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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0/08] 호사카 유지 세종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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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 · 독도종합연구소 소장


일본, 침략역사 은폐하고 과거 미화

역사의 진실 모두에게 알려야 


호사카 유지(保坂祐二) 교수는 대학시절 명성왕후 시해사건을 접한 후 큰 충격을 받았다. 그 일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본격적으로 공부하게 되었고, 1988년부터 32년간 한국에서 살고 있다. 독도 영유권에 대한 오랜 연구와 활동을 인정받아 2011년 독도 공로상, 2013년 홍조근정 훈장, 2018년 독도평화대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강제징용, 위안부 문제에서도 객관적 역사자료를 통해 바른 목소리를 내왔다. 


어디든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주저 없이 달려가 역사적 진실을 알렸다. 맡은 직책도 많은 데다 연구하고 집필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텐데, 그는 인터뷰 내내 혼신을 다했다. 지식은 해박했고 해법은 명쾌했다. 무엇보다 정의롭고 따뜻했다. 



신친일파 존재 알리고 일본 역사왜곡에 반박 

고교시절 역사를 좋아했고 인문 쪽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렌즈 회사를 운영하던 아버지의 가업을 잇기 위해 도쿄대학교 금속공학과에 입학했다.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하던 중 명성왕후 시해사건을 접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본격적으로 한일 관계와 역사를 공부하게 되었고, 학부 졸업 후 한국으로 건너와 고려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논문은 ‘일제강점기에 조선, 대만, 만주에 대한 일제 지배정책’이었다. 그 논문은 현재 활동의 모든 기반이 되었으며, 일본의 침략전쟁에 대한 본질을 전체적인 관점에서 이해하는 나침반 역할을 했다. 

사실 그는 오래 전부터 한국에 대한 호감이 있었다. 재일교포 출신 스포츠선수, 가수, 배우들을 보며 일본인과 다른 우수성이 있다고 느꼈다. 1970년대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한국말이 음악처럼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1980년대엔 NHK방송 한글강좌에서 한글을 배웠다. 조금씩 한국에 가까워졌다. 그러다 1988년 한국으로 건너와 본격적으로 한일관계를 연구했고, 2003년 귀화해 한국인으로 살고 있다. 단순히 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는 한일문제의 최전방에서 역사적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 누구보다 애쓰고 있다는 점에서 그는 분명 훌륭한 한국인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요즘 유난히 더 바쁘다. 지난 3월 <신친일파>를 출간한 이후 우리 사회에 단단하게 뿌리 내린 신친일파의 존재를 알리고 그들이 주장하는 잘못된 역사관을 반박하는 일에 매진하고 있기 때문이며, 지난해 무역 분쟁 이후 더욱 복잡하게 뒤얽힌 한일 관계의 해법을 제시하는 일에도 열정을 쏟기 때문이다.  

“한일 관계의 문제는 지정학적 위치가 본질이에요. 일본은 해양 세력이기 때문에 대륙으로 들어오려는 기본적 성격이 있어요. 침략하지 않으면 고립된다는 위기감이 존재하죠. 반면 한국은 대륙과 해양 사이에 있는 연해 세력으로, 양쪽을 아울러 중립적 입장을 취해야 살아남는 위치에 있죠. 힘이 없으면 지배당할 수밖에 없고, 힘이 있어야 평화를 유지할 수 있어요. 친일파 문제도 해양 세력의 본질에서 출발해요. 일본은 대륙으로 가는 교두보로서 한국이 필요하기 때문에 친일파를 만들어야 해요. 이러한 전략은 이미 러일전쟁 전부터 시작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어요.”

일본은 대한제국의 일진회와 중국의 손문 등 혁명세력을 많이 도왔다. 일본에 우호적인 세력을 만들어 대륙으로 진출하려는 의도였다.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일진회는 한국과 일본이 1 대 1 관계로 합방해야 한다는 일본 측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한일합병이라는 치욕적인 조약을 체결하는 데 일조했다. 그 후 일본은 탄압 대신 친일파 양성으로 전략을 수정했다. 이광수, 최남선 등 당시 명망 높은 독립운동가들을 포섭해 ‘일본의 지배가 한국을 위해서였다’는 논거 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민족대표 33명 중 30명을 포섭했을 정도로 친일파 전략은 치밀하고 강력했다.  

