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 삶 이야기 [2021/07]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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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광복군으로 활약
굴곡진 역사의 한 중앙에서
이 나라를 가슴에 품다
인터뷰·글 | 이윤옥(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오희옥 지사는 할아버지대(代)부터 ‘3대가 독립운동을 한 일가’에서 태어나 1939년 4월 중국 유주에서 결성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1941년 1월 1일 광복군 제5지대(第5支隊)에서 광복군으로 활약했으며 1944년에는 한국독립당(韓國獨立黨)의 당원으로 활동하였다. 오희옥 지사 집안은 명포수 출신인 할아버지 오인수 의병장(1867~1935), 중국 서로군정서에서 활약한 아버지 오광선 장군(1896~1967), 만주에서 독립군을 도우며 비밀연락 임무를 맡았던 어머니 정현숙(1900~1992), 광복군 출신 언니 오희영(1924~1969)과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참령(參領)을 지낸 형부 신송식(1914~1973) 등 온 가족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현재는 서울중앙보훈병원에 입원 중이다.
유일한 생존 여성독립가 오희옥 지사 병문안 길
이는 서울중앙보훈병원에 햇수로 4년째 입원 중인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의 아드님이 들려주는 말이다. 대한민국 유일의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오희옥 지사의 올해 연세는 95세다. 지사님께 주어진 시간의 수레바퀴가 얼마나 남아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병실을 향하는 마음은 언제나 무겁고 때론 착잡하다. 오늘은 무엇으로 지사님을 기쁘게 해드릴까? 때로는 백 마디 말보다 화사한 꽃다발이 더 위안이 될 것 같고, 때로는 환자복 위에 걸칠 분홍색 숄이 더 어울릴 것 같아 찾아뵈러 갈 때마다 설레는 마음으로 선물을 고르는 일이 즐겁다.
1년 전까지만 해도 생존 여성독립운동가라고 하면 유순희(1926~2020, 94세), 민영주(1923~2021, 97세), 오희옥(1926, 생존 95세) 지사 이렇게 세 분의 이름이 삼총사처럼 거론되었지만 이제는 오희옥 지사 한 분만 생존해 계신다. 병원 신세를 지기 전까지 오희옥 지사는 구순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셨다. 특히 92세이던 지난 2017년 8·15(제72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단독으로 무대에 올라 임시정부 시절 애국가(스코트랜드 민요인 올드랭사인 곡에 맞춰 부른 애국가)를 불러 기념식 참석자들은 물론이고 전국에서 기념식 생중계를 보고 있던 국민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으며, 그동안 크고 작은 독립운동 관련 행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든든한 여성독립운동가의 자리를 지켜주시던 분이 바로 오희옥 지사다.
3대(代)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에서 태어나다

“제가 만 열아홉이던 해(1919년) 봄, 그이(오광선)로부터 소식이 왔어요. 압록강 대안(對岸)에서 2백리 떨어진 합니하의 신흥무관학교에 와 있으니 그리로 오라는 것이었지요. 간단한 살림도구를 챙겨 용인역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을 지나 명죽리에서 내렸어요. 거기서부터 육로를 한 달 동안이나 걸어 만주로 들어갔지요.
- <광복군 따라 대륙유랑 30년>
(주간여성,1974년)
아버지 오광선·어머니 정현숙 지사
부부 독립운동가
한 달 동안을 걸어 이역만리 낯선 고장에 짐을 풀었지만 그곳 역시 녹록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과 함께 지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만주에서 독립운동가 부부로 생활이 시작되었고 오희옥(1924,생존 95세) 지사와 언니 희영(1924-1969)이 이곳 만주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여장부셨습니다. 하루에 12가마씩 밥을 지어 독립군을 먹여 살렸지요. 아버지가 신흥무관학교 교관이라 학생들을 데려오면 그 식구들을 모두 챙기셨던 것입니다. 어머니는 만주에 도착해서 척박한 땅을 일구어 농사를 지었는데 일꾼을 일곱 명이나 두고 농사를 지을 만큼 억척이셨지요.”
오희옥 지사는 당시 어머니의 별명이 ‘만주의 어머니’였다고 했다. 독립운동의 끈을 놓지 않고 조선을 떠나 만주로 만주로 밀려들었던 독립군들! ‘만주의 어머니’는 그들을 먹여주고 재워주며 독립운동을 할 수 있도록 이끈 조선의 어머니였다. 그 고난의 시절, 12가마 분량의 밥을 해대던 어머니의 밥을 먹지 않은 독립군이 있었을까?

오희옥 지사처럼 독립운동가 집안의 자녀들은 망국의 설움을 고스란히 짊어져야 했다.
“토교에서 정씨(오희옥의 어머니 정현숙 지사를 일컬음)는 홀로 삼남매를 키우느라 늘 궁색한 처지로 형편 필 날이 없었고 백범은 오광선의 가족들이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안쓰럽게 생각하여 늘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았다. (중략) 영걸 어머니(정현숙 지사)는 고생이 심했다. 내가 다른 이들보다 특히 영걸 어머니에 정을 쏟고 희영이나(큰따님) 희옥에게(작은따님) 좀 더 잘해주려 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영걸 어머니는 만주에서 농사 경험도 있고 몸도 건강해서 내 밭일을 많이 도와주었으며 나는 그 대신 그 집 삼남매의 옷가지 손질이며 이부자리 등 주로 바느질일을 도왔다.”
- 정정화 《장강일기》
당시 오희옥 지사 가족은 만주에서 활동하던 아버지와 헤어져 어머니가 삼남매를 데리고 임시정부 가족들과 함께 정처 없는 유랑의 길을 걷고 있었다. 갖은 어려움 속에서도 희옥, 희영 자매는 씩씩하게 성장하여 광복군의 전신인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韓國光復陣線靑年工作隊) 대원으로 활약하였다.
중국 유주에서
한국광복진선청년공작대 대원이 되다

굴곡진 역사의 한가운데에서 모진 비바람을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유일의 생존 여성독립운동가 오희옥 지사! 광복군 출신답게 병마와의 싸움에서도 꿋꿋하게 퇴원할 날을 손꼽으며 희망을 놓지 않는 노전사(老戰士)의 쾌유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최근 오희옥 지사가 퇴원하여 돌아갈 집이 없어 걱정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현재 오희옥 지사 집은 3년 전(2018년 3월), 해주오씨 종친회에서 땅을 제공하고 용인시에서 주택(재능기부)을 지어 ‘독립유공자의 집’으로 세운 것인데 준공 뒤 바로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살아보지도 못하고 SK하이닉스반도체 클러스터 단지(용인시 원삼면 일대 416만㎡ 규모 예정)가 들어서게 되어 집이 헐릴 위기를 맞은 것이다.
모쪼록 오희옥 지사가 퇴원하여 마음 놓고 여생을 보낼 집 문제를 관계 기관에서는 하루 속히 해결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는 개인 오희옥이 아니라 이 시대의 여성독립운동가를 대표하는 생존 ‘오희옥 애국지사’를 편히 모셔야 하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하루 속히 코로나19가 사라지고 오희옥 지사께서 긴 병원 생활을 청산한 뒤 새로운 집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시게 되길 지사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