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2/12] 안상경 중국 선양시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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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콘텐츠학 1호 박사’에서 만주 항일유적지 전문가로 변신
자연스럽게 애국자가 된 것은
선열들 피땀 서린 현장의 힘
글·사진 | 편집부
고전문학을 전공하며 민속학을 섭렵했다. 전통문화를 원형으로 한국형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싶어 문화콘텐츠학을 다시 전공했다. 아리랑을 소재로 연극을 만들어 전국연극대회 2등을 했고 ‘문화콘텐츠학 1호 박사’ 타이틀을 얻었다. 대학에 몸담고 있다가 중국 선양시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로 옮겼다. 틈날 때마다 동북삼성 일대 항일유적지를 찾아다니며 선열들의 피와 땀을 느꼈다. “애국자가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애국자가 된 것은 현장의 힘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면 바람에 학생들을 데리고 항일유적지 탐방을 시작했다. 그 여정을 담아 ‘민족’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었다. 한 편의 소설처럼 역동적인 스토리를 온몸으로 써온 안상경 한중문화콘텐츠연구소장을 지난 11월 10일 화성에서 만났다.
아리랑 따라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로
“석사 과정에서 구비문학(설화 민요 판소리 무가)을 전공했는데, 역동적인 걸 좋아하는 성격과 딱 맞았어요. 주말마다 녹음기 들고 시골에 가서 할머니들 만나 노래 부르고 옛날이야기 듣는 일이 재미났어요. 노래 안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가 다 담겨 있더라고요.”
전국 굿판을 따라다니며 한국 신화에 푹 빠졌다. 서사·노래·종교·인류학 등이 한데 어우러진 종합예술의 원형이었다. 동화책을 만들면 좋겠다, 연극·뮤지컬·오페라도 괜찮겠다, 화수분 같은 아이디어가 가슴 뛰게 했다.

마침 아리랑을 유네스코에 등재하기 위해 준비하던 시기였다. 문화재청에서 각 지역의 아리랑 실태조사를 진행했는데, 충북 지역을 그가 맡게 됐다. 신바람 나서 여기저기 다니다가 중요한 사실을 발견했다.
“아리랑이 국내만 있는 게 아니라 멀리 연변조선족자치주 마을에도, 중앙아시아지역에도 있는 거예요. 한민족이 머무는 곳이면 어디에나 있었죠. 유네스코에 등재하려면 한국뿐 아니라 해외 아리랑도 조사해야 한다고 문화재청에 제안해서, 2차 과제로 연변 쪽 실태조사를 맡았어요.”
아리랑의 노래와 이야기를 따라간 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그는 우리네 잃어버린 전통문화가 오롯이 전승되고 있음에 놀랐다. 청주 아리랑이 전승되는 마을을 찾아가 노래를 통해 이주사를 정리하고 보니, 연극이나 뮤지컬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꿈틀댔다. 곧바로 청주 지역 청년 극단을 찾아갔다. 도에서 지원금을 받아 완성한 연극 ‘귀향의 소리’는 충북연극대회 1등, 전국연극제에서 2등을 했다.
“그때가 2009년도였어요. 전통문화를 원형으로 한국형 문화상품을 개발하고 싶었던 꿈을 이루었고, 덕분에 대한민국 문화콘텐츠학 1호 박사라는 타이틀을 얻었어요.”
누구보다 뜨겁게 살았던 청춘이었지만, 사십 대로 접어들면서 시련이 닥쳐왔다. 교수 임용에 스무 번 낙방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로 갑상선 호르몬 이상이 생겼다. 죽을 만큼 아팠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2011년 충북대 교양학부 초빙교수가 된 후엔 초빙이란 두 글자를 떼기 위해 또다시 전력으로 달렸다. 2012년 한 해에 학술상을 2개나 받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생을 바꿀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중국 사업으로 큰 성공을 이룬 막내 숙부가 사회 환원 차원에서 만든 한중교류문화원 운영을 맡아 달라는 제안이었다. 망설임도 잠시, 그는 중국이라는 낯선 세상을 향해 힘차게 손을 뻗었다.
