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People

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1/12] 대한민국역사박물관 남희숙 관장

페이지 정보

본문

기억과 기록 그러모아 대한민국 역사를 담아낸 공간 


기억이 기록이 되고 

기록은 역사가 되어 우리 곁에


글·사진 | 편집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현재 서 있는 곳에서부터 역사가 담겨있다. 조선시대에는 중앙행정기구인 육조 중 이조(총무행정, 인사)가 있던 곳이었다. 6·25 전쟁이 끝난 후 미국의 원조로 당시 최첨단 쌍둥이 빌딩이 지어졌는데 그중 하나가 현재의 미국대사관 건물이었고 나머지 하나가 박물관 건물이었다. 1961년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후에는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무실로 쓰이다가 우리나라 경제개발의 산실인 경제기획원을 거쳐 문화부가 사용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청사건물을 리모델링하면서 현재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건립되었다. 이렇듯 유서 깊은 장소에 우뚝 서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근대국가 건설을 준비하기 시작한 19세기 말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과 정부수립, 6·25전쟁, 산업화와 경제개발, 민주주의 실현과 현재의 한류 등의 역사를 담고 있다. 

사료에서 오는 감동과 사명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환희의 순간도 많았지만 어둡고 아픈 역사도 많아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그 모든 순간의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하고 균형 잡힌 해석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호 이해와 공존을 통해 화합을 이뤄낼 수 있는 문화의 장이 되고자 합니다.”


2021년 5월 4대 관장으로 취임한 남희숙 관장이 2012년 6월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으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시작과 함께 근무를 시작한 지 어느덧 10년을 앞두고 있다.


민주화 물결이 한창이었던 학부 생활을 시작으로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기까지 남희숙 관장의 관심사는 언제나 ‘역사를 온몸으로 헤쳐 나갔던 민중들의 삶’이었기에 대학에 남기보다는 대중들과 직접 호흡할 수 있는 공직인 학예연구직의 길을 선택한 것이 지금의 남희숙 관장을 있게 한 첫걸음이었다.


“박사 과정 중에 규장각에서 고문서 해제위원으로 일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서고에 보관되어 있던 책들을 하나씩 꺼내어 내용을 정리하고 소개하는 업무였는데 잘 보관된 사료에서 느껴지는 감동이 정말 좋았어요.”


그렇게 사료 보관에 관심을 가질 무렵 국가기록원 학예사 모집 공고를 보게 되었고 1999년부터 국가기록원에 근무하며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중요기록을 정리, 선별, 평가하는 업무를 담당했다. 규장각과는 또 다른 감동과 사명감이 찾아온 순간이었다.


“현대사를 거시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리고 현대 사료를 잘 보존해서 후대에게 넘겨주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남희숙 관장은 수십 년 쌓인 자료를 쉽게 찾아볼 수 있게 시스템화하고자 연구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기록원 연수과정을 통해 효율적인 현대사 기록관리 방법론, 현대사 전시기법 등을 학습, 이를 적용하여 국가기록원 기록정보 서비스 체계 개선을 제안 및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다.


우리 역사를 소개하고자 선 자리


그 후 2009년 대통령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가 만들어졌을 때 국가의 브랜드를 어떻게 소개하는지 보고 싶은 욕심에 적극적으로 자원했고 3년간 근무하면서 우리 역사와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공헌했다. “그동안 배워왔던 역사를 어떻게 대중화할 것인지,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인들에게까지 어떻게 알릴 것인지 고민하는 시기였어요.”


고민과 노력은 전국 9개의 서원과 7개 전통사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성공이라는 결실로 꽃피웠다. 큰 보람을 느낀 일이었지만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나아가고 싶었기에 2012년 대한민국역사박물관건립추진단에 자원했고 건립 이후 조사연구과장, 연구기획과장, 자료관리과장을 맡아 현대사 자료의 수집 및 서비스, 조사 연구, 전시, 문화행사, 교육 등 다방면의 업무를 수행했다.