“일본은 1965년 한일수교 이후 ‘신친일파’ 양성을 다시 시작했고, 상당한 효과를 얻고 있어요. 일본의 수법은 역사왜곡인데, 명문대 교수나 유명인사 등 힘 있는 한국 사람을 포섭해 일본 우익의 논리를 그대로 펼치도록 하는 거예요. 일본은 침략한 것이 아니라 한국을 근대화시켜준 것이다, 위안부는 매춘부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 강제징용은 합법이었다고 주장하는 거죠. 그러면 많은 한국인들이 그걸 믿거든요. 일본의 최종 목표는 역사를 망각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반성은 절대 안 하겠다는 거죠.”


독도 문제는 센카쿠·쿠릴 열도 영토분쟁과 맞물려

호사카 유지 교수는 2009년부터 세종대학교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을 맡아 독도 영유권에 대해 활발한 연구와 활동을 하고 있다. 가수 김장훈과 함께 독도의 진실을 한국어, 일본어, 영어 등으로 제작해 인터넷과 SNS 등을 통해 알리는 일도 지속하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1년 독도 공로상, 2013년 홍조근정 훈장, 2018년 독도평화대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그는 독도 문제 역시 지정학적 관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일본은 1905년 독도를 편입시켰어요. 원래 울릉도를 발판 삼아 한반도와 아시아로 진출하겠다는 목표였지만, 울릉도가 어려웠기 때문에 독도를 먼저 포섭한 거죠. 해양 세력인 일본은 독도를 포기하면 고립될 거라고 믿기 때문에 포기할 수가 없어요. 또 독도를 놓치면 현재 영토분쟁 중인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도 영향을 받게 되거든요. 사실상 가장 큰 문제는 독도보다 센카쿠 열도인데, 시진핑 주석이 군사적 방법을 써서라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굉장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죠.” 

동중국해에 위치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는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 자국의 영토로 편입해 실효 지배 중이지만, 중국과 타이완 등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1970년대 인근 해역에서 석유 매장이 확인된 후 이를 둘러싼 갈등이 더욱 심해져 정치·경제적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쿠릴 열도는 1905년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영유권을 확보했으나, 제2차 세계대전 후 소련이 지배하면서 영토 갈등이 시작됐다.

“독도 문제를 논할 때는 독도만 보지 말고 센카쿠 열도와 쿠릴 열도를 함께 균형 있게 봐야 해요. 가령 일본이 독도를 무력 침공하면 중국이 가만히 있을까요. 센카쿠 열도를 가져가겠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이 독도만 침공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다른 영토분쟁 때문에 계속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겠죠. 중요한 건 영토분쟁은 강하게 나가야 해요. 영토는 내 것 아니면 네 것이거든요. 타협의 여지가 없는 거죠. 분명한 입장을 내세워야 합니다.” 

 

한일 무역 분쟁은 한국의 판정승…이제 2라운드 준비해야 

경술국치 110년, 광복 75주년을 맞았지만 한일 관계는 대립과 반목의 연장선이다. 일본은 지난해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등의 생산 부품에 대해 수출규제를 강화하면서 무역 분쟁까지 일으켰다. 우리나라도 맞섰다. 정부와 기업은 부품 국산화로 대응했고, 국민들은 일본제품 불매운동으로 힘을 모았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한일 무역 갈등에 대해서도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합리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현재까지 한국의 판정승입니다. 일본의 보복조치는 예상과 달리 자국에 많은 경제적 피해를 줬어요. 이제 2라운드를 준비해야 합니다. 계속 전쟁을 할 수는 없어요. 전쟁은 망할 때까지 하는 게 아니거든요. 지금 아베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흐름을 주시하다가 일본 내에서 더 이상 한국에 보복조치를 해서는 안 된다는 여론이 강해지고 아베 지지율이 안 오르면 그때 중재자를 둬서 마무리하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과거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일본 의존도는 줄여야 해요.”

