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열전 [2021/11] 하와이 대한부인구제회서 독립운동에 매진한 전수산 지사
페이지 정보
본문
이국땅에서 빛도 없이 억척스레 독립자금 모은 여인들
아낌없는 후원으로 조국 독립의 초석 놓다
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개화기 신여성으로 조선에서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던 전수산 지사는 1916년 6월 19일, 하와이 호놀루루항에 도착했다. 이후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어 공채를 발행하자 15달러 상당의 공채를 매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지원하였다. 이어 1919년 4월 1일 하와이 부인단체인 대한부인구제회 회원으로 가입하여 국권회복과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을 모아 임시정부를 돕는 데 앞장섰으며, 어려운 생활을 하는 조국의 애국지사 가족들을 돕는 구제금을 송금하는 등 조국애를 유감없이 발휘하였다.
전수산(1894. 5. 23~1969. 6. 19) 지사의 외손자인 티모시 최 선생(75세) 을 만난 것은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서였다.(2017. 4. 13) 하와이 호눌루루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약속 장소인 한국학연구소로 달려갔다. 하와이로 출발하기 전에 대담 요청을 했더니 8개월 전 허리 수술을 해서 극히 잠시 동안만 가능하다고 해서 걱정했었는데 막상 만나 보니 우려했던 것보다 건강해보여 안심이 되었다. 티모시 최 선생은 지팡이를 짚은 채로 벌써 도착해서 필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화학당 출신 엘리트 여성
“전수산 지사님은 뭐라고 할까요? 굉장히 꼼꼼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이걸 보시면 알게 됩니다.” 이날 대담에 함께한 분은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 이덕희 소장으로 티모시 최 선생의 통역도 맡아 수고해주었다. 이덕희 소장은 전수산 지사의 유품이 담긴 커다란 상자 속에서 각종 졸업장이며 흑백 사진 등을 꺼내 일일이 설명해주었다. 그 가운데 이화학당 졸업증서에는 나이 17세라고 적혀 있으며 1911년 3월 18일자로 발행된 것이었다. 이덕희 소장의 말은 이어졌다.
“전수산 지사님은 평양에서 하와이로 건너오시기 전 이화학당과 진명여학교에서 받았던 졸업장이며 수업증서(각 학년 진급시에 받는 증서), 성적 우수상장 등을 꼼꼼하게 챙겨 가지고 오신 분입니다. 전수산 지사 덕에 당시 조국의 여학교 관련 수업 과목 등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하와이로 건너 오셔서도 당시 하와이에서 발행하던 <신한국보>와 <국민보> 등 신문을 구독하며 꼼꼼하게 모아둔 덕에 오늘날 사료로서 크게 활용되고 있습니다.”
독립전쟁에 필요한 후원금 모아
상해 임시정부 돕는 데 앞장

“외할머니의 독립운동은 굉장히 적극적이셨는데 특히 독립자금을 억척스레 모아서 임시정부를 지원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외할머니가 남기신 유품 가운데는 당시 임시정부에서 받은 각종 증명서 등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요. 저는 외할머니의 유품을 모두 하와이대학 한국학연구소에 기증했습니다.”
이는 티모시 최 선생의 이야기다.
전수산 지사 손자,
외할머니 자료 한국학연구소에 기증

“외할머니는 숨지기 전날까지 일기를 쓰셨습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사셨다는 방증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기억하는 외할머니는 누구보다도 부지런하시고 활동적이셨으며 그리고 우아한 모습을 잃지 않았던 분이셨습니다.”
허리수술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는 상황인데도 티모시 최 선생은 고국에서 전수산 외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자 달려간 필자를 위해 1시간여나 되는 장시간의 대담에 응해주었다. 대담을 마치면서 하와이에 묻혀있는 전수산 지사의 무덤을 찾아 가보고 싶다는 필자의 말에 그는 ‘SUSAN CHUN LEE’라는 영문이름과 함께 외할머니가 잠들어 있는 공원묘지의 약도를 그려 주었다.
호놀루루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에서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의 명복을 빌다
전수산 지사가 잠들어 있는 호놀루루의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Diamond Head Memorial Park)를 찾은 것은 티모시 최 선생과의 대담을 마친 며칠 뒤였다.(2017. 4. 18) 무덤을 찾은 시각은 오전 10시 무렵이었지만 태양은 이미 한여름처럼 뜨거운 열기를 뿜고 있었다. 봉분이라든가 묘지석이 없는 미국의 공원묘지는 그야말로 하나의 공원(PARK)처럼 평온했다. 언뜻 보기에는 푸른 잔디밭 같지만 자세히 가보면 바닥에 묻힌 사람의 작은 묘지석이 박혀 있다. 외손자인 티모시 최 선생이 자세한 약도를 그려주었지만 막상 도착해보니 워낙 넓은 곳이라 찾을 길이 없어 무덤 관리소에 들러 안내를 받았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빛났다. 독립운동사에서 조명을 받지 못한 여성독립운동가들, 하와이에서 활약한 전수산 지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필자는 무덤 앞에 마련된 작은 물통 안에 사온 꽃을 정성껏 바치고 큰절을 올렸다.
전수산 지사는 조국을 일제에 강탈당하고 6년이 지난 뒤인 1916년 하와이 땅으로 건너가 모진 고통을 이겨내며 상해 임시정부에 아낌없는 물질적 후원을 통해 조국 독립의 초석을 놓았던 여성독립운동가다. 다이아몬드헤드 공원묘지에서 필자는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리고 하와이 땅에서 숨져간 전수산 지사를 비롯한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들의 명복을 빌었다. (전수산 지사 2002년 건국포장 추서)
● 원고에 실린 사진 중 일부는 이덕희 하와이 한인이민연구소장의 제공임을 밝힙니다.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19권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