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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1/06] ​춘천의병마을 이대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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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 대신 칼을 들고 농사짓던 갈퀴손엔 횃불을 치켜들었다 


나라를 지키다가

역사 속으로 아스라이 흩뿌려진

의병을 기억하다


글·사진 | 편집부


  매년 6월 호국보훈의 달의 첫날인 1일은 ‘의병(義兵)의 날’이다. 멀리 보면 고구려와 백제유민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부터 1592년 임진왜란, 1895년 을미사변을 거쳐 1910년 이후 국권피탈 전후 활발했던 의병운동까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왔던 한반도를 지켜온 뿌리이자 시초는 ‘의병’이었다. 그 길고 긴 역사에 비해 의병의 날이 제정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2008년 8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국 의병의 날을 기념일로 제정할 것을 국회에 청원, 2010년 5월 정식 법정기념일로 정해졌으며 2011년부터 매년 의병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여러 지역에서 의병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고 있다. 직위도 없었고 주어진 무기도, 녹봉도 없었다. 나라를 구하겠다는 일념 하나만 있었을 뿐 어떠한 대가도 원한 적 없이 위기에 처한 나라를 위해 스스로 일어났고 기꺼이 삶을 희생해 이름 없는 업적들을 남겼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의병은 교과서 한 면에 실린 농기구를 들고 있는 흑백 사진 속 이름 모를 사람들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는 않은가. 춘천의병마을의 시작은 그러한 안타까움이었다.


교과서 밖 세상에서 만난 의병 활동


2003년 문화관광부가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공모한 문화·역사 만들기 사업 소식을 들었을 때 이대근 이사장의 머릿속에는 거대한 청사진이 순식간에 그려졌다. 강원도 곳곳에 만세운동을 통해 대한민국 자주독립을 위해 힘써온 애국선열의 민족정신이 남아있고 그중에서도 의병 운동의 중심지이자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으며 의암 유인석, 습재 이소응,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등 전기 의병부터 후기 의병까지 많은 의병장들을 배출해낸 춘천을 의병마을로 만드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려운 일이었다.


“2004년 당시만 해도 전국의 독립운동 관련 기념관이나 선양 시설 등이 관람 위주로 운영되었어요. 대표적인 곳이 천안의 독립기념관으로 단체 관람만 있었지요. 춘천의병마을은 기념비를 보고 기념관을 방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체험형 교육을 지향하는 공간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춘천의병역사마을 만들기’는 당시 강원도에서는 유일하게 선정된 사업이었다. 당일형·숙박형 체험을 기획했고 화승총·활쏘기 등의 의병 무기 체험과 의병 신표 만들기, 의병 행렬 재현, 의병 무예인 택견 익히기, 격문 만들기, 의병가 배우기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이 기획되었다. 또한 서당 운영, 천연 염색, 솟대 세우기, 목판 찍기, 전통 악기 배우기 등의 전통 문화 체험을 함께 기획함으로써 의병 체험이 생소한 이들에게 보다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다.


항일정신과 역사유적의 산 교육장


  춘천의병마을이 들어선 남면은 구한말 위정척사 운동의 사상적 기반이 된 화서학파의 본거지였으며 의병항쟁을 통한 항일정신이 숨 쉬는 대표적인 충의마을이다. 화서 이항로 선생의 제자로서 대학자이자 항일 사상을 펼친 의병장 의암 류인석 선생의 고향이며, 구한말 최초 여성 의병장으로 활동한 윤희순 선생이 활동한 곳이기도 하다.


봉화산 줄기 아래 병풍처럼 펼쳐진 유적지에는 의암 선생의 어록과 연대기가 새겨져 있는 돌담길, 윤희순 의병장의 ‘안사람 의병가’가 새겨진 비석 등 다양한 역사의 기록들이 이제는 아름다운 유산이 되어 눈길을 끌고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춘천의병역사마을 만들기의 일환으로 2005년 4월 완공, 운영되어 온 전통문화수련장인 의병학교는 구한말 최초 의병 거병지로의 역사적 의미를 살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문화체험 및 교육공간으로 조성되어 있다. 유품과 서책류, 간찰과 상소문, 유묵진본, 인장과 벼루, 무기료, 깃발, 의류,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는 의병전시관과 흙벽의 초가로 재현해놓아 전통한옥의 구들방 체험이 가능한 숙박시설이 있으며 의병활터, 야외교육장, 뗏목체험관 등 다양한 수련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아이들에게는 학습동기 유발이 중요합니다.” 의의만큼 중요한 것이 재미와 흥미임을 이대근 이사장은 잘 알고 있었기에 이 다채로운 역사적 체험 과정에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포인트들이 빼곡하게 담겨있다고 한다.