그는 일본의 현재 상황과 앞으로 한국과 일본이 함께 풀어야 할 숙제에 대해서도 애정 어린 조언을 덧붙였다. 

“일본은 최근 큐슈 폭우 등 기상재해의 직격탄을 맞고 있어요.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오고 있죠. 하지만 아베 정권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어요. 코로나19도 중앙정부에서는 한 일이 없어요. 도쿄나 오사카 등 지방정부가 그나마 잘 대처했기 때문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죠.  일본에서는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 대해 부러워하는 분위기예요. 이럴 때 과거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일본인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한국에 우호적인 시민단체나 지방정부와 협력할 필요가 있어요. 일본은 과거를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국민들이 역사를 몰라요. 일본이 역사를 알도록 한국이 많이 도와야 합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국과 일본은 여러 면에서 평화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 전제는 일본이 과거를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식 없이는 반성도 없다”는 그의 말은 단호했다. 


독립운동가의 이념 논쟁은 본질적 문제에서 접근해야

호사카 유지 교수는 일본 왕족을 처단한 유일한 독립운동가로 알려진 조명하 의사를 기리는 ‘조명하 의사 연구회’ 초대회장을 맡을 정도로 순국선열에 관심이 많다.

“순국선열을 기릴 수 있는 종합적 추모시설이 아직 없다는 건, 솔직히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뭘 해왔나 싶은 생각마저 듭니다. 순국선열 추모시설은 친일적 발언에 대해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독립운동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해요. 또 독립운동가에 대한 이념 논쟁도 ‘일제와 싸우기 위해서’였다는 본질적 문제에서 접근해야 해요. 당시 한반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독립운동을 평가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는 앞으로 남북통일의 국면에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 순국선열이며, 만주에서의 독립운동을 새롭게 발굴하고 기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일제를 위해 싸운 것이지, 이념을 위해 싸운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임정에서도 사회주의 개념을 많이 받아들였어요. 대한민국 헌법에도 경제민주화 내용이 들어가 있고요. 다시 지정학적 관계를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한국은 대륙과 해양,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교차하는 연해 세력입니다. 이분법적으로 무엇이 옳고 그른지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양쪽의 장점을 살려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야 새로운 시대에 대응할 수 있어요. 역발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성공한다면 세계의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K방역은 한국의 힘을 보여줬어요. 전 세계를 아우를 수 있는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습니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한국의 가능성에 주목했다. 그의 말처럼, 지금 우리에겐 멋진 기회가 왔다.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는 일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다. 외세 침략의 희생양이 되었던 우리의 아픈 역사가 새로운 희망으로 채워지길, 우리나라가 세계를 화합과 평화로 이끄는 새 시대 주인공으로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그날이 올 때까지 그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따뜻한 메신저가 되어 역사의 진실을 세상에 전할 것이다.  



호사카 유지 교수는 누구인가?

30년 한·일 관계 연구한 독도전문가 


현재 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교수 겸 독도종합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름만 보면 그는 분명 일본인이다. 그러나 그는 2003년 일본 국적을 버리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한국인이다. 아니 뼛속 깊은 곳까지 원단 한국인이다. 

1956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대학교 공학부 졸업 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으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8년부터 한일관계 연구를 위해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며, 한국 체류 15년 만인 2003년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2011년 독도 공로상, 2013년 홍조근정 훈장, 2018년 독도평화대상 특별상 등을 받았다.

외교부 독도정책위원회 자문위원과 독립기념관 비상임이사, 동북아역사재단 자문위원, KBS 객원 해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 경상북도 독도위원회 위원, 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상임이사, 단국대학교 일본연구소 편집위원, 동아시아일본학회 이사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일본 고지도에도 독도 없다』 『일본역사를 움직인 여인들』 『일본에게 절대 당하지 마라』 『일본제국주의의 민족동화정책 분석』 등이 있으며 『독도는 우리땅』 『한국전쟁』을 일본어로 옮겨 일본에서 출간했다. 한일관계사, 독도 문제, 역사교과서 문제, 야스쿠니 신사 문제, 한류, 일본의 우익사상 등에 관한 논문을 여러 편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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