가슴 아프도록 처참한 항일유적지에서

“중국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어요. 한국과 전혀 다른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 계획조차 세우기가 어려웠고, 계획을 세워도 뜻대로 되지 않았어요. 중국은 역사, 문화, 종교를 철저하게 통제하기 때문에 한국인이 자비로 문화원을 만들어 조선족을 위해 서비스한다는 사실 자체에 음모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더라고요. 모든 행사에 공안이 나와서 감시했어요.”
이후 한중교류문화원을 서류상 중국 국무부 동북아개발연구원 산하로 옮기면서 겨우 숨통이 틔었다. 9·18역사박물관(만주사변을 주제로 한 박물관)에서 한중 항일 연합투쟁 공동 전시를 하자는 제안이 들어왔다. 중국 국가급 박물관이라 수장고에 옛날 자료들이 차고 넘쳤다. 하지만 아쉬운 점이 눈에 띄었다.
“신흥무관학교 옛날 사진은 있는데 현재 사진이 없는 거예요. 신흥무관학교 터가 어떻게 되어있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만주 지역 항일 독립운동의 시발점이 된 의암 유인석 의병장이 20년간 중국에 묻혀 있다가 한국으로 가셨는데, 그분이 살던 집터는 어떤 모습일까 알고 싶었고요. 그래서 한번 가보자, 아무 생각 없이 찾아갔어요.”
의암기념원은 가슴 아프도록 처참했다. 풀밭에 나무 원두막 하나가 덩그러니 있는데, 불타서 숯처럼 변해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말하길, 한족들이 거기서 고기를 구워 먹다가 탔다고 했다. 가슴속에서 설움과 울분이 불타올랐다.
“말도 안 되는 거죠. 큰 충격을 받았어요. 의암기념원에서 2시간 더 달려 7인열사능원으로 갔어요. 이번엔 풀이 무성하게 자라서 무덤 형체가 아예 안 보이는 거예요. 능원이 아니라 그냥 풀밭이었죠. 불탄 의암기념원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7인열사능원은 매번 찾아와 벌초라도 하리라 마음먹었어요. 무성한 풀들을 잘라내니 무덤이 보이고 뭔가 뿌듯했어요.”
그날 이후 문학과 문화콘텐츠에 역사라는 장르가 그의 인생에 더해졌다. 틈날 때마다 항일독립운동사를 공부했고, 선열들의 피와 땀이 서린 현장을 찾아다니며 수없이 눈물을 흘렸다. 2018년에는 국가보훈처와 공동으로 항일유적지 개·보수 사업을 진행했다. 예산만 있으면 쉬울 거라 믿었던 일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다. 한국 정부의 자본으로는 비석 하나 세우는 일조차 중국 문물국에서 거부당했다. 다행히 독립유공자 후손들의 도움을 받아 ‘후손 단체에서 기금을 갹출해 진행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어렵게 요녕성 일대 7곳을 개보수했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면 유적지는 또 낡고 허물어질 텐데….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가둬놓는 게 아니라 개방해야 더 오래 간다고 하잖아요. 멋들어지게 보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우리가 왜 개보수하는지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항일유적지 탐방이 시작되었다. 2018년 심양시에 있는 한국 국제학교부터 시작해 부산 지역 고등학교 수학여행으로 이어졌다.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장백폭포, 백두산 천지, 용정우물, 대성중학교, 15만원 탈취사건 유허지, 윤동주 생가, 경학사 터, 신흥무관학교 터, 7인열사능원 등을 탐방하는 동안 아이들은 만주 항일독립운동사를 가슴으로 배웠다.
