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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2/09] 한국 경마 100년 신바람 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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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가 주말이면 

서울경마장에 나타난 이유는?


1945년 해방 직후 신설동 서울경마장엔 주말이면 빠지지 않고 찾는 단골손님이 있었다. 바로 백범 김구 임시정부 주석. 김구뿐 아니다.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경마장을 찾았고, 이범석 초대 국무총리 등 주요 국가 지도자들의 주말 경마장 나들이도 이어졌다. 미군정 시기 초대 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 2대 군정장관 러치 소장 등은 물론 해공 신익희 선생,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를 놓은 조소앙 선생 등 유명 인사들이 해방 직후 경마장을 줄줄이 찾았다. 그 이유가 뭘까. 지난  6월 29일부터 7월 11일까지 서울 종로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한국 경마 100년 신바람 100선’ 전에서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우리나라 경마의 최초 기원은 1897년 고종 때 외국어학교 연합 운동회에서 열린 나귀 경주로 추정된다. 학생들이 자체적으로 열었던 나귀 경주는 1912년부터 금지됐지만,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기면서 최초의 공식 경마가 열렸다. 이번 특별전은 1897년 경마의 기원인 나귀 경주에서부터, 공식 경마가 시작된 이후 이어진 한국 경마 100년의 역사를 다뤘다.


경마는 처음 시작된 순간부터 관람객들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였다. 일제강점기 경성과 평양에서 1925년 열린 경마 입장객만 이틀에 걸쳐 3만 7,000명, 1927년 부산경마장 일일 입장객은 1만 2,000명이었다. 해방 직후 서울 경마장은 1만5,000여 명의 군중이 한 번에 결집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격동의 시간 속에서 정계 인사들은 대중과 접점을 마련하기 위한 장소로 경마장을 찾았다. 국가 지도자들의 방문은 관람객들에게도 또 다른 볼거리였다. 당시 한국마사회는 경마장을 자주 찾은 명사(名士)들의 이름을 따 ‘이승만상(賞)’ ’백범김구상’을 만들기도 했다.


1957년부터는 미스코리아가 우승자에게 시상하고 경품 추첨을 했다. 지금처럼 유명 배우나 아이돌 가수들이 없던 시절, 경마장을 찾은 사람들은 당시 최고 스타인 미스코리아를 조금이라도 가까운 거리에서 보려고 목을 쭉 내밀거나 난간에 매달렸다.


경기 우승자에겐 그 시대에 가장 진귀한 품목들이 하사됐다. 1897년 외국어학교 연합 운동회로 시작됐던 당나귀 경주의 상품은 외국 제품들이었다. 당시 대회를 다룬 독립신문 기사를 보면 상하이산 주머니칼, 명함갑, 은 시계 등 학생들이 최상품으로 쳤던 물건들이 우승 상품으로 주어졌다.


1922년 조선경마구락부가 생긴 뒤에는 춘계·추계 경마대회 우승자에게 당시 유행하던 ‘일본풍 동기(銅機)’를 시상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것은 3개. 트로피 모양의 그릇에 ‘춘계경마 웅기경마구락부 조선군사령관상’ 등 대회 이름과 시상자 이름을 새겼다. 관람객에겐 행운권 추첨을 통해 경품을 줬다. 일제강점기 때는 미쓰비시백화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상품권, 해방 이후에는 컬러 TV와 선풍기 같은 전자제품이 경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경마의 승부처이자 주인공인 말의 이름, 즉 마명(馬名)엔 우승을 향해 재빠르게 달리기 바라는 마주(馬主)의 소망이 반영됐다. 1961년 출마표에는 ‘만월대’ ‘은하수’ ‘철리마(천리마)’ ‘동언’ ‘공주’ ‘신막’ ‘몬부랑(몽블랑)’ 같은 이름이 등장한다. 1980년대 후반에 데뷔한 말들의 이름은 ‘가속도’ 그리고 ‘대견(大肩)’이었다.


현대로 오면 말 이름도 서구화된다. 2009년 데뷔해 17연승을 달성한 경주마 이름은 ‘미스터파크’, 2014년 데뷔해 한 경기를 제외하곤 단 한순간도 4위권 밖으로 밀려난 적 없는 명마의 이름은 ‘트리플나인’이었다. 한국마사회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말을 뽑는 프로그램인 ‘케이닉스’를 통해 들여온 말의 이름은 ‘닉스고’. 응원할 때 ‘고!고!’ 잘 달리자는 의미를 담았다. 전시 관계자는 “어르신들이 방문해 ‘젊은 시절에 응원했던 말을 여기서 사진으로 만나 반갑다’며 추억에 잠긴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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