국내외 유적지에서 가슴으로 만나는 역사


“일제 치하에서 초등학교를 다녔기에 나라 없는 설움을 겪어봤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자연스럽게 깨달았어요. 춘천문화원장, 강릉시장을 역임하는 과정에서 여러 계층, 여러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청소년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등 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선양되는 데 비해 독립운동의 시발점이었음에도 역사에 묻힌 의병들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도 함께했어요. 그렇게 춘천의병역사마을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마한 단위에서나마 아이들의 애국심을 길러주어야겠다던 이대근 이사장의 기획은 조금씩 틀을 갖추고 단위를 넓혀갔다. 처음 기획대로 의병 체험과 전통 문화 체험을 이끌어가면서 동시에 다양한 탐방 및 지원 사업 역시 활발하게 펼쳐나갔다. 특히 강원도교육청과 함께 한 청소년나라사랑탐험대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강원도 내 고등학교 자치회장을 대상으로 매년 2차에 걸쳐 5박 6일간 중국 임시정부 루트와 동북 3성 지역, 러시아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 지역을 탐방하면서 사적지 답사와 분임별 미션 수행 등 현지에서 가능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시작은 강원도였지만 점차적으로 대상을 확대시켜 매년 5~6천여 명의 전국 청소년들이 참여해 의병활동에 대해 되짚어보고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운 채 돌아갔다.

“중국 의암 공원 등 현장에 처음 갔을 때 무성했던 풀숲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미처 어딘지 알아볼 수 없게 황폐해진 유적지에서 아이들이 직접 풀을 뽑고 치우고 닦아내면서 많이 울었어요. 행사는 매년 진행되었지만 초기에 참여했던 아이들은 더 가슴 절절하게 역사의 현장을 담아간 셈이죠.”


참혹한 현장은 의병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인 것만 같았다. 이대근 이사장이 첫 현장 답사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보훈처에 해외 독립운동 유적지 관리를 건의하는 일이었고, 그 후 훨씬 평안해지고 경건해진 사적지에서 아이들과 역사를 논할 수 있었다.


매일 현장 답사를 하고 저녁이면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 익숙하지 않던 아이들도 토론을 좋아하지 않던 아이들도 직접 겪고 느낀 일에 대해 이야기 하다보면 너나 할 것 없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된다. 아이들의 활발한 토론을 보고 있노라면 이대근 이사장은 물론 함께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진행한 이들의 모든 노고가 잊혀졌다. “매순간 가슴 벅찬 감동을 주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한 시간”이라고 이대근 이사장은 전한다.


체험으로 끝나지 않고 탐구로 이어가길


  2014년부터는 역시 강원도교육청과 함께 동북아 지역의 한민족학교를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동북아 한민족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인재 육성 및 한민족공동체 강화를 목적으로 중국의 20여 개 학교와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의 한글학교를 지원하고 있다.


그외에도 역사와 4차 산업의 융합교육이라는 차세대 교육 ‘드론으로 만나는 독립운동사적지’는 청소년들이 드론을 배우고 독립운동사적지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한 모든 아이들에게 역사교육뿐 아니라 4차산업의 도래에 따른 새로운 직업세계 탐구의 의의까지 선사했다. 청소년을 위한 독립운동사 도서 발간도 춘천의병마을에서 공들여 진행한 사업이었다. 3·1독립만세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국가보훈처의 지원으로 청소년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독립운동사가 흥미롭게 정리되어 있다.


일반인들에게도 춘천의병마을은 활짝 열려있다. 역사버스를 타고 찾아가는 ‘우리 땅 구석구석 역사여행’은 2017년 11월부터 매월 1회씩 총 26회에 걸쳐 진행되었다. 100여 곳의 기념관, 독립운동사적지 등을 답사할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저 보고 지나가는 관광이 아닌 전문가들의 설명과 역사적 평가가 더해진 체험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2019년부터 매년 6월에는 ‘나라사랑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의병의 날을 맞아 선열들의 넋을 추모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열리는 음악회는 토크와 뮤지컬이 결합된 형태로 춘천 시민들은 물론 발걸음 했던 관광객들에게도 즐거운 시간을 선사해왔다.


