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독립운동가 열전 [2022/03]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동자 최정철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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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의 만행 준엄하게 꾸짖으며 조선 독립을 외치다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나도 죽여라!”
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흔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주동자로 유관순 열사가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 현장에서 일제의 만행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조선의 독립을 외치다 숨져간 주동자는 최정철, 김구응 모자다. 이 사실은 당시 상해 임시정부의 사료편찬위원회 위원인 김병조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략』(1920)과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최정철, 김구응 모자의 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 1991년에 와서야 김구응 의사에게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어머니 최정철 지사는 1995년이 되어서야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이놈들아! 내 자식이 무슨 죄가 있느냐! 내 나라 독립만세를 부른 것도 죄가 되느냐! 이놈들아! 나도 죽여라!” 이는 천안 아
우내장터 만세운동에 앞장서다가 아드님(金球應,1887.7.27~1919.4.1)과 현장에서 순국한 최정철(1853.6.26~1919.4.1) 지사 무덤 묘비석에 적혀있는 글이다.

1919년 4월 1일은 천안 아우내장터의 만세시위를 주도한 아드님 김구응과 그의 어머니 최정철 지사가 일제의 무자비한 총칼 앞에 붉은 피를 흘리면서도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혼을 불태운 날이다. 이날 한날한시에 숨을 거둔 모자(母子)의 주검은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산 8-6에 나란히 묻혀 그날의 처절했던 투쟁을 말없이 대변하고 있다. 천인공노할 일이란 바로 이런 일을 두고 말하는 것으로 만세 현장에서 숨진 어머니(최정철) 나이 66세요, 아드님(김구응) 나이 32세였다.
흔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주동자로 유관순 열사가 거론되고 있지만, 사실은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 현장에서 일제의 만행을 준엄하게 꾸짖으며 조선의 독립을 외치다 숨져간 주동자는 최정철, 김구응 모자다. 이 두 분이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모자였다는 사실은 당시 상해 임시정부의 사료편찬위원회 위원인 김병조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사략(韓國獨立運動史略)』(1920)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천안군 병천시장에서 의사(義士) 김구응이 남녀 6,400명을 소집하여 독립선언을 할 때 일본헌병(일경)이 조선인의 기수(旗手, 행사 때 대열의 앞에 서서 기를 드는 일을 맡은 사람, 곧 조선인들)를 해치고자 했다. 조선인들은 맨손으로 이를 막느라 피가 낭자했다. 그러자 일본헌병은 이들의 복부를 칼로 찔러 죽음에 이르게 하는지라 김구응이 일본헌병의 잔인무도함을 꾸짖자 돌연 총구를 김구응에게 돌려 그 자리에서 즉사케 했다. 김구응은 머리를 맞아 순국했으나 일본헌병은 사지(四肢)를 칼로 다시 난도질했다. 이때 김구응의 노모(최정철)가 일본헌병을 향해 크게 질책하자 노모마저 찔러 죽였다.”
김병조 선생은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으로 『한국독립운동사략』에서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최초로 다루었다. 한편, 같은 해(1920)에 발간된 또 한 권의 책이 있는데 박은식 선생이 쓴 『한국독립운동지혈사(韓國獨立運動之血史)』에도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다루고 있다. 주목할 사항은 이 책에서도 아우내장터의 주동자를 김구응과 그의 어머니 최정철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3·1만세운동이 일어난 뒤 바로 이듬해 나온 가장 따끈따끈한 기록인 이 두 책에는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알려진 유관순 열사 이름은 나오지 않는다.
그렇다면 왜,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동자가 ‘유관순열사’로 고착화되었던 것일까? 최정철, 김구응 의사의 증손자인 김운식 씨는 이 부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증조할머님(최정철)은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오셔서 현모양처로 한 집안의 살림을 잘 꾸려가셨습니다. 효부로 소문난 증조할머님은 3·1만세운동이 일어나기 1년 전 증조할아버님을 여의고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1919년 4월 1일 아우내 지역 만세운동의 주동자인 아드님 김구응 의사가 일경에 총살당하는 것을 지켜보셔야 했습니다. 증조할머님 자신도 만세시위 현장에서 만세를 부르다가 아드님과 함께 일제의 총검에 무참히 살해당하셨지요. 일경은 증조할머님(최정철)과 할아버지(김구응)를 총으로 쏘고 나서 다시 총검으로 난자하는 참극을 저질렀습니다.”