“역사학을 공부했고 사료를 다루고 브랜드 관리를 배워 온 모든 길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소개하라는 사명이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료 수집 업무를 담당했을 때에는 국내외 한국 현대사 자료들을 새롭게 발굴했다. 그간 주목하지 않았던 터키, 콜롬비아 등 9개 6·25전쟁 참전국들의 미공개 자료들을 수집하고 해당국 참전용사들의 구술을 채록하여 6·25전쟁을 더욱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 자료 서비스 업무에서는 국립박물관 최초로 주제 콜렉션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다. 자료를 주제별로 정리하여 목록화하고 해제를 작성해 이용자들이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홈페이지를 통해 서비스하는 방식이다. 또한 자료 기증 확산을 위해 국립박물관 최초로 홈페이지에 기증자를 예우하는 ‘기증자료관’ 서브 사이트를 구축했다.


연구, 전시, 마케팅 등 박물관 업무 총망라


조사연구 업무에서는 학계와의 협업을 통해 연구결과물을 축적하고 국민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현대사의 주요 이슈와 쟁점 주제들을 기획하여 <분단>, <민주화> 등 단행본 총 21권을 발간했으며 시민 교양을 위한 18권의 <교양총서>, 현대사 학계의 연구동향과 논쟁을 빠르고 쉽게 국내외에 전달할 수 있는 국문저널 <현대사광장>과 영문저널 <The Journal of Contemporary Korean Studies> 등을 창간했다. 그외에도 박물관을 대외적으로 널리 알릴 수 있는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는데 특히 <자유와 통합의 새로운 미래: 중부 유럽과 한반도>는 사회주의에서 자유민주주의로 체제 전환에 성공한 중부 유럽 4개국의 사례를 조명하여 한반도 통일의 시사점을 도출하였고, 레흐 바웬사 전(前) 폴란드 대통령을 초청하여 많은 주목을 받기도 했다.


전시 업무에서는 독일, 미국, 브라질, 헝가리 등 외국 기관과의 공동주최 교류특별전 등 총 7건의 특별전을 기획, 개최했다.


그외에도 박물관의 사회적 역할과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하기 위해 홍보 마케팅을 다변화하는 데 앞장섰다. 그중 2019년 KBS와 공동으로 제작했던 ‘나의 독립영웅 100인’ 프로그램은 6개월 동안 총 100회를 방영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3·1운동 시기부터 1945년 광복까지 활동했던 독립운동가 중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100명의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였고 문재인 대통령, 문희상 국회의장, 김명수 대법원장, 최불암 배우, 이영표 축구선수, 법륜 스님 등이 프리젠터로 참여하여 5분 정도 영상 속에서 독립운동가를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최고 시청률 10%를 기록하는 등 짧은 영상으로 임팩트 있게 시청자들에게 다가갔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박물관 홈페이지, 유튜브 등을 통해 여전히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안중근 의사 특별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는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남희숙 관장이 손꼽는 전시는 안중근 의사에 관한 두 차례의 특별전이다. 


광복 70주년이었던 2015년 3~6월, ‘울림 안중근을 만나다’ 특별전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사상이 우리에게 주는 마음의 울림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 의거 전후 안중근 의사의 모습, 의거의 목적, 국권회복과 동양평화에 대한 사상 등을 조명하였으며 사진, 엽서, 편지, 책자, 유묵 등을 전시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안중근 의사를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2017년 3~6월 ‘안중근 옥중 유묵 특별전: 동포에게 고함’ 전에서는 2016년 경매를 통해 구입한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와 안중근의사숭모회에서 기탁한 ‘志士仁人 殺身成仁’의 옥중 유묵 2점을 공개했다. 


