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1/03] 뮤지컬 ‘페치카’ 연출가, K문화독립군 김동규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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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역사이기에 가슴 울리는 이야기를 전한다
누구에게나 따뜻했던 ‘페치카’ 최재형 선생
뮤지컬 페치카로 다시금 불타오르기를
글·사진 | 편집부
러시아 독립운동가들의 페치카이자 대부였던 최재형 흔히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름 중에 ‘최재형’은 없다. 함경북도에서 노비와 기생 사이에 태어나 9세 때 가난으로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했으나 11세에 가난에 지쳐 가출, 러시아인 선장의 도움으로 ‘포트로 세메노비치’라는 이름으로 상선을 타고 7년간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볐다. 17세 때에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장사로 돈을 모았고 러시아 군대의 통역으로 일하며 러시아 황제의 훈장을 받고 한인들이 살고 있던 얀치혜남도소의 책임 관리직인 도헌(都憲)을 역임하는 등 자수성가한 사업가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모든 재산을 조국의 독립운동에 쏟아 부어 따뜻하게 데워준, 러시아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였다. 페치카 ‘최재형’은 한인의 자녀들이 배울 수 있도록 32개의 학교를 설립했고 항일의병조직 동의회(同義會) 조직에 기여했으며 1909년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역 거사 후원은 물론 거사 이후 변호인단 구성, 남은 가족들의 거처 제공 등 전폭적인 지지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국민회’ 조직 및 의병 모집, 재정난으로 폐간된 한국국문회 기관지 ‘대동공보(大東共報)’ 재발행으로 일제 규탄 등 수많은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상해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가 1920년 4월 연해주 의병조직을 습격한 일제의 총탄에 작고한 후 자손들까지 총살, 수간, 강제 이주를 당하는 등 녹록지 않은 삶을 살아야 했다. 1962년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독립장을 받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독립운동가 최재형은 낯설다. <페치카> 안에 담긴 역사가 오래도록 회자되기를 사실상 뮤지컬 <페치카>를 통해 최재형 선생을 이야기함으로써 식민의 시작부터 3·1절, 4월 참변으로 인한 고려인들의 희생 등 더 많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다룰 수 있었다. “독립운동은 누구 한 명의 영웅이 이끌어 낸 것이 아니니까요. 생명, 정의, 평화라는 이슈를 기반으로 살고자 모두가 일어선 국민운동이었습니다. 남한에 유관순이 있었다면 북한에 동풍신이 있었음을, 표면에 안중근 의사가 있다면 그 이면에 최재형 선생을 비롯한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최재형 선생의 일대기를 다루면서 러시아, 아시아, 유럽을 아우르고 한 사람의 자수성가 성공기, 식민 시대의 한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 그리고 디아스포라의 이야기까지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뮤지컬 <페치카>의 시작이었다. “추울 때 누가 난로를 때는가, 장마 때 누가 뚝방(둑)을 견고히 하는가. 언제 어디에서 태어났는가가 아니라 어떤 정신으로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가 더 중요합니다. 극복하려고 최선을 다하는 것과 포기하고 돌아서는 것. 가치를 제시할 수 있다면 세계적인 아이템도 될 수 있어요.” 작품 안에 역사를 담아 보관하고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오래도록 회자되기를 바라기에 더욱 정확한 역사를 알리고자 노력하는 것. 그것이 김동규 회장이 K문화독립군을 이끌어가고 있는 밑거름이기에 끊임없이 배우고자 했고 그 과정에서 기미독립선언 3·1운동 이전의 러시아에서의 무오독립선언, 일본에서의 2·8독립선언 등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역사와 마주할 수 있었다. 또한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전후 처우에 대한 점들도 내내 안타까움으로 남는다. <페치카>를 통해 잊혀진 독립운동가 최재형 뿐만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재조명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다. 역사에 가락을 붙여 마음을 울리는 노래가 되다 산업심리학을 전공했던 김동규 회장은 예술심리에 이끌려 음대로 편입, 성악을 전공하면서 떠났던 이탈리아 유학생활에서 구미코 김을 만났다. ‘랑코리아’ 듀오아임은 소프라노이지만 낮은 음계도 소화할 수 있는 구미코 김과 그녀의 넓은 음계를 활용할 수 있는 노래를 작곡하는 주세페 김, 즉 김동규 회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구미코 김은 남편이 있어 자신의 기량을 활용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주세페 김은 아내의 호소력 있는 목소리가 자신의 노래를 빛내준다고 고마워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는 인연이다. 조마리아 여사의 노래 ‘아들아 아들아’는 구미코 김의 대표작으로 회자된다. 