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포토뉴스 [2022/10] 언문을 한글로 재탄생시킨 헐버트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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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문화의 원천 ‘한글’ 지켜낸 벽안의 외국인
글│신현웅(웅진재단 이사장·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한류 문화의 물결이 5대양 6대주에 울려 퍼지고 있다. K문화의 원천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한글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19세기 말 이후 한글 발전에 기여한 한글학자를 상찬한다. 훈민정음 창제 후 수백 년간 천대받아 온 언문(諺文)의 우수성을 발견하고 부녀자의 장롱에서 이를 꺼내 한글로 재탄생시킨 분이 있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에 초빙되어 온 벽안의 미국인 호머 헐버트다. 암흑기 조선의 혼을 깨우러 온 가브리엘 천사였다(김동진 역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 참고).
헐버트는 1893년 감리교 선교사로 다시 내한하여 배재학당 교사로 봉직하면서 언어학에 남다른 재능을 지닌 주시경 학생에게 서양 학문을 가르치고 함께 우리말과 글을 연구했다. 그는 책임을 맡고 있던 민간 유일 인쇄출판사인 삼문출판사에 가난한 제자 주시경을 사환으로 일하게 하고 서재필과 함께 창간한 최초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에 교열 보조로 참여시켰다. 주시경은 훈민정음을 한글로 명명하고 주어, 서술어, 목적어를 도입한 대한국어문법을 썼다. 주시경 선생이 가르친 국어강습소 제자들이 한글 발전에 중추 역할을 했다.
광화문 근처 주시경 마당에 사제의 정을 나누는 헐버트·주시경 조형물이 서 있다. 평생 아리랑 채보를 비롯한 한국 문화 연구와 한국 독립운동에 헌신한 헐버트는 1949년 광복절에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방한했으나 “나는 웨스트민스터사원에 묻히는 것보다 한국 땅에 묻히길 원한다”는 말을 남기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한강변 양화진에 묻혔다.

1987년 공업진흥청은 컴퓨터의 KS 한글코드를 완성형 2350자로 공시하였다. 정보화 시대에 한글의 표현을 제약하는 표준화라고 한글학회와 출판계의 비판 여론이 컸다. 문화부는 3벌식 타자기로 유명한 공병우 박사와 이기성 전자출판학회 회장의 자문을 얻어 조합형 한글코드 1만1,172자의 도입을 적극 제안하여 1992년 완성형과 조합형을 병행 사용하게 되었다. 시장 논리에 따라 완성형 코드는 사라지고 조합형 한글코드로 정착되었다. 국제규격 ISO10646도 한글 1만 1,172자를 채택하여 거의 모든 자연, 인간의 소리를 표현하게 되고 한글 세계화의 길이 열렸다. 제2의 훈민정음 창제라 불리는 한글의 과학화 프로젝트였다.
K문화의 외국인 팬덤이 전 세계 1억 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제 한글을 더 갈고 다듬어 코리아 르네상스 세기를 열어야 한다. 디지털 AI 시대에 100만 표제어 국어대사전, 전자사전 편찬과 함께 5억 어절 말뭉치 사업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 우리말과 글은 한국인의 문화 정체성이며 문화 국가의 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