 그런 일이 있었는데….”


그저 숨어 사는 게 최선이라고 여겼던 할머니는 다른 위안부 피해자, 활동가들과 만나면서 침묵을 깨고 세상으로 나온다. 


“사람을 이렇게 좀 만나서 이런 얘기 하는 데 통하는 데가 없으니까. 내 이야기 해가지고 ‘아이고 그랬구나’ ‘하이구, 애 묵었다’ 이렇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어.”


이후 증언과 캠페인 활동에 활발하게 참여한 김순악 할머니는 압화 공예로 꼭꼭 숨겨뒀던 ‘보드라운’ 마음을 열고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영화는 애니메이션과 아카이브 영상, 여성 활동가들의 낭독 같은 다양한 방식을 통해 김순악의 아픔을 이 땅의 여성, 폭력 피해자까지 확대해 따스하게 보듬고 있다.


통시적 방식 택해 

과거와 현재 자연스럽게 이어


이 작품은 기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들보다 새로운 시선과 얼굴, 질문을 던지며 관객들에게 저마다 공감과 위로를 전한다.


주인공 김순악은 1928년 경북 경산의 가장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열여섯 살의 천둥벌거숭이 소녀는 뒤숭숭한 마을 분위기에 공장에 취직하는 줄로만 알고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기차를 타고 만주 위안소로 끌려간다. 


해방 이후 유곽과 남의 집 식모살이 등 생존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며 치열하게 살아온 그에게 ‘보드랍게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말은 수십 년간 홀로 억세게 살아온 삶을 연상하게 한다.


영화 ‘보드랍게’는 박문칠 감독의 ‘마이 플레이스’, ‘파란나비효과’에 이은 3번째 장편 다큐멘터리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상과 제12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아름다운 기러기상’을 수상하는 등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박 감독은 “(사)정신대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에서 대구시 일본군 ‘위안부’ 역사기록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다큐멘터리 기록을 남기고 싶다는 의견을 전달받았다. 고민하던 중 희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 아카이브 자료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다양한 사진과 압화, 구술 등 자료를 보고 김순악 선생님에게 호기심을 갖게 됐다”며 탄생 과정을 전했다.


기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다룬 작품들이 위안소에서의 피해 사실 혹은 커밍아웃 이후 투사가 된 모습을 주로 담았다면, ‘보드랍게’는 해방 후 수십 년간 침묵을 강요당하며 삶이 곧 전쟁이었던 시간들을 조명해, 일본의 책임을 물을 뿐만 아니라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듣지 못한 한국사회의 문제를 짚는다. 


나아가 주인공 김순악의 삶을 입체적이고 통시적으로 조망하는 방식을 택해 과거의 여성 김순악과 현재를 살아가는 이 시대 여성들의 삶을 자연스럽게 이으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메인포스터와 함께 공개된 ‘당신의 이야기가 꽃이 되었다’는 태그라인은 일평생 숨겨왔던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말함으로써 여성에 대한 전쟁의 폭력과 야만성을 알린, 용기 있는 일성에 대한 존경과 경의의 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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