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2/04]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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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적 리더십 원조는 3·1운동
어둠 속에서 위대함 길러낸
민족의 자부심 잊지 말아야
글·사진 | 편집부
‘역사 공부를 하면 통찰력이 생긴다.’ 스물아홉, 조금 늦은 나이에 서울대에 입학한 청년이 국사학과를 택한 이유였다. 대학 졸업 후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에서 낮밤 없이 연구에 매진하고, 3·1운동 자료를 찾아 지방 구석구석 떠돌았다. 하지만 통찰력은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논두렁 뻘밭에서 계속 미끄러지며 허우적대기만‘ 했다. 그렇게 30년이 흘렀을 무렵, 조금씩 뭔가가 보이기 시작했다. “3·1운동은 일제의 수직적 지배체제에 대한 조선 민중의 수평적 대항이다.” 역사의 편린들이 하나둘 모여 현재와 미래로 이어졌고, 과거를 기술하는 역사에서 의미를 찾아내 미래 방향을 가늠는 일이 가능하겠다는 확신이 다가왔다. 통찰력이 그에겐 ‘트리갭의 샘물’이었던 걸까.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동자가 40년 전 그날들처럼 여전히 푸르렀다. 청년 역사학도의 열정으로 즐겁게 연구하며, 역사의 거대한 물결 속을 자유롭게 유영하고 있는 이정은 3·1운동기념사업회장을 3월 15일 국가보훈처에서 만났다.
1919년, 위대한 세대가 역사 전면에 나서다
“1919년 당시 서양에서는 1차 세계대전에 충격을 받아 절망한 ‘the lost generation, 잃어버린 세대’가 등장했어요. 그때 지구 반대편 코리아에서는 ‘the found generation, 새로 찾은 세대’가 역사의 전면에 등장했어요. 식민지 조선이지만 대한의 민족이라는 새로운 자극을 가지고 일어선 3·1운동 세대들이죠.”
‘the lost generation’과 ‘the found generation’의 대칭이 신선했다. 절로 귀가 쫑긋해졌다. 그는 유관순을 예로 들며, 일제의 식민지 교육과 3·1운동 세대의 등장을 흥미진진하게 들려주었다. 마치 자유자재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위대한 이야기꾼처럼.
“1910년 나라를 잃었을 때 유관순은 8세였어요. 식민지 교육 체계 안에서 처음 공교육을 받은 세대였죠. 일본은 교육에 엄청 공을 들였어요. 식민지 학생들을 잘 키워서 일본제국에 복종하는 2등 국민으로 만들어야 식민지 지배가 영속될 수 있기 때문이었죠. 그런데 그 첫 세대에서 유관순이 나왔고, 3·1운동 주력세대로 성장한 거예요. 이후 6·10만세운동과 광주학생운동을 주도하고, 해방 이후에는 민주화 투쟁 등으로 이어진 학생운동의 시작이 3·1운동 세대였던 거죠. 1919년 우리는 위대한 세대를 발견하게 된 겁니다.”
그는 3·1운동을 영어로 하면 ‘March First Movement’라며, 다시 새로운 키워드를 꺼내 들었다. 그가 말하는 ‘March’는 ‘행진하다, 전진하다’의 의미다. 그러니까 3·1운동을 다른 말로 하면 ‘1등 가기 운동’이 되는 셈이다.
“100년 전 3·1운동이 지금 우리에게 무엇을 말할까요. 저는 ‘후손들이여, 너희는 세계 1등을 향해 가라’고 말하지 않을까 싶어요. 10년 전만 해도 몽상이라 했는데, 지금은 세계 1등을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세계 1등을 할 수 있을까. ‘March First Way’ 3·1운동 방식으로 하면 됩니다. 21세기 세계 경영계의 화두는 ‘나를 따르라’ 리더십에서 위아래 없이 치열하게 토론하고 검증하면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수평적 리더십’으로 바뀌었어요. 구글과 애플을 혁신의 선두주자처럼 말하는데, 사실 100년 전에 우리는 이미 3·1운동을 통해 해냈어요. 우리 DNA 속에 수평적 연대와 의사소통이 들어있는 거죠.”
