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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0/10] 나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을 기리며 - 배우 송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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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리전투 100주년…


국민 한 사람으로 ‘나라사랑’에 

충실하겠습니다


드라마 <주몽>으로 일찍이 전 세계에 한류 문화 붐을 일으켰고,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삼둥이’를 능수능란하게 양육하는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남성들의 육아 참여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이보다 먼저 그에 대해 알아야 할 사실이 하나 있다. 그는 청산리전투를 이끈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다. 더구나 올해는 김좌진 장군이 청산리에서 전투를 지휘한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성공한 연예인으로 대중에게 사랑 받고 있지만, 그는 오늘날 자신의 성취를 스스로 일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번영한 대한민국에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다는 것. 그렇기에 그는 겸손하게 자기 자리에서 제 역할을 다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인 1920년, 김좌진 장군은 청산리에서 벌어진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다. 청산리전투는 한국독립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독립군은 항일 무장투쟁을 이어갈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독립운동을 하며 나라를 위해 자신을 던진 순국선열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올해는 청산리전투 100주년이 되는 해. 이것이 계기가 되어 송일국 씨는 제75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사회를 맡았다. 


“제가 김좌진 장군의 외증손자라서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나서도 되나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영광스럽게도 청와대에서 제의가 들어와서 사회를 맡았습니다. 같이 사회를 본 이소별 씨도 배우가 꿈인 친구예요. 스스로 배우로 소개하는 것이 쑥스럽다고, 대한민국 청년의 자격으로 사회를 보겠다고 하더라고요. 경축식이 끝나고 제가 출연한 뮤지컬에 초대하기도 했어요.”

함께 광복절 경축식 사회를 본 이소별 씨는 청각장애인이다. 하지만 송일국 씨는 “워낙 연습을 많이 하고 와서 사회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며 이소별 씨를 칭찬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여러 기회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모든 일에 감사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7월에는 4년만에 다시 뮤지컬에 도전했다. 그의 뮤지컬 데뷔작인 <브로드웨이 42번가>로 관객을 찾았다. 카리스마 넘치는 브로드웨이 최고 연출가 ‘줄리안 마쉬’ 역을 맡은 그는 변함없는 존재감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코로나19로 공연문화계가 위축된 상황임에도 흥행에 성공했다. 서울 공연 후 전국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으나,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방 공연은 취소된 상황이다. 하지만 언제 어느 때 어떤 작품에 캐스팅될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그는 변함없이 배우로서 제몫을 다하기 위해 운동하며 체력을 관리하고 노래 등 다양한 특기를 익히고 있다. 


드라마 <주몽>으로 불어온 한류 열풍 

고구려 역사를 세계에 알리다


송일국 씨는 1998년에 MBC 27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꾸준히 활동을 계속해서 어느덧 23년차 배우가 되었다. KBS2 드라마 <거침없는 사랑>,  <골목 안 사람들>로 시청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그는 2002년 KBS1 <인생화보>에서 ‘신형식’ 역을 맡으며 주연배우로 거듭났다. 


청소년 시절에는 연기보다 미술에 더 관심이 많았다. 무대미술을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미대를 준비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방이었다. 그러다 ‘무대미술을 하려면 배우의 동선을 잘 알아야 하니 연극영화과에 가보면 어떻겠느냐’는 조언을 듣고, 연극영화과에 원서를 넣었다. 어쩌면 운명이었을까. 연극영화과에 덜컥 합격하고 말았다. 드라마 <주몽>으로 2006 MBC 연기대상을 받았던 그도 그 시절에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연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연기가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오랫동안 방황했어요.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만난 유동근 선생님께서 방송국 공채를 준비해보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공채 시험을 받는데 또 합격을 했어요. 그렇게 제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방송국에 들어가서도 끼가 없어서 신인 시절에는 한참 혼이 났어요. 그렇게 한 단계씩 올라가다가 운이 좋게도 <주몽>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대중들에게 알려질 수 있었습니다.”


2006년에 방영된 드라마 <주몽>은 2000년대 서서히 불기 시작한 한류 열풍의 선봉장이 된 작품 가운데 하나다. 일본에서 드라마 <겨울연가>가 여성시청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면, <주몽>은 남성시청자의 선택을 받은 작품으로 통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DVD 대여 순위가 흥행의 척도로 통하는데, 여기에서 드라마   <주몽>이 대여순위 1위를 차지했다. 중앙아시아와 아랍권은 물론 아프리카에서도 <주몽>의 인기는 대단했다. 이란에서는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후보가 ‘주몽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기도 했다. 루마니아에서는 올해 중장년층 시청자의 꾸준한 청원으로 <주몽> 재방영이 결정되었다. 


드라마 <주몽>에 출연한 일은 배우는 물론 대한민국 국민으로서도 자부심을 느끼는 일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에서 제작하는 사극은 대부분 조선 시대를 다루었다. 하지만 <주몽>은 드물게 고구려 건국을 배경으로 정했고, 덕분에 이 작품을 통해 고구려 역사가 전 세계에 알려질 수 있었다. 


“다른 일이 아니라 제가 출연한 작품 <주몽>을 통해서 고구려를 세계에 알리는 데 조금이나마 일조했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을 느낍니다. 배우로서 저에게 맡겨진 소명을 해냈다고 생각해요.”


