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국 People

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2/01] 신주백 독립기념관 독립운동사연구소장

페이지 정보

본문

식민지 지배와 항일 저항의 역사 온전하게 전하고 싶어 


대한민국이 있기까지 독립전쟁을 재조명하고

분단극복의 미래로 나아가는 길


글·사진 | 편집부 


독립기념관의 주 건물인 겨레의집을 중심으로 중앙 정면에는 겨레의 탑이,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방향에는 민족의 비상을 표현하는 통일염원의 동상이, 석양이 저무는 서쪽 방향에는 지하 5m 깊이에 반 매장한 방식의 조선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이 위치해 있다. “공간을 어떻게 구성하고 그 각각의 구성 요소들을 어떻게 배치할 것인지, 어떤 디자인으로 건물을 지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행위 자체가 메모리얼(Memorial)이며 기념관의 기능 그 자체입니다. 이 모든 공간과 구성이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지요.”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앞에서 마주한 신주백 연구소장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막연하게 찾았던 독립기념관을 바라보는 시야가 새로이 열린다. 민족의 자주와 자립을 향한 의지가 담긴 겨레의 발자취를 차근차근 따라가 본다.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의 설립


제국주의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모든 나라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났지만 전 민족이 들고 일어나 독립운동을 전개한 나라도, 연합국으로부터 식민 상태에서 독립을 약속받은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독립 후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기념하는 독립기념관을 건립한 나라 역시 한국이 대표적이다. 1982년 건립 발기대회 이후 국민의 기부로 1987년 개관되었고 오늘에 이른 독립기념관은 식민지 지배라는 수난과 시련을 이겨낸 민족의 저력을 확인하는 곳이자 불가능하다고 생각되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낸 독립정신을 재생산하는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현재 신주백 연구소장이 이끌고 있는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는 1987년 독립기념관 개관과 함께 발걸음을 시작했다. 한국독립운동의 정신과 가치를 학술적으로 연구하여 독립운동 연구를 선도하고 국민통합에 이바지함으로써 국내외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열어가는 데 기여하고자 설립되었다. 이를 위해 국내외 독립운동 관련 자료수집 및 분석, 학술연구총서 간행, 학술회의 및 학술논문집 발간, 자료총서 발간,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편찬 등 연구 성과의 대중화사업과 해외 연구기관 및 대학과의 정기 학술교류, 연구 성과의 외국어판 발간, 중국 내 한국독립운동 관련 전시관 안내 해설사의 초빙 교육, 일본 역사 왜곡문제 대응과 일본어판 간행물 발간 등 한국독립운동의 세계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우리 독립운동사연구소에도 35년의 역사가 담겼어요. 1987년 설립 당시의 연구소는 독립운동과 관련한 사람과 조직의 역사를 복원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독립운동사의 전체적 흐름 사이사이의 빈칸을 메우는 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지요. 그런데 이제는 연구소의 역할이 달라야 합니다. 냉전체제가 해체되며 이념대결의 시대가 끝났어요. 세계가 물리적으로 정서적으로 매우 가까워지는 동시에, 사람 개개인의 가치를 존중하는 공정의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어요. 우리나라만 보아도 경제성장과 정치적 민주화를 이미 달성하고 이제는 추격국가에서 선도국가로 위상이 바뀌었어요. 이에 우리 연구소도 35년의 역사를 바탕으로 독립과 민주주의의 연결 고리를 찾고 양자를 결합해야 하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어요. 우리의 경험을 바탕으로 보편적 가치를 말할 때가 되었어요. 남북한이 오랜 기간의 화해와 협력에 노력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구현함으로써 우리의 미래를 말하는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구하는 연구소’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


2019년 4월 연구소장으로 부임한 신주백 소장의 모토는 ‘연구하는 연구소’였다. 2019년은 2000년대 들어 축소되어 왔던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새로이 날개를 펴는 해이기도 했다. 연구소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의 하나로 비상근직이었던 소장의 첫 상근화가 이루어졌고 때맞추어 부임한 신주백 소장이 부임하여 이를 위한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시작은 연구원 1인당 1년에 한편 이상의 학술논문을 쓰는 것이었고 2020년과 2021년은 평균 1인 1편의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2021년 12월 연구소의 연구역량을 기본으로 발간한 연구총서 제2집 「1920년 독립전쟁과 사회」, 제3집 「한국광복군의 일상과 기억」 역시 신주백 소장과 함께한 눈부신 성과다. 이 연구총서들은 그동안 한국독립전쟁사 연구에서 소홀히 다루어 왔던 군사사·사회사·일상사·기억 등의 문제들을 중심으로 독립전쟁과 한국광복군 연구를 새롭게 접근하고자 노력한 결과물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연구소에서는 앞으로도 1년에 2편의 연구총서가 발간될 예정이다. 특히 기존의 연구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새로운 연구를 하고자 한다. 아웃소싱방식의 학술회의보다는 내부 역량을 바탕으로 하고자 연구팀>학술회의>학술지 게제>연구총서 간행이라는 선순환구조를 정착시킬 생각이다. 