최정철 지사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필자는 2018년 11월 26일, 증손자 김운식 씨를 만났다. 그는 차분하게 증조할머니(최정철)와 할아버지(김구응)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3·1만세운동 때 유관순 열사는 16살로 서울에서 공부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한학과 신학문을 겸비한 할아버지(김구응)는 32세로 당시 성공회에서 운영하는 진명학교 교사였습니다. 이보다 앞서 할아버지는 병천면 가전리에 청신의숙(淸新義塾)이란 학교를 세워 학생들을 가르쳤고 이후 감리교에서 운영하는 근대식학교인 장명학교(長命學校)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등 교육자이자 아우내 지역의 유지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서울에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것을 알고 4월 1일 아우내장터 거사를 기획하셨습니다. 수많은 제자와 지역 유지들을 취합한 뒤 거사 당일 시위대를 진두지휘하셨으나 일제가 휘두른 총칼에 어머니(최정철)와 현장에서 순국의 길을 걸으신 것이지요.”
사실 일제강점기에 민중 못지않게 억압과 탄압을 받은 것은 종교였다. 진명여학교를 만들어 민족교육을 하던 성공회도 예외가 아니어서 모든 선교사들이 추방을 당하고, 교회에서 운영하던 사립학교가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특히, 충남 아우내에서 있었던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에 성공회가 깊이 관여하면서, 일제에 의한 탄압은 가중되었다. 1919년 4월 1일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은 성공회 병천교회가 운영하던 진명학교의 교사 김구응의 지휘 아래 교인들과 지역유지, 젊은 청년, 여성, 학생들이 아우내장터에서 독립선언문을 낭독하고 만세운동을 펼쳤던 것이다.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진두지휘하다 현장에서 순국한 최정철, 김구응 모자는 광복 이후에도 오랫동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갔다. 당시는 일제의 삼엄한 경계 상태인지라 만세운동을 기념한다거나 희생자 추모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천안 아우내 만세운동의 주동자였던 최정철, 김구응 모자의 순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소리 없이 스러져갔다.
한편, 이 지역 출신인 유관순 열사는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동자로 부각되기 시작하여 1962년 대한민국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이 훈격도 부족하다 해서 2019년에는 최고 등급인 대한민국장으로 추서된 바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의 주동자였던 김구응 의사는 1991년에 가서야 애국장이 추서되었고, 어머니 최정철 지사는 그로부터 4년이 지난 1995년에야 애국장이 추서되었을 뿐이다. 그뿐만 아니라 유관순 열사를 위한 선양작업은 꾸준히 이뤄져 그동안 유관순 기념교회 건립(1967), 추모각과 봉화탑 건립(1972), 유관순 열사 동상 건립(1983), 유관순 생가 복원(1991) 이어서 유관순기념관 182,169㎡(55,000여 평) 등이 건립되었지만, 최정철, 김구응 의사에 대해서는 시설은커녕 무덤가는 길 안내 표지판 하나도 없는 게 현실이다.
독립투쟁의 역사를 기억한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일이다. 나아가 혈혈단신으로 고군분투하다 일제의 총칼에 목숨까지 잃어야 했던 독립투사들의 이야기는 세세년년(世世年年) 오늘의 우리가 간직해야 할 정신적인 자산이다. 특히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 주동자로 현장에서 순국한 최정철, 김구응 의사 모자의 투지는 안타깝게도 그동안 역사의 무대 위에서 거론되지 못한 채 방치되다시피 해왔다. 그러다가 3·1만세운동 100주년이던 2019년, 천안역사문화연구회 주최로 ‘아우내만세운동 주동자인 최정철, 김구응 모자에 대한 학술세미나: 아우내 4·1문화제’를 처음으로 열게 되어 뜻있는 사람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아울러 2021년 4월 1일에는 최정철, 김구응 의사 무덤에 추모비를 세웠다. 추모비문에는 아래 내용의 필자가 쓴 시가 적혀 있다.
아들아/ 왜놈 칼에 붉은 피 쏟으며/ 숨져간 아들아/ 에미는 저들이 / 네 심장에 꽂은 칼을 보고/ 피가 끓었다/ 천인공노할 조선인 학살에/ 피울음 토하며/ 네가 쏟은 피 에미가 흘린 피/ 결코 헛되질 않길/ 아우내 동포들/ 손잡고 함께 외쳤노라
올해로 103주년을 맞이하는 3·1절! 이 뜻깊은 날에 혹여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운동을 되새겨보려고 이곳을 찾는 이들이 있다면 유관순 열사 유적지만 둘러보지 말고 아무도 찾지 않는 최정철, 김구응 모자(母子)의 무덤에도 발길을 돌려 보길 바란다.
최정철·김구응 의사 무덤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가전리 산 8-6, 길찾개(내비게이션)로 찾아도 무덤에 이르는 표지판 등이 없어서 찾기가 힘들다.

필자 이윤옥
한국외대 일본어과 졸업, 문학박사. 일본 와세다대학 연구원, 한국외대 연수평가원 교수를 역임했으며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인물로 보는 여성독립운동사』, 『46인의 여성독립운동가 발자취를 찾아서』, 시와 역사로 읽는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10권), 『여성독립운동가 300인 인물사전』 등 여성독립운동 관련 저서 19권 외 다수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