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0/10] 우리말을 지켜낸 ‘언어 독립운동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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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모이
▪ 드라마 | 135분 | 2019년 1월 9일 개봉 | 12세 관람가 ▪ 감독 엄유나 | 출연 유해진(김판수), 윤계상(류정환) 등 영화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사건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재미와 감동을 맛있게 잘 버무린 작품이다. 참혹한 일제 강점기, 우리말이 금지된 시대에 우리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언어 독립운동가들’의 서사를 따라가다 보면, 한글의 존재가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한글을 사랑해야 한다는 백 마디 구호보다 이 영화 한 편이 주는 울림이 훨씬 크다. 10월 9일 한글날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로 추천한다. “스마마셍.” 경성역에 내린 류정환(윤계상 역)에게 부딪힌 아이가 죄송하다며 말한다. “너는 조선인인데 미안하다고 해야지, 스미마셍이 뭐냐?” 류정환이 말하자, 아이는 조선말을 모른다며 가버린다. 영화 <말모이>에서 나온 이 장면은 일본어 상용정책이 시행되면서 학교에서도 조선말을 가르치지 못하고, 우리 땅에서 우리말이 사라져 가던 일제 강점기 조선의 모습이다. 영화의 제목인 ‘말모이’는 주시경 선생이 남긴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에서 따온 말이다. 사전을 뜻하는 순우리말이자 극 중 사전을 만들기 위해 전국에서 우리말을 모았던 조선어학회 회원들의 비밀작전을 의미한다. 영화 <말모이>는 조선어학회 사건을 이야기의 중심으로 삼았다. 말과 마음이 모여 사전이 되다 가방 주인인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된다. 이후 판수는 한글을 익히는 조건으로 조선어학회 심부름꾼이 되고, 그들을 보며 언어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보통사람’이었던 판수가 겨레의 말과 글을 지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깨닫고 희생하는 과정은 가슴 뭉클한 감동을 전한다. 적절한 무게감을 가진 유머가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 배우 유해진이기에 가능한 연기다. 영화는 우리말을 지켜내기 위해 힘쓴 모든 사람들을 한 명씩 끄집어낸다. 하루하루 삶이 버겁지만 ‘우리말을 지키는 선생님들’ 먼저 피신하라며 몸을 던지는 보통사람들, 목숨을 걸고 우리말을 지켜내는 한글학자들. 그들의 모습을 보며 칼이나 총을 들진 않았지만, 그 누구보다 용감한 독립투사들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한글이 지금처럼 올곧은 모습으로 전해지지 못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찡한 감사함이 몰려온다. 한글날에 가장 어울리는 영화 10월 9일은 누구나 알다시피 한글날이다. 한글날은 일제 강점기인 1929년 제정되었다. 당시 국권을 빼앗기고 억압에 눌려 위축되어 있던 민족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조선어연구회가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한 것이 시초가 되었다. 그 후 1928년 ‘한글날’로 이름을 바꾸었고, 광복 후 양력 10월 9일로 확정되었다. 한글날을 만든 단체가 조선어학회의 전신인 조선어연구회라니, 영화 <말모이>가 더 의미 있게 느껴진다. 세계 문자 역사상 가장 과학적이고 우수한 언어로 칭송받는 훈민정음의 창제부터 한글날 제정과 조선어학회 사건, 그리고 일제 강점기 언어 독립군들의 삶까지 이어지는 역사를 생각하면서 영화를 본다면 더 큰 재미와 감동을 만날 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