신주백 소장이 취임한 후 새롭게 시작한 사업 중 하나는 일제강점기 학생운동 및 학교사 자료 수집 및 분석사업이다. 특히 학교법인 대륜교육재단이 매우 적극적으로 취지에 공감하여 무려 370여 점의 생생한 현장교육 자료를 위탁한 일은 두고두고 회자되는 큰 사건이었다.


“독립운동과 관련된 학교들의 역사를 기록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대부분의 학교는 관리가 어렵다보니 보관이 되지 않고 있었어요. 수소문하던 와중에 반가운 연락이 있었습니다.” 대륜고등학교에서 백주년 기념행사를 담당하고 있던 석은동 교사의 연락이었다. 1960~70년대 신문 스크랩은 물론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까지 대륜교육재단에서 생산한 학교교육 자료 등 위탁받은 자료 대부분이 한때는 학교현장에서 매우 흔한 것들이었지만 지금은 거의 유일본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학술사업이란 측면에서 볼 때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편찬사업은 연구소가 감당해야 할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건국 이래 대한민국정부가 독립운동과 관련해 이렇게 많은 예산과 시간을 투여한 사업은 없었다. 사전 편찬사업은 2015년에 시작해 2024년까지 25권을 발행하고 마무리 될 예정이다. 독립운동가의 삶과 업적을 사전으로 종합 정리하는 사업으로 인명사전 책자뿐 아니라 웹사전으로 개발하여 한국독립운동가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자 한다.


또한 연구소는 사업소가 아니라 ‘연구하는 연구소’인 만큼 학술연구 관련 활동을 활발하게 해오고 있다. KCI 등재학술지인 학술논문집 「한국독립운동사연구」 발행, 의병 및 광복군 관련 자료, 독립운동가 기록물, 국외신문에 실린 3·1운동 자료집 등의 자료 총서 발간 등이 그것이다. 신주백 소장은 “이렇게 많은 일을 해 왔는데도 임기 중에 남북한 역사대화를 하지 못한 점이 가장 아쉽다”고 말한다. 


저항, 지배를 연구하며 넓혀진 시야


신주백 소장의 전공은 산업심리학이었다. 학생운동에 발을 담갔던 대학 시절을 거치며 한국사회의 민주주의 발전과 분단극복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살아왔다. 5·18 민주화운동의 상징공간인 전남도청 바로 뒤가 집이었기에 겪어야 했던 아픔과 부채의식이 이러한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신주백 소장의 역사학은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는 현재이고 분단극복을 향한 미래를 말하는 대상이었다.


1996년 대학원 박사논문 주제는 ‘만주지역 한인의 민족운동사’였다. 보다 명확한 자료 조사를 위해 1993년 연변대학으로 향했다. “교육부 동의는 물론 반공교육 등 모든 절차를 밟고 갔던 연변대학에서의 6개월은 박사논문의 원천이자 역사학도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덤으로 얻은 것이 있어요. 중국이 개혁개방 초기여서 이전의 중국사회를 일상에서 들여다볼 수 있었어요. 사회주의의 실상을 확인한 것이지요.” 10여 년 ‘저항’에 대한 공부를 마친 후 향한 주체는 대칭축인 ‘지배’였다. “군대와 경찰은 탄압의 가장 핵심인데 일본어 서적이 가장 많은 국회도서관조차 인프라가 없었어요. 일본 군대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동경대학으로 향했습니다. 이때도 일본에서만 열람 가능한 자료들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었어요.” IMF로 환율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때라 출국 날 환전도 포기하고 갔던 일본행이었다고 웃지 못할 기억을 꺼내본다. 그로부터 24년이 지난 지금, 신주백 소장은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이란 학술서의 마지막 교정을 보고 있다. 