3·1운동에는 영웅이 없다. 자발적으로 민중들이 스스로 주인이 되어 일어난 혁명이다. 세계사에서 혁명을 지휘하는 지도부의 공백이 생기면 금방 열기가 사그라들게 마련인데, 석 달 동안 전국적으로 만세시위가 계속됐다. 놀라운 건 일본이 식민지배를 위해 10년간 향촌공동체 중심의 조선 지방 제도를 해체하여 일원적·일방적·수직적 지배체제로 완성한 직후에 3·1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지방 곳곳을 헤매며 3·1운동을 연구하던 그는 30년이 지나 깨달았다.
“3·1운동은 일제의 수직적 지배체제에 대한 조선 민중의 수평적 대항이다.”
철옹성 같은 일제의 수직적 식민 지배체제 안에서 학교, 교회, 시장이라는 수평적 공간에서 평범한 영웅들의 자발적·수평적인 연대로 3·1운동이라는 위대한 유산을 일궈냈다. 구글·애플보다 100년 앞선 3·1운동 방식,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3·1정신 제대로 계승되려면 북녘까지 이어져야

“숲속을 헤매는 것도 아니고 논두렁 뻘밭에서 계속 미끄러지는 느낌이었어요. 30년 동안 그랬어요. 30년이 지나면서 눈이 떠지는 것 같더라고요. 박사 논문 쓰면서 ‘수직적 지배체계에 대한 수평적 대응’이라는 표현을 처음 썼어요. 좁게 보면 얘기할 것이 없는데, 넓혀 보니까 이런 구도 속에서 3·1운동이 일어났구나, 일본은 이렇게 하려고 했고 우리는 이렇게 대응했구나, 하는 게 보이더라고요.”
30년 역사 공부에서 얻은 통찰력은 ‘March First Movement, March First Way’ 등 새로운 발견으로 이어졌고, 과거·현재·미래를 잇는 중요한 의미들을 또렷하게 보여주었다. 퍼즐 찾기 하듯, 그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깨달은 통찰력으로 세상과 소통해갔다. 2012년 정년퇴직 후엔 (사)대한민국역사문화원을 설립해 다양한 연구사업을 진행했고, 3·1운동기념사업회장을 맡아 3·1운동 정신을 계승하고 북한 동포들과 함께하는 사업을 꾸리는 일에 마음을 다했다.
“남한에서 수백 개의 3·1운동 기념행사를 하는데, 3·1운동기념사업회에서만 유일하게 북한 동포를 위한 행사를 하고 있어요.올해로 분단 77주년을 맞는데, 북한 동포들의 빈곤·굶주림·참상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인가, 이제는 끝나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24시간 금식하고 3·1절에 모이자고 결의했어요. 24시간 금식하고 모은 행사비로 월남 1세대 중 어려운 분들을 돕기로 했죠. 적은 돈이지만 상징적인 의미를 담았어요.”
103년 전 3·1운동이 우리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위한 것이었음에도, 휴전선에 막혀 남한만의 반쪽짜리 3·1운동이 되어버린 사실에 그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3·1정신이 제대로 계승되려면 북한까지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에, 그는 매년 3·1절 기념행사를 월남 2세대인 이북도민청년회원들과 함께한다. 멀지 않은 미래에 북녘 동포들과 하나 되어 대한독립 만세를 힘차게 외칠 수 있길, 간절히 바라본다.
“우리는 위대한 국민”
자부심 가르치는 역사교육 필요

그는 우리 역사교육에서 중요한 건 ‘자부심’이라고 강조했다. ‘강대국 틈에서 희생당했던 약소민족’이라고 자기비하하며 억울해하기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온 위대한 역사를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월드컵 때 ‘대한민국’ 외치면서 자부심을 느꼈고, 한류로 인해 어딜 가나 한국인이라면 대접받고 있는데, 피해자 입장의 역사교육은 지금 세대와 안 맞아요. ‘여러분은 위대한 국민이다. 우리나라는 일제에 침략을 당했지만, 그 기간에 우리 민족이 세계화 되었고, 우리 독립운동이 세계를 무대로 전개되었다. 이것이 오늘의 발전과 한류의 자원이 되었다.’ 이렇게 역사교육이 자부심을 심어줘야 해요. ‘March First Movement! 세계 1등이 되라, 우리는 할 수 있다!’ 100년 전 3·1정신을 통해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주어야 해요.”