‘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 황금 백만냥도 자식 하나 가르침만 못하다’는 안중근 의사가 뤼순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안 의사를 담당했던 나카무라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사재를 털어 학교를 설립, 교육구국운동에 힘을 쏟았던 교육가로서의 안중근 의사의 철학을 느낄 수 있으며 ‘志士仁人 殺身成仁: 높은 뜻을 지닌 선비와 어진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일본인 고마쓰 료가 가보로 보관하고 있다가 기증한 유묵을 숭모회에서 박물관에 기탁한 것으로 유묵의 낙관 자리에 찍은 손바닥 자국에는 약지 한 마디가 없음을 볼 수 있다. 1909년 죽음으로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손가락 끊어 맹세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전시 모두 안중근 의사의 다양한 생의 일면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소중한 전시였다.


디지털 시대 박물관의 역할


코로나19 이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역시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다. 박물관 전시에 대한 패러다임이 크게 바뀌고 있다.


“언택트 시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 단기적으로는 우수한 온라인 콘텐츠들을 더 많이 그리고 지속적으로 생산해야 합니다.” 남희숙 관장은 몇 년 전 박물관에서 제작했던 6·25전쟁 동영상을 예시로 들었다. 유튜브에서 450만 회 이상의 누적 조회수를 보이고 있는 이 영상은 희귀 영상들을 적극적으로 수집하고 관련 학자들의 자문을 받아 제작한 영상으로 우수한 콘텐츠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은 사례이다.

전시 역시 오프라인 전시뿐만 아니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온라인 전용 전시를 별도로 기획해야 한다. “2022년 메타버스 공간에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전시공간을 오픈하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가상공간에서의 활동을 준비해야 할 시기가 되었어요.”


중장기적으로는 박물관 소장자료를 활용해서 인공지능 AI가 학습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만들고 그 데이터로 전시, 교육 등을 위한 온라인 콘텐츠를 제작하는 방식도 검토하고자 한다.


“디지털 시대는 국경이 없어요. 가상공간은 시공간의 제약이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이제 관람객을 우리 국민들만으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을 대상으로 해야지요.” 남희숙 관장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스토리 중심의 박물관으로 성장시킴으로써 4차 산업혁명시대에는 더욱 활용도가 높은 곳으로 이끌고자 한다. 흩어져 있는 자료들을 엮어 역사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은 무궁무진한 확장성과 창조성을 가진다. 이러한 콘텐츠들에 한글과 영어를 병기함으로써 세계인들이 활용하는 콘텐츠로 나아간다면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세계인들이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해주는 역사문화 허브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을 바라보는 자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다. 첨단 전시기법을 활용한 ‘미디어 전시실’ 오픈을 앞두고 있으며 광화문 광장의 재정비에 발맞추어 광화시대(光化時代, Age of Light) 프로젝트를 추진, 최첨단 디지털 사이니지로 구현되는 광화 벽화를 준비하고 있다. 또한 19세기 말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시대 순으로 나열하여 보여주는 5층 역사관의 경우 100년 이상의 역사를 한 층에서 모두 다루다보니 중요한 주제에 대한 심층 분석 전시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부족했던 점을 보완하고자 개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2022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 개관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지난 10년을 되돌아보고 앞으로의 10년을 계획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이 자리에 서게 되어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향후 새로운 10년을 위한 박물관 발전의 조그만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싶습니다.”


2021년 12월에는 광복 이후 지금까지 광화문 공간의 변화 양상과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는 전시가 계획되어 있으며 2022년에는 광복 이후 베스트셀러가 되었던 책들을 통해 우리 국민들이 어떤 주제에 관심을 가졌는지 살펴보는 전시, 코로나19 펜데믹을 경험하면서 재난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전시 등을 준비하고 있다. 또한 교육 측면에서도 프로그램의 다양화는 물론 비대면 교육을 대폭 확대하여 선택의 폭을 넓게 하고자 한다.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박물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외형도 내용도 충실한 ‘문질빈빈(文質彬彬)’을 이루어내야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물관 내외부 공간을 국민친화적으로 개선하여 광화문의 진정한 명품 역사문화공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