“일본의 지배정책사를 공부하면서 시야가 너무 좁다는 걸 깨달았어요. 일본이 통치했던 나라가 우리나라만 있었던 게 아니었는데 제 시야에는 오로지 한국만 있었던 거죠.” 비교 대상으로 가장 먼저 대만을 선택한 후 일본에 1년 넘게 체류하는 동안 대만에 연구비를 신청, 대만중앙연구원 산하 대만사연구소에서 연구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금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서의 경험이 원천이었다면 일본과 대만에서의 경험은 그동안 걸어온 길의 연료 역할을 해주었다.

그 후 대만과 비교 분석하며 일본군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는 중에 2002년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건이 터졌고 역사 왜곡에 관련된 시민단체 설립에 연구자로 참여하게 되었다.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학자와 역사교사가 모여 역사 대화를 해보자며 시작한 지 20년. 세 나라 참가자들이 함께하며 말 그대로 ‘역사적인 역사책’이 발간되었다. <미래를 여는 역사>(2005), <동아시아 근현대사 1, 2>(2012)가 그것이다. 한국, 중국, 일본에서 각각 출간되었으며 세 번째 책이 발간을 앞두고 있다.


역사 왜곡 시민운동 참여는 교과서 집필로 이어졌으며 이와 관련된 강연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전국 시도교육청 중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교사들이 부르면 무조건 간다는 제 철칙 때문이죠. 교과서에 미처 반영하지 못했거나 가장 최근에 발표된 연구결과들을 실시간으로 알려줄 수 있으니까요. 제 강연이 교사들에게 영향을 주고 그분들이 다시 학생들에게 전달해 줄 수 있기에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강연을 거절하지 않았던 또 하나는 NGO의 역사 강연이었다. 이분들 대부분은 부와 명예가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일하기 때문이다.


역사 왜곡 연구와 역사 대화, 강연, 역사 대중화


신주백 소장의 연구에 대한 열정은 한결 같이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지향적이다. 2009년부터는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서 한국 근현대 학술사인 ‘인문사회과학에 대한 미래’를 모색하는 10년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새로운 도전은 열매를 맺고 있다. 2021년 11월 신주백 소장의 일곱 번째 학술서인 <한국 역사학의 전환>이 출간되었다. “학술서를 출간할 때마다 같은 질문을 받곤 합니다. 더 쉽고 재미있게 쓸 생각은 없냐고요. 쉽고 재미있게 쓰는 역사는 다른 이들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연구자로서의 학술서를 써야하는 의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학술인프라’라고 생각해요. 독자층이 적어도 정확하고 깊이가 있는 분석물이 나오면, 누군가는 이를 활용해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작업을 하지 않을까요. 물론 역사 대중화 역시 중요한 일입니다. 이를 부정하거나 깎아내릴 생각은 전혀 없어요. 역사 대중화의 방법은 다양하다고 봅니다. 제가 선택한 방법은 언론, 방송, 대중강연 등이었어요.”


신주백 소장의 말대로 TV 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 ‘선을 넘는 녀석들’ 등을 통해 다양한 역사 이야기를 충분히 쉽고 재미있게 전달해왔다.


쉴 틈 없이 달려오다 보니 어느새 이순(耳順). 민족운동사에서 군 연구로, 교과서 운동으로 다시 국학 연구 학술사까지. 이제는 끊임없이 확장해 왔던 연구의 영역을 학술서로 하나씩 마무리할 계획이다. 지금 교정 중인 <일본군의 한반도 침략과 일본의 제국운영>은 그 시작이다. 다만 역사 인식에 대한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될 수 없기에 조금 더 시간을 두고자 한다.


“독립운동사라는 이름으로 학술논문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시기가 1980년대 후반입니다.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가 설립된 즈음부터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어요. 독립운동사에 대한 틀이 잡힌 건 겨우 1990년대 중반, 아직 뿌리를 내리지 못한 셈이죠. 한국민족운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매우 여러 지역에서 싸웠다는 데 있습니다. 사회주의운동과 민족주의운동이 같은 시간대 동일한 공간에 있었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지역을 넘나들며 협소함을 넘어서고 이념의 장벽을 넘어서는 새로운 시야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지나간 역사의 현재적 의미를 살펴보고 미래로 나아가는 신주백 소장의 거침없는 행보는 앞으로도 순국선열의 숭고한 희생과 독립정신의 의미를 되새기고 미래의 가치를 발굴해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 

최신글

  • 글이 없습니다.

순국Inside

순국Netwo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