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0/06] 한국광복군동지회장 김영관 애국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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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광복군동지회 회장 김영관 애국지사
나라 잃은 설움,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마지막 광복군의 한 마디
글 | 편집부
“통한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어 오늘과 내일을 대비하자.” 이는 1924년 9월 15일에 경기도 포천에서 태어나 현재 망백을 바라보고 있는 김영관(96세) 애국지사가 후대에 전하고 싶은 한마디다. 한국광복군 출신의 김영관 지사는 1945년 2월부터 그해 8월에 해방이 올 때까지 중국군과 합동으로 유격전을 전개한 바 있다. 그는 “통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인터뷰 내내 강조하며, 80여년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생하고 또렸하게 기억해 내고 이야기했다. 나라없는 자의 설움과 고통, 나에게도 조국이 있다 1924년 9월 15일에 경기도 포천 영평에서 태어난 김영관 지사는 올해 96세를 맞이했다. 99세를 가리키는 백수(白壽)가 얼마 남지 않은 때다. 100세 시대를 한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김영관 지사는 지금도 변함없이 정정하고 꼿꼿하다. 생존 애국지사가 얼마 남지 않은 지금, 김 지사에게 주어진 사명감은 더욱더 커지기만 한다. 김영관 지사가 태어난 시대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었다. 어두운 시절에도 총명함을 잃지 않ᄋᆞᆻ던 김 지사는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의 전신이었던 경성사범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일본군은 많은 한국인 청년을 강제 징병해 전쟁에 투입하고 있었다. 그나마 사범학교에 다니면 징병을 연기할 수 있었기에, 김 지사는 사범학교 진학을 결심했다. 하지만 일제는 경성사범학교 입학하고 다섯 달이 지난 1944년 9월에 징병통지서를 받아든다. “경성사범학교는 현재의 초급학교에 해당했습니다. 사범학교는 징집 연기가 되는데 왜 징병통지서가 나왔는지 물었는데 ‘나라를 위해 봉사할 때가 아니냐’는 말만 들었어요. 그런데 알고 보니 당시 사범학교에 다니던 일본인은 물론 한국인 중에서도 저만 징집이 되었습니다.” 입대를 하고 한 달 동안 함흥에서 신병교육을 받은 김 지사는 중국 둥양에 있는 부대로 배치되었다. 중국에 있으면서 김 지사는 보통학교 5학년 때 조선인 친구들로부터 ‘중경에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있다’는 소식을 들은 바 있었다. 그 말을 듣고 나라 없는 백성은 아니라는 감격에 젖었던 일을 떠올렸던 김영관 지사. 그래서 중국으로 자대배치를 받으면 어떻게 해서든 중경의 임시정부로 가리라 결심했다. 천신만고 끝에 합류한 광복군, 그리고 국내 침투훈련에 박차 한국인 40여 명이 함흥으로 입대해 중국 현지에서 각지로 흩어졌다. 일본군에서 벗어날 계획을 세운 김영관 지사는 한 달 동안 훈련을 받으며 일본군의 위치와 지형지물을 판단해 1944년 12월 3일에 탈출했다. 가는 동안 풍토병에 걸려 생사를 오갈 정도로 위중한 순간도 겪었지만, 결국 김 지사는 천신만고 끝에 강서성(江西省) 중국군 제3전구 사령부에 파견 나온 광복군 제1지대 제2구대에 도착했다. 여러 곳에서 다양한 이유로 차출되었던 열다섯 명가량의 한국인이 태극기를 흔들며 김 지사를 반겼다. 아직 멜로디아 없어 스코틀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의 가락에 맞추어 들려오는 애국가. 비장하면서도 애잔함이 묻어나는 애국가 노래소리에 김 지사의 눈에서 눈물이 솟았다. “중경에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현지 입대를 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게 광복군에 입대했는데, 그곳이 바로 최전선이었습니다. 비록 동네는 작았지만 정보를 교환하는 활동이 이루어져 핵심에 있던 분들은 그곳을 임시정부의 축소판이라고 부르기도 했어요.” 이후로 김 지사는 강서성 상요의 광복군 징모 제3분처와 함께 활동하며 3개월 동안 국내침투훈련을 받았다. 그때 광복군은 중국군과 영국군, 미군의 핵심 사령부에서 근무하며 정보 핵심을 다루었다. 중요한 임무를 맡은 만큼 광복군의 역할과 영향력도 작지 않았다. 대기 상태로 훈련을 받던 중에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찾아왔다. 김 지사는 광복군들은 2~3일 전에 이미 해방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임시정부가 공식 해산된 1946년 5월, 광복군도 함께 해산했다. 세월이 흘러도 끓어오르는 애국심, 순국선열의 헌신에 대한 공감 “남북 분단이라는 한계가 있었지만, 그럴수록 우리가 더욱더 과거의 아픈 역사를 기억하고 단결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대 정권 역시 경제적 발전에만 치중할 뿐, 이 문제에 정치적인 역량을 쏟아 붓지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한국이 세계가 놀랄 만큼 성장했지만, 여전히 남북통일 등의 과제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정신을 집중해 쓰라린 역사를 반복하지 않아야 합니다.” 생존 애국지사로서 김영관 지사는 순국선열에 대한 고마움도 전했다. 일본군에서 탈출해 중국군대로 가는 동안 아무도 보호해줄 곳이 없는 위기와 슬픔을 뼈저리게 느꼈다는 김영관 지사.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순국선열의 헌신을 깊이 공감하고 있다. 그래서 더욱더 지난 역사를 전혀 반성하지 않는 일본에 대한 분노가 크다. “일본은 침략근성을 버리지 않은 국가입니다. 솔직한 말로 일본은 진정 어린 반성을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주권을 일본이 강제로 강탈했는데도 이제까지 공식적인 사과도 없고, 거꾸로 남북이 분단되어 있는 우리의 약점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지정학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일본과 완전히 거리를 두기는 어렵겠지만, 그래서 더욱더 일본에 대해서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후대에 전하는 당부…통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 김영관 지사는 “통한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오늘과 내일을 대비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당시 나라를 잃은 원인이 무엇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사리를 앞세운 파당 회의와 부정부패, 국제정세에 대한 둔감, 국민의 분열과 무관심 등이 합쳐서 그런 아픈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를 예방하는 방법으로 김영관 지사는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할 것’, ‘호언장담이나 거대담론만 떠들지 말고 각자 주위의 모순되고 불합리한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시정하고 실천할 것’을 강조했다. 변함없이 끓는 애국심으로 당부하는 김영관 지사의 말에서 남다른 울림이 전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