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 Theme.3 우리나라 보훈정책의 성과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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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평성·일관성·미래지향성 해결해야
희생과 공헌 존중되고 자긍심 느낄 수 있도록
정신적 명예·존경 필요
글 | 선종률(한성대학교 특임교수)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은 1962년에 독립유공자, 전공상군경, 전몰순직군경 등 국가유공자 15만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그 후 1996년 참전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의증 및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 장기복무 제대군인 등으로 대상을 크게 확대하였고, 2002년에는 5·18 민주유공자를 새롭게 포함했으며 2005년 특수임무 수행자를 추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보훈 영역은 대부분의 나라와 달리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지 가치 분야로 확대 정립되어 가장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1961년 국가원호청이 설립된 이래 60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나라 국가보훈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보훈정책의 형평성과 일관성, 미래 지향성 등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보훈정책과 주요 성과
국가보훈은 국가가 과거에 발생한 일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하는 행위이면서, 그와 동시에 미래의 그러한 공훈과 희생에 대한 동기유발이라는 두 가지 복합적인 효과를 달성하게 된다. 국가보훈정책은 국민을 통합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고양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세계사에 이름을 떨친 강국들은 예외 없이 보훈에 대한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운용하여 왔다.
우리나라의 보훈은 6세기 통일신라시대 상사서(賞賜署), 고려시대 고공사(考功司), 조선시대에는 충훈부(忠勳府)에서 관장하였고, 법률에 의거한 현대적 보훈제도는 제주지역 등의 공비토벌 과정에서 발생한 사상군경에 대한 지원을 목적으로 1950년에 군사원호법, 1951년에 경찰원호법을 제정함으로써 시작되었다. 국가보훈을 시행하기 위한 기관으로는 1961년 군사원호청을 설치 운영하기 시작하였고, 1962년에 원호처를 거쳐 1984년에 국가보훈처로 개편하여 현재는 장관급 부서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여느 선진국에 비해서도 손색이 없게 되었다.

〈표 1〉 보훈대상자 현황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보훈정책은 1962년에 독립유공자, 전공상군경, 전몰순직군경 등 국가유공자 15만여 명을 대상으로 시행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 1996년에는 참전유공자와 고엽제 후유의증 및 고엽제 후유증 2세 환자, 장기복무 제대군인 등을 포함함으로써 대상을 크게 확대하였고, 2002년에는 5·18 민주유공자를 새롭게 포함시켰으며 2005년에는 특수임무 수행자를 추가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로써 우리나라의 보훈 영역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와 달리 ‘독립’, ‘호국’, ‘민주’라는 세 가지 가치 분야로 확대 정립되어 가장 광범위하게 시행되고 있다.
해결되어야 하는 과제
1961년 국가원호청이 설립된 이래 60년이 흐른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국가보훈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와 함께 형평성, 보훈정책의 일관성, 미래 지향성 등의 분야에 대해서는 해결해야 할 적지 않은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보훈정책의 형평성에 대한 논쟁은 대상자 선정 기준에 대한 것과 보상 규모에 대한 것으로 대별할 수 있다. 보훈대상자 선정에 있어서의 형평성을 문제로 제기하는 유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제강점기의 친일행위 또는 항일독립운동 여부와 해방 이후의 호국 관련 공적의 충돌이 있는 인원에 대한 국가유공자로서의 자격 적절성 여부에 대한 다툼과,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 등의 선정 기준은 다른 보훈대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엄격하다는 점 등이 주요인이 되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형평성 논쟁의 이면에는 이념적인 요소까지 작용함으로써 많은 사회적 갈등의 요인마저 되고 있다.
보상 규모에 대한 논쟁은 기본적으로 보상의 정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이 상존하는 가운데, 대부분의 보훈대상자가 일반법에 의해 지원을 받는데 특정 사안의 대상에 대해서는 특별법에 의해 보상이 이루어짐으로써 보상 규모에 격차가 발생하는 데 따른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국가보훈정책은 정부의 이념적 성향과 무관하게 추진되어야 한다. 그러나 국가안보를 무엇보다 중시하는 경향을 갖는 보수정부에서는 보훈정책도 전 국민 호국정신 함양이라는 이른바 ‘선제보훈’에 중점을 두어 추진하였다. 반면 진보정부에서는 보수정부에서 추진한 호국정신 함양교육을 국민의 보수화를 위한 이념교육으로 의심하여 이를 축소 내지는 폐지하는 한편, 복지에 중점을 두고 보훈대상자에 대한 ‘사후보훈’에 치중하는 모습을 나타냈다. 정권 교체 시마다 나타났던 이런 현상은 정부 간 보훈정책의 일관성이 미흡한 것으로 보훈 대상자들에게 불만의 원인으로 작용함으로써 국가보훈이 지향하는 국민통합에 장애요인이 되곤 하였다.