이대근 이사장은 이러한 체험들이 일회성 체험으로 끝나길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열들이 어떻게 싸웠고 어떤 과정을 통해 독립을 쟁취할 수 있었는지 역사의 흐름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상황들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단순한 이름, 연대기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고 갔으면 좋겠어요. 선열들의 희생으로 오늘의 대한민국과 우리가 존재하니까요.”


나라 사랑하는 마음으로 걸어가는 길


코로나19로 인해 2020년부터 모든 행사와 사적지탐방은 멈춘 상태지만 올해 하반기부터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면서 진행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에 있으며 상황에 맞는 사업들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올해에는 국가보훈처 지원을 받아 <강원독립운동사적지> 사진집 발간을 준비하고 있다. “독립운동을 소개하는 책들은 재미없고 딱딱하다고 생각되기 마련이잖아요. 그래서 외면당하는 책들도 많고요. 독립운동사적지를 보다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사진집을 준비하고 있어요.”


춘천의병마을 남귀우 사무국장이 공동대표로 2019년 발족한 ‘미서훈독립운동가 발굴을 위한 추진위원회’ 활동도 계속되고 있다. 매년 10여 명의 미서훈 독립운동가를 발굴하여 국가보훈처에 서훈 신청을 하고 있고 80% 이상이 인정되었다. 공적을 증빙할 수 있는 서류를 확보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결코 놓을 수 없는 일이다.

2020년 6월 창립총회와 함께 발족된 ‘강원도독립운동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 활동 역시 춘천의병마을에서 함께 하고 있는 사업이다. “천안의 독립기념관을 비롯하여 전국 각 지역별 항일독립운동사를 정리한 공간이 존재하는데 강원도에는 없습니다. 춘천의병마을을 비롯한 각 기관과 사회단체장 등이 함께 기념관 건립을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역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만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내게 돌아오는 이익이 없는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럼에도 춘천의병마을에 들러 의병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고 애국심이 고취되는 모습을 고스란히 보고 있노라면 “이 길이 옳은 길이구나”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이대근 이사장의 꼿꼿한 이정표를 간직한 춘천의병마을은 오늘도 물밑에서 바삐 움직이며 올바른 역사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노력하고 있다.  





추천의 의병들



★ 학자이자 의병장, 의암 유인석


1876년 병자수호조약 체결 시 반대상소를 올렸으며, 1894년 갑오개혁 후 김홍집 친일내각이 성립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관군에게 패전하고 만주로 망명, 국권피탈 후에도 독립운동을 계속했으며 연해주 한인 자치단체인 권업회 총재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우리 대한의 인민 된 자는 인민의 책임을 다하고 인민의 역량을 다 바쳐야 마땅합니다. 전국 인민은 인민의 단체를 조직하여 민의를 결정하고 이로부터 어떤 방법과 수단을 쓰더라도 대한인민의 지위를 결코 잃지 않고 일본과 싸워서 기필코 대한의 국권을 회복할 것입니다.”


★ 을미의병의 주역, 습재 이소응


1895년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을 계기로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을 때 ‘위정척사’를 내걸고 의병에 투신, 춘천의병장으로 추대되었다. 춘천의병은 관찰사로 부임한 친일 관료 처단에는 성공했으나 경기도 가평에서 패전해 서울 진격의 뜻을 이루지 못했다. 한평생 선비로서의 자존심을 지키며 화서학파 선배인 의암 유인석과 항일투쟁에 매진했다. “무릇 사방에서 일어난 우리 의병은 국가를 위해 복수하고 설욕하는 것을 반드시 가장 큰 의리로 삼아야 한다.”


★ 최초의 여성 의병장, 윤희순


윤희순은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항일 여성 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여성 의병장이다. 의병들에게 음식과 옷 조달, ‘안사람 의병가’ 등을 창작하고 보급함으로써 의병들의 사기를 북돋았으며 여성들의 의병활동을 이끌어내는 데도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우리나라 의병들은 나라 찾기 힘쓰는데 / 우리들은 무얼 할까 의병들을 도와주세 / 내 집 없는 의병대들 뒷바라지 하여 보세 / 우리들도 뭉쳐지면 나라 찾기 운동이요 / 왜놈들을 잡는 것이니 / 의복 버선 손질하여 만져 주세 / 의병들이 오시거든 따뜻하게 만져 주세 / 우리 조선 아낙네들도 나라 없이 어이 살며 / 힘을 모아 도와주세 만세 만세 만만세요 우리 의병 만세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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