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로 만나는 세상 [2020/11] 심남일 의병장 110주기를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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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가을의 전설
글 │ 심만섭(심남일 의병장의 손자)
지난 10월 4일은 심남일 의병장의 110주기였습니다. 1910년 10월에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선열의 반열에 오르셨는데, 같은 해 8월 29일은 경술국치일이어서 올해는 경술국치 11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수모스럽더라도 기억하는 역사는 반복되지 않을 것입니다. 작년과 재작년에는 심남일 의병장의 추모식을 서부보훈지청, 함평군청, 군의회, 월야면 번영회 등의 도움으로 성대하게 치를 수 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 19로 추모식이 취소되어 이렇게 지면으로나마 소개하고자 합니다. 의향 함평의 커다란 추춧돌, 심남일 의병장 정미년(1907년) 가을에 거병하시므로 일컬어 정미의병이라 합니다. 함평군 신광면 독동이라는 노령산맥 끝자락 깊은 산중에서 거병하시고 훈련과 전열을 정비한 다음, 그 이듬해(1908년)부터 본격적으로 항일 전쟁을 치르셨습니다. 영산포와 목포 등에 포진하고 있는 일본 헌병대 등을 주요 목표로 삼으셨고 나주, 화순, 보성의 호남 남부 산지를 배후로 하는 유격전을 전략적으로 펼치시므로 화력에 열세를 극복하고 큰 전공을 여러 차례 세우셨습니다. 일제에 저항한 마지막 전쟁을 3년여에 걸쳐 펼치시다 일제 정규군에 의해 1909년 10월 9일 화순군 바람재에서 밀정의 신고로 피체되시어 광주감옥과 대구감옥에서 옥중담판으로 일제의 부당함을 통열히 꾸짖으셨습니다. 1910년 8월 일제의 야욕과 기울어 가는 나라를 걱정하시다가 대구공소원 상고를 취하하시고 10월 4일에 순국하셨습니다. 왜놈을 쓸지 못하면 살아 돌아오지 않으리 그 시절 우리의 선조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은 모르고 대체 무얼하다가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냐고 하는 말많은 후세들에게 “우리는 개량 화승총과 권총, 노획한 무기, 칼을 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비록 일제의 신무기에 패하기는 했지만 무력하게 앉아서 나라를 빼앗기지 않았다.”라는 의병정신을 보여주셨습니다. 심남일 의병장께서는 여러 편의 한시를 남겨 주셨습니다. 그 중에 거병하시며 남기신 싯구에 “왜놈들을 쓸어버리지 못한다면 맹세코 모래밭에 죽어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하셨는데, 말씀처럼 그해 가을에 그렇게 교수형으로 순국하셨고 그래서 슬픈 가을의 전설로 남았습니다. 올해는 코로나 19의 창궐로 추모식을 치르지 못하게 되었으니 또한 슬픈 가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당신께서 남기신 시에 “내 돌아갈 길 기약하기 어려우나 해해마다 꽃이나 잘 피기 바라노라.”라고 하심으로 한민족사의 무궁함을 예견하심으로 위로가 됩니다. 심남일 의병장은 ? 서당 훈장이 의병을 일으키다 물론 일제는 의병부대들을 탄압하기 위해 각종 군사적 조치나 회유 등을 시도했고, 1908년에는 결국 여러 의병장들이 체포되거나 전사해 호남창의회맹소도 해체될 위기에 처한다. 이에 심남일은 다시 의병들을 모아 다른 의병부대를 창설해 활동하기 시작한다. 격고문을 보고 많은 군소 의병단체들이 심남일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일제는 일진회를 동원해 의병들을 수색하고, 대규모 부대를 투입해 의병부대를 진압한다. 결국 체포된 심남일은 광주감옥에서 심문을 받는다. 심남일은 체포된 지 1년 만에 순국한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