이정은 회장은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해서도 역사학자로서 통찰력 있는 조언을 건넸다.
“구한말에는 영·러 갈등 속에서 러시아 편에 섰어요. 그로 인해 우방 없이 완전히 고립됐죠. 지금 중국 편에 서면 똑같은 신세가 됩니다. 영국은 200년 동안 ‘유럽대륙에 강자가 등장하면 그에 맞서는 세력과 손을 잡아 대항한다’는 국가 전략을 가지고 있어요. 덕분에 나폴레옹이 등장했을 때 독일·스페인과 손잡았고, 히틀러가 부상했을 때 프랑스와 연대했죠. 그런데 한국은 일관된 국가 전략이 없어요.”
그렇다면 미·중 패권경쟁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는 젊은 세대들이 미국, 중국, 일본을 어떻게 다룰지 고민하게 해야 한다고 했다. 강대국의 논리에 휘말리거나 주눅 들지 말고 역사의 교훈 속에서 해법을 찾아가는 연습이 필요하다. 우리는 위대한 민족이라는 자부심을 항상 기억하면서.
“대학생들과 만주 답사 가면서 기차 안에서 ‘한국이 통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물었더니 다들 ‘못할 것 같습니다’ 해요. ‘왜 못할 것 같은가요?’ 하고 되물었더니 ‘중국에서 방해할 것 같다’고 대답하더라고요. 1500년 전 신라는 지금 대한민국보다 형편없이 약했어요. 그런데 신라가 중국과 일대일로 맞짱 떠서 이겼어요. 중국이나 일본이 한국을 쳐들어오는 게 쉽지 않아요.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900번 넘게 침략을 당했다고 하는데, 실제로 외침은 200~300년에 한 번 정도였어요. 중국 수나라가 백만대군 끌고 와서도 못 이겼어요. 임진왜란은 우리가 경계를 안 했기 때문이고요. 해협을 건너서 침략하는 게 쉽지 않아요. 우리가 정신 차리고 있으면 일본은 못 쳐들어와요. 쉽게 정복할 수 없는 나라죠.”
역사의 어떤 면에서 교훈을 찾느냐는 분명 중요한 지점이다. 평생 독립운동사와 3·1운동을 연구해온 이 학자는 인터뷰 내내 희망의 역사를 이야기했다. 그리고 젊은 세대에게 역사의 메시지를 전하려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중국은 크고 강해 보이지만 200년 이상 통일국가를 유지한 적이 없어요. 분열되거나 정복되거나 했죠.”
그는 중국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중국은 한반도의 국가가 건재할 때 중국도 건재할 수 있었어요. 임진왜란은 명의 멸망을, 한국 병합은 일본의 중국침략으로 나타난 것이 그것을 보여 주죠.”
그는 중국은 한국에 대해 문명적 연대를 지속할 것인가, 제국적 패권을 추구할 것인가 선택해야 하며, “만약 제국적 패권을 추구한다면 내부 모순 때문에 스스로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젊은 세대들이 약소국 의식을 털어내고 어떻게 중국을 다룰까, 어떻게 미국과 일본을 다룰까 생각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했다. 땅은 작지만, 생각은 커야 합니다. 학교에서 역사를 계속 배우지만 그런 생각은 못하게 만들어요. 젊은이들에게 역사를 알려줄 수 있는 시간이 오길 바라고, 이게 제게 남은 과제라고 생각해요.”
미래 세대에게 역사의 희망을 전하다
『월간 순국』 편집위원으로서 전한 소회에도 젊은 세대에 대한 애정이 담겼다. 그는 『월간 순국』이 “잘 다듬어서 맛깔나게 잘 차려낸 상처럼 청년들에게 사랑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현재와 과거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전하는 그의 가슴속은 언제나 꽃피는 봄날인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