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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2/10] 박래혁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순천별량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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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의병이 남긴 역사의 유훈 


가치를 위해 목숨 바친 선열들을 

왜 기억해야 하는가?


글·사진 | 편집부 


세상에 얼마나 많은 위인이 있을까마는, 그는 일제강점기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걸 바쳐 싸운 선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유독 가슴이 울컥한다. 세상에 위대한 유언이 얼마나 많을까마는, 그는 영국 데일리메일 기자 프레드릭 맥켄지와 인터뷰한 대한제국 시기 한 의병의 유언이 가장 가슴에 남는다. ‘우리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소중한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기꺼이 하나뿐인 목숨을 내던진 선열들의 처절한 외침은 인간다운 삶은 무엇인지, 왜 역사가 필요한지 그에게 되묻고 있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살아있는 역사’를 위해 학교 현장에서, 사회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 박래혁 회장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던 그의 손엔 항상 위인전이 들려있었다. 존경하는 위인들과 그들의 살아온 역사와 더불어 그는 성장했다. 역사를 무척 좋아했던 소년은 2005년 임용고시에 합격해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가 되었다. 꿈을 이룬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 했던가. 그는 분명 자타공인 행복한 사람이다. 


30년 넘게 역사를 배우고 17년간 역사를 가르쳐온 그에게 ‘마음에 새긴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 무엇인지, 먼저 궁금했다. “전에는 역사 속 존경하는 인물이 많았는데, 요새는 역사에서 만나는 한 분 한 분의 삶이 모두 의미 있고 소중하게 느껴져서 존경하는 인물을 한 명 꼽는 게 쉽지 않다”며 잠시 망설이다가 말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든 걸 바쳐 싸우신 분들의 이야기는 들을 때마다 가슴이 울컥해요. 그중에서 최근에 학생들과 대한제국 시기 의병에 관한 수업을 하다가 크게 다가온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들은 죽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로 살기보다는 자유로운 인간으로 죽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바로 프레드릭 맥켄지와 의병의 인터뷰 내용이었어요. 사실 예전에도 이 부분을 가지고 수업한 적은 있었지만, 올해는 유독 가슴속에 와닿는 것 같아요.” 


그의 가슴을 울린 이 말은 F.A. 맥켄지가 쓴 『대한제국의 비극(The Tragedy of Korea)』에 나오는 대목이다. 맥켄지는 영국 데일리메일 기자로 의병의 활약상을 취재해 일제의 만행을 세계에 널리 알린 인물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죽는 것이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이야기하는 저 의병의 말이 유독 가슴에 와닿았어요. 학생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가 그 당시에 살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에 많은 학생이 앞에 나서서 싸우지는 못했을 것 같다고 말하더군요. 물론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학생들에게 이름 없는 의병의 한 마디는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요.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가치를 지키기 위해 싸운 사람들을 우리는 왜 기억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등을요.”


역사는 평화교육을 가장 잘할 수 있는 교과

민주주의·인권 등 소중한 가치 배울 수 있어


그는 2017년 전남역사교사모임 회장을 맡았고, 2021년부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국역사교사모임은 1988년 살아있는 역사교육을 지향하고 실천하기 위해 역사교사들이 모여 만든 공동체다. 함께 꿈꾸며 역사교육의 방향성을 찾아가던 30여 년의 시간 동안 우리나라 역사교육계에서 영향력 있는 단체로 성장했다. 현재 전국에서 2,300여 명의 초중등 역사교사가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전국 18개 지역 모임과 각종 연구모임 그리고 역사교육 연구를 위한 역사교육연구소 등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는 “2천 명이 넘는 교사들이 역사 교과를 가르친다는 공통점 하나로 뭉쳐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 있다”며 자랑스러워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 때 추진되었던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해낸 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모임뿐 아니라 많은 단체와 국민이 함께해 주셨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어요. 국정교과서를 반대하고 막아냈던 과정 자체가 하나의 역사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줄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어떠한 정권이라도 역사에 대한 해석을 독점하고, 자신의 의도대로 역사교육을 끌고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어요.”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참된 역사교육’을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디딘 이후 역사교육의 대안을 모색하며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와 『살아있는 세계사 교과서』 시리즈로 대안교과서 운동에 닻을 올렸다. 역사교육 전문지인 계간 『역사교육』을 비롯해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한국어판·영어판),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이 쓴 제대로 한국사(전10권)』, 『나의 첫 세계사 여행(전4권)』, 『우리 아이들에게 역사를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등 수많은 단행본을 펴내며 역사교육의 대중화에 힘써왔다. 


2014년부터 시작된 국정교과서 반대 투쟁을 통해 교과서에 대한 부당한 공격과 하나의 역사만을 강요하려는 시도에 저항하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역사교육계와 시민사회의 힘을 모아내는 데 중심 역할을 해냈다. 2018년부터는 30년 동안 성장한 교사모임의 동력을 바탕으로 ‘민주주의·평화·인권’에 기여하는 새로운 역사교육을 모색하고 있다.