국가보훈정책의 목표는 국민통합과 애국심 고양이다. 이 때문에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애국심 교육을 체계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예컨대 미국의 경우 많은 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충성의 맹세’나 ‘국기에 대한 맹세’와 같은 애국심 고취 의식을 행하고 있다. 이러한 의식을 통해 학생들은 소속감과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느끼게 된다. 미국인들은 초등학교로부터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단계적이고 체계적으로 애국심 고취 교육을 받고 있다.
반면에 우리나라는 교과내용에서 애국 관련 과목이 폐기되고 기존에 실시하던 애국조회나 국기에 대한 맹세마저 폐지하였을 뿐 아니라 젊은 세대에 대한 체계적인 애국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젊은 세대들은 애국이라는 용어조차 생소하게 느끼고, 애국교육이라는 것을 마치 국가주의에 대한 세뇌교육으로 인식하는 경향마저 나타나게 되었다.
우리의 보훈정책이 나아갈 방향
첫째, 보훈정책은 1차적으로 국민통합을 지향하여야 한다. 국가보훈기본법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오늘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의 숭고한 정신으로 이룩된 것이므로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그 정신을 기억하고 선양하며, 이를 정신적 토대로 삼아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는 것을 국가보훈의 기본이념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둘째, 보훈정책은 보훈복지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를 위해 희생을 한 것에 대해 충분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그 희생에 대한 응분의 대가를 지불해준다는 의미를 가지면서, 다른 이들에게 미래의 그러한 공훈과 희생에 대한 자발성을 북돋우고 동기유발을 한다는 두 가지 복합적인 효과를 달성하려는 의미가 있다. 내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면 나의 명예는 물론이려니와 남겨진 내 가족들도 명예롭게 되고, 국가로부터 충분한 보상과 예우를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 때, 그 희생의 자발성이 더욱 커질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다. 보상의 수준은 국가를 위해 정신적, 육체적인 희생과 공헌을 한 이들이 그러한 희생을 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생업에 종사했을 경우와 비교해서 오히려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모든 국민은 마치 국가라는 거대 보험회사에 무한보상을 책임지는 보험에 가입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개념으로 국가는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공헌한 이들을 끝까지 책임지는 체제를 구축하여야 한다.
셋째, 국가를 위해 희생과 공헌을 한 유공자들이 자신의 행위가 충분히 존중되고 그들 스스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충분한 정신적인 예우가 이루어져야 한다. 보훈 관련 주요 법령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예우가 주로 물질적인 보상에 치우쳐 있고, 국가유공자들을 오직 ‘지원 대상자’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원 대상자 즉 지원의 객체라는 것은 곧 누군가가 지원을 해야 된다는 의미이므로, 그 지원을 하는 사람들에게 짐이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여기에는 국가유공자의 명예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오히려 국가와 국민에게 지원의 부채를 안겨주고 있는 부담스러운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유공자에 대한 예우에는 물질적인 보상과 함께 미국의 명예훈장 제도에서 보는 것과 같이 정신적인 명예와 존경이 병행되어야 한다. 물질적인 보상은 행위의 시간적 지속성이 짧으면서 각각의 행위가 연속성보다는 단절성이라는 속성이 강한 반면, 정신적인 존경이나 명예는 연속적이며 지속적이라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보훈에 있어서 정신적인 가치가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끝으로 체계적인 애국교육을 시행해야 한다. 국가가 국민에 대한 의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국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목숨을 바쳐 국가를 수호하겠다는 의지가 미약할 때 국가의 물리력은 결집될 수 없으며 국가발전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애국심은 자기 나라를 사랑하고 그 사랑을 바탕으로 국가에 대하여 헌신하려는 의식이자 신념으로서 국가체제 유지의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국민 모두에게 스며들어 있는 나라사랑 정신은 유사시 모든 국민의 정신을 하나로 묶어주는 접착제의 역할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육군사관학교 37기, 대령으로 예편했다. 국제정치학 박사이며 한성대학교 국방과학대학원 특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사단법인 한국보훈학회 회장을 역임했다.