드라마 <주몽>은 그해 MBC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상과 대상의 영광을 안겨준 작품이기도 했다. 우연처럼 기회가 찾아온 것 같지만, 이미 그는 준비된 배우였다. <주몽>에 캐스팅되기 전인 2004년에 방영된 KBS 드라마 <해신>에서 ‘염장’ 역할을 하며 이미 호평을 받은 그였다.     


“사실 <해신>에 출연하기 전에 대하드라마의 주연에 캐스팅된 적이 있어요. 민감한 배역이어서 오랜 기간 준비했는데 잘 되지 않았죠. 그런데 기회가 되려고 하니 <해신>에서 제의가 들어왔어요. 처음에는 다른 분이 캐스팅되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제가 대신 들어가게 되었죠. 이전에 사극을 준비했던 것이 그때 빛을 보게 되었고, 덕분에 주몽까지 이어질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예전에 국궁을 배웠던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원래 주몽이라는 이름 뜻이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안중근 의사 다룬 연극 <나는 너다> 출연

1인 2역 맡아 독립운동가와 후손의 삶 연결


드라마와 영화 등 영상에 주로 출연했던 그가 처음으로 연극무대에 오른 것은 윤석화 씨가 연출한 연극 <나는 너다>를 통해서다. 이 작품은 안중근 의사를 소재로 한 연극으로, 작품에서 그는 안 의사와 그의 아들인 안준생 역할을 함께 연기하는 1인 2역을 소화했다. 이전에 연극을 해보지 않은 그에게 제의가 들어온 것은 백야 김좌진 장군 기념사업회 주관으로 이루어지는 ‘송일국과 함께하는 청산리 역사대장정’ 덕분이다. 


“사적으로는 친분이 없었고, 처음에는 전혀 저를 물망에 올려두지도 않은 상태였습니다. 그러다 연극을 준비하던 윤석화 씨가 중국 만주에 있는 항일유적지를 탐방하다가 현지에 있는 사람에게 ‘송일국이라는 친구가 매년 이곳에 온다’며 그를 추천한 것이다. 


“배우는 무대에 설 때 가장 행복하죠. 영화나 드라마는 제가 혼신의 연기를 펼치더라도 감독의 의도에 따라 편집될 수도 있어요. 연극도 연출의 방향을 따르지만 공연이 시작되면 배우가 무대를 책임져야 하거든요. 무대에 서본 사람이라면 그 희열을 알 수 있어요.”


첫 연극 도전에 1인 2역을 맡았지만, 그는 안중생을 연기하면서 비로소 독립운동가의 희생을 깊이 이해했다고 한다. 

“작품에서 안준생이 아버지를 향해 절규를 해요. 누구를 위해서 가족을 버리고 집안을 버리고 아들을 버리셨냐고 울부짖죠. 그때 안중근 의사가 화면 속에서 ‘너, 너를 위해서’라고 대답합니다. 이 대사가 저에게는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이름 없이 희생한 순국선열 기억하며

국민 한 사람으로 사회 기본인 건강한 가정 가꿀 터


연극 <나는 너다>에서 나온 대사처럼,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후대를 위해 독립운동을 했다. 송일국씨는 ‘덕분에 오늘날 자신이 번영한 대한민국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안타까움도 있다. 수많은 순국선열이 목숨 바쳐 광복을 위해 희생했지만, 정작 그 가족들은 광복 후에도 어렵게 사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독립운동가의 가족들의 삶 또한 쉽지 않았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족의 입장에서는 무책임한 가장처럼 여겨질 수 있잖아요. 나라를 되찾는데 헌신하다보면 가정까지 돌보기는 쉽지 않으니까 그 후손들이 교육을 제대로 받는다거나 하는데까지 신경쓰기가 어려웠을거에요. 나라를 위해 큰 희생을 하신 분들이니만큼 이제 정부차원에서 그 분들을 지원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에 대한 감사도 잊지 않는다. 청산리전투를 지휘한 것은 김좌진장군이지만, 청산리에서 목숨 바쳐 싸운 많은 분들이 있었기에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까닭이다. 


 “저도 예전에는 김좌진 장군외 다른 분들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처가댁 어른께서 6.25 전쟁에 참전하신 전사셔서 함께 국립현충원에 참배를 드리러간 적이 있어요. 참배 후 장모님께서 ‘김좌진 장군처럼 훌륭한 장군도 계시지만, 그 뒤에 수 많은 병사들이 함께했기에 장군도, 승리도 있다’고, ‘그 뒤에 숨은 병사들을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는데, 그 때 정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어요.” 


 그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분들을 위해서라도 국민 모두가 최선을 다해야한다고 생각한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은 기본을 지키며 사회의 근간인 가정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이다. 지난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결국 우리나라가 부강해져야한다. “저는 배우로 지내는 것만으로도 제 역량에 부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을 건강하게 키우는 것도 저의 소임이지요. 아이들의 이름이 ‘대한, 민국, 만세’여서 책임감도 느껴집니다. 앞으로도 대한, 민국, 만세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대한이, 민국이, 만세가 잘 자라나는 모습도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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