“최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미·중 간의 갈등이 주변국에 대한 위협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역사 속 과거의 경험을 우리는 배워야 할 필요가 있어요. 갈등과 전쟁은 그 어떤 승자도 없이 모든 인류에게 큰 피해를 남겼어요. 그걸 통해 우리는 평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특히 일제강점기에서 한국전쟁으로 이어지는 현대사를 경험했던 우리에게 평화는 수십 번 수백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평화교육을 가장 잘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교과가 바로 역사라고 생각해요. 역사 속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실처럼 평화의 소중함을 알려줄 수 있는 것이 또 무엇이 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평화를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 등 또 다른 중요하고 소중한 가치들을 지켜나갈 수 있다는 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배울 수 있어요.”


학교 현장의 역사교육 약화는 오랜 문제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운동 역사 지켜내야


지난 8월 말 교육부에서 2022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안)을 발표한 이후 전국역사교사모임은 역사교육의 약화를 불러올 수 있는 고등학교 선택과목 수의 불균형 문제를 제시하며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번 교육과정 개정의 핵심 사항은 학생들의 선택권 보장이에요. 이를 위해 고등학교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되었는데요, 과목을 선택해서 듣게 되는 고등학교 2~3학년의 과정은 총 4개 학기입니다. 따라서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이 역사와 관련된 과목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학기별로 하나씩 최소 4개 과목이 있어야 해요. 그런데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역사과 교육과정(안)에는 유독 역사과만 3개의 선택과목을 배치한 기형적인 구조예요. 심지어 사회 교과군의 다른 교과들(일반사회, 지리, 윤리)은 최소 4과목에서 7과목까지 개설되었는데 말이죠. 결국 역사를 좋아하거나 역사와 관련된 진로를 희망하는 학생은 역사와 관련 없는 다른 과목을 무조건 들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겠다는 2022 개정 교육과정의 목표에도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학교 현장의 역사교육 약화를 불러올 수 있는 심각한 문제예요.”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사과 선택과목을 최소 4과목 이상 개설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앞으로 올 연말에 고시 예정인 2022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과 관련해 현장 교사들의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한 활동을 계속해 나갈 예정이다. 지난 8·15광복절에 다시 불거진 건국절 논란에도 말문을 열었다. 자랑스러운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를 부정하는 일부 정치권과 보수언론의 주장을 반박했다. 


“최근 2022 역사과 개정 교육과정(안)과 관련해서 1948년 8월 15일을 ‘대한민국 수립’이라 쓰지 않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라고 썼다며 철 지난 색깔론을 들고나왔는데요, 다들 아시다시피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분명하게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명시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1948년 8월 15일은 건국이 아닌 정부 수립이 맞는 거죠. 이렇게 명확한 역사적 사실과 판단이 이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건국절이라는 주장을 하며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사실을 기어이 논란으로 만들려고 하니 참 답답합니다.” 


한 분 한 분의 삶에 주목하는 역사교육 

삶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교육 필요


그는 교육 현장에서 역사가 어렵고 재미없는 과목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역사교사로서의 무거운 책임감을 함께 느끼고 있다. 무엇보다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1920~30년대 독립운동이라는 사실에 큰 아픔을 느낀다.


“현재 역사 교과서에는 1920~30년대 활동한 수많은 항일 독립운동 단체들이 쭉 나열되어 등장해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이 부분만 들어가면 골머리를 앓아요. 역사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는 거죠. 물론 항일 독립운동의 역사는 반드시 배워야 하고 또한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이에요. 그렇다고 항일 독립운동 단체나 독립운동가의 이름만을 외워야 하는 것은 아니죠. 더욱 중요한 건 그분들의 삶과 활동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가 아닐까요? 친일파들이 자신들의 부귀영화를 위해 나라를 버리고 손쉬운 친일의 길을 걸었다면, 왜 수많은 독립운동가는 뻔히 보이는 힘들고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 심지어 가족 친지까지도 어려움에 부닥치게 되는 그 길을 어떻게 선택하게 되었는지, 저는 그런 부분들을 학생들과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분들 한 분 한 분의 삶에 주목하는 역사교육,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역사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는 앞으로 항일 독립운동을 외워야 하는 역사가 아니라 그분들의 삶과 정신을 배우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는 역사교육이 되도록 전국역사교사모임의 교사들과 함께 더 많이 고민하겠다는 약속을 건넸다.

“저는 신영복 선생님의 책 제목이기도 한 ‘더불어 숲’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우리 학생들이 역사를 배우면서 ‘더불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으면 합니다. 역사 속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 속에서 함께 어려움을 이겨내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말이죠. 일제강점기 그 엄혹한 시절에도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함께 모여 단체를 이루고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희망을 잃지 않고 싸워나갔죠. 유능한 한 명의 힘으로 이룰 수 있는 일도 있지만, 유능한 한 명 한 명이 모일 때 더 큰 힘이 생겨날 수 있어요. 그 ‘더불어’의 힘을 역사 속에서 우리 학생들이 배울 수 있어야 하고, 그걸 배울 수 있도록 교실에서 가르치려고 하는데…. 잘하고 있는지 항상 반성하고 있습니다. (웃음)”


그의 바람처럼, 아이들이 민족이라는 스승과 역사라는 교과서를 통해 인생을 배워가길 소망한다.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현재의 우리와 연결되어 인생의 참 의미를 이야기하고, 미래의 세대들에게 대한민국의 희망을 자랑스럽게 전할 수 있는 그런 멋진 세상을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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