“중국 길림성 통화시 광화진 합니하는 우리나라와 비슷해요. 마을에는 동그란 조선식 우물이 있어요. 신흥무관학교 학생들이 오고 가며 여기서 물을 마셨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지더라고요. 제가 애국자가 아니었는데 자연스럽게 애국자가 된 건 현장의 힘이에요.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좋겠어요. 특히 육군 사관생도들은 꼭 와봤으면 해요. 신흥무관학교가 육군사관학교 전신으로 볼 수 있잖아요. 자신의 선배들이 국가를 위해 어떻게 싸웠는지 알아야 국가를 위해 충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불의를 외면하지 않은 용기

“처음에는 학교에 탐방 영상을 기념으로 주려고 제작했어요. 그런데 직접 현장에 가보니 너무 처참해서 자연스럽게 카메라에 담게 되었고, 그동안 몰랐던 역사를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즐거움도 컸어요. 백두산 촬영하려고 자동차로 하루 천 킬로를 달렸어요. 잠도 안 자고 무박 2일간 촬영한 거죠. 공안에게 잡혀갈 뻔하기도 했고요. 힘든 일이 정말 많았는데, 언제 이런 고생을 해보겠냐며 목숨 걸고 찍었죠.”
영화 제목은 ‘민족: 혈연의 강’이다. 을미의병부터 항일운동, 한국전쟁을 거치며 대한민국 역사의 비극에서 탄생한 조선족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하루는 한 연구소 직원이 뜬금없이 물어봐요. ‘소장님 저는 왜 조선족이에요?’ 하고요. 한국 회사에 들어와 보니 우리랑 비슷한데 그들은 왜 한국인이고 나는 조선족인지 궁금한 거예요. 어디에서도 왜 조선족이 되었는지 안 가르쳐주었고, 스스로 정체성에 대해 고민할 기회가 없었던 거죠. 한국인들도 조선족 하면 미개한 존재라고만 생각하지, 그들이 왜 중국에 살고 있는지 정확하게 모르는 사람이 많잖아요. 중국에 와서 함께 일해보니까 조선족은 똑같은 우리 이웃인 거예요. 왜곡된 시선을 바로잡고,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화가 탄생한 배경이죠.”
2018년부터 2년간 촬영해 2020년 영화 승인을 받고 배급 계약까지 마쳤지만, 코로나 팬데믹으로 개봉이 무기한 연기됐다가 올 연말 개봉이 확정되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자처했는지 물었더니, 이세원 감독이 이렇게 답했다.
“거창한 게 아니라 우리 아들이 역사책을 보면서 ‘고구려가 어딨어? 왜 조선족, 고려인이 있어?’ 물을 때 설명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어요. 조선족이라고 혐오하기 전에 조금이나마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고요. 저는 애국심이 있는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영화 찍으면서 변해 갔어요. 2019년에는 조선족 여인과 결혼해 아들도 낳았고요. 부산, 광주, 인천 사람 다르듯이 조선족도 지역색이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공산당 체제의 척박한 환경에서 살았기 때문에 악착스러운 면이 있는 거예요.”
다큐멘터리 영화 ‘민족’은 1부 조선족을 시작으로 2부 고려인, 3부 재일 조선인, 4부 국내 이야기 등을 다룰 계획이다. 2부 고려인 이야기는 통일문화연구원, MBN, TV조선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일은 코로나 팬데믹으로 잠시 멈췄던 항일유적지 탐방을 재개해 만주 지역 항일무장투쟁사를 널리 알리고, 젊은 세대의 가슴속에 애국이라는 소중한 단어를 새기는 일이다.
3시간 남짓 인터뷰를 진행하고 돌아오는 길, 머릿속에서 두 남자가 이구동성으로 했던 “나는 애국자가 아니었다”는 말이 맴돌았다. 문득 일제의 총칼에 이름 없이 쓰러져간 순국선열들이 떠올랐다. 애국자는 누구이며, 애국은 무엇일까. 거대한 담론의 껍질을 벗겨보니, 불의를 외면하지 않은 용기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