어머니가 일본인인 구미코 김이기에 어쩌면 더 깊이 있는 울림을 주는지 모르겠다. “일본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어머니가 일본인이라서 저도 모르는 사죄의 마음이 있고 평화의 가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현재 제 마음은 300% 한국인이에요.” ‘애국부부’라는 호칭에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마음이 오롯이 대한민국에 있음을 표현하는 데는 주저함이 없다. 이탈리아에서 함께 한 10여 년의 세월은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부부 성악가, 부부 팝페라 가수인 ‘듀오아임’을 결성하고 귀국 후에는 대학 강의, 오페라 공연 등을 함께해왔다. “이탈리아어로 부르는 오페라보다는 우리나라 음악을 들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토스카’에서 이탈리아 식민시대의 애환을 느끼고 ‘나부코’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읽을 수 있잖아요. 이탈리아 역사가 담긴 노래를 우리나라에서 부르니 전혀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거죠.” 의지는 실천으로 옮겨졌고 우리의 시대상, 우리의 바람이 담겨져 있는 민족시에 음악을 붙이기 시작했다. 구상 시인과의 만남은 작업에 활력이 되어주었다. 직접적인 만남은 아니었지만 구상 시인의 가족들을 만나고 이해인 수녀를 비롯한 역대 구상문학상 수상자들과의 만남은 작품 활동에 날개를 달아주었고 윤동주의 ‘서시’, 천상병의 ‘귀천’ 등 노래로 만들어진 시로 관객들과 우리 문학의 아름다움을 나누면서 한층 발전시켜가고자 노력했다. 2013년 듀오아임을 기반으로 하는 악단 ‘랑코리아’는 그렇게 결성되었다. “둘이서 모든 걸 할 수 없으니 악단을 구성하고, 앙상블을 구성하고 중창단이 구성되었지요. 거기에 배우, 안무가 등이 함께하면서 융복합공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문화를 주제로 역사가 흐르고 사상을 보여줄 수 있는 공연을 하고자 합니다. 인문학과 문학, 역사, 철학을 넘어서서 삶에 대한 통찰까지 그려내고 싶어요. 올바른 가치관, 정확한 역사관, 투철한 국가관을 통해 폭넓은 세계관을 녹여내고 싶습니다. K문화독립군의 시작이었어요.” 마음의 보상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인 조 마리아 여사의 노래, 구상 시인의 적군묘지 앞에서, 민주화운동 조한알 할아버지 등 우리의 빛나는 역사들을 문화로 녹여내 온 랑코리아는 현재 경기도 전문 예술단체로 성장했으며 2018년 뮤지컬 <페치카>를 제작하면서 보훈처에서 K문화독립군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K문화독립군의 회원은 33명. 민족대표 33인을 연상케 하는 숫자다. 이름만 몇 백 명인 허울이 아니라 알찬 33명을 구성함으로써 충만하게 운영되고 있다. <페치카>는 2017년 용산아트홀 쇼케이스 공연, 2018년 KBS홀 뮤지컬 갈라콘서트를 시작으로 3년에 걸쳐 완작된 작품이다. 국내는 물론 일본에서의 공연 후에 감동을 전하는 분들도 많다. “일본 용곡대학 안중근 심포지엄에서 조 마리아 여사의 ‘아들아 아들아’를 불렀을 때는 용곡대학 법대 교수님 한 분이 오셔서 감동을 넘어서서 그렇게 슬프고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며 전생에 조선인이 아니었을까 하셨던 적도 있고요. 오사카 작은 한국식당에서 기타를 치며 불렀던 윤동주의 ‘서시’를 듣고 가슴에 고이 넣어두었던 수첩 속 직접 적은 윤동주의 서시를 보여주며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하시던 노신사 분도 계셨어요. 일상에서 만나는 이런 감동들이 저희가 움직이는 힘이지요.” 신념으로 만들어진 길을 걷는 사람들 김동규 회장과 구미코 김 부부는 노래로 이야기를 전하는 내내 관객들이 우리의 얼을 담은 내용에 감동을 받고 멜로디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푹 빠져서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 201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페치카> 완작 초연 당시에는 마지막 태극기 흔드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다 같이 일어나 태극기를 흔들기도 했다. 그 마음이 닿아 함께하는 특별한 인연들도 많다. “공연이 끝난 뒤에 다음 공연도 함께하고 싶다고 연락 오는 분들도 많고 특히 국민배우 김성녀 선생님께서 조건 없이 같이 해주시고 계세요.” 평생 뮤지컬 무대에 서 온 우리나라 1세대 뮤지컬 배우의 극찬과 동행은 감사하고 힘이 되는 일이다. 무대 위에서, 무대 뒤에서 받는 성취감과 고양감은 그 어떤 경제적 성과와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다. 코로나19로 대면 공연이 모두 중단된 중에 <페치카>는 온라인 영상으로 다시금 태어났다. 사실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았다. 부족한 제작비로 김동규 회장은 기획부터 제작, 작곡, 편곡, 녹음, 배우까지 전반을 아우르며 일인다역이 되어 준비했다. 비록 상업적 뮤지컬 제작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그 안에 녹아난 정신의 가치는 그 무엇에도 비견될 수 없다. “모든 제작진이 동시에 출연진이었어요. 작은 제작비로 큰일을 해냈어요.” 전국 대다수 교육청에서 영상관람 및 감상문 공모전에 명칭후원 혹은 학교 홍보 등의 동참 의사를 밝혀주었다. “제작은 힘들지만 최재형 선생님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의미 있고 훌륭한 분들에 대해 계속해서 조명하고자 합니다. <페치카>를 통해 숨겨진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사)무위당사람들과 연계한 창작뮤지컬 <원주역, 조한알 할아버지>를 통해 70년대 민주화운동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그 후에는 남북분단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보고 싶어요. 과거만 돌아보면 안 되겠지만 잊어서도 안 되니까요.” 이익이 아닌 의미와 신념, 가치를 따라 걸어온 길은 어느새 그들이 함께 나아가야 할 길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